조국 법무장 장관 임명 줄다리기는 지난 9일 문재인 대통령이 임명을 재가하면서 더불어민주당의 승리로 막을 내렸다. 이 과정에서 이인영(왼쪽) 민주당 원내대표는 같은 날 조 장관 임명 사실을 먼저 알고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에게 90도로 허리를 숙여 인사하며 우회적으로 미안함을 전달했다. /남윤호 기자 |
<더팩트> 정치팀과 사진영상기획부는 여의도 정가, 청와대를 취재한 기자들의 '방담'을 통해 한 주간 이슈를 둘러싼 뒷이야기와 정치권 속마음을 다루는 [TF주간 정담(政談)] 코너를 진행합니다. 주간 정담은 현장에서 발품을 파는 취재 기자들이 전하는 생생한 취재 후기입니다. 지금부터 시작합니다. <편집자 주>
청와대, 조국 임명 시기는 안희정 전 지사 선고 물타기?
[더팩트ㅣ정리=이철영 기자] -이번 주도 조국 법무부 장관의 일주일이라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추석 밥상머리에도 조 장관 이야기가 오르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지난 9일 문재인 대통령은 고심 끝에 조 장관을 임명했습니다. 정치권은 급랭했고, 국민도 찬반으로 극명하게 갈렸습니다.
-문 대통령의 조 장관 임명은 같은 날 오후로 예상됐었습니다. 그러나 예상을 깨고 문 대통령은 이날 오전 11시 30분 조 장관의 임명을 재가했습니다. 이 사실을 몰랐던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는 이인영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로부터 90도 인사를 받은 후 알게 되면서 당황하기도 했습니다. 청와대 역시 조 장관 임명 발표를 앞두고 긴박하게 움직였다고 합니다. 먼저 이번 한 주 동안 많은 일이 있었던 국회 소식부터 들어보겠습니다.
이인영 민주당 원내대표가 지난 9일 나경원 원내대표와 오신환 바른미래당 원내대표에게 조 장관 임명과 관련해 설명하는 모습. /남윤호 기자 |
◆이인영은 '알았고', 나경원은 '몰랐던' 그때 그 순간
-야권의 반대에도 문 대통령이 조 장관을 임명했습니다. 그런데 알려진 시점에 여야 3당 교섭단체 회동이 있었죠?
-네, 이 원내대표, 나 원내대표, 오신환 바른미래당 원내대표가 정기국회 일정 등과 관련한 회동이 있었습니다. 국회 출입기자들도 여야 3당 교섭단체 원내대표 회동으로 조 장관 재가를 오후로 예상했었습니다.
-그렇군요. 그런데 인상적이었던 장면은 이 원내대표가 나 원내대표에게 90도로 인사하는 장면이었습니다. 무슨 일이 있었나요?
-네, 이 원내대표가 나 원내대표에게 90도로 정말 깍듯하게 인사했습니다. 나 원내대표는 무슨 상황인진 좀 당황하는 모습이었는데요. 사실 이 원내대표는 회동 전 이해찬 대표실에서 강기정 청와대 정무수석을 만났습니다. 강 정무수석이 이 대표만 만난 줄 알았는데 거기서 함께 나온 것입니다.
-이후 이 원내대표는 3당 원내대표 회동 장소로 이동했고, 거기서 나 원내대표에게 90도 인사했습니다. 시점이 참 중요할 것 같습니다. 이 원내대표가 나 원내대표에게 90도로 인사한 때가 문 대통령이 조 후보자를 장관으로 재가했다는 엠바고(보도시점)가 끝나는 시간이었습니다. 바로 9일 오전 11시 30분입니다. 나 원내대표는 문 대통령의 재가 사실을 모르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 원내대표가 90도로 인사한 후 조 장관 재가 속보가 알려졌고, 나 원내대표는 그 때서야 이 원내대표의 행동을 이해한 것 같았습니다.
-이 원내대표가 인사하며 얼굴에 미소가 가득했던 이유가 있었군요. 나 원내대표 입장에서는 좋다가 말았을 것 같습니다.
-네, 결국 3당 원내대표 회동은 문 대통령의 조 장관 재가로 아무런 성과 없이 끝이 났습니다. 이후 나 원내대표는 기자들을 만나 "참담하다. 민심 거스르는 결정 기어이 했다. 공정과 정의 훼손하고 헌정사 불행한 사태가 발생했다. 조 장관 해임건의안과 국정조사 특검 등에 관해 범야권과 논의할 것"이라고 불쾌한 감정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이 원내대표도 기자들에게 "누구도 독단적으로 해석할 수는 없는 문제지만 우린 청문회 과정에서 진실과 거짓의 충돌이 있었고, 진실의 가치가 진군하기 시작했다고 생각한다 .국회는 국회 나름대로 그런 국민의 명령 이걸 진행해 나가야 한다"고 했습니다. 또, 야당의 국조나 특검 등을 의식했는지 "받아들일 수 없다. 그런 얘기가 안 나오기 바란다"라며 자리를 떠났습니다.
-조 장관을 격렬히 반대했던 야당과 찬성을 주장했던 여당의 충돌이 불가피해 보입니다. 20대 국회 마지막 정기국회는 조 장관 임명으로 또다시 시계제로 상태에 빠지게 된 것 같습니다. 국회는 국회의 일을 하면서 문제를 제기하는 모습을 보였으면 좋았을 텐데, 지켜볼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이언주 무소속 의원은 문재인 대통령의 조국 법무부 장관 임명을 비판하며 국회 본청 앞에서 삭발했다. 지난 10일 국회 본청 앞 계단에서 삭발 후 조 장관 임명을 강행한 문재인 정권을 규탄하는 이 의원. /국회=허주열 기자 |
◆ '조국 임명'에 들고 일어난 유승민·이언주…"국민에 전쟁 선포"
-조 장관 임명으로 정치권엔 거센 후폭풍이 몰아치고 있습니다. 좀처럼 보기 힘들었던 유승민 바른미래당 전 대표도 이번 사태로 모습을 드러냈고, 무소속 이언주 의원은 삭발식까지 했죠?
-네, 맞습니다. 문 대통령의 조 장관 임명 이후 야당은 강한 반대의 목소리를 내며 정국은 급속히 냉각됐습니다. 유 전 대표는 최근 페이스북으로만 비판 입장을 내 오다 임명 소식이 전해진 다음 날인 지난 10일 당 원내대책회의에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그는 격한 비판의 목소리를 냈는데요. 그는 "범죄 피의자를 법무부 장관으로 임명한 것은 대한민국 역사상 없었던 일이기도 하고, 또 전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범죄 피의자를 법무부 장관에 임명하는 역사가 없었다"고 목소리 높였습니다.
-유 전 대표는 조 장관 임명을 두고 "국민에 대한 전쟁을 선포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우리나라 헌법에 따라 권력이 저런 짓을 함부로 할 때, 나라를 어지럽히고 불법과 반칙을 권력이 일삼을 때, 우리 국민은 저항권을 갖고 있다는 점을 분명히 말한다"고 말했습니다. 평소 차분한 논조로 발언을 내 오던 것과는 다른 모습인데요. 그만큼 반대 의지가 강한 것이라고 보여집니다.
-바른미래당을 탈당해 무소속 의원으로 다소 주목받지 못했던 이 의원은 지난 10일 "민주주의는 사망했다"며 삭발했습니다. 국회 본 청 앞 계단에서 기자회견을 한 이 의원은 삭발식을 하고 눈물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SNS를 통해 의견을 전달하며 당에 모습을 잘 보이지 않던 유승민 바른미래당 의원도 문 대통령의 조 장관 임명에 강력히 항의하고 나섰다. 지난 10일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조 장관 임명 규탄에 나선 유 의원. /김세정 기자 |
-이 의원은 삭발까지 했는데, 이유가 있나요?
-이 의원은 삭발 후 문 대통령의 아집과 오만함에 대한민국 민주주의는 타살됐다고 비판했습니다. 그는 "반칙, 편법과 꼼수, 탈법과 위법이 난무하는 비리 백화점의 당당함에 (국민적) 분노가 솟구침에도 불구하고 그를 보란 듯이 장관에 임명했다"고 꼬집었습니다. 이 의원은 "이번 사태로 86운동권의 민낯이 드러났다"면서 "조국과 그 주변 세력을 보면서 운동권 세력이 괴물이 되어버렸음을 목격하고 있다. 시대착오적 수구세력이자, 국가 파괴세력이다. 나와 다르면 부수는 파시즘 독재를 향하고 있다"고 목소리 높였습니다.
-기자회견을 마친 이 의원은 "저항의 뜻으로 할 수 있는 게 이것 밖에 없다. 여러분들 마음으로 함께 해주시라"며 삭발식을 시작했습니다. 준비된 의자에 앉아 미용 가운을 걸친 이 의원은 비장한 표정 이었지만 울컥 치밀어 오르는 듯 얼굴을 손으로 가리기도 했는데요.
-컷트 머리였던 이 의원의 머리카락이 잘려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수많은 취재진을 비롯해 자유한국당 정태옥·이채익 의원이 이 모 습을 조용히 지켜보았는데요. 이 의원은 중간 중간 눈물을 흘리다가도 울음을 참는 듯 입을 앙 다물었습니다.
-삭발을 모두 마친 이 의원은 "대한민국이 이대로 무너져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라고 주장했습니다. 회견을 마친 뒤 상당수 취재진은 이 의원을 따라가 질문을 던지는 등 인터뷰를 시도했는데요. 손수건으로 입을 가린 이 의원은 대답하지 않은 채 조용히 현장을 벗어났습니다.
강기정 청와대 정무수석은 이해찬 민주당 대표와 이인영 원내대표에게 문 대통령의 조 장관 재가 소식을 먼저 알렸다. 지난 9일 국회 이 대표실을 만난 후 국회를 나서는 과정에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는 강 정무수석. /남윤호 기자 |
◆ 강기정 국회행 이후 춘추관 분주… 기자들은 무덤덤
-문재인 대통령이 9일 조 장관을 임명했습니다. 이로써 나라를 떠들썩하게 했던 '조국 대전'에 마침표를 찍었는데요. 당시 춘추관 분위기는 어땠나요?
-문 대통령이 지난 주말(7~8일)에 조 장관을 임명할 것이라는 관측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문 대통령은 조 장관과 가족들의 의혹에 대해 검찰이 수사를 진행하고 있고, 여론도 좋지 않아 숙고 모드로 들어갔습니다. 추석 연휴가 코앞으로 다가와 마냥 임명 여부를 미룰 수만은 없는 노릇이어서 문 대통령이 공식 업무일인 9일 결심을 굳히지 않겠느냐는 관측에 힘이 실리게 됐습니다.
-그래서인지 이날 이른 오전부터 춘추관 앞에는 많은 중계차들이 와서 보도를 준비하고 있더라고요. 다만, 춘추관 내부에는 평소와 다름없는 분위기였습니다. 일선 기자들의 관심사 역시 문 대통령이 조 장관의 임명 여부였습니다. 오늘이냐, 내일이냐, 오전이냐 오후냐. 발표 시기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말이죠.
-그런데 강기정 청와대 정무수석이 국회에서 이해찬 대표를 만나면서 문 대통령이 결단했다는 말들이 돌았습니다. 강 수석이 여당 지도부에게 문 대통령의 의중을 전했을 것이라는 추측이었죠. 문 대통령이 조 장관을 임명한다는 내용의 지라시가 돌았어요.
문재인 대통령이 9일 오후 조국 법무부 장관에게 임명장을 수여하고 있다. /청와대 제공 |
-반신반의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갑자기 춘추관이 분주해졌습니다. 이때 곧 청와대가 공식 발표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때마침 한 청와대 관계자가 급하게 브리핑룸으로 와서 브리핑과 관련해 사전 진행했습니다. 그것도 숨을 헐떡이면서. 무언가 긴박하게 결정된 것처럼 보였습니다. 이후는 아시다시피 고민정 청와대 대변인이 문 대통령이 장관들의 임명을 재가했다고 밝혔고요. 기자들이 '대통령의 결심'을 예상했는지는 모르겠으나 놀라는 기색은 없었습니다.(웃음) 다들 열심히 제 할 일을 할 뿐이었습니다. 같은 날 오후께 문 대통령이 고심 끝에 오전 9시쯤 참모들에게 임명 의사를 밝힌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나중에 어느 한 기자 선배는 이런 말을 하더군요.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의 상고심 선고 이후 발표하는 것은 이른바 '물타기' 아니냐고요.(웃음) 어떤 기사에 댓글에도 비슷한 내용의 의견이 있더라고요. 개인적으로는 청와대가 공식 발표하기 전까지 국회에 사전 통보 등의 시간이 필요했을 것으로 생각해요. 이런저런 조 장관을 둘러싼 의혹이 제기되면서 시끄러운 세상이 조금은 잠잠해질 것 같다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 기자도 있었어요. 2라운드로 접어든 '조국 대전', 벌써 어떤 일이 벌어질지 궁금하네요.
◆방담 참석 기자 = 이철영 팀장, 허주열 기자, 신진환 기자, 이원석 기자, 박재우 기자, 문혜현 기자(이상 정치팀), 장우성 정치사회 에디터, 임영무 기자, 배정한 기자, 남윤호 기자, 임세준 기자, 김세정 기자 (이상 사진영상기획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