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 들어 외교부 자체 징계 건수가 임기 절반 만에 이전 정부의 2배에 달해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임기 중반까지 총 43건의 징계가 이뤄졌는데, 이는 이명박·박근혜 정부 전체 징계 건수의 약 두 배 수준이다. /박재우 기자, 더팩트 DB |
성 관련 징계 1위 등 '갑질' 행위 비위 압도적
[더팩트ㅣ외교부=박재우 기자] 문재인 정부 들어 외교부(강경화 외교부 장관) 자체 징계 건수가 이명박·박근혜 정부 때보다 급격히 증가한 것으로 확인됐다. 징계 건수는 문재인 정부 2년 4개월(2017년 5월~2019년 8월) 동안 총 43건을 기록했다. 이는 문재인 정부 임기 절반 만에 이명박(24건)·박근혜(27건) 정부 전체 징계 건수를 넘어서 2배에 달하는 수치다. '미투 운동'과 도덕적 해이, 강경화 장관 취임 후 적용된 '무관용 원칙'이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더팩트>가 지난 8월 정보공개청구를 통해 최근 외교부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문재인 정부 들어 외교부 자체 징계 건수는 중징계 17건, 경징계 26건 등 총 43건이다. 징계 종류는 성 관련 14건, 부적절한 언행 10건, 회계 예산 관련 6건, 성실의무 위반 5건, 비밀유지의무 위반 2건, 보안규정 미준수 3건, 청렴의무 위반 3건으로 '갑질' 행위로 분류되는 비위가 압도적으로 많았다.
올해 들어 진행된 중징계는 5건이다. 한미 정상통화 내용을 유출한 K 참사관은 비밀유지의무 위반으로 '파면'이 결정됐다. 또한 청탁금지법 위반과 폭언·갑질을 이유로 외교부 징계위원회는 도경환 주 말레이시아 대사와 김도현 베트남 대사에 대해 '해임'을 결정했다. 이 밖에도 성 비위로 인해 '강등'된 1건, 성실의무 위반으로 '정직' 1건이 있었다.
외교부가 <더팩트>의 정보공개청구에 제공한 최근 10년간 외교부 일반공무원 및 외무공무원 비위행위 통계 내용. /외교부 제공 |
강경화 장관은 최근 이 같은 징계 급증은 외교부의 '무관용 원칙'과 '내부 절차 마련'이 내부의 비위 적발로 이어진 결과라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외교부의 비위 적발 건수가 대폭 증가한 것에 대해 외교부 기강 해이와 함께 2017년 촉발된 '미투 운동', '갑질 개선 캠페인' 등에 따른 사회 전반적인 분위기가 더 큰 배경이라고 꼽는다.
이번 정부 들어 적발된 성 비위·갑질 유형의 징계 사례로는 2017년 김문환 전 에티오피아 주재 한국대사 건이 있다. 김 대사는 성추행 혐의를 받고 징계위원회를 거쳐 파면됐다. 같은 해에 외교부는 비서에게 상습적으로 폭언을 한 혐의를 받은 전 삿포로 총영사를 해임했다.
2018년에는 방글라데시 전 대사 부인이 대사관저 직원에게 한 갑질이 제보돼 감봉 3개월의 경징계를 받았다. 올해 들어 8월까지는 총 14건의 징계가 이뤄졌는데, 앞서 언급한 중징계 5건 외에 감봉 7건, 견책 2건의 징계가 결정됐다.
이와 관련해 '깐풍기 갑질' 의혹이 제기된 정재남 주 몽골 대사가 징계위원회에 회부됐고, 부하 여직원을 성추행했다는 신고가 접수된 일본 주재 총영사는 경찰 조사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외교부는 강 장관 취임 이후 2017년 9월 '혁신로드맵'을 통해 공직기강 문란행위에 대한 무관용 원칙을 강력 적용해 갑질, 성 비위 등을 근절하겠다고 밝혔다.
지난 7월 30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한 강 장관은 최근 비위 사건이 끊이지 않는 데 대해 "지난 2년 동안 이런 사건들이 많이 접수되고 징계가 됐다"면서도 "기강이 해이해졌다는 해석도 되겠지만, 한편으로는 무관용 원칙에 따라 피해자를 보호하면서 진정이 늘어난 면도 있다"고 해명했다.
그러면서 강 장관은 "과거에는 피해자들이 쉽게 이런 사건을 접수하기가 어려운 분위기였다"며 "지금은 내부절차가 잘 마련돼 있어서 피해자들이 안심하고 사건을 본부에 접수하고 본부는 적극적으로 조사에 나서고 있다"고 설명했다.
전직 외교관들은 비위 급증 이유에 대해 현재의 '갑질' 근절 분위기를 꼽았지만 기강 해이에 따른 외교부 차원의 근본적인 문제 해결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고위 외교공무원들의 자성도 강조했다.
한 전직 대사는 <더팩트>와의 통화에서 최근 외교부 비위 사건들에 대해 "과거 같으면 이슈가 되지 않았겠지만 최근 들어 (달라진 사회분위기 때문에) 가능해진 것들도 있다"며 "더 바람직한 방향으로 가기 위해서는 근무여건과 인식 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외교부에서 인사 문제를 오래 다룬 전 외교관은 "직원들의 생각 자체가 변해야 한다"며 "외교부의 엘리트주의로 경계선을 넘는 것에 무감각한 경우 이런 일들이 벌어지곤 한다"고 설명했다.
또한 외교부 사례가 언론 노출이 잦은 이유에 대해선 "해외에서 근무하는 직원들이 많기 때문에 언론에 좀 더 주목받는 경향도 있다"며 "이와 상관없이 외교부 직원들은 자성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해외 동포들도 있고, 외국인들 눈도 있기 때문에 스스로 기준을 높이지 않으면 안 된다"며 "외교부가 솔선수범해서 모범을 보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난 7월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전체회의에 참석한 강경화 장관 모습. /남윤호 기자 |
국회 외통위 소속 국회의원들은 주원인으로 외교관들의 기강해이를 꼽으면서 외교관 교육을 강화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원유철 자유한국당 의원은 "외교부 내 조직이 기강이 해이해지고 업무에 대한 열정이 줄어든 것이 아닌가 싶다"고 비판했다.
박주선 바른미래당 의원은 "개인 인성과 기강해이가 맞물려 (외교부) 내부에 불미스러운 일이 잦아졌다"며 "해외 공관이 직접적인 감시나 감독과는 거리가 있어 문제가 생긴다. 외교관들의 인성교육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재웅 외교부 부대변인은 "외교부의 성희롱·성추행 피해 사건에 대해서 피해접수 담당관이 지정됐고, 익명 연락망도 갖춰져 쉽게 접수를 할 수 있게 됐다"며 "내부 시스템을 통해서 장관에게 직접 신고할 수 있는 시스템도 마련됐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이 부대변인은 "(비위 행위에 대한) 신고를 확립하기 위해서 많은 조치가 있었는데, 강 장관 취임 이후 무관용 조치가 적용돼 더 엄격해진 측면이 있다"고 부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