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영택의 고전시평] 노태우 아들 광주영령 묘지 참배, 용서 논할 단계 아니다
입력: 2019.08.29 00:00 / 수정: 2019.08.29 07:49
노태우 전 대통령이 광주민주항쟁의 진실을 고백하고 피해자에게 진정한 사과 없이 아들의 광주영령 묘지 참배 한 번으로 자신이 할 일을 다 했다고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사진은 노재헌 씨가 지난 23일 국립 5·18 민주묘지를 찾아 참배하는 모습./국립 5·18민주묘지관리소 제공.뉴시스
노태우 전 대통령이 광주민주항쟁의 진실을 고백하고 피해자에게 진정한 사과 없이 아들의 광주영령 묘지 참배 한 번으로 자신이 할 일을 다 했다고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사진은 노재헌 씨가 지난 23일 국립 5·18 민주묘지를 찾아 참배하는 모습./국립 5·18민주묘지관리소 제공.뉴시스

광주민중항쟁 학살 진상 및 책임자에 관한 진실 고백과 피해자 사죄가 먼저

[더팩트 | 임영택 고전시사평론가] 남한에서 최초로 단죄와 청산의 역사를 쓸 절호의 기회는 해방 정국에서 분출한 반민족행위자 처벌 요구를 수용한 ‘반민특위(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 활동 시기에 있었다. 하지만 이승만 정권의 반민특위 활동 탄압과 노골적인 반민족행위자 옹호로 단죄와 청산의 기회는 무산되었다. 야심차게 출발한 특위 활동은 용두사미가 되어 버렸고 실형선고를 받은 반민족행위자는 10명에 불과했으며 이들 조차도 시간이 지나 모두 석방되었다.

반면에 제2차 세계대전 동안 독일 치하에 있다 해방된 프랑스는 독일 협력자들 12만 명 이상이 재판받았으며 약 3만 8,000명이 수감되고 약 1,500명이 정규재판소에서 사형선고 받은 뒤 처형되었으며 8,000 ~ 9,000명이 정식재판 없이 처형되었다. 또한 약 2만 명의 여성부역자가 삭발 당했으며 수천, 수만 명의 공무원과 군인들이 독일 강점기의 협력 행위로 징계를 받았다.

나치 독일은 1940년부터 1944년까지 단 4년간 프랑스를 점령했고, 일제는 조선을 35년 동안 강점했다. 4년과 35년이라는 기간의 차이는 단죄와 청산 대상자 수에도 직접 영향을 준다. 쉽게 말해서 더 오랜 기간 점령 상태에 있었다면 일반적으로 단죄와 청산 대상자는 늘어나지만 현실은 그 정반대로 나타났다.

남한은 1980년 광주민중항쟁이 발생한 지 39년이 지났는데도 정부의 공식보고서도 없는 나라이다. 단죄와 청산은 해방 이후 지금까지도 불철저하게 진행되어 토착왜구라는 말도 등장할 지경이고 식민사관이 아직도 횡행하며 광주민중항쟁에 대한 폄훼도 지속되고 있다. 제대로 된 단절과 청산을 이루지 못한 후과이다.

노태우 아들이 23일 광주 망월묘지를 방문하여 참배했다. 이례적인 일이기는 하지만 방명록에 몇 줄 쓰고 국화 들고 참배했다고 사죄를 했느니 하면서 침소봉대하지 말자. 부친인 노태우의 뜻을 받들어 참배를 했다고 하는데 그것도 지금으로서는 확인되지 않은 사실이며 설령 사전교감을 했다고 해서 의미가 크게 달라지지도 않는다. 또한 호사가들은 전두환은 추징금 미납 상태고, 노태우는 완납했다고 들먹이면서 노태우에게 상대적으로 후한 점수를 주는데 이런 사실만으로 전두환과 노태우의 질적 차이를 말하는 것도 우스운 일이다. 두 사람에게 딱 어울리는 말이 있으니 ‘오십보백보’이다.

노태우는 2011년 발간한 회고록에서 ‘5ㆍ18광주민주화운동의 진범은 유언비어’라고 주장했으며 ‘경상도 군인들이 광주 시민들 씨를 말리러 왔다’는 등의 유언비어를 들은 시민들이 무기고를 습격하게 된 것이란 말도 덧붙였다. 광주민중항쟁을 극도로 폄훼했던 노태우 아들이 묘지 참배 한 번 했다고 죄를 용서해줄 수 없다.

전두환 및 노태우 일당은 광주민중항쟁 당시의 진실을 고백하고 피해자들에게 사죄를 구하며 죄에 걸맞은 벌을 받아야 할 대상일 뿐이다. 그들의 사죄 ‘쇼’ 한 번으로 범죄자들에게 면벌부를 주면 안 된다. 남한 역사는 범죄자들에게 지나치게 관대해서 온갖 부정부패와 비리가 온존하게 되었다. 해방 이후 이승만이 반민특위를 주저앉혀 지금까지도 민족반역자들의 후손이 득세하고 식민사관이 설치고 있다. 이런 역사적 과오를 저질렀으면서도 광주 학살 주범 일당인 노태우 일가의 쇼에 속아 넘어간다면 또 범죄자들이 설칠 기회를 주는 것이다.

독일과 프랑스가 제2차 세계대전의 전범들을 수십 년이 지나서까지 추적하여 단죄하는 것은 특별히 그들 민족이 비정한 탓이 아니며 확실한 단죄와 청산만이 과거의 범죄 행위가 재연되는 것을 방지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남한과 프랑스의 역사는 역사 범법자 및 반인륜 범죄자 처벌의 극명한 차이를 보여준다. 남한과 프랑스 중에서 어느 나라가 후손들에게 더 생생한 역사 교육을 제공하고 있는가? 어느 나라가 역사에 죄를 범하지 않아야 되겠다고 다짐하는 시민들을 더 많이 양산할까? 두 말할 필요도 없이 답은 프랑스일 것이다.

과거에 잘못을 저지른 쪽이 사과나 사죄를 할 때는 잘못을 솔직하게 인정하고 피해자가 동의할 때까지 자신의 진정성을 보여줘야 한다. 노태우의 사죄가 진정성을 가지려면 광주민중항쟁 당시의 학살 진상 및 책임자에 관한 진실을 고백하고 피해자들에게 석고대죄 하는 모습을 먼저 보여야 한다. 법적 단죄 및 용서는 그 다음의 문제다. 노태우가 아들의 광주영령 묘지 참배 한 번으로 자신이 할 일을 다 했다고 생각한다면 연기에 불과하며 일회성 쇼를 사죄로 받아들여 모든 것을 용서하자고 하는 사람들은 역사를 지나치게 가볍게 여기는 잘못을 저지르는 것이다.

역사와 정의 바로세우기는 어설픈 용서가 아닌 엄정한 단죄와 청산에서 이루어진다. 단죄와 청산은 과거에만 속하는 일이 아니며 현재와 미래에 영향을 주는 사업이다. 알베르 까뮈는 "과거범죄를 단죄하지 않는 것은 미래범죄에 용기를 주는 어리석은 짓이다"고 말했다.

thefact@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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