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철영의 정사신] 10년 전 조국이 지적한 '당동벌이'와 현재의 민주당 
입력: 2019.08.02 05:00 / 수정: 2019.08.02 05:00
양정철 원장이 수장으로 있는 더불어민주당 싱크탱크 민주연구원의 보고서가 정치권에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양 원장은 일본과 무역 갈등을 총선과 연결할 수 없다고 했지만, 연구원은 한일 갈등 총선 긍정적이라는 보고서를 여당 의원들에게 보냈다. / 배정한 기자
양정철 원장이 수장으로 있는 더불어민주당 싱크탱크 민주연구원의 보고서가 정치권에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양 원장은 일본과 무역 갈등을 총선과 연결할 수 없다고 했지만, 연구원은 "한일 갈등 총선 긍정적"이라는 보고서를 여당 의원들에게 보냈다. / 배정한 기자

민주연구원 '한일 갈등 총선 긍정적' 보고서 파문에 유감 표명 '외면'

[더팩트ㅣ이철영 기자] '정치영역에서는 '당동벌이(黨同伐異)'가 최고의 행동준칙이다. 대통령, 장관, 국회의원 한 자리를 차지하겠다는 음모와 술수, 권력투쟁이 경쟁 정당 사이는 물론, 같은 당내에서도 죽자 살자 벌어진다. 진실보다 당파적 이익이 우선하기에 제 눈의 들보는 가리고 남의 눈의 티를 맹공하는 자가 대우받는다.'

오피니언 리더로 한국 정치에 끊임없이 문제를 제기했던 학자가 자신의 책에 쓴 내용이다. 한국 정치의 단면이면서 대통령제 국가에서의 정치권의 행태를 비판한 내용으로 받아들여진다. 특히 정치권을 향해 '옳고 그름을 가리지 않고 같은 의견(意見)의 사람끼리 한패가 되고 다른 의견(意見)의 사람은 물리친다'는 당동벌이가 최고의 행동준칙이라고 규정한 것은 정확한 진단으로 이해된다.

이처럼 국내 정치권의 문제를 명확하게 지적한 글을 쓴 오피니언 리더는 누구일까. 최근 청와대를 떠난 조국 전 민정수석이다. 그는 지난 2009년 '보노보 찬가'라는 책을 내놓으며 한국 정치를 이같이 지적했다. 책이 나올 당시는 이명박 정부였고 그로부터 10년의 세월이 지났다. 조 전 수석이 지적한 당동벌이는 당시 여당이었던 지금의 자유한국당을 향해서였다.

민주당은 일본의 한국에 대한 수출 규제를 규탄하면서 최재성(가운데) 의원을 위원장으로 일본경제침략대책 특별위원회를 구성했다. 지난달 18일 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 참석해 모두발언하는 최 위원장./남윤호 기자
민주당은 일본의 한국에 대한 수출 규제를 규탄하면서 최재성(가운데) 의원을 위원장으로 '일본경제침략대책 특별위원회'를 구성했다. 지난달 18일 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 참석해 모두발언하는 최 위원장./남윤호 기자

10년이 지난 지금 여야는 바뀌었다. 그렇다면 조 전 수석이 지적했던 당동벌이는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에는 적용되지 않을까. 책을 다시 읽으며 든 의문이다. 그런데 최근 민주연구원의 보고서 파문을 대하는 민주당을 보며 10년 전 여당이나 지금의 여당이나 당동벌이 행태는 다르지 않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게 됐다.

문제의 보고서는 지난달 30일 한 언론사의 보도로 알려졌다. '대외주의'라는 '한일갈등에 관한 여론 동향' 보고서는 한일 갈등과 관련, 일본에 대해 단호하게 맞서는 것이 중요하다고 분석하면서 원칙적 대응을 선호하는 여론에 비추어 볼 때 총선 영향은 긍정적일 것이라고 평가했다.

한일 갈등을 이용하겠다는 것으로 충분히 해석될 수 있는 내용이다. 이 보고서가 공식적이든 비공식적이든 문제가 될 수 있는 건 민주연구원도 분명히 인지한 것으로 보인다. 보고서에 '대외주의'라고 명시했기 때문이다. 야권도 일제히 민주연구원의 보고서를 문제 삼았다. 국민은 정부에 힘을 실어주겠다며 자발적 불매운동 중인데 여당은 한일 갈등이 내년 총선에 긍정적이라는 보고서를 만들었으니 당연해 보인다.

더욱이 민주연구원의 수장은 문재인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분류되는 양정철 원장이다. 그는 지난달 16일 반일 대응과 총선 전략 연관성에 대해 "무리한 얘기"라며 "지금 국익이 걸렸고 경제가 이렇게 어려운데 선거랑 연결을 짓는가"라고 말한 바 있다. 그런데 정작 민주연구원은 반일 대응과 총선 전략 연관성 보고서를 만들었다. 양 원장의 말이 무색해진 상황이다.

조국 전 청와대 민정수석은 10년 전인 2009년 자신의 책 보노보 찬가에서 정치권을 겨냥해 옳고 그름을 가리지 않고 같은 의견(意見)의 사람끼리 한패가 되고 다른 의견(意見)의 사람은 물리친다는 당동벌이가 최고의 행동준칙이라고 비판한 바 있다. /이새롬 기자
조국 전 청와대 민정수석은 10년 전인 2009년 자신의 책 '보노보 찬가'에서 정치권을 겨냥해 "옳고 그름을 가리지 않고 같은 의견(意見)의 사람끼리 한패가 되고 다른 의견(意見)의 사람은 물리친다는 '당동벌이'가 최고의 행동준칙"이라고 비판한 바 있다. /이새롬 기자

이번 민주연구원 보고서 문제는 온 나라가 온통 일본의 경제보복 조치에 분노하고 있는 작금의 상황에서 총선과 연결지었다는 점에서 민주당과 양 원장의 유감 표명이 있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하지만 어느 누구 하나 유감을 표명하거나 사과가 없다. 오히려 이를 문제 삼는 이들을 향해 "뭐가 문제냐"라고 반문하는 태도를 보인다.

홍익표 민주당 수석대변인은 1일 YTN 라디오 '노영희의 출발 새 아침'과의 인터뷰에서 "확대해석하는 문제가 있는 것 같다"면서 연구보고서를 의원들한테 보낼 정도로 대단한 보고서도 아닌 너무, 수준 이하의 보고서라고 평가했다. 그는 또, 민주당 차원의 공식적인 사과나 양 원장이 사퇴해야 한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그럴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도리어 이런 식으로 대응하는 것이 거꾸로 이야기해서 일본의 프레임에도 말리는 거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논란이 됐을 때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보다 지나칠 정도로 스스로에 관대한 모습에 의아했다. 조 전 수석은 '보노보 찬가'에서 '괴물과 싸우는 사람은 그 싸움 속에서 스스로도 괴물이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우리가 괴물의 심연을 오랫동안 들여다본다면, 그 심연 또한 우리를 들여다보게 될 것이다'라는 니체의 '선악의 저편'의 문구를 적었다.

그러면서 한국사회의 진보진영을 향해 이같이 당부했다. '진보진영의 고투를 인정하지만, 체제를 '괴물'로 규정하고 투쟁하기만 하고 자신을 성찰하지 못한다면, 어느새 자신 속에 그 '괴물'의 모습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중략) '적'이 우리를 음해·공격하려고 노리고 있기에 내부자의 중대 과오나 범죄를 묻어버리고 '단결'하자는 논리는 자기파괴를 가져올 뿐이다. 진보는 불리한 진실도, 불편한 진실도 모두 다 드러내고 인정하는 데서 출발한다.'

10년 전 조 전 수석이 지금의 민주당에 하는 당부가 아닐까 싶어 이 글로 마무리하고자 한다.

cuba20@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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