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영택의 고전시평] ‘사고 공화국’ 오명, 신상필벌로 씻자
입력: 2019.07.30 05:00 / 수정: 2019.07.30 05:00
27일 오전 2시39분께 광주 서구 치평동 한 클럽 내부 복층 구조물이 무너져 2명이 숨지고 16명이 부상을 입은 사고 현장./광주=뉴시스
27일 오전 2시39분께 광주 서구 치평동 한 클럽 내부 복층 구조물이 무너져 2명이 숨지고 16명이 부상을 입은 사고 현장./광주=뉴시스

[더팩트 | 임영택 고전시사 평론가] 고대 중국의 전국시대를 마감하고 통일제국을 열었던 진나라는 원래 서부 변방 국가에 불과했다. 진시황 이전의 군주들이 몇 대에 걸쳐 문호를 개방하여 각국의 인재를 등용하고 부국강병을 이룩한 끝에 마침내 통일제국을 건설했다.

진시황 때보다 100여 년 전에 진나라의 부국강병을 이끌었던 인물이 상앙이다. 그는 위나라 출신이었지만 당시 진나라 군주인 효공이 널리 현명한 인재를 구한다는 소문을 듣고 진나라로 가서 효공에게 유세하여 대대적인 개혁을 주도한다. 이때부터 진나라는 변방 국가에서 중국의 중심세력으로 편입하며 강국으로서의 면모를 보이고 통일제국의 기초를 확실히 다진다.

상앙은 여러 개혁 정책들을 입안하였지만 바로 시행하지는 않았다. 백성이 믿지 않을까 염려하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백성의 신뢰를 얻을 이벤트를 진행했다. 긴 장대를 남문에 세워놓고 "누구든 이 장대를 북문으로 옮기는 자에게는 10금을 주겠다"고 포고했다. 백성들은 이상한 일이다고 생각하여 아무도 옮기지 않았다. 다시 "누구든 이 장대를 북문으로 옮기는 자에게는 50금을 주겠다"고 포상금을 올렸다.

어떤 사람이 밑져야 본전이라는 심정으로 이 장대를 옮기자 즉시 50금을 주어 백성을 속이지 않는다는 점을 분명히 밝혔다. 그리고 나서 그동안 준비했던 개혁정책들을 공포하며 부국강병을 이끌었다. 물론 이 한 번의 이벤트가 단번에 백성의 신뢰를 이끌어내지는 않았겠지만 상앙은 이후에도 신상필벌로 백성의 믿음을 사며 개혁을 단행하여 부국강병을 이루었다.

한국은 상앙의 시대보다 훨씬 정교한 법령과 막강한 사법기관이 있지만 각종 비리와 부패 그리고 사건·사고가 끊임없이 발생하고 있다. 하지만 법령 자체가 원래부터 솜방망이 처벌 규정이거나 허점투성이기도 하고 유전무죄·무전유죄인 경우도 있어서 법령 자체 내지 법령 적용의 신뢰가 무너진 지 이미 오래다. 나라의 썩은 부분을 도려내고 정의롭고 살맛나는 세상을 만들려면 문화와 의식의 선진화도 이끌어야 되지만 사법 정의를 바로세우는 일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진나라의 개혁을 주도했던 상앙은 법령 적용에서 예외를 배제하고 백성의 신뢰를 이끌어내는 일을 실천하여 개혁을 성공적으로 단행했다. 이와 달리 한국은 미비한 법령도 많을 뿐더러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식의 적용으로 법을 잘 지키는 사람은 우대하고 죄를 지은 사람은 꼭 처벌받는다는 인식을 희박하게 만들어 각종 사건·사고가 끊이지 않는다. 오죽하면 한국은 ‘사고공화국’이라는 말이 있으며 사건·사고가 일어날 것을 우려하거나 사건·사고의 후유증으로 이민을 가거나 갈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많이 생기겠는가.

지난 27일 광주 클럽에서 붕괴 사고가 발생하여 2명이 숨지고 23명이 부상을 당했다. 사고 원인은 국과수의 현장 감식 등에 따라 추후에 자세히 밝혀지겠지만 현재로서는 불법증축으로 추정되는 곳에서 사고가 발생하여 인재(人災)임이 드러나고 있다. 최근에만 해도 굳이 예를 들 필요도 없을 정도로 많은 인재 사고가 발생하였지만 관계 공무원이나 여론이 반짝 호들갑을 떨다가 지나가고 또 사고는 발생하는 악순환만 되풀이하고 있다.

광주 사고와 관련하여 ‘도시지역에서 불법건축 행위자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5억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는 법령이 있지만 건물주가 처벌을 감수하고도 불법을 자행하는 이유는 잃는 것보다는 얻는 것이 많기 때문이다. 법령에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5억 원 이하의 벌금’으로 규정되어 있지만 실제로는 처벌 결과가 대부분 경미하고 대신 증축으로 얻는 이익은 많기 때문에 불법의 유혹에 빠져들기 마련이다.

여기에 건물주, 공무원 그리고 사법기관 종사자의 검은 커넥션이 작동하는 경우도 허다해서 부와 권력을 가진 자들은 솜방망이 처벌을 받게 되니 근원이 해결되지 않아 사건•사고가 계속해서 발생할 수밖에 없다. 국가를 경영할 때는 당연히 시민이나 공무원 모두가 올바른 사람이라고 전제하지 않고 각종 법령, 규정, 규제 및 교육으로 올바른 사람을 만드는데 주력해야 한다. 왜냐하면 인간은 기본적으로 자신의 이익과 편의 중심으로 움직이는 경향이 강하기 때문이다.

법령이 제대로 구비되어 있지 않은 경우도 많지만 갖추어져 있다 하더라도 처음부터 처벌 규정이 경미하거나 적용이 엉성하여 법령이 제 구실을 못하는 것이다. 상앙은 대대적으로 개혁을 시작하면서 법령을 준수하면 상을 주고 따르지 않으면 처벌한다는 인식을 심어주어 법령의 신뢰와 안정성을 도모했다. 심지어 차기에 군주가 될 태자가 죄를 범하자 차마 벌을 주지 못하고 대신에 태자 교육의 책임자 두 명 중 한 명은 형벌을 가하고 다른 한 명은 경형(죄인의 이마나 볼에 칼로 죄명을 새기는 형벌)에 처했다. 상앙은 신분이 높다 하더라도 예외 없이 법을 적용하여 법령의 엄정함을 보여주었다.

사고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떨쳐내려면 1차적으로 예방 효과가 충분한 법령을 마련하고 제정한 법령은 예외 없이 적용하여 일벌백계해야 된다. 사회에 미치는 해악의 정도와 견주어 보면 너무나 미약한 처벌을 하니 사고가 빈발한다. 물론 처벌이 능사는 아니며 사전 점검이나 단속 및 교육이 중요하지만 신상필벌을 제대로 하면 사고를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다.

사건·사고를 획기적으로 줄이려면 법령을 완비하고 예외 없이 적용해서 신상필벌을 국정 운영의 원칙으로 삼았던 상앙의 문제의식을 한국 사회에도 원용해야 한다. 또한 중앙 정부 차원에서 각별한 관심을 갖고 사건·사고를 근절하기 위해 범정부 대책위원회 등의 조직을 가동하여 근본적으로 점검하여 대책을 수립해야 된다. 지금처럼 즉자적으로 대응한다면 사건·사고의 악순환의 고리를 결코 끊을 수 없다. 비상한 일에는 비상한 실천이 요구된다.

'황제내경'에 나오는 ‘최고의 의사는 병이 드러나기 전에 치료한다’는 말이 있듯 사후대응보다는 사전예방만큼 중요한 일은 없다는 점도 명심하자.

thefact@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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