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F초점] 기상천외한 간첩들의 '위장취업' 살펴보니
입력: 2019.07.29 05:00 / 수정: 2019.07.29 05:00
9년 만에 남파 간첩이 체포됐다는 소식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지난 2017년 군사분계선(MDL) 바로 앞에 위치한 JSA 경비대대 2초소에서 바라본 북한군의 모습. /사진공동취재단
9년 만에 남파 간첩이 체포됐다는 소식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지난 2017년 군사분계선(MDL) 바로 앞에 위치한 JSA 경비대대 2초소에서 바라본 북한군의 모습. /사진공동취재단

영화에나 나올법한 '무함마드 깐수', '원정화' 사건… 북파공작원 흑금성도

[더팩트ㅣ박재우 기자] 9년 만에 '남파 간첩' A씨가 체포돼 국가정보원과 경찰 조사를 받고 검찰에 송치됐다. 그가 스님 행세를 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기존에 적발됐던 간첩들에 대한 관심이 떠오르고 있다. 특히 이들의 이색(?) 위장취업에 대해 궁금증이 더해지고 있다.

공안당국은 A씨가 북한의 대남공작 업무를 담당하는 기구인 '정찰총국' 지시에 따라 파견된 간첩으로 보고 있다. A씨는 이전에도 한국에 들어왔다가 출국한 뒤 지난해 제3국에서 국적을 세탁하고 다시 입국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혜훈 국회 정보위원장(바른미래당)은 지난 25일 국정원의 비공개 보고 직후 기자들과 만나 "남파 간첩 관련한 내용은 브리핑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라며 말을 아꼈다. 수사 중이라는 점과 안보상의 이유로 아직 어떠한 배경으로 '스님'으로 위장했는지 알려지지 않고 있다.

공안당국이 남파 간첩을 검거한 건 9년 만이다. 탈북자 행세를 하며 2010년 1월 고 황장엽 전 노동당 비서 암살 임무를 받고 남파한 정찰총국 소속 공작원 동명관, 김명호 이후 처음으로 알려졌다.

이 밖에도 현재까지 크게 알려진 간첩 사건으로는 '무함마드 깐수', '원정화' 사건이 있다. 이들 사건은 세간의 큰 관심을 받았다. 이들은 각각 대학교수, 안보 강연자로 나서 북측으로부터 전달받은 임무를 수행했다.

원정화 사건은 한국판 마타하리라고 불리기도 한다.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기소된 간첩 원정화 씨의 2008년 당시 모습. /뉴시스
원정화 사건은 '한국판 마타하리'라고 불리기도 한다.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기소된 간첩 원정화 씨의 2008년 당시 모습. /뉴시스

정수일 한국문명교류연구소장은 무하마드 깐수라는 이름으로 1990년대 남파 고정간첩 활동을 했다. 조선족 출신이었던 그는 이국적인 외모 덕분에 필리핀계 아랍인으로 위장할 수 있었다. 1984년 한국에 도착해 외국인으로 위장하며 임무를 수행했다.

열두 개의 언어를 구사하고 역사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단국대 사학과 교수를 지내면서 15년 동안 간첩활동을 하다 1996년 남파 간첩임이 밝혀졌다. 5년을 복역한 후 전향해 풀려난 뒤 현재에는 저명한 문명교류학 학자로 지내고 있다.

정 소장은 북한 평양외국어대학교 교수, 튀니지대학 사회경제연구소 연구원, 말레이대학 이슬람아카데미 교수 등으로도 재직했다. 즉, 그의 단국대 교수 선택 배경은 위장용이라기보단 간첩활동을 병행하면서 자신의 진로를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2008년 군부대를 떠들썩하게 한 사건이 있다. '한국판 마타하리'라고 불리며 위장 탈북한 여간첩 원정화 사건이다. 그는 위장 탈북을 한 뒤 남측에서 안보강연자로 활동하면서 군부대를 돌아다녔다.

군부대의 정보를 빼내기 위한 목적으로 군인장교와 탈북단체 간부 등을 만나 주요 군사기밀을 얻어 북측에 넘긴 것으로 전해졌다. 북측으로부터 살해 지시와 도구까지 받기도 한 것으로 조사됐다. 원 씨가 안보강연자로 나선 것은 군 관계자들과 관계를 쌓으며 군 정보를 받기 위함으로 해석된다.

결국 원 씨는 북한의 지령을 받고 군 장교로부터 군사기밀과 탈북자 정보를 빼내 넘긴 혐의로 징역 5년을 선고받고 복역했지만 수사 과정에서 허위자백 강요 등 '간첩조작' 논란이 일고 있는 상황이다.

대남공작원이 아닌 북파공작원 흑금성도 남북합작광고 사업가로 위장해 북측에 접근했다. 영화 공작에서 흑금성역을 맡은 배우 황정민. /CJ엔터테이먼트
대남공작원이 아닌 북파공작원 '흑금성'도 남북합작광고 사업가로 위장해 북측에 접근했다. 영화 '공작'에서 '흑금성'역을 맡은 배우 황정민. /CJ엔터테이먼트

대남공작원이 아닌 북파공작원이었던 '흑금성' 박채서 씨 또한 이색직업을 통해 1990년대 공작원으로 활동했다. 영화 '공작'으로 그의 이야기는 널리 알려진 바 있다. 군 출신 국정원 직원이었던 그는 남북합작광고 사업가로 위장하여 북측에 접근했다.

2005년 남측 가수 이효리와 북측 무용수 조명애 합동출연 광고로 알려진 '애니콜' 광고는 박 씨가 1997년부터 기획해 성사시킨 사업이다. 박 씨는 사업을 이유로 북한을 수차례 방문하게 된다. 특히 김정일도 직접 만난 것으로 알려져 영화의 한 장면으로 표현되기도 했다.

그는 2010년 이중간첩 행각이 발각돼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6년을 복역하고 풀려났다. 그는 최근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자신의 혐의에 대해 "국가를 위해서였다"면서 "억울하다"는 심정을 밝힌 바 있다.

한편 전직 국정원 관계자는 <더팩트>와 통화에서 "간첩 대부분은 여권을 위조하고, 신분 세탁을 해서 한국에 오거나 탈북자로 입국하는 경우가 있다"며 "이들의 위장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국가기관들이 노력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도 "의심이 된다고 하더라도 간첩 본인들은 자기 직업과 행적을 들며 방어를 하곤 한다"며 "잘못하면 기본권 침해가 되기 때문에 철저하게 조사하는 게 원칙"이라고 말했다.

이어 "내사를 진행한다고 하더라도 간첩으로 확인되기까지 굉장히 오래 걸린다"며 "몇 년, 길게는 몇 십년 추적하고 확신이 설 때 영장을 청구하고 압수수색을 진행한다"고 절차에 대해 말했다. 또한 "해당 간첩만 수사하는 것이 아니라 그와 관련된 인물들을 찾아내야 하기 때문에 시간이 오래걸릴 수밖에 없다"고 부연했다.

jaewoopark@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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