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진환의 '靑·春'일기] 혼란 키운 靑 브리핑, 해프닝 아니라 '대형 사고'
입력: 2019.07.26 05:00 / 수정: 2019.07.26 05:00
윤도한(사진)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은 지난 24일 오전 브리핑을 열고, 러시아 측이 한국 영공 침범에 대해 유감을 표명했다고 밝혔다. 러시아 차석 무관이 우리 국방부 정책기획관에게 이런 뜻을 전달했다고 밝힌 것이다. 하지만 러시아는 이날 공식 문서를 통해 자국 군용기가 한국 영공을 침범하지 않았다고 부인했다. /뉴시스
윤도한(사진)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은 지난 24일 오전 브리핑을 열고, 러시아 측이 한국 영공 침범에 대해 유감을 표명했다고 밝혔다. 러시아 차석 무관이 우리 국방부 정책기획관에게 이런 뜻을 전달했다고 밝힌 것이다. 하지만 러시아는 이날 공식 문서를 통해 "자국 군용기가 한국 영공을 침범하지 않았다"고 부인했다. /뉴시스

靑 "러, 깊은 유감 표명" → 러 "韓 영공 침범 안 했다"...국민은 '어리둥절'

[더팩트ㅣ청와대=신진환 기자] 러시아는 자국 군용기가 두 차례 우리 영공을 침범했다는 우리 정부의 주장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오히려 긴급 출동한 우리 조종사들이 러시아 군용기의 비행 항로를 방해하고 안전을 위협했다고 맞서고 있다. 중국과 함께 동해상에서 연합 군사 훈련을 벌이며 우리 안보를 위협한 것도 모자라 적반하장격으로 나오는 태도는 할 말을 잃게 만든다. 지정학적으로 강대국들 사이에 낀 한반도가 야속할 지경이다.

러시아의 태도도 문제지만 청와대의 미숙한 대응에 더 착잡한 마음이 든다. 윤도한 국민소통수석은 지난 24일 오전 브리핑을 통해 러시아의 입장을 밝혔다. 기기 오작동이라는 해명과 더불어 이번 사태에 대해 깊은 유감을 표명했고, 즉각 조사에 착수해 필요한 모든 조치를 취하겠다고 밝혀왔다고 했다. 23일 국방부로 초치된 주한 러시아 대사관의 차석 무관인 니콜라이 마르첸코 공군 대령의 발언을 전한 것이다.

그러나 러시아의 공식 입장은 달랐다. 러시아 정부는 공식 문서를 통해 자국 군용기가 우리 영공을 침범하지 않았다고 했다. 애초 러시아 국방부가 23일 국제법을 철저히 준수했다고 발표한 내용과 같아 새삼 놀라운 것이 없는 내용인 셈이다. 국방부는 24일 오후 4시께 러시아 측의 입장을 공개했는데, 이때 우리 안보와 외교 문제와 관련해 한 취재원과 통화를 막 마친 상태였다.

재차 전화를 걸어 러시아의 공식 입장을 전하자 취재원은 한숨부터 내쉬었다. 그는 "청와대는 대한민국의 얼굴이자 입인데, 어떻게 안일하게 대응할 수 있느냐"며 강도 높게 비판했다. 한마디로 "청와대가 있을 수 없는 일을 벌였다"고 한탄했다.

지난 23일 중국과 러시아 군용기가 한국방공식별구역(KADIZ)에 수차례 진입했으며, 이 과정에서 러시아 정찰기가 독도 인근 영공을 침범했다. 초치된 마르첸코(왼쪽) 주한 러시아 무관이 이날 오후 서울 용산구 합동참모본부로 들어서는 모습. /뉴시스
지난 23일 중국과 러시아 군용기가 한국방공식별구역(KADIZ)에 수차례 진입했으며, 이 과정에서 러시아 정찰기가 독도 인근 영공을 침범했다. 초치된 마르첸코(왼쪽) 주한 러시아 무관이 이날 오후 서울 용산구 합동참모본부로 들어서는 모습. /뉴시스

윤 수석은 이날 오후 6시 15분 다시 브리핑을 열었다. 먼저 러시아가 보내온 공식 문서 내용을 전했다. 이후 윤 수석은 '전날 나온 러시아 국방부 장관의 입장 발표를 인지하고 오전에 브리핑을 한 것이냐'는 질문에 "아니다"고 했다. 러시아 국방장관의 입장을 전혀 몰랐다는 것이다.

더 놀라운 것은 "그것(러시아 언론보도문)은 공식입장이 아닌 것으로 저희는 판단했다"며 "러시아 무관의 입장이나 이런 전문이 공식입장"이라고 했다. '수석의 개인 판단이 아니라 청와대 판단에 의해서 무관의 진술을 공개한 것이냐'는 물음에는 "그런 판단 여부에 대해서는 밝히지 않는다"고 말을 아꼈다.

러시아 무관의 발언을 러시아의 공식입장으로 여겼다는 점은 이해하기 어렵다. 물론 초치된 무관은 러시아를 대표했다고 볼 수 있기에 청와대가 무관의 발언을 러시아의 공식입장으로 여길 수 있다고 폭넓게 봐줄 수도 있겠다. 그럼에도 이미 나온 러시아 당국 입장과 정면으로 배치되는 발언을 확인하지 않았다는 점은 사실이다.

분명히 섣부른 발표로 혼선을 빚은 책임이 있는 청와대가 명확하게 판단 근거를 밝히지 않았다는 점도 문제다. '무관의 발언이 러시아의 공식입장'이라는 것에 대한 근거를 찾기 힘들다. 사태를 덮기에 급급한 것처럼 보이는 이유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 이유가 될 판단 근거를 국민에게 밝혀야 하는 게 청와대의 도리가 아닐까 싶다. 또 혼란을 일으킨 점에 대해서도 책임 있는 자세를 보이는 게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외교·안보와 관련된 중요한 사안에 혼선을 자초한 청와대다. 단순한 해프닝으로 보기에는 너무 '대형사고'다.

shincombi@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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