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반도 주변 열강 사이 낀 文…외교력 또다시 시험대[더팩트ㅣ청와대=신진환 기자] 중국과 러시아가 동해상에서 합동 훈련을 하고, 러시아는 우리 영공을 침범하면서 우리 안보에 비상등이 켜졌다. 가뜩이나 일본이 한국에 대해 경제 보복을 가하는 상황으로 볼 때 문재인 대통령이 외교적으로 고립된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합동참모본부에 따르면 23일 오전 중국 군용기 2대와 러시아 군용기 3대가 한국 방공식별구역(KADIZ)에 진입했다. 방공식별구역은 국제법상 인정된 영공은 아니다. 자국의 영토와 영공을 방어하는 국가안보상 항공기의 식별, 관제를 실시하기 위해 설정한 구역이다. 그러나 러시아 군용기는 독도 영공을 두 차례 침범했다. 우리 공군기가 경고사격을 하자 영공을 빠져나갔다.
러시아 군용기가 우리 영공을 침범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우리 공군기가 경고사격을 가한 것도 최초다. 더구나 러시아 측은 중국과 합동으로 연합비행 훈련을 했다고 밝혔다. 우리 영공을 침범한 것은 물론 동해상에서 합동 훈련을 벌였다는 점은 명백히 우리 안보를 위협한 행위다.
일본의 반도체 소재 수출 제한 조치로 한·미·일 공조에 균열이 생긴 시점에서 중국과 러시아의 도발이 발생했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또,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방한하는 날 도발을 감행했다는 점도 마찬가지다. 이러한 대목을 고려해보면 미국과 관계가 우호적이지 않은 중국과 러시아가 한·미·일 안보 협력을 흔들려는 목적이 깔린 것이 아니냐는 해석이 가능하다.
독도 영공을 침범한 이후 러시아 측은 기기 오작동이라는 해명과 더불어 유감 표명과 함께 재발 방지를 위해 노력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윤도한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은 24일 이런 내용을 러시아 차석무관이 우리 국방부 정책기획관에게 전달했다고 했다. 그러나 반나절 만에 러시아 정부는 공식 문서를 통해 "한국 영공을 침범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우리 조종사들이 자국 군용기의 비행항로를 방해하고 안전을 위협하는 비전문적인 비행을 했다"며 말을 바꿨다.

여기서 한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 있다. 애초 청와대가 밝힌 내용과 러시아의 공식 입장이 전혀 다르다는 점이다. 국방부에 따르면 러시아가 보내온 공식 전문에는 독도 상공 침범에 대한 유감 표명이나 기기 오작동이라는 해명은 포함되지 않았다.
명확한 사실관계는 확인되지 않지만, 대략 두 가지 경우를 상정할 수 있다. 첫째는 애초 러시아 측의 입장은 차석무관의 사견이라는 것이다. 이 경우 외교 경로를 통해 얻었다고 할지라도 개인 생각을 러시아의 공식 입장으로 오인했다고 볼 수 있다. 또 하나는, 러시아가 기존 입장을 뒤집었을 가능성도 있다. 차석무관이 외교 경로를 통해 유감 표명과 해명 등 구체적으로 발언하기는 어렵다.
어찌 됐든 청와대가 신중하지 못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신율 명지대 교수는 "외교 상대에 대해 정확히 파악하지 않은 상태에서 러시아 차석무관의 이야기를 그대로 전달하고, 러시아 정부의 입장으로 간주한 청와대의 행위는 외교의 가장 기본조차도 되지 않고 있음을 증명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일본은 러시아의 독도 상공 침범으로 독도 영유권 분쟁을 또다시 이슈화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23일 고노 다로(河野太) 일본 외무상은 "다케시마(竹島·독도의 일본식 이름)는 우리나라의 고유 영토로 영공 침해를 한 러시아에 대해선 우리나라가 대응해야 하지, 한국이 거기에 무언가 조치를 한다는 것은 우리나라 정부 입장과 양립할 수 없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일본은 자위대 공군기도 긴급 발진해 대응했다.
동북아 정세가 흔들리는 흔적이 뚜렷하다. 정치적인 목적을 위해 부당한 경제 보복 조치를 가한 일본과 관계는 더 악화하고 있고, 러시아와도 당분간 안보 문제로 신경전을 벌일 것으로 보인다. 이로 인해 문 대통령이 한반도 주변 열강 가운데 고립된 모양새다. 또한, 한미일 삼각 공조가 크게 흔들리면서 한반도 정세도 출렁일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그간 북한 비핵화 해결을 위해 외교전을 벌여왔던 문 대통령의 외교력이 또다시 시험대에 올랐다.
shincombi@tf.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