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F기획-정치권 '아싸' <상>] 다양성 사라진 정당과 암울한 미래
입력: 2019.07.15 05:00 / 수정: 2019.07.15 10:55
정치권의 아싸들은 어디로 간 것일까. 19대 국회 때까지 각 정당 내에서 활발히 활동했던 소장파의 모습은 현재 거의 찾아 볼 수 없다. 지난 4일 국회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의원총회에서 이해찬 대표가 일본의 경제보복과 관련해 정부의 잘못을 지적하는 발언을 하는 강창일 의원을 향해 그만 하라는 표시를 하고 있는 모습. /뉴시스
정치권의 '아싸'들은 어디로 간 것일까. 19대 국회 때까지 각 정당 내에서 활발히 활동했던 소장파의 모습은 현재 거의 찾아 볼 수 없다. 지난 4일 국회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의원총회에서 이해찬 대표가 일본의 경제보복과 관련해 정부의 잘못을 지적하는 발언을 하는 강창일 의원을 향해 그만 하라는 표시를 하고 있는 모습. /뉴시스

정치권에 다양한 목소리가 사라지고 있다. 정당 내에서 지도부와 다른 목소리, 건전한 비판을 하는 소장파(쇄신파)가 거의 보이지 않는다. 정당은 정치적 이념이 같은 이들이 모여 정권을 잡아 정치적 이상을 실현하기 위한 조직이다. 애초 다른 목소리가 나오기 어려운 특성이 있다. 그렇다고 구성원의 모든 생각이 같지는 않다. 19대 국회 때까지만 해도 주요 정당 내부에는 소장파, 이른바 '아웃사이더'(아싸)가 있었다. 하지만 20대 국회 들어 아싸는 실종됐고, 거대 양당의 팽팽한 대립 속 '적대적 공생관계'가 심화되고 있다. 아싸가 사라진 이유는 무엇일까. <더팩트>가 정치권 아싸 실종 사태를 <상> <중> <하>로 집중 조명했다. 얼마 남지 않은 '아싸 정치인'을 만나 소신 정치와 우리 정치가 나아갈 길을 물었다. <편집자 주>

'아싸'의 실종… '소장파'가 사라져가는 시대

[더팩트ㅣ국회=허주열·문혜현 기자] 여야 정쟁이 지속되고 있다. 국회 장기 파행 끝에 어렵게 문을 열었지만, 정쟁으로 시간만 보내며 '일하지 않는 국회'가 계속되고 있다. 다른 정당을 '협치'의 대상이 아니라 '적'으로 바라보고, 공세를 이어가는 일이 되풀이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정당 내 건전한 비판의 목소리가 사라지고, 당이 똘똘 뭉쳐 한 방향으로 나아가려는 '일방통행' 모습을 보이는 것과 무관치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내부 비판·견제 사라진 정당들

더불어민주당에선 문재인 대통령과 당 지도부를 비판하는 목소리를 거의 들을 수 없다. 아무런 문제 없이 국정운영을 잘 하고 있어서라고 생각하는 국민은 많지 않을 것이다. 여당이던 시절 소장파의 대명사로 불렸던 남(남경필)·원(원희룡)·정(정병국)을 중심으로 수십 명의 소장파들이 활발히 활동했던 자유한국당의 분위기도 크게 다르지 않다. 일부 소신 발언을 한 정치인은 당 내, 지지자의 거센 비판을 받기 일쑤다.

소신 발언을 하는 의원들이 실종된 시대, 금태섭 민주당 의원(왼쪽)과 장제원 한국당 의원은 종종 당의 방침, 운영과 다른 소신을 밝혀 주목받고 있다. 이들 외 소신 발언을 하는 의원들은 찾아보기 어렵다. /더팩트 DB
소신 발언을 하는 의원들이 실종된 시대, 금태섭 민주당 의원(왼쪽)과 장제원 한국당 의원은 종종 당의 방침, 운영과 다른 소신을 밝혀 주목받고 있다. 이들 외 소신 발언을 하는 의원들은 찾아보기 어렵다. /더팩트 DB

여당에선 금태섭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표적 예다. 윤석열 검찰총장 후보자 인사청문회에 여당 측 청문위원으로 참여했던 금 의원은 지난 10일 페이스북을 통해 "개인적으로 윤 후보자가 검찰총장으로 자격이 충분하다고 생각한다"면서도 "윤우진 전 용산세무서장에게 변호사를 소개하지 않았다는 '거짓말'에 대해선 사과해야 한다. 그게 상식"이라고 주장했다.

이는 같은 날 이인영 민주당 원내대표가 확대간부회의에서 "윤 후보자의 위증 문제는 사실이 아닌 것으로 확인됐다. 한국당과 바른미래당은 거짓과 위증의 굴레를 씌우려는 시도를 접기를 당부한다"고 말한 것과 궤를 달리하는 발언으로 눈길을 끌었다. 당장 민주당 내에선 금 의원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민주당 재선의원을 지낸 정청래 마포을 지역위원장은 YTN 라디오 '이동형의 뉴스!정면승부'에 출연해 "초등학교 때 보면 꼭 이런 아이들이 있다. 누가 칠판에 낙서를 많이 한 것을 보고 담임 선생님이 이 낙서 누구야? 그러면 아무도 손을 안 든다. 그런데 윤석열 반장이 손을 들고 제가 했다고 하니, 담임 선생님한테 윤석열이 혼날 것 같아 사실은 제가 했다고 두 명이 나왔다. 그것을 지켜보던 애가 너 어쨌든 거짓말했잖아, 반장 사퇴해, 사과해 그런 상황이다. 홍준표 전 한국당 대표도 문제없다고 얘기하는데 여당 일각에서 왜 이러느냐"고 비판했다.

윤 후보자는 청문회에서 친형제처럼 지내는 윤대진 법무부 검찰국장의 형인 윤 전 서장의 변호사 선임에 영향력을 미쳤다는 의혹에 휩싸였다. 이에 윤 후보자는 윤 검찰국장이 윤 전 서장의 변호사를 소개했다고 답했는데, 청문회 말미 윤 후보자가 해당 변호사를 시켜 윤 전 서장을 찾아가게 했다는 내용을 직접 설명하는 기자와의 통화 내용이 공개돼 위증 논란이 일었다.

금 의원은 지난 4월에도 정부와 여당이 밀고 있는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공수처) 설치를 반대하는 글을 페이스북에 올려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공수처 설치는 새로운 권력기관의 탄생을 의미하고, 글로벌 스탠더드에도 맞지 않으며, 악용될 위험성이 크다는 이유에서였다. 하지만 이른바 '내부 총질'이라는 비판이 거세지자 금 의원은 "공수처를 반대하긴 하지만 당론에 따르기로 했다"고 한 발 물러섰다.

정치권에서 개혁의 목소리가 사라지고 있다. 20대 국회 들어 거대 양당의 극한 대립이 계속되면서 쇄신의 목소리를 내야 할 소장파 의원들이 당 총대 메기에 그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2008년 발족한 한나라당 내 18대 초선의원 모임인 민본21 모습. 당시 집권여당 의원이었던 이들은 이명박 정부를 비판하며 일하는 국회, 한나라당(현 자유한국당)의 미래지향적 변화를 주장해 눈길을 끌었다. /뉴시스
정치권에서 개혁의 목소리가 사라지고 있다. 20대 국회 들어 거대 양당의 극한 대립이 계속되면서 쇄신의 목소리를 내야 할 소장파 의원들이 '당 총대 메기'에 그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2008년 발족한 한나라당 내 18대 초선의원 모임인 민본21 모습. 당시 집권여당 의원이었던 이들은 이명박 정부를 비판하며 '일하는 국회, 한나라당(현 자유한국당)의 미래지향적 변화'를 주장해 눈길을 끌었다. /뉴시스

민주당에서 다른 목소리가 나오기 힘들다는 것을 보여주는 다른 사례도 있다. 지난 4일 민주당 의원총회에서 한일의원연맹 회장을 맡고 있는 '일본통' 강창일 의원은 일본의 경제보복과 관련해 "대한민국 정부도 원칙과 명분에 집착하다 보니 시기를 놓쳐버린 부분이 있다"고 우리 정부의 문제점을 꼬집었다.

이에 의총장 앞줄에 앉아있던 이해찬 민주당 대표는 강 의원을 향해 손가락으로 '엑스(X)' 표시를 했고, 일부 의원은 "그만하시죠"라고 반발했다. 여당에서 정부 비판 목소리가 나오는 것은 자제해야 한다는 취지로 해석됐지만, 의원들의 의견을 듣는 의총 취지에 어긋난다는 비판도 나왔다.

취재진은 일부 여당 의원에게 ‘아싸 인터뷰’를 요청했지만, 여러 이유로 성사되지 않았다. 이에 대해 한 민주당 관계자는 "국회가 정상적으로 운영되지 않은 책임이 한국당에 있어 지금 민주당은 다른 목소리가 나가기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했다.

김세연(여의도연구원장) 한국당 의원은 "민주당에선 '아싸'와 관련해 인터뷰를 하려는 이가 없을 것"이라며 "18대 국회 때는 당이 살아있다는 점을 느낄 수 있었는데, 19대로 넘어오면서 당에서 지도부나 청와대 의사와 배치되는 발언을 하기 어려운 분위기가 강해졌다. 지금의 민주당도 새누리당(현 자유한국당) 후기와 다르지 않을뿐더러 오히려 좀 더 경색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한국당에선 최근 장제원 의원이 "내부총질이라는 비판을 감수하면서도 이 말은 꼭 해야겠다"며 당 지도부를 비판해 주목받았다. 장 의원은 지난달 26일 페이스북에 "울고 싶다. 안에선 사활을 걸고 '패스트트랙 강행'을 저지하려고 몸부림을 치고 있는데, 밖에선 그토록 축제를 열어야 합니까"라며 "'선별적 국회 등원'이라는 초유의 '민망함'을 감수하면서 입에 단내가 나도록 싸우고 있는데, 밖에선 '철 좀 들어라'라는 비판을 받는 퍼포먼스를 벌여야 했습니까"라고 황교안 대표를 우회적으로 비판했다.

이날 한국당이 개최한 여성당원 행사에서 '엉덩이춤' 퍼포먼스가 논란이 되며 외부 비판이 쏟아지자, 자성을 촉구한 것이다. 장 의원은 지난 6일에도 페이스북을 통해 당 내 상임위원장 자리다툼에 대해 "지금 한국당이 한가하게 감투싸움이나 할 때인지 땅을 치며 묻고 싶다"며 "문재인 정권의 경제 실정이 고스란히 한국당 지지로 옮겨오지 못하고 있는데, 국민들께서 최근 한국당의 모습을 보면서 과연 어떤 판단을 할지 생각하면 모골이 송연해 진다. 긴장하고 또 긴장했으면 좋겠다"고 지적했다.

민주당의 전신인 새정치민주연합 소장파 의원들은 2014년 9월 당시 박영선 원내대표 체제 하에서 끊임없는 계파 갈등 속 당이 나아가야 할 길을 활발히 논의했다. 현재 민주당에선 지도부를 비판하는 소장파가 거의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평가다. /뉴시스
민주당의 전신인 새정치민주연합 소장파 의원들은 2014년 9월 당시 박영선 원내대표 체제 하에서 끊임없는 계파 갈등 속 당이 나아가야 할 길을 활발히 논의했다. 현재 민주당에선 지도부를 비판하는 소장파가 거의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평가다. /뉴시스

◆지도부 눈치보는 의원들…"적대적 공생관계 깨야"

정당이 경색된 이유가 무엇일까. 김 의원은 "(한국당의 경우) 공천 학살이 세 차례 연속 이뤄졌고, 19대에서 소위 입바른 소리를 과감 없이 했던 분들이 거의 예외 없이 20대 때 불이익을 받아 공천에서 탈락했던 것이 지금의 활력 저하 현상 원인의 하나가 아닐까 싶다"고 분석했다.

소신을 끝까지 지키며 정치를 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당 내 권력을 가진 지도부와 음양으로 충돌할 수 있고, 그때 마다 '다음'에 대한 기약이 옅어지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들로 당의 방침, 운영을 비판하는 정치인은 찾아보기 어려워 졌다. 대다수가 당 지도부의 뜻에 보조를 맞춰 상대 당을 '적'으로 보고 정쟁에 동참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런 상황이 한국정치의 구조적 문제와 내년 총선을 앞두고 공천권을 쥔 당 지도부를 거스르기 어려운 현실 등이 맞물린 결과로 분석했다.

최창렬 용인대 교수는 <더팩트>와 통화에서 "과거 소장파가 개혁 관련 이야기를 하고, 당 비판도 하고 했는데 그런 게 많이 줄어든 것 같다"며 "한국당은 소장파 의원들이 있지만, 박근혜 전 대통령 시절 공천을 받은 사람들이라 지금 목소리를 내진 않고 있고, 민주당은 소장파가 없다"고 말했다.

최 교수는 이어 "내년 총선을 앞두고 공천을 의식하는 부분도 있고, 서로 적대적으로 대립하다보니 적군의 편을 들 수 없는 상황이기도 하다"며 "당이 일방적으로 하는 건 문제다. 다양한 목소리가 나와야 하는데 어려운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박상병 정치평론가도 "소장파 의원들의 힘이 이전 만큼 못한 것은 분명하다"며 "우리 정치가 여야, 동서, 적과 동지로 양분돼 있는 구조 속 각 정당의 위계적인 질서를 강요하고 있는 측면이 있고, 또 양당 정치 속 당 지도부와 다른 목소리를 낼 상황이 아니다"고 구조적 문제를 지적했다.

또한 박 정치평론가는 "원내대표 발언이 당 입장이 되고, 당 대표가 말하면 공론화 되는 마당에 다른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소장파, 개혁파 젊은 층의 역할은 당에 대한 해당행위가 되는 면이 있다"며 "여기에 당 지도부가 공천권도 쥐고 있어 가능하면 당 지도부의 비위를 맞추려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소장파다운 비전, 가치, 행동을 보여주지 못하는 상황이 반복되다 보니 우리 정치가 갈수록 구태화되고, 역동성이 사라지고, 대화와 협치보다는 투쟁과 싸움의 역사가 반복되면서 정치가 실종되고 있다"며 "거대 양당의 파워게임 속 정치는 한 발자국도 발전하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그렇다면 한국정치의 진전을 위한 대안은 무엇일까. 박 정치평론가는 '개헌', '선거제도 개혁', '국민의식 개선'을 열쇠로 봤다. 그는 "개헌, 선거제도 개혁으로 구조적 문제를 해결해 민주당과 한국당도 (정치를) 못하면 망할 수 있는 길을 열어야 한다"며 "선거제도를 바꾸면 정당체제, 정치지형이 바뀌는데 이를 압박할 국민들도 (정치권과 마찬가지로) 동서로 나뉘어 서로를 비난하고 있다. (거대 양당의) 적대적 공생관계가 깨지지 않으면 정치에 희망이 없다"고 강조했다.

☞<중>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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