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국토교통위원장 자리를 놓고 자유한국당 소속 현 위원장 박순자(왼쪽) 의원과 홍문표 의원이 대립하고 있는 가운데 당내 리더십이 약화된 것 아니냐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 /남용희·남윤호 기자 |
전문가들 "당내 교통정리 안 되면 혼란 올 수도"
[더팩트|국회=문혜현 기자] 최근 자유한국당이 상임위원장 자리를 놓고 당내 갈등이 증폭되면서 당 지지율 하락과 계파갈등 재현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나아가 내년 총선을 앞두고 인적 쇄신에 불리한 구도로 가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국당은 지난 주 예산결산특별위원장 자리에 지난 3월 임명된 복당파 황영철 의원 대신 범친박계로 분류되는 김재원 의원을 앉혔다. 이는 황 의원이 의원총회에서 경선을 포기하면서 이뤄진 결정이지만 황 의원은 "나경원 원내대표가 측근을 예결위원장으로 앉히려고 당이 지켜온 원칙과 가치들을 훼손하고 있다"며 반발했다.
국토위원장 자리를 놓고 불거진 갈등은 지금도 진행 중이다. 당초 후반기 국토위원장 자리를 박순자 의원과 홍문표 의원이 1년 씩 나눠맡기로 했지만, 박 의원은 물러날 생각이 없다며 거절했다.
박 의원은 행정자료까지 제시하며 '상임위원장 나누기에 합의한적이 없다'는 입장을 재차 밝히기도 했다. 박 의원은 9일 입장문을 통해 "지난해 2018년 5월 말일 경 원내지도부 주재로 20대 국회 후반기 자유한국당 몫의 상임위원장 선출을 위한 3선 의원들의 회의가 있었다"며 행정국 자료를 첨부했다.
자료엔 3선 의원 명단이 나열돼 있었다. 박 의원은 "그 당시 한국당 3선 의원 20명 중 상임위원장 대상자는 12명뿐이었다"며 "당시 8명의 의원은 상임위원장 후보 자격이 없었으며 홍문표 의원은 예결위원장을 역임하였기에 상임위원장 후보 대상 8명의 의원 속에 분명히 포함돼 있다. 저는 원내지도부와 1년씩 상임위원장 나누기에 합의한 적이 없다"고 선을 그었다.
추가적으로 박 의원은 "나 원내대표와 지도부에 두 차례 만나 경선을 요청하는 친서를 전달했다. 홍 의원은 예결위원장을 1년 역임했고 박 의원(본인)은 국토위원장을 1년 역임했기 때문"이라며 "그러나 지난 7월5일 예결위원장 경선 시 국토위는 경선실시에 제외되었기에 이제는 이미 공정성이 훼손돼 경선은 의미가 없다는 말씀을 드린다"고 명시했다.
앞서 박 의원은 지난 8일 국회 국토위 전체회의에서 위원장직 사임 거부 입장을 공식적으로 발언했다. 그는 "전체회의에서 제 거취에 대해 말하는 게 적절한지 모르겠지만 한 말씀드리겠다"며 "주택, 부동산, 교통 등 각종 산적한 현안을 국회의 역할에 걸맞게 해결하려면 무엇보다 전문성이 담보돼야 한다"고 했다.
이어 "국회법상 상임위원장 임기는 2년으로, 지난해 국토위원장 선거에 나설 때부터 저에게 위원장 임기가 1년이라 말해준 분은 없다"면서 "국회법 규정이 필요에 따라 그때 그때 바뀌는 관행은 이제 바로잡아야 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국토위원장 자리를 넘겨받기로 했었던 홍문표 의원도 입장문을 내고 맞섰다. 홍 의원은 "박 의원은 여야가 합의한 관행과 당내 의총에서 세 번씩이나 만장일치로 결정한 국토위원장 자리를 넘길 수 없다며 막무가내 버티기 몽니를 부리고 있다"고 규탄했다.
이에 지도부의 고민은 더욱 깊어질 것으로 보인다. 국회 상임위원장 자리는 원내대표 지휘 하에 당내에서 의견을 조율해 결정한다. 하지만 각 의원들이 당 결정을 받아들이지 못해 갈등이 불거지는 상황에서 '교통정리를 제대로 못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박 의원실 측에 따르면 아직까지 지도부는 박 의원에게 입장문에 대한 답을 내놓지 않은 것으로 파악됐다.
의원들 간 '자리싸움'이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나경원 한국당 원내대표의 모습은 보이지 않고 있다. 당내에선 이를 두고 '교통정리를 제대로 못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남윤호 기자 |
일각에선 '당 윤리위 회부'를 통해 박 의원에게 강한 압박을 행사할 가능성까지 나오고 있다. 의원 간 갈등 양상이 지도부와의 대치 상황으로 번지고 있는 가운데 잠재해 있던 계파 갈등이 다시 재현될 여지가 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황태순 정치평론가는 <더팩트>와 통화에서 "구 범친박계들이 '친황'이 된 것"이라며 "(탄핵 이후) 2년 동안 고개를 숙이고 있던 사람들이 황교안 대표 체제를 만들었고, '우리가 주류고 다수다'라는 뜻을 보이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황 평론가는 이번 갈등에 "황 대표의 의중이 반영되진 않았을 것"이라며 "김재원 의원이 위원장이 된 것도 '통합과 전진'이라는 범친박계가 스크럼을 짜고 이야기를 나누면서 표를 몰아줘서 가능했던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다만 계파갈등과 관련해 "황영철 의원이 손해본 건 없다"면서도 "공천은 다르다. 친박이라서 구제 받고 비박이라서 탈락된다면 한국당은 폭삭 망할 것"이라고 꼬집었다.
위원장 자리를 놓고 의원들의 갈등 상황이 펼쳐지는 데 대해선 "안타깝다. 선수가 비슷하다고 해서 떡고물을 나눠먹는 행위가 우스꽝스럽다"며 "스스로 가치를 떨어뜨리는 것"이라고 강도 높게 비난했다.
당초 복당파 황영철 의원이 맡기로 했던 예결위원장 자리를 범친박계 김재원 의원이 맡게 되면서 친박계 의원들의 주류화 분위기가 감지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를 두고 "선거 때도 혼란이 이어진다면 당이 어려워질 수 있다"고 분석했다. 황 의원이 김 의원을 바라보는 모습. /뉴시스 |
최창렬 용인대 교수도 <더팩트>와 통화에서 "상임위원장 자리를 감투로 인식하는 문화가 드러난 것"이라며 "(교체의) 특별한 명분이 없다. 나눠먹기로 비칠 소지는 분명히 있다"고 비판했다.
이어 "당초 원내 문제는 나 원내대표가 교통정리를 하는 것"이라며 "리더십이 떨어진 셈이다. 장외투쟁 이후에 지지율이 정체되고, 나 원내대표와 황 대표가 문재인 정권 비판에만 매몰되는 게 리더십 확립에 문제가 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최 교수는 "당내에서도 그런 지적이 나오고 있다"며 "비난만 하는 모습이 결국 리더십을 약화시킬 수 있다"고 경고했다. 최근 황 대표를 중심으로 범친박계 의원들이 주류로 올라서는 경향과 관련해선 "이제는 친황 세력이라고 볼 수 있는데, 당내 지형이 인적 청산을 하기 어려운 상황으로 갈 수 있다"며 "선거가 다가올수록 당내 공천을 향한 갈등이 불거질 수 있다. 공천을 못 받은 사람들이 우리공화당으로 갈 가능성도 있다"고 밝혔다.
단순한 자리싸움 자체만으로도 내부 화합을 저해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있는 가운데 계파적 영향이 더해진다면 지지율도 내리막길을 걸을 수 있다는 분석이다. 이에 따라 황교안-나경원 투톱의 '교통정리'가 어떻게 이뤄질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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