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文, 日 규제 철회 요구 압박…외교적 해결 및 성의 있는 협의 촉구[더팩트ㅣ청와대=신진환 기자] 문재인 대통령이 일본의 경제 보복에 침묵을 깨고 대응 방향을 제시했다. 일본의 반도체 핵심소재 수출 규제에 단호하면서도 신중하게 접근하겠다는 기조다. 일본과 통상 갈등의 봉합 여부가 미지수인 가운데 문 대통령의 대일(對日) 기조가 시험대에 올랐다.
문 대통령은 8일 청와대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일본의 수출 규제에 대해 상호 호혜적인 민간기업 간 거래를 정치적 목적으로 제한하려는 움직임이라고 규정했다. 일본이 강제징용 문제 등 과거사 문제와 참의원 선거의 정치적 목적을 위해 명백히 자유무역을 위반하고 있다는 인식을 드러낸 것이다.
앞서 지난 4일 청와대 국가안전보장회의(NSC)도 일본 정부가 우리나라에 취한 규제 수출에 대해 '보복적 성격'이라고 규정한 것과 일치한다. 자유무역기구(WTO)의 규범 등 국제법을 위반한 것으로 일본의 조치는 정당성이 없다는 것을 문 대통령이 재확인한 셈이다.
또 "전례 없는 비상한 상황"이라고 한 부분에서 사안의 심각성도 내비치면서 일본에 단호한 태도를 보이기도 했다. 문 대통령은 "한국의 기업들에 피해가 실제적으로 발생할 경우 우리 정부로서도 필요한 대응을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며 "저는 그렇게 되기를 바라지 않는다"고 언급했다. '우리 기업의 피해가 발생했을 때'를 전제하고 인내 시한을 제시한 것이며, 맞대응 가능성을 시사한 것이기도 하다.
이에 따라 문 대통령의 강경 발언 이후 일각에서는 한일 간 통상 분쟁이 본격화될 관측이 제기되고 있다. 하지만 문 대통령은 "대응과 맞대응의 악순환은 양국 모두에게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며 한일 통상 갈등을 신중하게 풀겠다는 뜻을 밝혔다. 일본 측의 조치 철회를 요구함과 동시에 양국 간의 성의 있는 협의를 촉구하면서 대화의 문을 열어놓은 것도 비슷한 이유로 읽힌다.

일본 아베 정부의 정치적 노림수에 휘말리지 않고 복잡하고 미묘한 문제가 얽힌 사안인 만큼 외교적으로 차분하게 해결한다는 방침이다. 앞서 청와대는 '외교적 대응' 방안에 대해 WTO 제소를 포함하며, 국제적 여론을 환기시키기 위해 일본 조치의 부당함과 자유무역주의에 위배된다는 사실 등을 주요국에 설명할 예정이라고 밝힌 바 있다.
문 대통령은 내부적으로는 일본 수출 규제를 계기로 장기적인 관점에서 '자립' 의지도 밝혔다. 경쟁력을 강화해 전화위복의 기회로 삼겠다는 인식이 엿보인다. 일본은 반도체 핵심 소재인 플루오린 폴리이미드, 감광액 리지스트, 에칭가스(고순도 불화수소) 품목을 규제 수출 품목으로 지정했다. 일본 기업에 의존도가 높은 품목들인데, 국산화를 이루겠다는 것이다. 정부는 관련 기업들에 예산·세제 등 가용자원을 총동원해 지원할 방침이다.
청와대는 한국 기업에 대한 규제 수출 조치를 단행한 이후 기업들과 소통을 강화하며 활로를 모색하고 있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8일 기자들과 만나 "우리 정부도 민간기업들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서 굉장히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며 "(지난) 주말 사이에 여러 가지 만남과 현재 검토되고 있는 대통령의 일정 또한 그 일환이라고 볼 수 있겠다"고 했다.
지난 7일 홍남기 경제부총리와 김상조 청와대 정책실장은 대기업 총수들과 만나 일본의 수출규제에 따른 기업들의 상황을 점검하고 경제 보복 조치를 대응하는 방안 등을 논의했다. 또 문 대통령은 오는 10일 30대 기업 총수들을 만나 일본 규제 조치를 포함한 현안들에 대해 의견을 나눌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