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진환의 '靑.春'일기] 일본에 '할 말 하는' 북한, 가끔은 부럽다
입력: 2019.07.07 00:00 / 수정: 2019.07.07 00:00
통상 무역을 정치적으로 악용하는 행위에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달 28일 일본 오사카에서 열린 G20 정상회의 공식환영식에서 의장국인 일본 아베 신조 총리와 악수하면서 기념촬영하는 모습. /청와대 제공
통상 무역을 정치적으로 악용하는 행위에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달 28일 일본 오사카에서 열린 G20 정상회의 공식환영식에서 의장국인 일본 아베 신조 총리와 악수하면서 기념촬영하는 모습. /청와대 제공

미리 밝혀둡니다. 이 글은 낙서 내지 끄적임에 가깝습니다. '일기는 집에 가서 쓰라'고 반문한다면 할 말 없습니다. 그런데 왜 쓰냐고요? '청.와.대(靑瓦臺)'. 세 글자에 답이 있습니다. '대통령이 생활하는 저곳, 어떤 곳일까'란 단순한 궁금증에서 출발합니다. 누구나 한 번쯤 생각해보지 않았을까요? '靑.春일기'는 청와대와 '가깝고도 먼' 춘추관에서(春秋館)에서 바라본 청춘기자의 '평범한 시선'입니다. <편집자 주>

정부 신중함 당연하지만 北 "악성종양" 한방도 통쾌

[더팩트ㅣ청와대=신진환 기자] "이슈는 이슈로 덮는다."

일본의 황당한 수출 규제 소식에 영화 <더킹>에서 나온 대사가 떠올랐다. 지난달 30일 역사적인 남·북·미 판문점 회동이 성사되면서 일본 오사카에서 열렸던 G20 정상회담의 성공적 개최 이슈가 묻혀버렸다. 그런데 현재는 일본의 수출 규제 뉴스가 북한 비핵화 대화 재개 관련 뉴스보다 비중이 높아 보인다. 한반도 평화와 직결된 문제가 금세 대중의 관심사에서 빗겨난 모양새여서 아쉽다.

오는 21일 참의원 선거를 앞두고 호재를 놓치면서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반한' 감정을 이용한 정황이 짙다. 참의원 선거운동에 돌입하는 날 공세의 타이밍을 잡았다는 합리적 의심이 들 수밖에 없다. 아베 총리는 일제강점기 강제징용 피해자들에게 배상하라는 우리 대법원의 판결로 양국 간 신뢰 관계가 훼손됐다고 했다. 사실상 정치적 보복임을 인정한 셈이다. G20에서 자유무역을 강조한 아베 총리는 한국에 대한 경제 보복의 정당성을 주장한다. 앞뒤가 안 맞는 얘기다. 통상을 정치적으로 악용하는 억지에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다.

일본의 수출 규제에 청와대는 신중한 반응을 보였다. 지난 2일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국가 간의 문제이기 때문에 말 한마디 한마디가 굉장히 조심스럽다"며 "지금 단계에서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없다"고 말을 아꼈다. 이튿날인 3일에도 정부 차원에서 WTO 제소 등 확실히 대응할 예정이라고만 했다.

일본의 규제 수출 뉴스의 비중이 북한 비핵화 대화 재개 관련 뉴스보다 비중이 높아 보인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문재인 대통령(왼쪽부터)이 지난달 30일 오후 판문점 자유의집 앞에서 만난 모습. /청와대 제공
일본의 규제 수출 뉴스의 비중이 북한 비핵화 대화 재개 관련 뉴스보다 비중이 높아 보인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문재인 대통령(왼쪽부터)이 지난달 30일 오후 판문점 자유의집 앞에서 만난 모습. /청와대 제공

정치권 안팎에서 청와대가 뾰족한 대응책을 내놓지 못한다며 비판이 나왔다. 하지만 정교해야 할 외교에 감정적으로 대응한다면 오히려 아마추어가 아닐까. 말을 아끼고 신중하게 판단하는 것은 당연하다. 4일 오후 청와대는 출입기자들에게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청와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회 회의 결과 내용을 공지한 것이다.

"상임위원들은 한일관계 현황을 점검하고, 최근 일본 정부가 우리나라에 취한 보복적 성격의 수출규제 조치는 WTO(국제무역기구)의 규범 등 국제법을 명백히 위반한 것으로, 일본이 이러한 조치를 철회하도록 하기 위한 외교적 대응 방안을 적극 강구해 나가기로 했다."

일본의 반도체 핵심소재 수출 규제에 청와대가 입장을 내놨다. 지난 1일 일본이 한국 반도체 수출 규제를 공식화한 이후 말을 아끼다 정치적 보복으로 규정하고 정면 대응하는 쪽으로 방침을 정했다. 기자들은 분주히 상임위 회의 결과를 실시간으로 전했다. 탄성을 내뱉는 등의 반응은 보이지 않았다. 키보드 소리만이 춘추관 브리핑룸의 허공을 갈랐다.

윤도한 국민소통수석은 회의 내용 중 '외교적 대응 방안'은 WTO 제소를 포함하며, 국제 여론을 환기시키기 위해 일본 조치의 부당함과 자유 무역 주의에 위배된다는 사실 등을 주요국에 설명할 예정이라고 했다. 일본의 규제 수출 조치에 대한 외교전에 돌입하겠다는 입장을 확인했다.

그런데 애초 청와대는 NSC 상임위 결과가 담긴 서면 브리핑에서 '정치적 보복'으로 규정했으나, 자료를 다시 배포해 '보복적 성격'으로 변경했다. 일본과 갈등이 더 심화할 수 있다고 판단했을 가능성도 있다. 어쨌든 청와대는 실무진의 실수라고 경위를 설명했지만, 어쩌면 청와대의 '진짜' 속내를 들킨 것이 아닐까. 외교 문제는 매우 정교하고 복잡하기 때문에 청와대의 실수라는 설명에 더는 의심하고 싶지 않았다.

한일 문제를 보며 때로는 거침없이 '할 말은 하는' 북한이 부러울 때도 있다. 북한은 관영매체를 통해 지난 4일 일본의 일제강점기 한국인 강제징용을 부정하는 일본을 향해 "뻔뻔스럽다"고 했고, 전날(3일)에도 일본을 두고 "동북아시아의 평화를 파괴하는 악성종양"이라고 원색적으로 비난했다. 가재는 게 편인 것처럼, 북한이 마치 우리 정부의 속내를 대변해주는 것 같은 느낌이다. 무더운 날씨에 시원한 비를 뿌려주는 한줄기 소나기 같은 느낌을 받았다. 솔직히 이번만큼은 일본을 향한 북한의 비난이 통쾌한 것은 나뿐일까.

shincombi@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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