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F현장] 혐오표현시대, '임시조치제도' 어떻게 바꿔야 할까
입력: 2019.07.04 15:43 / 수정: 2019.07.04 15:43
혐오표현이 넘쳐나는 시대, 임시조치제도의 개선 방안을 논의하기 위한 토론회가 국회에서 열렸다. 김보라미 공동법률사무소 디케 변호사가 4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토론회에 참석해 발제 발표를 하고 있다. /국회=남윤호 기자
혐오표현이 넘쳐나는 시대, 임시조치제도의 개선 방안을 논의하기 위한 토론회가 국회에서 열렸다. 김보라미 공동법률사무소 디케 변호사가 4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토론회에 참석해 발제 발표를 하고 있다. /국회=남윤호 기자

"5G 시대에 규정은 2G에 못 벗어나 답답"

[더팩트ㅣ국회=허주열 기자] 혐오표현이 넘쳐나는 시대다. 인터넷서비스 제공자(사업자)가 권한을 가진 '임시조치제도'가 있지만 혐오표현을 막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민간의 권한남용으로 정당한 글이 제제를 받는 '표현의 자유 침해'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이상민 더불어민주당 의원,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 참여연대는 이 문제를 개선하기 위한 방안을 논의하기 위해 4일 오전 국회의원회관 제8간담회의실에서 토론회를 열었다. 국회 본회의 시간과 겹쳐 주최 측 관계자, 취재진 등 35명의 인원만 참석한 미니 토론회였다.

하지만 김보라미 디케 변호사(발제자), 김민정 한국외국어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 김유향 국회입법조사처 과학방송통신팀 팀장, 나현수 한국인터넷자율정책기구(KISO) 정책팀장, 양홍석 참여연대 공익법센터 소장, 최현숙 방송통신위원회 인터넷이용환경개선 팀장(토론자)은 2시간가량 임시조치제도에 대한 의미 있는 대화를 나눴다.

◆"자기조정시장은 결코 작동하지 못해"

김보라미 변호사는 "문재인 정부의 국정과제 중 하나인 '인터넷 표현의 자유 보장'과 관련한 법이 아직 국회를 통과하지 못했다"며 "네이버·다음 등 기업에 사실상 (임시조치제도 권한을) 맡겨 놓은 상황에서 헌법재판소가 2008년 이후 '표현의 자유'를 보수적으로 허용하는 쪽으로 바뀌어 나가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또한 김 변호사는 유럽 3대 전기 작가 중의 한 명인 슈테판 츠바이크의 '어제의 세계', 칼 폴라니 미국 컬럼비아대 교수의 '거대환 전환' 내용 일부를 소개하며 "히틀러의 선동적이고 생경하고, 불쾌한 글 뒤에는 어마무시한 게 숨어 있었다"며 "자기조정시장은 결코 작동하지 못한다. 단 한 번도 그런 적이 없다"고 강조했다.

기업에 임시조치제도를 맡겨 놓은 상황에서 혐오표현 자체가 문제가 될 소지가 있다는 점을 지적한 것이다.

김 변호사는 "지난해 10월 16일 법무부가 준비한 알권리 교란 허위조작정보 엄정 대처 보도자료 게재안을 보면 허위조작정보를 엄정 대처하겠다고 했는데, 여기서 거론한 허위조작정보는 어마무시한 가짜뉴스 형태라기보다는 평범한 사람들이 문제제기, 음모론을 유포한 것에 지나지 않고, 대부분이 현행법상 처벌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법무부 보도자료 게재안에 들어 있는 '박근혜 전 대통령과 김정일이 성관계를 한다' 등의 주장은 현행법으로 처벌할 수 있다"며 "선진국에서 시작된 극우주의의 발호와 탈진실시대(자신이 믿는 것을 진실로 받아들이는 것)와는 직접적으로 연결되기 어렵다"고 했다.

4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혐오표현 시대의 임시조치제도 개선방안을 논하다를 주제로 열린 토론회에서 사회를 맡은 오길영 경실련 소비자정의센터 운영위원장이 진행 발언을 하고 있다. /남윤호 기자
4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혐오표현 시대의 임시조치제도 개선방안을 논하다'를 주제로 열린 토론회에서 사회를 맡은 오길영 경실련 소비자정의센터 운영위원장이 진행 발언을 하고 있다. /남윤호 기자

미국, 유럽연합, 독일 등이 인터넷상 표현의 자유와 유통규제에 대한 법을 마련한 것과 한국은 상황이 다르다는 이야기다. 현재 우리나라의 임시조치제도는 정보통신망법 제44조 2항에서 규정하고 있다.

해당 조문에는 "정보통신망을 통해 일반에게 공개를 목적으로 제공된 정보로 사생활 침해나 명예훼손 등 타인의 권리가 침해된 경우 그 침해를 받은 자는 해당 정보를 취급한 정보통신서비스 제공자에게 침해사실을 '소명'해 그 정보의 삭제 또는 반박내용의 게재를 요청할 수 있다"고 적시돼 있다.

또한 "정보의 삭제요청에도 권리의 침해 여부를 판단하기 어렵거나 이해당사자 간에 다툼이 예상되는 경우에는 정보통신서비스 제공자가 해당 정보에 대한 접근을 임시적으로 차단하는 조치를 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임시조치 기간은 30일 이내에 가능하지만 주요 포털사이트는 문제제기가 들어오면 30일을 꽉 채우는 임시조치를 임의로 하고 있다.

이 조항의 핵심은 소명이다. 소명을 쉽게 인정하면 아무 글이나 다 삭제가 가능하다. 문제는 헌재가 소명의 범위를 "권리침해 주장자와 권리주체가 동일인임을 확인하면 될 뿐"이라고 해석하고 있어 실무에서 이와 같은 선에서 조치가 이뤄지고 있다는 것이다.

수원지방법원은 2017년 임시조치 및 삭제된 정당한 글에 대한 책임과 관련한 사건에서 "글 삭제 요청자가 폭행, 협박, 기망으로 임시조치 및 삭제요청을 한 게 아니라면 네이버나 글 삭제 요청자 누구도 정당한 글에 대한 임시조치에 대해 책임지지 않는다"고 판시하기도 했다.

이에 따라 국내 포털사이트들은 형식적 소명으로 누군가가 문제제기를 하면 임의로 게시중단 처리를 하고 있다. 이는 정상적 비판 사이트에서의 토론을 막는 역할을 한다는 게 김 변호사의 분석이다.

김 변호사는 "과거의 임시조치 규정은 표현의 자유만 침해하고, 혐오표현에 대해선 대항하지도 못하고 있다"며 "임시조치제도는 표현대상을 특정한 경우로 한정하고, 기간 삭제 및 복원절차 명시, 정당한 글에 대한 임시조치 시 손해배상책임규정의 신설 등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민정 한국외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가 4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혐오표현 시대의 임시조치제도 개선방안을 논하다를 주제로 열린 토론회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남윤호 기자
김민정 한국외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가 4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혐오표현 시대의 임시조치제도 개선방안을 논하다'를 주제로 열린 토론회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남윤호 기자

◆"임시조치가 아니라 '임의조치'"

토론회 사회를 맡은 오길영 경실련 소비자정의센터 운영위원장은 현재의 임시조치제도에 대해 "임시조치가 아니라 ‘임의조치’에 가깝다"고 지적했다.

김민정 한국외대 교수도 "임시조치제도 개정은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 후보시절 공약이기도 했고, 현재 정부 100대 국정과제이기도 하지만 국회에서 진전을 보지 못해 답답한 상황"이라며 "게시물의 삭제·차단·임시조치 이외의 혐오표현 규율 방안과 권리 남용자에 대한 처벌 규정 등을 도입해야 한다"고 말했다.

나현수 KISO 정책팀장은 장점과 단점을 함께 언급했다. 나 정책팀장은 "임시조치제도가 표현의 자유를 저해하는 제도로 알려진 측면이 있지만, 장점도 있다"며 "법원이나 행정기관 등을 거치지 않고 바로 게시물을 차단함으로써 명예훼손 피해자에게는 빠르고 간편하게 명예훼손성 정보를 차단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고 말했다.

다만 그는 "임시조치가 남용될 경우 정당한 정보까지 차단되는 문제가 있을 수 있다"며 "게시자에게 임시조치로 글이 차단됐다는 통보는 이른바 '위축 효과'를 불러 일으켜 재게시 요청 등을 단념하게 하는 측면도 있다"고 덧붙였다.

임시조치제도의 기반이 되는 권리침해에 의한 삭제요청은 연간 수십만 건(2016년 기준 45만5988건)이 이뤄져 포털사 등 사업자들이 일일이 권리침해 여부를 판단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김보라미 디케 변호사가 4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혐오표현 시대의 임시조치제도 개선 방안을 논하다를 주제로 열린 토론회에 참석해 발제 발표를 하고 있다. 왼쪽부터 김유향 국회입법조사처 과학방송통신팀장, 김민정 한국외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 김 변호사, 오길영 경실련 소비자정의센터 운영위원장, 양홍석 참여연대 공익법센터 소장, 나현수 한국인터넷자율정책기구 정책팀장. /남윤호 기자
김보라미 디케 변호사가 4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혐오표현 시대의 임시조치제도 개선 방안을 논하다'를 주제로 열린 토론회에 참석해 발제 발표를 하고 있다. 왼쪽부터 김유향 국회입법조사처 과학방송통신팀장, 김민정 한국외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 김 변호사, 오길영 경실련 소비자정의센터 운영위원장, 양홍석 참여연대 공익법센터 소장, 나현수 한국인터넷자율정책기구 정책팀장. /남윤호 기자

이에 나 정책팀장은 "재게시 청구권을 법적으로 보장하고, 사업자가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를 명확히 규정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며 "공적인 방식을 통해 양 당사자 간 조정 등을 통해 이를 정리하고, 사업자는 그 결과에 따라 조치하는 방식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양홍석 소장은 "제도 자체가 너무 간편하게 돼 있어 과도하게 활용되고 있다"며 "실제 권리침해가 빈번하다고 단정하기는 어렵고, 함부로 (게시글) 유통규제를 해선 안 된다. 결국 사법적 판단이 필요한데, 사법적 판단을 신속히 하는 방안을 고민하고 복원절차에 대한 규정도 만들어야 한다. 5G 시대에 규정은 왜 2G 시대를 벗어나지 못하는지 납득이 안 간다"고 지적했다.

김 변호사는 토론회가 끝난 뒤 취재진과 만난 자리에서 "정보통신망법 제44조 2항에 '정보 게재자는 임시조치 기간 내에 자신의 정당한 권리를 소명해 이의를 제기하는 경우 정보통신서비스 제공자가 이 사실을 통보하고 즉시 재게시 해야 한다'는 규정과 '정당한 권리 없이 게시물의 삭제를 요구하는 자는 그로 인해 발생하는 손해를 배상해야 한다'는 내용을 담은 개정안을 이 의원 측에 전달했는데, 협의해 법안이 발의될 수 있도록 준비하겠다"고 말했다.

한편 현재 임시조치제도는 게시물이 적시하는 대상이 특정돼 있고, 일정한 사실이 적힌 게시물에 대해서 대상이 본인이라는 것이 확인될 경우 서비스 제공자가 임시조치로 30일간 차단하는 식으로 운영되고 있다. 기한 내 게시자가 재게시 요청을 할 경우 임시조치 기간 경과 후 재게시 되며 재개시 요청을 하지 않으면 영구 삭제된다.

sense83@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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