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F기획-논란의 비례대표 현실<상>] 법안 발의, 지역구 의원과 차이 없다
입력: 2019.07.03 05:00 / 수정: 2019.07.03 05:00
20대 국회의원 300명 가운데 16%인 비례대표 의원들은 임기 시작 후 3년여 동안 전체 법안 2만1327건 가운데 15%에 해당하는 법안을 발의한 것으로 조사됐다. 지난달 28일 국회 본회의장 전경. /국회=남윤호 기자
20대 국회의원 300명 가운데 16%인 비례대표 의원들은 임기 시작 후 3년여 동안 전체 법안 2만1327건 가운데 15%에 해당하는 법안을 발의한 것으로 조사됐다. 지난달 28일 국회 본회의장 전경. /국회=남윤호 기자

지난 두 달가량 국회가 파행 운영됐던 근본 원인 중 하나는 선거제도 개혁안의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지정이다. 여야 4당은 지난 4월 말 자유한국당의 반대에도 '준연동형 비례제' 도입과 지역구 축소(253석→225석)·비례대표 의석 확대(47석→75석)를 골자로 한 선거제 개혁안 도입에 시동을 걸었다. 이에 의석수 10% 축소(300석→270석)와 비례대표제 폐지를 주장했던 한국당은 국회 내 결사 저지시도가 실패하자, 장외로 나갔다. 비례대표 의석을 늘리거나, 폐지하는 방안을 논의하기 이전 선행돼야 할 것이 있다. 비례대표제가 잘 운영되고 있는지, 비례대표로 국회에 입성한 의원들은 취지에 맞게 잘 활동하고 있는지를 먼저 살펴야 한다. <더팩트>가 20대 국회 비례대표 의원 47인의 활동을 전수조사 했다. 나아가 비례대표제 확대·축소에 대한 전문가들의 의견도 들어봤다. <편집자 주>

전체 의원 300명 중 16% 비례대표, 전체 법안 15% 발의

[더팩트ㅣ국회=허주열·문혜현 기자] 국회의 다른 이름은 '입법부'다. 국민을 대표해 의회로 들어간 국회의원의 가장 중요한 임무가 '입법'이기 때문이다. 특히 지역구가 없는 비례대표 의원들은 상대적으로 입법활동에 더 적극적이어야 한다. 20대 국회 비례대표 의원은 더불어민주당 13명, 자유한국당 17명, 바른미래당 11명, 민주평화당 2명, 정의당 4명 등 총 47명으로 구성돼 있다. 이들의 입법 성적표는 어떨까.

◆'16%' 인원으로 '15%' 법안 발의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47명의 비례대표 의원들은 총 3189건의 법안을 대표발의 했다(6월 26일 기준). 1인 당 평균 약 68건을 발의한 셈이다.

같은 날 기준 20대 국회에선 총 2만1327건의 법안이 발의됐는데, 전체 국회의원의 약 16%에 해당하는 비례대표 의원들이 전체 발의법안의 15%를 대표발의 했다. 법안발의 수만 보면 입법과 지역구 관리를 병행하는 지역구 의원들과 비슷하다.

정당별 비례대표 의원 1인 평균 법안발의 실적을 살펴보면 바른미래당이 82건으로 가장 많았고, 이어 민주당(75건), 정의당(69건), 민주평화당(63건), 한국당(54건) 순으로 나타났다.

이에 대해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더팩트>와 통화에서 "지역구 의원들(재선 이상)은 시민단체에서 법안발의 수를 평가하니 일명 품앗이 발의라는 공동발의, 청부입법도 많이 하는데, 초선인 비례대표 의원들이 그렇게 하기는 어렵다는 측면을 고려해야 한다"며 "법안발의 수로 의원들의 활동을 평가하는 것은 올바르지 않다. 가결률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실제 의원들의 입법활동을 정량적으로 보여주는 지표가 법안발의 수라면 가결 된 법안 수는 '성과'에 해당한다. 가결된 법안은 원안가결, 수정가결, 대안반영폐기 세 가지로 구분된다. 대안반영폐기는 명칭에 '폐기'가 붙어 있지만, 위원회 법률안 심사결과 그 법률안의 내용 일부 또는 전부를 반영한 위원회 차원의 대안을 제안한 것이어서 실질적으로 가결 법률안과 차이가 없다.

20대 비례대표 의원들이 대표발의 한 법안 중 가결된 법안은 780건으로, 전체 가결된 법안(5674건)의 약 14%를 차지했다. 정당별 비례대표 의원 1인 평균 법안 가결률은 바른미래당이 22건으로 가장 높았다. 이어 민주당(16건), 한국당(15건), 민주평화당(15건), 정의당(11건) 순으로 집계됐다.

개인별로 살펴보면 법안발의 실적은 송옥주 민주당 의원이 161건(가결 31건), 가결 건수는 정춘숙 민주당 의원이 52건(대표발의 127건)으로 가장 많았다.

20대 국회의원들에게 지급된 의원 배지. /배정한 기자
20대 국회의원들에게 지급된 의원 배지. /배정한 기자

반면 이수혁 민주당 의원, 이상돈 바른미래당 의원은 15건을 대표발의 해 법안발의 실적이 가장 저조했다. 임재훈 바른미래당 의원은 가결된 법안이 '0'건으로 나타났다. 다만 임 의원은 여야가 본격적인 정쟁을 시작하기 직전인 지난해 10월 오세정 전 바른미래당 비례대표 의원이 서울대 총장 선거 출마로 의원직을 사퇴해 해당 직을 승계하는 방식으로 가장 늦게 20대 국회에 입성했다.

임 의원을 제외하면 심기준·이수혁(민주당), 이상돈(바른미래당), 추혜선(정의당) 의원이 2건의 법안이 가결돼 가결 실적이 최하위권이었다.

법안발의 건수가 평균(68건)에도 못 미친 비례대표 의원은 한국당 14명(송희경·이종명·문진국·최연혜·김규환·김성태·전희경·김종석·유민봉·윤종필·조훈현·김순례·강효상·김현아), 민주당 5명(최운열·이철희·김성수·심기준·이수혁), 정의당 2명(김종대·추혜선), 민주평화당 1명(장정숙)으로 나타났다.

20대 국회 비례대표 의원 중 법안발의 왕 송옥주 민주당 의원과 가결 왕 정춘숙 민주당 의원. /뉴시스
20대 국회 비례대표 의원 중 '법안발의 왕' 송옥주 민주당 의원과 '가결 왕' 정춘숙 민주당 의원. /뉴시스

◆"양보다 질, 상임위 활동도 감안해야"

국회의원의 활동을 평가할 때 법안발의, 가결법안 수 등 '양'보다 어떤 법안을 냈고, 어떤 법안이 통과됐는지 '질'을 봐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금융 전문가인 최운열 민주당 의원은 <더팩트>와 통화에서 "지금 국회에 계류된 법안들을 보면 꼭 필요한 법인지, 물음표가 붙는 게 많다"며 "수는 적지만 질적으로 (우리 사회를) 좋게 하는 법을 냈는지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MBC 기자 출신인 김성수 민주당 의원은 "제가 20대 국회에서 힘을 기울였던 분야는 방송법 개정안"이라며 "박홍근 의원이 대표발의 한 방송법 개정안(공영방송의 정치적 독립성·중립성 확보 관련 법) 준비를 함께 했었고, 지난 1월에는 방송법 전부 개정안(IPTV·종합편성 도입 등으로 큰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 방송법 법체계 전반적 정비안)을 대표발의 했는데, 이 2건의 법안을 꼭 통과시키고 싶다"고 강조했다.

육군 장성 출신으로 국방 전문가로 국회에 입성한 김중로 바른미래당 의원은 "방산, 병역비리, 국방개혁 등 세 분야에 초점을 맞춰 활동을 했다"며 "(당초 목표대로) 계급 높낮이가 묘지의 크기를 결정하는 현실을 바꾸기 위한 국립묘지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 일부 개정안, 예산을 17조 원이나 쓰는 방위사업청장을 반드시 청문회에 세워야 한다는 법안(방위사업법 일부개정안) 등을 만들어 제출했다"고 말했다.

국회의원의 기본 업무는 입법이지만 상임위원회 활동을 통해 국정운영의 잘못된 부분을 적발·시정하고, 상임위 차원의 법안을 만들어 내려는 노력도 중요하다. 이 부분에 대해선 비례대표 의원들의 입장이 엇갈렸다.

여야가 다투는 쟁점이 많은 상임위와 그렇지 않은 상임위, 특정 분야 전문가로 국회에 입성한 경우와 비전문가로 입성한 경우 등 처한 상황에 따라 다른 반응이 나타났다.

지난 20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정치개혁 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 참석한 자유한국당 장제원 간사가 의사진행발언을 하고 있다. 정개특위는 여야 이견이 커 20대 국회에서 가장 파행이 잦았던 상임위 중 하나다. /남윤호 기자
지난 20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정치개혁 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 참석한 자유한국당 장제원 간사가 의사진행발언을 하고 있다. 정개특위는 여야 이견이 커 20대 국회에서 가장 파행이 잦았던 상임위 중 하나다. /남윤호 기자

이를테면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와 같이 비쟁점 상임위에 전문가로 들어간 비례대표 의원은 당론을 주도하며, 상임위에서 소신을 마음껏 펼쳤다고 했다.

농업 전문가로 국회에 입성한 김현권 민주당 의원은 "국회에 들어오기 전에 주변에서 국회라는 곳은 성과를 내기 어려운 곳이라는 이야기를 많이 듣고 왔는데, 실제 와서 해보니 생각보다 훨씬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었고, 당초 기대(계획) 이상의 성과를 내기도 했다"며 "당의 농업분야 현안과 정책을 주도하며 상임위에서 활동하고 있고, 정부 정책에 대해서도 문제가 보이면 지적하며 바꿔갔다"고 말했다.

반면 여야가 극한 대치를 이어갔던 정치개혁특별위원회에서 활동했던 A 의원은 "소신과 당론이 달랐지만, 당의 입장을 따랐던 적이 있다"고 말했다. 본의와 다르게 당의 거수기 역할을 한 적이 있다는 얘기다.

사법개혁특별위원회에서 활동했던 B 의원은 "패스트트랙 과정에서 분명히 반대 입장을 갖고 있었고, 당론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입장이 있었다"며 "국민이익, 국가안보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사안이 아니면 기본적으로 의원 소신과 가치를 지키게 해야 된다"고 했다.

☞<하>편에서 계속

※비례대표제란?
: 국회의원 선거에서 정당 득표율에 비례해 당선자 수를 결정하는 제도. 지역구 당선이 힘든 군소정당에게 득표비례에 따라 의석을 부여해 사표를 일정부분 방지하고, 청년·여성·장애인 등 소외계층의 의회 진출 통로 역할을 한다. 또한 각 분야 전문가가 의회에서 전문성을 발휘하도록 돕는 기회도 제공한다.

sense83@tf.co.kr

moone@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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