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운동가, 사형수의 아내…이희호 여사의 '민주 여정' 97년
입력: 2019.06.11 07:12 / 수정: 2019.06.11 13:36
이희호 여사가 10일 향년 97세로 별세한 가운데 그의 삶이 주목된다. /뉴시스
이희호 여사가 10일 향년 97세로 별세한 가운데 그의 삶이 주목된다. /뉴시스

DJ와 47년 함께 한 삶…"민주화 투쟁 동지"

[더팩트ㅣ박재우 기자] 고(故)김대중 전 대통령의 평생 동반자였던 이희호 여사가 10일 향년 97세로 오후 11시 37분 별세했다. 이 여사의 별세 소식과 함께 민주주의를 위해 외길을 걸은 그의 파란만장했던 삶에도 이목이 쏠리고 있다.

이 여사는 1922년 서울에서 태어나 이화여고와 이화여자전문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에서 교육학을 전공한 뒤 미국에서 유학을 마치고 국내에서 여성인권운동 활동을 했다. 서울대학교 남녀공학에서 뿌리깊은 가부장제를 처음 마주한 그는 곧 사회운동과 여성운동에 헌신했다.

한국전쟁 당시 부산에 피난을 갔던 이 여사는 '대한여자청년단'을 만들었고 사회운동에 눈을 뜨기 시작했다. 1952년에는 '여성문제연구원'도 창립했다.

이 여사는 대한 YMCA 총무로 활동하던 도중 김대중 전 대통령과 만나 1962년 결혼했다. 그 이후로 47년을 그와 함께했다. 이때부터 이 여사의 삶은 극적으로 변하기 시작한다.

김 전 대통령은 1963년 총선에서 목포에 출마해 정치에 입문했다. 이후 이 여사는 김 전 대통령의 옥살이와 가택연금, 미국 망명생활을 함께하며 어려운 시간을 함께했다.

이 여사는 김 전 대통령이 민주화 투쟁에 나설 때 그를 지지하면서 자신도 민주화 투쟁 동지로 역할을 했다. 박정희 정부 시절 라이벌이였던 김 전 대통령을 견제하면서 김 전 대통령의 납치사건, 가택연금, 옥고, 미국망명 등을 옆에서 함께 하기도 했다.

1973년에는 '김대중 납치사건'으로 김 전 대통령에게 된 큰 시련이 왔지만, 이 당시 이 여사의 도움이 컸다. 1980년 내란음모 사건으로 김 전 대통령이 사형을 선고받자, '눈물마저 말라버렸다'라고 당시에 대해 표현하기도 했다. 당시 이 여사와 김 전 대통령이 주고받은 편지는 책으로 출판되기도 했다.

이 여사는 김 전 대통령의 어려운 순간뿐 아니라 화려한 순간도 함께 했다. 1997년 네 번째 대선 도전 끝에 당선됐고, 2000년 노벨평화상을 받을 영광의 순간도 함께 나눴다. 청와대 영부인으로서 '사랑의 친구들'과 '여성재단'을 만들며 아동과 여성 인권 증진에 힘을 썼다.

김 전 대통령의 햇볕정책의 계승자로서 활발한 활동도 눈에 띈다. 2000년 첫 평양 남북정상회담을 위해 김 전 대통령과 함께 방북했고, 2011년 12월에는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 조문을 위해 방북했다. 2015년 7월에도 취약계층 의료 지원을 목적으로 방북하기도 했다.

한편 이 여사의 분향소는 서울 신촌 세브란스장례식장 특1 호실이며 조문은 11일 오후 2시부터 가능하다. 발인은 오는 14일 오전 6시 세브란스장례식장에서 열릴 예정이다.

jaewoopark@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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