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진환의 '靑.春'일기] 대통령과 '마음 놓고' 다투고 싶다
입력: 2019.05.13 05:00 / 수정: 2019.05.13 05:00
문재인 대통령 취임 2주년 대담을 진행한 송현정 KBS 기자의 태도를 두고 온라인상에서 갑론을박이 벌어졌다. 문 대통령이 9일 오후 청와대 상춘재에서 열린 문재인 정부 2년 특집 대담 ‘대통령에게 묻는다’에서 사회자의 질문에 답변하는 모습. /청와대 제공
문재인 대통령 취임 2주년 대담을 진행한 송현정 KBS 기자의 태도를 두고 온라인상에서 갑론을박이 벌어졌다. 문 대통령이 9일 오후 청와대 상춘재에서 열린 문재인 정부 2년 특집 대담 ‘대통령에게 묻는다’에서 사회자의 질문에 답변하는 모습. /청와대 제공

미리 밝혀둡니다. 이 글은 낙서 내지 끄적임에 가깝습니다. '일기는 집에 가서 쓰라'고 반문한다면 할 말 없습니다. 그런데 왜 쓰냐고요? '청.와.대(靑瓦臺)'. 세 글자에 답이 있습니다. '대통령이 생활하는 저곳, 어떤 곳일까'란 단순한 궁금증에서 출발합니다. 누구나 한 번쯤 생각해보지 않았을까요? '靑.春일기'는 청와대와 '가깝고도 먼' 춘추관에서(春秋館)에서 바라본 청춘기자의 '평범한 시선'입니다. <편집자 주>

공격적 질문은 기자 숙명…'인신공격'은 반민주

[더팩트ㅣ청와대=신진환 기자] 2015년 1월. 이명박 전 대통령과 1대 1로 만난 적이 있다. 사전 약속은 없었다. 서울의 한 호텔에서 친이(친이명박)계 모임이 있다는 정보만 믿고 1시간이 넘도록 무작정 기다린 뒤 만났다. MB를 기다리면서 별생각이 들었다. '그냥 지나가면 어떡하지'라는 걱정과 '어떤 질문을 할까' 고민이 들었다. 질문 목록을 만들면서 우선순위를 매겨놨다.

이윽고 모습을 드러낸 MB는 곧장 회동장 안으로 들어가려 했다. '안 되겠다' 싶어서 큰 소리로 소속과 이름을 외친 뒤 질문을 던졌다. 당시 이슈였던 자원외교에 대한 국조특위 증인 여부를 물었다. 그때 MB는 갑자기 방향을 틀어 다가왔는데, 적잖게 당황했던 기억이 난다. 현직이 아닌 전직 대통령이라도 둘만 있다는 사실에 무척 떨렸다.

무언가 심기가 불편한 듯한 표정을 지은 MB는 느닷없이 매체를 물었다. 내 행동을 문제 삼으려는 줄 알았다. 다시 알려줬더니, MB는 "팩트를 확인하라"며 외마디 말을 남긴 채 회동장으로 향했다. 매체명에 빗대 우회적으로 자원외교 비리 의혹을 비껴간 것이다. 잔뜩 긴장한 탓에 장황하게 질문하고 '무슨 말이냐'며 다투지 못한 점은 두고두고 아쉬운 부분이다.

송 기자는 몇차례 문 대통령의 말을 자르고 미간을 찌푸렸다는 이유로 일부 누리꾼들의 지적을 받았다. /KBS 방송화면 갈무리
송 기자는 몇차례 문 대통령의 말을 자르고 미간을 찌푸렸다는 이유로 일부 누리꾼들의 지적을 받았다. /KBS 방송화면 갈무리

MB와의 기억이 다시 생각났던 이유는 지난 9일 문재인 대통령 취임 2주년 특별 대담에 나선 송현정 KBS 기자를 보면서다. 현직 대통령과 대담은 영광이면서 동시에 부담이다. MB를 만났을 때 느껴봤기 때문이다. 그런 송 기자는 몇차례 문 대통령의 말을 자르고 미간을 찌푸려 논란의 중심에 섰다. 또 '독재자' 용어를 사용한 질문도 무례했다며 일부 누리꾼들의 융단폭격을 맞았다. KBS 홈페이지는 물론 시청자가 불쾌감을 느끼게 했다며 청와대 국민청원 글까지 올라왔다.

대담자는 폭넓은 현안에서 여러 질문을 준비하고 공부했을 것이다. 내공이 있더라도 주어진 80분 동안 현직 대통령과 단독 대담에서 실력을 발휘하기는 여간 어렵지 않다. 제한된 시간 관계상 질문을 할 시간을 확보하기 위해서라도 대통령의 발언 도중 개입할 수밖에 없다.

지적을 많이 받은 찡그린 표정은 대담자가 대화에 집중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몰입하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특유의 무표정이 나온다. 게다가 경제난과 북한의 미사일 발사로 어려워진 남북관계와 외교 문제, 개선되지 않은 일자리 문제 등 현안 자체가 무겁고 딱딱하다. 다만 5·18 유족 위로를 얘기하다 경제 문제를 거론한 것처럼 질문의 맥락이 잘 맞지 않거나 '독재자' 질문처럼 전달하는 기술이 아쉬운 부분도 있다.

'직설적인 질문'과 태도는 시각에 따라 불편해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른바 '신상'을 터는 행위는 도가 지나치다. 정작 문 대통령은 대담자의 공격적인 질문에 불쾌해하지 않았고 더 공격적인 공방도 괜찮았겠다고 했다. 문 대통령이 밝힌 국정 현안과 구상을 평가하기 보다는 대담자의 태도 논란에 초점이 쏠렸다. 결과적으로 대통령보다 대담자가 더 부각됐다.

백악관 기자들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게 집요하게 미국 내 현안을 물고 늘어진다. 대통령에게 질문하는 기자가 다리를 꼬거나 한손을 주머니에 넣고 질문하는 태도도 보이기도 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월 28일 오후 베트남 하노이 JW메리어트 호텔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진행한 제2차 북미정상회담 결과에 관해 브리핑하는 모습. /임세준 기자
백악관 기자들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게 집요하게 미국 내 현안을 물고 늘어진다. 대통령에게 질문하는 기자가 다리를 꼬거나 한손을 주머니에 넣고 질문하는 태도도 보이기도 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월 28일 오후 베트남 하노이 JW메리어트 호텔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진행한 제2차 북미정상회담 결과에 관해 브리핑하는 모습. /임세준 기자

문 대통령에게 질문했던 기자가 두들겨 맞은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 1월 신년 기자회견에서도 기자의 태도 논란이 일었다. 당시 김예령 경기방송 기자는 문 대통령에게 "경제 정책 기조를 바꾸지 않는 근거와 자신감은 어디서 나오냐"라고 물었다. 그는 순식간에 '실검'에 이름을 올리며 논란의 중심에 섰다. 그때도 마찬가지로 '신상털기'와 비난이 쏟아졌다. 지난해 1월 신년 기자회견에서도 문 대통령에게 악플을 호소한 기자도 뭇매를 맞았다. 한 개인으로서 감당하기에 벅찬 비방과 욕설이 난무한다. 어떤 기자라도 위축이 될 수 밖에 없다. 언론이 할 말을 못 하면 과연 누구에게 이득이 될까.

백악관 기자들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게 집요하게 현안을 물고 늘어진다. 트럼프 대통령에게 민감한 '러시아 스캔들'도 거리낌 없이 질문을 던진다. 대통령에게 질문하는 기자가 다리를 꼬거나 한손을 주머니에 넣고 질문하기도 한다. 우리 정서와 다르지만, 이를 문제 삼거나 인신공격을 하지는 않는다. 민주주의가 바탕이 된 문화다.

대통령과 기자가 대화하는 시간이 많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새로운 대담 형태의 시도는 좋았으나, 다수가 모인다면 다양한 시각에서 더 활발한 소통이 이뤄질수 있다. 한 취재원은 "박근혜 정부 시절에는 각본대로 하거나, 자유토론 등의 기자회견이 없었다. 현 정부에서는 자연스러운 형태로 대통령과 질의응답을 하는 방식이다. 이러한 차이가 국민들 시각에선 낯설게 보일 수 있다"고 했다. '잘 꾸며진 세련된' 모습보다는 투박하더라도 치열하게 질의응답을 나누는 자리가 활성화된다면 더디더라도 건전한 비판이 주를 이루는 때가 오지 않을까 생각한다. 대통령과 때로는 '마음 놓고 다투는' 그런 날이 왔으면 좋겠다.

shincombi@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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