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영택의 고전시평] 정적과의 다툼에도 지켜야 할 금도가 있다
  • 박순규 기자
  • 입력: 2019.05.08 05:00 / 수정: 2019.05.08 05:00
우리 시대 정치인들은 여야 불문하고 대부분 진영논리에 갇혀 상대를 적으로 간주하는 경향이 강하지만 역사 속 인물들은 정적에게도 최소한의 금도를 지켜 교훈을 주고 있다.사진은 지난 2일 자유한국당 의원들의 삭발식 장면./남윤호 기자
우리 시대 정치인들은 여야 불문하고 대부분 진영논리에 갇혀 상대를 적으로 간주하는 경향이 강하지만 역사 속 인물들은 정적에게도 최소한의 금도를 지켜 교훈을 주고 있다.사진은 지난 2일 자유한국당 의원들의 삭발식 장면./남윤호 기자

[더팩트 | 임영택 고전시사 평론가] 올해 3월 23일 통계청이 발표한 2018년 신뢰도 조사에서 4점 만점에 의료기관과 교육기관, 금융기관이 2.5점, 중앙부처 2.4점, TV 방송사 2.4점, 경찰 2.3점, 검찰 2.2점, 대기업 2.2점으로 나타났다. 국회는 1.9점에 그치며 신뢰도 꼴찌라는 불명예를 안았다.

국회는 2014년부터 5년 연속으로 신뢰도 최저 기관으로 이름을 올리고 있다. 우리 사회의 현재와 미래를 선도해야 될 국회가 가장 불신을 많이 받는 후진적인 영역에 머물러 있는 현실이 참으로 안타깝다. 민심과는 괴리된 채 당리당략에 치우쳐 정쟁만 일삼으며 걸핏하면 식물국회, 폭력국회를 연출하는 국회를 지양하려고 2012년 도입한 ‘국회 선진화법’도 최근에는 무력화되어 동물국회의 모습만 보여주며 시민들의 분노와 정치 불신만 자아내고 있다.

작금의 국회는 ‘신의 직장’으로만 기능할 뿐 민생과 민족의 미래를 챙기는 집단이 결코 아니다. 국회 사무처의 ‘제20대 국회 종합 안내서’에 따르면 국회의원 연봉은 상여금을 포함하여 1억 3796만 1920원, 월 평균 1149만 6820원이다. 국회의원 보좌진 급여, 입법 및 정책개발비, 차량유지비 등을 포함하면 국회의원 1인 당 연간 약 6억 원 이상의 예산이 소요된다. 국회의원 정수가 300명이므로 국회의원 연간 전체 예산이 1800억 원이나 된다. 또한 그들은 각종 특권과 특혜를 누리고 있다. 국회의원이 밥값을 한다면 이러한 세비가 아깝지 않겠지만 문제는 그들이 정쟁을 일삼으며 실제로 일하는 기간은 그리 많지 않을 뿐 아니라 민심에 동떨어진 일들만 하여 불신의 아이콘이 되었다는 점이다.

원내 활동은 아예 방기한 채 장외 시위만 벌이는 자유한국당은 국정농단 책임자인 이명박과 박근혜 정권의 여당으로서 책임을 통감하여 석고대죄하고 환골탈태를 못 할망정 나라를 혼란의 구렁텅이로 몰아넣고 있다. 할 말이 있다면 원내에서 충분히 개진하고 그것이 여의치 않을 때는 장외 시위를 병행할 수도 있지만 자유한국당은 국회는 비워놓고 오직 장외 시위만 벌이고 있다.

극한투쟁만 벌여서는 나라가 정상적으로 운영될 수 없다. 우리 시대 시민은 정치의식이 높아져서 어느 정파가 당리당략만 고집하는지, 어떤 정파가 시민의 이해를 대변하고자 노력하는가를 알고 있다. 정치도 협상의 산물인데 오직 자신의 정파 요구만 주장하면 해결책을 찾을 수 없다. 상대를 쓰러뜨려야 할 적으로만 간주한다면 대화와 타협, 소통이 끼어들 여지는 없다. 우리 시대 정치인들은 여야 불문하고 대부분 진영논리에 갇혀 상대를 적으로 간주하는 경향이 강하다. 그들에게 정적이지만 최소한의 금도는 지켰던 역사 속 인물들의 사례는 여기에 경종을 울려줄 만하다.

송시열과 허목은 조선 중기 노론과 남인의 영수로서 치열하게 대립했던 정적이었다. 오늘날 여당과 야당의 대표 격인 사람들이었다. 송시열이 병에 걸렸을 때 의술에 밝은 정적인 허목만이 자신의 병을 고칠 수 있다고 판단하여 아들을 보내 처방을 받아오게 했다. 송시열 아들의 설명을 묵묵히 듣고 허목은 처방을 써줬는데 비상과 극약이 들어있었다. 아들은 걱정이 되어서 극약을 빼고 달여 바쳤는데 병이 낫지를 않고 더욱 위중해졌다.

송시열은 이상하게 여겨 아들을 불러 자초지종을 듣고 화를 내며 다시 허목에게 가서 처방을 받아오게 했다. 송시열이 처방전을 보니 이전과 같이 비상과 극약이 들어 있었다. 허목은 처방에 비상과 극약이 들어 있어서 송시열이 먹지 않을 것을 걱정했으나 송시열은 정적인 허목이 소인배가 아니라고 믿고 처방대로 약을 달여 먹었으며 병이 깔끔하게 나았다. 송시열은 뒷날 허목을 찾아가 고개 숙여 감사 인사를 했다고 한다.

중국 송나라 때 '자치통감'의 저자 사마광과 변법 개혁을 주도했던 왕안석도 정적이었다. 사마광은 왕안석 세력에 밀려 오랜 세월 한직에 머물러 있어야 했다. 사마광과 왕안석은 정적임에도 서로 편지를 주고받으며 각자의 생각과 정책을 논의했다고 한다.

허목과 송시열, 왕안석과 사마광, 그들은 지금 우리의 정치인처럼 의견이 다르다고 하여 상대 정파의 인물과는 눈도 마주치지 않고 말도 섞지 않으려고 하지 않았다. 그들은 상대의 인격을 믿었으며 어떤 때는 치열하게 토론하며 상대의 의견을 듣고자 했다. 우리 시대에도 허목과 송시열, 왕안석과 사마광의 관계를 유지할 정치인이 많이 보이기를 기대해 본다.

thefact@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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