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법·공수처법 패스트트랙 지정 저지 투쟁을 주도한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가 이번 일로 정치적 입지를 다졌다는 관측이 나온다. 지난달 26일 국회 의안과 앞에서 홍영표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의 진입을 저지하고 있는 나 원내대표. /남윤호 기자 |
직접 몸싸움하고 바닥에 누운 나경원…'고장난 브레이크' 지적
[더팩트ㅣ이원석 기자] 지난달 30일 새벽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을 골자로 하는 공직선거법 개정안과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공수처) 설치법안 등이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에 지정됐다. 이를 반대한 자유한국당은 약 일주일간 철야농성에 육탄전까지 불사했음에도 끝내 저지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패스트트랙 공방 내내 투쟁의 사령탑이었던 나경원 원내대표는 보수 정당 원내사령탑으로서 존재감을 부각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한국당은 지난달 23일부터 선거법·공수처법 패스트트랙 저지를 위한 투쟁에 나섰다. 청와대 앞 분수대를 찾아 규탄 시위를 벌이고, 국회 로텐더홀에서 철야 농성을 했다. 여야 4당이 법안들을 패스트트랙에 태우기로 한 25일부터는 육탄 방어전에 돌입했다. 국회의원과 당직자, 보좌진이 총동원돼 법안이 제출되는 국회 의안과와, 패스트트랙 처리 절차가 진행될 정치개혁특별위원회(정개특위)와 사법개혁특별위원회(사개특위) 회의장을 봉쇄했고, 국회 경호 직원, 여야4당 관계자들과 몸싸움까지 벌였다.
이 과정에서 나 원내대표가 한국당을 전체 지휘했다. 황교안 대표는 장인상으로 인해 자리를 비운 상황이었다. 국회 내 여러 장소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충돌이 발생했고 나 원내대표는 '동에번쩍 서에번쩍' 자리를 옮기며 예외 없이 모습을 드러냈다.
지난달 30일 오전 정치개혁특별위원회 전체회의장 앞에서 시위를 벌이는 나경원 원내대표. /이새롬 기자 |
나 원내대표는 국회 경호 직원, 여야 4당과 몸싸움이 벌어졌을 땐 직접 혼잡한 현장에 뛰어들었다. 나 원내대표는 혼전 속에서 구호를 외치며 항의했고, 소란이 끝난 직후엔 한국당 무리 중간에서 발판에 올라 청와대와 패스트트랙을 추진하는 여야 4당을 규탄했다. 나 원내대표 연설에 동료 의원, 당직자, 보좌진들은 열렬히 환호했다. 또, 나 원내대표는 회의장을 봉쇄하기 위해 직접 바닥에 눕기도 했다. 이러한 모습은 언론 등을 통해 그대로 보도됐다.
이번 패스트트랙 정국은 결과적으로 한국당에겐 지지층 결집의 계기가 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미터가 YTN 의뢰로 지난 달 22일~26일 조사해 29일 발표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한국당 지지율은 전주 대비 0.2%p 오른 31.5%로 기록됐다(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고). 물리적으로 회의를 막는 등의 다소 부정적으로 평가될 수 있는 모습을 보였음에도 지지율이 오른 것은 지지층이 결집한 것이란 해석이 나왔다.
나경원(가운데)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를 비롯한 한국당 의원들이 지난달 29일 바닥에 누워 사개특위 회의 개의를 막고 있다. /이덕인 기자 |
이를 중심에서 이끌고 스포트라이트를 한 몸에 받은 나 원내대표는 보수 진영 내에서 존재감이 더욱 커진 모양새다. 한 한국당 관계자는 <더팩트>와 통화에서 "의원, 당직자, 보좌진은 물론 당원들 사이에서 나 원내대표 칭찬이 끊이질 않는다고 한다"며 "나 원내대표는 이번 투쟁에서 선봉에 서면서 보수 결집의 구심점이 됐다. 진짜 '나다르크'가 된 것"이라고 평가했다.
보수 진영에서 뿐만 아니라 정치권 전체에서의 나 원내대표 정치적 입지 또한 더욱 탄탄해질 것이란 분석도 있다. 신율 명지대 교수는 통화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이 과거 천막당사를 이끌며 주목받았듯 나 원내대표도 마찬가지"라며 "추후 투쟁이 계속되고 경제 악화 등으로 정치 상황이 변하면서 여권에 대한 반감이 커지면 보수 진영 뿐만 아니라 전체적인 나 원내대표의 정치적 입지가 더 견고해지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러나 일부에서는 나 원내대표가 대여투쟁에만 매몰됐다는 지적도 나온다. 집토끼를 잡고 보수층 지지율 상승효과를 본 것은 맞지만 '한국당 해산' 청와대 국민청원이 160만 명을 넘었다는 점은 대여투쟁 방향 등을 고민해야 할 대목이라는 것이다. 나 원내대표가 대여투쟁에 강도를 높이면서 민생법안은 물론, 소방관 국가직 전환 등 국민 생활과 밀접한 법안 통과를 막고 있다는 여론이 확산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달 25일 나경원 원내대표가 국회 의안과 앞에서 국회 경호 직원들과 한국당 의원, 보좌진, 당직자간에 몸싸움이 벌어진 뒤 문희상 국회의장을 규탄하고 있다. /이원석 기자 |
한편 이정미 정의당 대표는 1일 패스트트랙 정국에서의 한국당 모습을 비판하면서 "(나 원내대표, 황 대표)가 이번 과정에서 자신들의 존재감을 부각시키고 대권주자로서의 어떤 구심력을 제대로 행사해야 된다(는 생각 때문에) 브레이크가 안 걸렸다"고 꼬집기도 했다.
이 대표는 "재밌었던 장면이 수백 명씩 엉켜있던 상황에서 카메라들이 정신이 하나도 없는 상황에서 희한하게 나 원내대표만 나타나면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며 "수백 명 사람들 머리 위로 나 원내대표가 쑥하고 올라오더라. 갈 때마다 발판을 놨다. 수백 명이 엉켜서 난리가 났는데 자기가 올라설 발판을 비서가 딱 갖다 대면 그 위로 싹 올라갔다"고 했다. 이 대표는 "나머지 보좌관들, 국회의원들을 완전히 엑스트라를 만들고 자기가 이 과정에서 주역이 되려고 하는 것으로 보였다"고 꼬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