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임무를 다한 것일까, 역사를 날치기를 한 것일까' 자유한국당을 제외한 여야 4당이 29~30일 국회 사법개혁특별위원회와 정치개혁특별위원회를 열고 선거제·사법제도 개혁안을 패스트트랙으로 지정했다. 여야4당과 한국당은 패스트트랙 지정 후 명암이 엇갈렸다. /국회=이새롬 기자 |
여야 4당, 한국당 반대 뚫고 선거제·사법제도 개혁안 패스트트랙 가결
[더팩트ㅣ국회=허주열·문혜현 기자] "역사적 책무가 주어진 날이다. 오늘 더불어민주당은 야 3당과 함께 선거제·사법제도 개혁안을 패스트트랙으로 지정하는 역사적 임무를 맡았다."(강병원 더불어민주당 원내대변인)
"칼로 흥한자 칼로 망한다고 했다. 민주당과 범여권 정당에 의해 민주주의가 유린됐다. 법안 날치기가 부끄럽지 않은가."(이장우 자유한국당 의원)
닷새간 국회를 '동물국회'로 만든 패스트트랙 정국이 일단락됐다. 한국당을 제외한 여야 4당은 29~30일 사법개혁특별위원회와 정치개혁특별위원회 전체회의를 열고, 공수처설치법·검경수사권조정안·선거제 개혁안을 패스트트랙(안건 신속처리제도)으로 지정했다.
29일 국회 사개특위 전체회의에서 공수처법·검경수사권 조정 패스트트랙 지정 후 이상민 사개특위 위원장(오른쪽)과 박범계 민주당 의원이 악수하고 있다. /국회=이덕인 기자 |
한국당은 여야 4당이 뭉쳐 진행한 패스트트랙 지정을 막기 위해 지난 25일부터 국회 본청 곳곳을 점거하고 농성했지만, 끝내 막지 못했다. 패스트트랙은 특정 정당의 반발로 국회의 법안 처리가 무한정 표류하는 것을 막기 위해 2015년 5월 도입된 제도다. 국회 상임위원회 재적인원 5분의3 이상이 찬성하면 패스트트랙을 지정할 수 있다. 패스트트랙으로 지정되면 상임위 회의(180일), 법사위 검토(90일), 본회의 상정(60일) 기한이 제한돼 최장 330일 내로 국회 본회의 표결이 진행된다.
29일 오후 10시 52분 개의한 사개특위는 총 18명의 재적인원 중 백혜련 간사 등 민주당 의원 8명, 채이배·임재훈 바른미래당 의원, 박지원 민주평화당 의원 등 11명이 찬성해 이날 오후 11시 55분 공수처법·검경수사권 조정안을 패스트트랙으로 지정했다. 비슷한 시각 개의한 정개특위는 자정을 넘긴 30일 오전 0시 33분 재적인원 18명 중 한국당 의원 6명을 제외한 여야 4당 소속 12명의 의원이 선거제 개혁안 패스트트랙 지정을 위한 투표에 참여해 전원 찬성 표를 던져 가결됐다.
29일 오후 선거제도 개혁 패스트트랙 지정을 위한 정치개혁특별위원회 전체회의장 앞에서 자유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와 의원들이 선거제도 개혁법안이 패스트트랙에 지정되자 회의장 밖에서 드러누워 구호를 외치고 있다. /국회=이새롬 기자 |
두 특위는 모두 한국당의 회의장 점거로 당초 예고한 회의장에서 회의가 열리지 못했다. 사개특위는 문화체육관광위원회 회의실에서, 정개특위는 정무위원회 회의실에서 진행됐다. 한국당 의원들을 따돌린 '도둑 회의', '날치기 처리' 등의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뒤늦게 회의장을 찾은 한국당 의원들은 "도둑 회의다", "민주주의가 유린됐다", "공지 없는 회의는 원천 무효다", "역사에 부끄러운 일을 하지 말아 달라" 등의 발언을 쏟아내며 강하게 반발했다.
하지만 이상민 사개특위 위원장(민주당)과 심상정 정개특위 위원장(정의당)은 투표를 강행했고, 패스트트랙은 모두 가결됐다. 캐스팅보트 역할을 맡았던 바른미래당은 김관영 원내대표가 반대 표를 던질 가능성이 있는 사개특위 의원 2명(오신환·권은희 의원)을 채이배·임재훈 의원으로 사전 교체하며, 표결이 진행될 경우 반드시 가결되는 상황을 만들었다.
심상정 정개특위 위원장이 30일 오전 국회 정개특위 회의에서 선거제 개혁안 패스트트랙 지정 후 여야 4당 의원들과 웃으면서 악수하고 있다. /이새롬 기자 |
이로써 패스트트랙 열차는 일단 출발하게 됐지만, 후폭풍이 만만찮을 전망이다. 나경원 한국당 원내대표는 패스트트랙 지정 직후 국회에서 긴급 의원총회를 열고 "그들은 대한민국 헌법, 자유, 민주주의를 유린했고, 모든 권력을 그들 손아귀 안에 뒀다"며 "좌파독재의 새로운 트랙을 깔았다"고 맹비난했다.
황교안 한국당 대표는 이 자리에서 "오늘 통과된 패스트트랙은 원천 무효로, 오늘로 20대 국회는 종언을 고했다"며 "대화와 타협의 정신은 실종됐고, 힘을 앞세운 폭력과 독재가 국회를 유린함으로써 대한민국 의회민주주의에 조종을 울렸다. 문재인 대통령이 국민 앞에 무릎 꿇는 그 날까지 투쟁하고, 또 투쟁하겠다"고 강력한 장외투쟁을 예고했다.
30일 오전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가 선거제 개혁안을 패스트트랙으로 지정하자, 회의장 앞에서 자유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와 의원들이 '독재타도'를 외치고 있다. /이새롬 기자 |
반면 이해찬 민주당 대표는 패스트트랙 지정 후 열린 의원총회에서 "선거법 개정과 공수처법은 우리나라 민주주의제도를 굳건하게 세우는 아주 중요한 법"이라며 "패스트트랙으로 지정됐다는 것은 20대 국회 내에서 매듭짓겠다는 의미로 한국당과 충분한 대화와 소통을 하겠다"고 말했다. 같은 사안에 대한 거대 양당의 인식이 너무 달라 1년가량 남은 20대 국회는 올해 내내 이어졌던 공전을 지속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대규모 법적 싸움도 예고돼 있다. 민주당은 한국당이 국회 점거 농성 과정에서 국회선진화법을 위반했다며 수십 명을 고발했고, 한국당도 맞고발로 맞불을 놨다. 양 측은 "고소·고발을 취하할 생각이 없다"며 정치적 화해 없이 끝까지 갈 것임을 시사했다.
이번 정국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던 바른미래당은 유승민·이혜훈·오신환 의원 등 바른정당계 의원들의 강한 반발에도 불구하고 현 지도부가 패스트트랙에 힘을 보태 내부 갈등이 더 심화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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