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제와 개혁법안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지정을 둘러싼 여야의 극한 대치가 이어지는 가운데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이 최근 잇따라 자유한국당을 겨냥하는 것으로 보이는 페이스북에 글을 올리고 있다. /이새롬 기자 |
미리 밝혀둡니다. 이 글은 낙서 내지 끄적임에 가깝습니다. '일기는 집에 가서 쓰라'고 반문한다면 할 말 없습니다. 그런데 왜 쓰냐고요? '청.와.대(靑瓦臺)'. 세 글자에 답이 있습니다. '대통령이 생활하는 저곳, 어떤 곳일까'란 단순한 궁금증에서 출발합니다. 누구나 한 번쯤 생각해보지 않았을까요? '靑.春일기'는 청와대와 '가깝고도 먼' 춘추관에서(春秋館)에서 바라본 청춘기자의 '평범한 시선'입니다. <편집자 주>
패스트트랙 논란, 국회와 국민에 맡겨둬야
[더팩트ㅣ청와대=신진환 기자] 지난 25일 밤 '민의의 전당' 국회의사당에 들렀다. 본청 6층에서 "야 이거 안 놔?" "못 놔!"라는 소리가 귓등을 때렸다. 속히 현장을 가보니 여야가 공직선거법개정안·공수처설치법 등 개혁법안의 신속처리안건(패스트트랙)을 둘러싸고 육탄전을 벌이며 고성을 주고받고 있었다. 자유한국당 한 의원은 얼마나 목청을 높였는지,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고 목소리가 반쯤 쉬었다. 뉴스로만 봤던 것보다 상황은 훨씬 심각해 보였다. 전쟁터가 따로 없었다.
이날 비가 내려 습도도 높았는데, 한 지점에 많은 사람이 몰려 그야말로 '찜통'이었다. 가만히 있어도 불쾌감이 상당했다. 몸싸움 전면에 나선 보좌진들과 국회 직원듥은 땀을 비 오듯 흘렸다. 후텁지근한 날씨보다 더 짜증이 났던 것은 과거로 돌아간 정치 현실이었다. 민생은 뒷전이고 당리당략에만 몰두하는 '금배지'의 강 대 강 대치를 보고 있자니 절로 할 말을 잃었다.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도 비슷한 마음이었던 모양이다. 엄밀히 말하면 패스트트랙 지정을 격렬히 반대하는 자유한국당에 심기가 불편한 듯하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야당을 우회적으로 비판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가 올린 페이스북 글은 고스란히 기사화되고 있다. 그래서 최근 '동물국회'와 함께 조국 수석은 뜨거운 이슈로 떠올랐다.
지난 26일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를 비롯한 자유한국당 의원들은 국회 사법개혁특별위원회 전체회의를 저지하기 위해 회의실 입구를 점거했다. /배정한 기자 |
그는 29일 페이스북에 1987년 6월 민주항쟁 당시 집회 참가자들의 거리행진 사진과 27일 자유한국당 의원들의 거리행진 사진을 나란히 실었다. '출처'는 민병두 민주당 의원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1987년과 2019년의 대비. 일견 비슷해 보이는 풍경이지만, '투쟁'의 대상과 목적, 주체와 방법 등에 차이가 있다"고 적었다. '독재타도, 헌법수호'라는 글이 적인 현수막을 든 한국당의 장외 투쟁은 '진짜' 민주화 운동과 '질적'으로 다르다는 의미로 읽힌다.
조 수석은 한국당 등의 저지로 패스트트랙 지정이 무산된 26일에도 페이스북에 국회 회의 방해 등에 처벌 조항을 올렸다. 공교롭게도 민주당이 나경원 한국당 원내대표 등을 국회선진화법 위반 혐의로 검찰에 고발한 날과 같다. 특히 조 수석이 올린 처벌 조항들은 회의를 방해하고 팩스 등 국회 기물을 파손하면서까지 강력 반발한 한국당을 겨냥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지난 23일 여야 4당(민주·바른미래·민주평화·정의당) 원내 지도부가 패스트트랙 지정 안건을 추인하자 환영한다는 뜻을 밝힌 이후 패스트트랙과 관련한 게시물을 10여 건이나 올린 조 수석이다. 공수처 설치와 검경수사권 조정 등 소위 사법개혁이 가시화된 상황에서 한국당의 제동으로 답답한 마음이 들 수도 있겠다. 문 대통령의 공약인 사법개혁을 담당해온 이로서 패스트트랙 지정 여부가 존폐 갈림길에 섰으니 말이다.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은 26일 페이스북에 국회 회의 방해 등에 처벌 조항을 올렸다. 회의를 방해하고 팩스 등 국회 기물을 파손하면서까지 강력 반발한 한국당을 겨냥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조 수석 페이스북 갈무리 |
조 수석이 쏜 화살을 맞은 한국당은 "야당 겁박"이라며 발끈하고 있다. 조 수석이 올린 글과 사진의 영향으로 야당의 '전투력'이 더 높아진 셈이다. 한국당은 조 수석의 '페북 공격'을 고리 삼아 청와대로 불똥을 튀기고 있다. '불 난 집에 부채질한' 역효과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파장은 둘째 치고 조 수석의 '페북 정치'가 적절한지는 의문이다. 여야의 볼썽사나운 대치와 난장판인 국회를 두둔하는 게 아니라, 국회 논의에 청와대가 개입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당의 불법적 행태가 불만스럽더라도 어찌 됐든 개혁법안을 처리하는 일은 입법부의 몫이다. 삼권분립의 중요성은 조 수석이 더 잘 알 것이다.
문재인 정부 2기 내각 후보자와 과다 주식 보유 논란이 불거졌던 이미선 헌법재판관 부실 검증 논란 때는 말이 없었던 조 수석이다. 야당의 공세에는 침묵하고 야당의 행태는 저격한다면 이른바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 비판을 받기 십상이다. 헌법이 보장하는 '표현의 자유'라면 할 말은 없다. 다만, 사정 업무를 총괄하는 민정수석의 역할과 청와대 핵심 참모라는 점에서 조 수석의 말 한마디가 미치는 파급력은 서울대 교수 시절과는 현격한 차이가 있다. 신중할 필요가 있다는 얘기다. 몸싸움에 이어 대규모 고발전까지 벌이는 국회는 국민의 판단에 맡기면 될 일이다. 조 수석의 '페북 정치'는 여러모로 아쉽다. '일하고 욕먹고 너덜너덜해져서 그만두고 나가는 것'이 민정수석의 운명이자 역할일지라도.
shincombi@tf.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