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영택의 고전시평] 위에서 법을 어기면, 나라가 바로 설 수 없다
입력: 2019.04.30 05:00 / 수정: 2019.04.30 05:00
김기춘을 비롯한 법조인 출신들을 중용하며 늘 법과 원칙을 강조했던 박근혜 전 대통령이 법적 절차를 아예 무시한 채 법정에 출석조차 하지 않는 것은 법과 정의를 전적으로 부정하는 것이다./더팩트 DB
김기춘을 비롯한 법조인 출신들을 중용하며 늘 법과 원칙을 강조했던 박근혜 전 대통령이 법적 절차를 아예 무시한 채 법정에 출석조차 하지 않는 것은 법과 정의를 전적으로 부정하는 것이다./더팩트 DB

[더팩트 | 임영택 고전시가평론가] 지금 한국은 권력 및 부를 장악한 사회 지도층 인사들이 각종 부패와 비리에 연루되어 법의 심판을 받고 있거나 논란의 중심에 서 있다. 권력의 정점이었던 이명박과 박근혜는 법적 처벌을 받는 중이고 김학의나 장자연 사건은 사회 지도층 인사들이 연루되었지만 처벌에서 빗겨나 있다가 재조명하는 중이다.

전직 대통령으로서 국정을 농단하다 수감 중인 박근혜는 허리 통증을 빌미로 형집행정지를 신청했다가 기각되었다. 박근혜는 나라를 도탄에 빠뜨린 장본인이면서도 병을 핑계로 특권을 요구했고 심지어 극우보수 세력은 그의 석방과 사면을 주장하기까지도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우리 사회는 그동안 ‘유전무죄 무전유죄’ 풍조가 만연하여 법은 돈과 권력이 없는 사람들에게만 엄격히 작동하는 폐해를 유발해서 법과 정의에 대한 신뢰가 완전히 추락했다.

유죄 판결을 받아 독배를 마시고 죽음을 맞이한 소크라테스를 소환하여 이 시대에 경종을 울리고자 한다. 소크라테스는 신을 믿지 않고 젊은이들을 타락시킨다는 누명을 쓰고 고소당하였다. 플라톤의 '소크라테스의 변론'에 보면 71세의 노구에도 법정에서 불의에 맞서 당당하게 싸우는 소크라테스의 모습이 잘 묘사되어 있다. 자신의 목숨이나 가정의 안정이 아닌 진실을 향한 불굴의 투쟁 의지에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당시 아테네는 스파르타와 전쟁에서 진 뒤 어수선했고 희생양이 필요했는데 소크라테스가 대상이 되었다. 소크라테스는 멜레토스의 공식 고소 이전에 이미 많은 사람들, 특히 사회 지도층 인사들의 미움과 모함을 받아왔다. 사회 명망가들을 찾아가 특유의 변증법으로 그들이 무지하다는 것을 드러내서 시기와 질투 그리고 증오심을 유발시켰기 때문이다.

소크라테스는 법정에서 변론을 하면서도 유죄 판결을 받을 것을 예상한다. 자신이 애걸복걸하지 않거나 철학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지 않을 것이며 오래도록 사회 지도층의 미움을 사온 걸 알기 때문이다. 그의 예상대로 사형이 확정되어 수감되어 있을 때 친구 크리톤이 찾아와 탈옥을 권유하지만 소크라테스는 받아들이지 않고 독배를 마시고 죽는다.

소크라테스가 "악법도 법이다"는 말을 했다고 교과서에서 배웠거나 어디에선가 보고 들었지만 그가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 단지 실정법주의자들과 기득권자들이 소크라테스가 한 말인 듯 날조하여 그들의 이데올로기를 전파하는 수단으로 악용해 왔을 뿐이다.

그렇다면 소크라테스는 왜 주변 사람들의 탈옥 권유를 뿌리치고 부당한 재판 결과에 순응하여 죽음을 맞이했을까? 소크라테스는 자신이 무죄임을 확신했으나 법 집행인들을 설득하는데 실패했으며 법정에서 그토록 당당하게 자신의 무죄를 변론한 사람이 탈옥한다면 ‘불의한’ 사람이 될 것이기 때문에 죽음을 받아들였다.

‘악법도 법’이기 때문이 아니라 불의한 짓에 불의한 행동으로 대응하지 않아야 하며 진실을 위해서는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신념에 따라 사형 판결을 받아들였다. 악법은 지배계급 및 기득권층의 이해만 대변하며 무고한 소크라테스를 얽어맨 법을 말한다. 악법은 철폐해야 마땅하지만 누구보다 법의 특혜를 받으며 잘 먹고 잘 살던 사람이 어느 날 어떤 이유로든 법의 특혜가 사라져 단죄를 받았다고 법에 저항하는 짓은 불의한 행동이다.

김기춘을 비롯한 법조인 출신들을 중용하며 늘 법과 원칙을 강조했던 박근혜가 법적 절차를 아예 무시한 채 법정에 출석조차 하지 않으면서도 병을 핑계로 석방을 요구한 것은 어떤 이유로도 합리화할 수 없다. 또한 현재 그의 석방이나 사면을 주장하면 법과 정의를 전적으로 부정하는 사람이나 세력에 불과하다.

부와 권력을 가진 사람은 아니었지만 한 명의 시민으로서 무고한 소크라테스가 부당한 법 집행에도 순응하며 죽음을 맞이했던 자세는 무조건 법적 특혜를 누리거나 주장하는 우리 사회 지도층 인사들에게 경종을 울려주기에 충분하다. 부와 권력을 가진 사람에게는 보다 엄격한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요구하고 기층 민중의 이해를 대변하는 법 제정과 집행을 지향하여야 정의가 바로서고 나라를 안정시킬 수 있다.

진나라 개혁가 상앙은 "법이 지켜지지 않는 이유는 위에서 법을 어기기 때문이다"고 했다.

thefact@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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