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진환의 '靑.春일기] '문 대통령 5시간 논란' 대응이 아쉬운 이유
입력: 2019.04.11 05:00 / 수정: 2019.04.11 05:00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4일 강원도 대형 산불이 발생했을 당시 술을 마셨다는 가짜뉴스가 확산하면서 청와대가 강력 대응을 예고했다. 5일 오전 청와대 국가위기관리센터에서 강원 지역 산불 상황과 관련해 청와대 참모들로부터 상황보고를 받는 문 대통령. /청와대 제공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4일 강원도 대형 산불이 발생했을 당시 술을 마셨다는 가짜뉴스가 확산하면서 청와대가 강력 대응을 예고했다. 5일 오전 청와대 국가위기관리센터에서 강원 지역 산불 상황과 관련해 청와대 참모들로부터 상황보고를 받는 문 대통령. /청와대 제공

오해 깔끔히 해소하려면 자세한 근거 뒷받침돼야

[더팩트ㅣ청와대=신진환 기자] 지난달 30일. 대학 후배와 운동을 마치고 귀가하는 길이었다.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나누다 후배 녀석이 대뜸 철 지난 궁금증을 꺼냈다. "박근혜가 집권했을 때 거울방에서 정말 밀회를 했나요? 비아그라는 왜 샀나요?"

박근혜 정부 청와대에서 발기부전 치료제인 비아그라 등을 대거 사들인 것에 대한 의구심은 세월이 흘러도 여전했다. 당시 청와대는 아프리카 순방 때 청와대 직원들의 고산병 치료용으로 구매했다고 해명했는데도 말이다. 그래서 의혹을 깔끔히 해소하려면 웬만해선 토를 달 수 없을 정도로 근거를 제시해야 한다.

9일 청와대가 '가짜뉴스'를 언급하며 발끈했다. 좀처럼 볼 수 없던 일이었다. 고민정 청와대 부대변인은 이날 기자들에게 문자메시지를 보내 "최근 문재인 대통령이 강원 산불화재가 있었던 4일 저녁 '신문의 날' 행사를 마치고 언론사 사장과 술을 마셨다는 등 터무니없는 가짜뉴스가 시중에 떠돌았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런 거짓말을 누가 믿겠는가 해서 대응하지 않았으나 일부 정치인들이 면책특권에 기대어 정치적으로 악용하고 있어 더 이상 묵과할 수 없다"면서 "최초 거짓말을 유포한 '진성호 방송'과 '신의 한수'에 대해 청와대는 취할 수 있는 모든 조치로 강력히 대응할 것"이라고 분노했다.

일부 보수 성향 정치인이 문 대통령의 '5시간 행적'을 공개하라는 것에 대한 경고성 발언이 눈길을 끌었다. 청와대를 향한 부정적 여론 형성에 대해 경계하는 것처럼 보였다. 특히 유튜버인 '진성호 방송'과 '신의 한수'에 강력 조치하겠다는 청와대의 방침은 낯설었다. 그간 문 대통령을 비난하는 동영상은 넘쳐나지만, 청와대는 별다른 대응을 하지 않아서다.

이들이 주장하는 요지를 살펴 보자. 대체로 문 대통령이 지난 4일 오후 7시께 신문의 날 행사를 마치고 언론사 사주들과 술을 마시다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난 강원 대형 산불을 약 5시간 동안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또 문 대통령이 보톡스를 맞느라 산불 진화 지시가 늦었다고 주장했다.

지난 4일 강원도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산불이 발생했을 당시 문 대통령의 5시간 행방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유튜브 방송 썸네일. /유튜브 갈무리
지난 4일 강원도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산불이 발생했을 당시 문 대통령의 5시간 행방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유튜브 방송 썸네일. /유튜브 갈무리

강원 고성의 산불은 오후 7시 17분께 발생했다. 하지만 청와대 풀기자단 취재 내용에 따르면 신문의 날 행사는 산불이 일어나기 전인 오후 6시 37분 참석자들에게 인사한 뒤 행사장을 떠났다. 더구나 신문의 날 행사는 청와대와 차로 5분 거리인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진행됐다. 청와대는 그 이후 문 대통령이 관저로 복귀했다고 밝혔다. 그렇다면 문 대통령이 언론사 사장과 술자리를 가졌다는 유튜버들의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 이 설명을 들으면 청와대가 일부 유튜버의 주장을 가짜뉴스로 규정한 것이 이해된다.

"문 대통령은 강원 산불 당일 술을 마시지 않았다"는 식으로 해명하는 선에서 그치지 않았다는 점에서 청와대의 심기가 어느 정도 불편했는지 짐작된다. 청와대로서는 억울할 만하다. 문재인 정부가 행정력을 총동원해서 위기 대응 능력을 발휘했다는 긍정적 평가가 나오는 상황에서 문 대통령의 당일 행적에 대한 왜곡된 주장을 국민이 사실로 받아들이면 낭패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아쉬운 점은 청와대가 문 대통령이 산불 진압에 정부가 총력 대응하라는 내용의 긴급 지시를 내린 오후 11시 15분 전까지는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아직 밝히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런데 문 대통령의 '5시간 행적'에 대한 의문 제기에 대해서는 즉각 반응했다. 이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정부를 향한 가짜뉴스에 경종을 울리기 위해서? 아무래도 '촛불 민심'으로 탄생한 정당성 훼손을 우려한 듯하다.

문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 "대통령의 24시간을 공개하겠다"고 했다. 그리고 취임 첫날이었던 2017년 5월 10일 모든 일정을 페이스북에 공개했다. 오전 8시 10분 군 통수권 최초행사인 합참의장 통화를 비롯해 주민환송행사와 국회의장 환담, 취임식 등 구체적인 시간과 장소까지 기재했다. 보안 논란이 있었긴 하지만 말이다.

이번 사태를 보면서 청와대가 모든 의혹의 여지를 말끔히 없애는 자세한 근거를 제시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문 대통령이 지난 1월 8일 올해 첫 국무회의에서 "정부 여당은 가짜 뉴스를 근절하기 위해 정부의 정책을 왜곡하고 폄훼하는 가짜 뉴스 등의 허위정보가 제기됐을 때 초기부터 국민께 적극 설명해 오해를 풀어야 한다"고 했다. 무언가 해명할 때는 근거가 뒷받침돼야 오해가 깨끗이 불식된다. 그렇지 않으면 다시 몇년 뒤 "문재인 대통령은 강원 산불 때 5시간 동안 무엇을 했나요?"라고 누군가 묻지 않을까.

shincombi.2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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