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F현장] 얼어붙은 삼청동 '골목 상권'…내몰린 자영업자 "죽겠다"
입력: 2019.04.01 05:00 / 수정: 2019.04.01 05:00
청와대 앞 서울 종로구 삼청동 거리에는 가게를 내놓은 자영업자들이 부쩍 늘었다. 청와대 인근 삼청동 거리의 상권이 얼어붙었다는 게 상인들의 공통된 얘기다. /삼청동=신진환 기자.
청와대 앞 서울 종로구 삼청동 거리에는 가게를 내놓은 자영업자들이 부쩍 늘었다. 청와대 인근 삼청동 거리의 상권이 얼어붙었다는 게 상인들의 공통된 얘기다. /삼청동=신진환 기자.

매출 급감에 떠나는 상인들…"주말도 장사 잘 안돼"

[더팩트ㅣ삼청동=신진환 기자] "액세서리 1개 팔았습니다."

봄을 재촉하는 비가 그친 뒤 강한 바람이 불었던 지난달 21일 오후 서울 종로구 삼청동 문화거리. 빨간 외벽이 눈길을 끄는 그리 크지 않은 규모의 가게에서 공예품과 액세서리를 파는 이모(43) 씨는 이같이 말하며 멋쩍게 웃었다. 가게 벽마다 형형색색의 빛을 뽐내는 액세서리와 다양한 목공인형들이 전시돼 있었다.

그러나 판매 실적은 극히 저조하다고 이 씨는 하소연했다. "하루 매출이 보통 5~10만 원, 정말 많은 날에는 15만 원 정도"라며 "가게 운영비, 임대료를 빼면 매달 적자"라고 푸념했다. 그의 아내가 주로 가게를 보고, 인건비를 줄이기 위해 가끔 이 씨가 가게에 나온다고 했다.

매달 적자를 보면서 왜 가게를 운영하는지 물었다. 이 씨는 "불과 몇 년 전만 하더라도 내·외국인 관광객 유입이 많아 장사가 잘됐고 그만큼 돈을 많이 벌었다"면서 "지금은 벌어둔 돈을 까먹고 있다"고 말했다. 의자에 앉았던 몸을 이내 곧추세운 그는 "이런 경기는 처음이다. 지난해부터 매출이 -95% 정도 떨어진 것 같다"면서 "이번 정부 들어서 많이 힘들다. 광화문에서 집회가 열리면 삼청동으로 들어오는 길이 막힌다. 지난 3.1절에도 이틀간 차량 통행을 금지해서 사람들이 삼청동으로 들어올 수가 없었다"고 토로했다.

삼청동 거리는 과거와 달리 무척이나 한산했다. 평일 낮이라는 점과 꽃샘추위가 찾아왔다는 점을 고려하더라도 유동인구는 적었다. /삼청동=신진환 기자
삼청동 거리는 과거와 달리 무척이나 한산했다. 평일 낮이라는 점과 꽃샘추위가 찾아왔다는 점을 고려하더라도 유동인구는 적었다. /삼청동=신진환 기자

청와대 인근 삼청동 상권이 얼어붙었다. 청와대 춘추관과 한국금융연수원 방면으로 나뉘는 길 초입부터 삼청동 청사까지 900여m의 중심 거리에 있는 몇몇 가게는 공실이거나 운영을 하더라도 '임대'를 써 붙여놨다. 한 가게는 아예 권리금을 받지 않겠다고 써놓은 곳도 있었다. 경복궁, 국립현대미술관과 가까운 삼청동 거리는 북촌한옥마을 등이 유명해 관광 상권이 발달했지만, 지금은 아닌듯싶었다.

삼청동 한 골목에서 부동산 중개업을 하는 A 공인중개사는 "최근 들어 부쩍 가게를 내놓는 이들이 많다"면서 "임대료 등 시세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말할 수는 없지만, 한 3년 전에 비해서 3분의 1정도 떨어졌다"고 귀띔했다. 그러면서 2016년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가 결정된 이후 중국인 관광객의 발길이 끊기면서 상권이 위축되기 시작했다고 했다.

거리는 한산했다. 평일 낮시간대라는 점과 꽃샘추위가 찾아왔다는 점을 고려하더라도, 삼청동 문화거리와 카페골목을 찾은 이는 보기 어려웠다. 현대와 고전의 정취를 고스란히 느낄 수 있어 내외국인 관광객이 많이 찾는 곳으로 유명한 곳임이 무색하게 느껴졌다. 물론 우리나라 경제 사정이 좋지 않다. 하지만 '골목경제'는 더 침체되고 상황이 더 나빠 보였다.

의류, 음식점, 카페 등 직종을 불문하고 취재진이 만난 삼청동 거리 상인들은 매출이 급격히 줄어들었다고 입을 모았다. 외형에서 멋스러운 고전미가 느껴지는 한 카페를 운영하는 김모(51) 씨는 "평일, 주말에도 사람들이 발길이 거의 끊겨 죽을 지경"이라며 "울며 겨자먹기다. 다른 지역이나 상권도 마찬가지 일 것이기 때문에 이러지도 저러자도 못하고 근근히 버티고 있다"고 힘들어했다.

삼청동에서 만난 의류 판매 종업원 최모(58·여) 씨가 보여준 매출 장부. 이날 오후까지 단 한건의 매출도 올리지 못했다. /삼청동=신진환 기자
삼청동에서 만난 의류 판매 종업원 최모(58·여) 씨가 보여준 매출 장부. 이날 오후까지 단 한건의 매출도 올리지 못했다. /삼청동=신진환 기자

한 의류 판매 종업원 최모(58·여) 씨가 들려준 사연은 삼청동 거리의 현주소를 피부로 느끼게 했다. 최 씨는 14년째 옷가게에서 근무하고 있다고 한다.

"오늘 10년이 넘도록 함께 일한 사장님에게 전화를 걸어 스스로 나간다고 했다. 워낙 장사가 안되기 때문에 인건비라도 줄여야 하지 않겠냐며 퇴직 의사를 밝혔다. 그런데 사장님은 저랑 아주 오랫동안 일했기 때문에 조금만 더 참아보자며 나를 못 내치더라. 내년 5월 임대차 계약이 만료되는데, 사장님이 그때 (폐업 여부를) 결정하시지 않겠나."

최 씨는 가게 사장이 육아 때문에 가게 운영을 혼자 할 수 없다고 했다. 월급도 밀려서 제때 못 받고 있지만, 빚을 내서 임금을 주는 사장과 그동안 쌓았던 정, 가게를 다시 일으켜보고 싶은 마음에 떠나지 못하고 있다면서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대뜸 매출 장부를 꺼내 보여줬다. "오늘 옷을 하나도 팔지 못했다. 어제는 5벌, 엊그제는 3벌…." 또 의류 거래 장부를 펼치면서 "이게 다 밀린 외상값이다. 지난해 12월 중순부터 지금까지 거래처에 외상을 갚지 못하고 있다"면서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이윽고 최 씨는 "무언가 너무 잘못 돼가고 있다. 죽겠다"면서 자영업자와 소상공인을 살리겠다는 문재인 정부를 비판했다.

문 대통령은 지난달 14일 역대 처음으로 자영업자와 소상공인을 청와대로 초청해 애로사항을 청취했다. 당시 문 대통령은 "올해는 자영업의 형편이 나아지는 원년이 되었으면 한다"면서 "여러분의 오늘이 힘들어도 내일에는 희망을 가질 수 있도록 정부가 최선을 다하겠다"고 약속했다.

대통령의 약속을 자영업자가 체감할 수 있는 날은 언제쯤 올까. 자연에 생기를 불어넣어줄 단비가 내렸건만, 이날 청와대와 가까운 삼청동 거리엔 찬바람만 불었다.

shincombi@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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