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철영의 정사신] 이언주에게 영화 '그린 북'을 추천한다
입력: 2019.03.29 05:00 / 수정: 2019.03.29 05:00
이언주 바른미래당 의원은 손학규 당 대표를 향해 찌질하다고 발언에 윤리위원회에 회부됐다. 여의도 정가에서는 이 의원의 강성 발언 등을 자유한국당행을 염두한 것으로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더팩트DB
이언주 바른미래당 의원은 손학규 당 대표를 향해 "찌질하다"고 발언에 윤리위원회에 회부됐다. 여의도 정가에서는 이 의원의 강성 발언 등을 자유한국당행을 염두한 것으로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더팩트DB

'품위' 따지는 국회와 이언주 의원의 '찌질리즘'

[더팩트ㅣ이철영 기자] 언젠가 한 친구가 말했다. "선배고 후배고 내가 좋은 회사에 다녀야 후배고 선배인 것 같다." 한국 사회의 구조적 현실을 표현한 것 같아 착잡함을 느낀 바 있다.

필자 역시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술자리에서 종종 '자본주의 사회는 냉정하다'는 말을 하고는 한다. 농담이면서 진담이다. 광의적으로 보면 친구의 말과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다. 이른바 한국 사회에서는 '인맥'이라는 것이 참 중요하게 여겨진다. '맨 파워'라는 긍정적 평가를 한다.

인맥은 어느 직업에서나 활용된다. 같은 직장에 다니는 경우에는 '어떤 줄을 잡았느냐'에 따라 승자와 패자가 갈리기도 한다. 드라마, 영화에서나 그럴 것 같지만, 현실도 크게 다르지 않다.

'내가 잡은 이 줄은 동아줄? 썩은 줄?' 살아남기 위해 나름 머리를 굴리고 있지는 않은가. 정치권도 예외는 아니다. 어느 계파에 속해있느냐에 따라 국회의원을 더 할 수도 아니면 국회를 떠날 수도 있다. 정치에서 주류와 비주류의 영향력은 하늘과 땅 차이이다. 자신의 안위를 위해 옮겨 다니는 정치인들을 향해 '철새'라는 말이 나온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철새 정치인은 어떤 비난에도 태연해야 한다. 국회의원 배지를 한 번 더 달 수 있다면 간이고 쓸개고 무슨 상관인가. 그렇게라도 살아남으면 그만이다. 그래서 당적을 옮기기 위해 내부총질에 매진하고 가고자 하는 당을 위해서는 과거 자신의 발언을 뒤집어 버리기도 한다. 여기엔 최소한의 의리나 정치적 소신, 말이나 행동의 품위라고는 찾아볼 수 없다.

국회의원들은 말끝마다 품위를 지키자를 하지만, 정작 그들은 막말과 거친 행동을 일삼는 구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 12일 나경원 한국당 원내대표의 교섭단체 연설 중 여야의 충돌 모습. /이새롬 기자
국회의원들은 말끝마다 '품위를 지키자'를 하지만, 정작 그들은 막말과 거친 행동을 일삼는 구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 12일 나경원 한국당 원내대표의 교섭단체 연설 중 여야의 충돌 모습. /이새롬 기자

자기정치를 위해 소속 정당에 반기를 들거나 당 대표를 비판하기도 한다. 마치 당을 떠날 명분을 만들기라는 지적이 나오지만, 아랑곳없다. 최근 정치권에선 이언주 바른미래당 의원이 대표적으로 꼽힌다. 민주당에서 정치를 시작해 탈당 후 국민의당에 입당했다. 현재는 국민의당과 바른정당이 통합한 바른미래당에 적을 두고 있다. 그러나 현재의 당세가 미약하다고 판단했는지 자당보다는 자유한국당과 궤를 같이하는 모양새이다.

정가에서는 이미 오래전부터 이 의원의 한국당행을 기정사실로 보고 있다. 이 의원의 "박정희 천재"와 같은 발언이나 한국당 의원들과의 교류 등등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사실 이 의원은 이 외에도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을 비판하는 것은 물론, 바른미래당까지 싸잡아 비판 중이다. 한국당 입당을 위한 명분 쌓기라는 해석이 지배적인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 의원의 발언 강도는 날이 갈수록 거세지고 있다. 최근엔 소속 정당 손학규 대표를 향해 "창원에서 숙식하는 것도 정말 찌질하다. 솔직히 말해 정당이란 건 없어도 있는 척 해야 한다. 그런데 아무것도 없을 때 '나 살려달라' 이러면 짜증 난다"는 인신공격성 발언으로 논란의 중심에 섰다.

발언의 저의는 민주당과 정의당이 후보 단일화를 해 승산이 없으니 한국당과 단일화해 승리하자는 것이 아닐까 추측해본다. 이 의원은 발언 논란으로 26일 당 윤리위원회에 회부됐다. 바른미래당 원외위원장들은 "(한국당으로) 가려면 빨리 가시라"며 탈당을 촉구하기도 했다.

정치인이 자신의 정치적 소신을 밝히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정치인의 역할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고희(70)를 넘긴 손 대표에게 "찌질하다"고 한 발언에선 최소한의 기품이나 품위가 느껴지지 않는다. 역지사지로 이 의원을 향해 누가 같은 말을 했다면 어땠을까. 아무리 정치가 혼탁해도 최소한의 예의는 지킬 필요가 있다.

1960년대 미국 사회의 유색인종 차별을 그린 영화 <그린 북>에서 셜리 박사 흑인으로 차별을 받지만, 언제나 품위를 지키며 현실을 이겨내는 모습을 보이며 큰 울림을 주며 지난 2월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을 받았다. /영화 <그린 북> 스틸 컷
1960년대 미국 사회의 유색인종 차별을 그린 영화 <그린 북>에서 셜리 박사 흑인으로 차별을 받지만, 언제나 품위를 지키며 현실을 이겨내는 모습을 보이며 큰 울림을 주며 지난 2월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을 받았다. /영화 <그린 북> 스틸 컷

어떤 상황에서도 품위를 지키며 현실을 마주하고 돌파하는 삶을 살았던 이를 그린 좋은 영화가 있다. 유색인종 차별이 극에 달했던 1960년대 미국 사회에서 흑인 피아니스트와 백인 운전사의 여정을 그린 <그린 북>이다.

영화는 이탈리아 출신 백인 토니가 흑인 피아니스트 셜리 박사의 공연을 위해 동행하면서 시작된다. 토니는 평소 가졌던 유색인종에 대한 편견을 셜리 박사를 통해 바꾸게 된다. 이 영화는 유색인종 시대의 편견과 차별의 문제를 넘어 흑인으로서 백인 중심 사회에서 자신의 신념을 끝까지 지킨 이의 삶을 담고 있다.

불같은 성격의 토니와 매사 품위를 지키며 불합리에 대항하는 셜리 박사의 상반된 모습이 인상적이다. 셜리 박사를 무시하고 비아냥거린 경찰을 향해 주먹을 날린 토니의 행동으로 두 사람은 유치장에 갇히게 된다. 토니는 계속해서 흥분하지만, 셜리 박사는 끝까지 품위를 지키며 백인 경찰들에게 대항한다.

말끝마다 국회의원의 '품위'를 지키자며 막말 무성한 정치권이 참고할 만한 영화가 아닐까 싶다. 이젠 거친 말과 과격한 행동만이 자신들의 뜻을 관철시킬 수 있다는 관행을 끝낼 때도 됐다. 정답은 아니지만, 최근 발언 논란을 빚고 있는 이 의원이나 국회의원들이 셜리 박사가 토니에게 했던 말의 의미를 되새겨 보길 바라며 전해본다.

"자신의 품위를 지킬 경우에만 이길 수 있는 겁니다. 품위가 항상 승리하는 겁니다."

cuba20@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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