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경진 승국물산 대표의 대북사업 시작은 마치 영화 '공작'과 유사했다. 중국법인을 만들어 북한에 진출했지만, 정부의 5.24조치로 모든 것을 잃었다고 한다. 대북사업 진출 과정과 이후 통일부의 보상 문제를 지적하는 정 대표. /송파구 오금동=이새롬 기자 |
제2차 북미정상회담이 가시적 성과 없이 마무리됐다. 문재인 대통령은 회담 결렬 이후에도 판문점 선언과 평양 공동선언에서 합의한 남북협력 사업들을 속도감 있게 추진할 것을 당부했다. 특히 문재인 정부는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 재개 등 남북경제 협력 재개에 공을 들이는 분위기다. 남북경협은 제대로 이행될 수 있을까. 속도감 있는 진행을 위해선 지난 대북사업의 공과를 돌아볼 필요가 있다. 1세대 대북사업 투자자들은 2010년 정부의 5·24조치로 모든 것을 북한에 두고 나와야 했다. 이후 보상 문제를 놓고 통일부와 갈등을 겪었다. 과거의 실패에서 교훈을 얻지 못하면 역사는 반복된다. 남북경협에 대한 논의가 다시 시작되는 시기, 과거의 실패를 되돌아봐야 하는 이유다. <더팩트>는 김대중·노무현 정부 시절 활동했던 1세대 남북경협 사업가들을 차례로 만났다. <더팩트>는 세 명의 1세대 대북사업가 인터뷰를 통해 그동안 남북경협의 한계와 문제점을 물었고, 정부의 정책적 보완점 등은 무엇인지 짚어보았다. <편집자 주>
중국서 북한 진출한 정경진 승국물산 대표…공장 몰수에 '이자 갚기' 시름
[더팩트ㅣ송파구오금동=박재우 기자] "북측이 사업을 진행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싶다고 했다."
배우 황정민, 이성민 주연의 영화 '공작'의 한 장면 같았다. 1993년을 배경으로 한 이 영화에서는 중국 사업가로 위장한 대북공작원 '흑금성'이 북한을 끌어들여 북한과의 합작 광고 프로젝트를 따내게 된다. 결국 그는 영변까지 들어가 북한이 핵실험을 하고 있다는 증거를 캐내게 된다.
대북공작원이라는 설정만 빼면 정경진 승국물산 대표가 대북사업을 시작한 과정은 이 영화 이야기와 닮았다. 정 대표는 중국에서 사업을 하다 우연한 기회로 대북사업을 시작했다. 영화에서는 주인공 흑금성이 북한을 끌어들이기 위해 중국에서 사업을 크게 벌였지만, 정 대표는 사업이 번창하자 동포를 돕기 위한 장학사업에 뛰어들었다. 그 장학사업이 결국 북한에도 흘러들어가게 됐고 대북 사업을 시작하는 계기가 됐다.
정 대표는 무관세, 값싼 노동력 등 북한 땅에서 기회를 보고 사업가적인 기질을 발휘해서 중국에서 운영했던 공장 7곳을 1곳만 남기고 북한에 모두 '올인' 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의 5.24조치로 사업을 계속 진행할 수 없었다. <더팩트>는 지난 13일 서울 송파구 오금동에서 정 대표를 만나 영화 같은 그의 사업 스토리를 들었다.
그는 이자 갚기에 허덕이고 있다고 했다. 정 대표는 "통일부는 제가 해외법인이기 때문에 보상지원이 안 된다고 했다"며 "그렇다면 통일부 도움을 받고 간 것도 아닌데 왜 5.24 제재는 같이 받았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억울함을 토로했다.
2000년대 당시 현지 동포 신문 '흑룡강 신문'에 공개된 정경진 승국물산 대표의 기사 모습. /정경진 대표 제공 |
정 대표는 초창기 중국 진출 사업가다. 1990년 중국에서 사업을 시작했다. 당시 중국 7곳에서 공장을 운영했고, 직원은 3000여 명이나 되는 성공한 기업인이었다. 현지 신문에도 소개될 정도로 승승장구했다. 사업이 잘 되자 중국에 있는 동포들을 돕기 위해 1999년 '승국장학재단'을 설립했다. 이 재단 설립이 북한 진출 계기가 될지는 꿈에도 몰랐다.
그는 우연한 기회에 북한과 왕래하는 중국 업체를 알게 됐다. 그 업체가 북한 장학 지원사업을 시작하려다가 이른바 '펑크'가 났는데 '승국장학재단'에 의뢰가 왔다. 정 대표는 당시 중국 측에서 "중국기업들도 하는데 북한도 지원해주면 어떠냐"고 했다. 그래서 결국 1년간 무상으로 지원했더니 북한 측에서 중국을 통해 만나보고 싶다는 연락이 왔다. 그래서 북경에 있는 북한 대표부로 가서 허소림 대표부 단장을 만났다. 그는 "정 대표에게 꼭 보답하고 싶다"고 했다.
정 대표는 '정말 아무 사심 없이 장학사업을 해줬다'며 보답이 필요없다고 했지만, 북측은 꼭 도움을 주고 싶다고 했다. 그 뒤에 북한 국경과 가까운 단동 북한 대표부를 소개받았다. 북측은 승국물산이 북한에 사업을 진행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고 싶다고 했고, 정 대표는 나진에서 시장조사를 하기 시작했다.
한국 국적으로 직접 북에 갈 수 없었던 그는 중국 직원을 북한에 파견했다. 그는 "막상 시장조사를 해보니 당시 북한은 아무것도 없는 허허벌판이었다"며 "그래도 공장을 한번 만들어보겠다는 마음을 먹고 중국 공장 7개 중 하나를 그만두고 그 비용을 들고 북한으로 진출했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정경진 승국물산 대표는 2002년에 북한 나진경제특구에 대한민국 최초로 농산물 가공공장을 만들었다. 기자의 질문에 답하는 정 대표. /이새롬 기자 |
그렇게 정 대표는 2002년에 북한 나진경제특구에 대한민국 최초로 농산물 가공공장을 만들었다. 당시 북한에 들어가서 직접 계약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기 때문에 중국 직원 이름으로 계약을 했다. 북한 단동 대표부에는 정 대표가 직접 가서 사인을 했고, 북한에서 계약은 중국인 직원이 진행했다.
공장을 설립해 생산한 농산물을 '명 해운'이라는 중국 배편을 통해 북한 나진항에서 대한민국으로 옮겼다. 평양산 원산지 증명서를 떼어 '두릅'(독특한 향이 나는 산나물)을 부산으로 들여왔다.
처음에는 사업이 생각만큼 잘 되지 않았지만 2~3년 우여곡절을 겪은 후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2003년쯤 원산에 두릅 가공 공장, 2004년 사리원(개성공단 위쪽 지역)에서 통조림 공장을 설립하면서 사업을 확장하기 시작했다.
그는 "원산지를 '북한'으로 한 물건은 대한민국에서 만든 제품과 같은 것으로 인정받는다. 따라서 관세를 내지 않는다"며 "중국에서 상품을 만들어서 오면 관세가 많이 붙는다. 북한산은 부과세만 붙고 관세가 전혀 붙지 않는다"고 대북사업의 장점을 언급했다. 또한, 당시 한 달 임금 35달러 수준의 값싸고 질 좋은 노동력을 자랑했다고 한다.
사업이 승승장구하면서 정 대표는 사업가 기질을 발휘했다. 한국에서 대기업들과 계약하기로 했고, 중국에 있는 공장 7곳 중 한곳만 남겨두고 북한으로 사업을 집중하는 소위 '몰빵'을 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정 대표는 장밋빛 미래를 그렸다.
정경진 승국물산 대표는 중국에 있던 7개의 공장을 접고 1곳만을 남긴 뒤 북한에 올인했다. 정 대표가 공개한 대북 사업 당시의 북한 측 문서. /이새롬 기자 |
2000년 대 초 남북관계가 풀리면서 중국이 아닌 북한 배를 직접 부산항으로 들어올 수 있게 됐다. 나진에서 부산항으로 6차례 가까이 물자가 들어왔다. 하지만 이명박 정권은 천안함 사건에 따른 5.24조치로 모든 대북사업을 중단시켰다. 정 대표는 답답한 마음에 통일부에 문의했고 "조만간 제재를 풀어 줄 테니 기다려라"는 답이 돌아왔다. 그렇게 10년이 지났다.
정 대표는 그동안 만났던 1세대 대북사업가와 다르다. 그는 다른 남북교역 사업과 달리 중국 법인을 설립하고, 대리인을 통한 사업이었기 때문에 5.24조치에 해당되지 않는 것이 정상이다. 그 역시 이 점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는 "물건 한 톨이라도 들고 나오면 법에 접촉돼서 안 된다고 했다"며 "중국 법인을 통해 진출했던 것이고 통일부에 도움을 받고 간 것도 아닌데 왜 제재는 같이 받았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토로했다.
정부의 5.24조치로 북한에 있는 그의 공장은 몰수됐다. 정 대표는 "우리가 계약 이행을 못했기 때문에 현재는 북한 정부가 몰수한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그 당시 3개 공장에 투자한 원료 값만 환산해도 136억 원이다. 그 당시 북한 사업을 포기했으면 됐는데, 사업 특성상 원자재를 재원화하다 보니까 많이 손해를 봤다"고 설명했다.
정경진 승국물산 대표는 현재 상황에 대해 "이자때문에 코피가 터지고 있다"며 불만을 토로했다. 정 대표가 사리원에 있었던 통조림 공장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이새롬 기자 |
정 대표도 정권교체 이후 정부가 추진한 남북경협 피해자 지원을 신청했다. 그러나 탈락이었다. 통일부에 이유를 물어보니 '해외법인'이라서 불가하다고 했다. 통일부 남북경협과는 <더팩트>와 통화에서 정 대표 사례와 관련해 "원칙적으로 해외법인은 우리 법이 적용되는 국내기업이 아니다"며 "중국법인이라면 중국 법 적용을 받아야한다"고 답했다. 그렇다면 '해외법인은 5.24조치 제재 대상에서 제외돼야 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그 여파는 있겠지만 5.24 조치 때문에 그 기업이 제재를 받았는지는 모르겠다"며 "한국정부가 중국 법인을 지원할 수는 없는 노릇"이라고 재차 강조했다.
통일부의 답변은 정 대표를 더 답답하게 할 뿐이다. 그는 "승국물산은 해외 법인이라고 해도 한국 사람인 내가 100% 지분 갖고 있는 독자 기업"이라며 "해외 법인이라고 지원을 못 해준다면 우리에게 5.24 제재 조치도 가하지 말았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현재 정 대표의 상황은 악화일로다. 그는 "이자에 코피가 터지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그는 "대출 때문에 국내 공장까지 문을 닫아 행정 소송을 준비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통일부, 남북교류협회를 행정심판원에 제소하기로 했다. 그러면서 서류 뭉치를 보여주기도 했다.
정 대표는 북미 관계가 잘 풀리면 다시 교역을 할 의사가 있느냐는 질문에 "의향은 있다"면서도 정부가 자국민을 보호해주지 못 한다면 다시 시작할 의미가 없지 않겠느냐"고 꼬집었다.
아울러 "개성공단은 정부 관할 하에 두고 보호할 수 있는 상황이지만, 우리같은 내륙 기업들은 북한 전역을 상대로 움직이기 때문에 정부 관할 안으로 들어갈 수가 없다"며 "우리 같은 내륙 기업들도 정부가 보호해주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그래야 북한 인민들도 우리를 통해 개방의 혜택을 누릴 수 있지 않겠느냐"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