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F기획-갈등의 시대③] 영·호남서 수도권·지역 갈등으로…'공존의 길' 없나
입력: 2019.03.20 05:00 / 수정: 2019.03.20 05:00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 이후 지방의 활성화를 위해 정부가 뒷받침하겠다는 뜻을 밝혀 왔다. 국토 불균형을 해소하고 지역 경제를 활성화하겠다는 취지다. 하지만 수도권 역차별 논란이 만만치 않다. 수도권과 비수도권 갈등 양상이 보이고 있다. /청와대 제공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 이후 지방의 활성화를 위해 정부가 뒷받침하겠다는 뜻을 밝혀 왔다. 국토 불균형을 해소하고 지역 경제를 활성화하겠다는 취지다. 하지만 수도권 역차별 논란이 만만치 않다. 수도권과 비수도권 갈등 양상이 보이고 있다. /청와대 제공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인 우리나라는 한반도 허리만 끊어진 것이 아닌 듯하다. 여러 갈등이 심화하면서 사회가 다방면으로 갈라졌기 때문이다. 안타깝게도 '갈등의 시대'로 불려도 어색함이 없다. 왜 우리는 불신과 혐오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지 생각해 볼 때다. 해묵은 여러 갈등은 문재인 정부가 해결해야 할 과제다. 문재인 대통령의 '포용국가' 구상은 사회적 현상으로 나타나는 여러 양극화 문제 해결과도 맥이 닿아 있어서다. 젠더 갈등, 이념 갈등, 지역 갈등의 문제점과 정부의 개선 방향을 짚어본다. <편집자주>

예타 면제·지역인재 채용제 갈등 여전…"지방 쇠퇴하면 수도권도 영향"

[더팩트ㅣ신진환 기자] "정부가 목표로 하는 '혁신적 포용국가'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지역이 잘 살아야 한다. 정부는 지역경제에 활력을 되찾는 일에 역점을 두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달 8일 청와대에서 열린 전국 시장·군수·구청장 초청 오찬간담회에서 한 말이다. 국토 불균형을 해소하기 위해 지방 살리기에 적극 나서겠다는 문 대통령의 강한 의지가 담겨 있다. 모두가 잘사는, 혁신적 포용국가는 지역이 고르게 발전하는 나라와 맥이 닿아 있다. 이를 위해 정부는 지역이 가진 잠재력을 극대화하며, 주민자치를 확대하고 지방분권을 강화하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수도권 인구는 2551만9000명(2017년 11월 기준)으로 총 인구 5142만3000명의 49.6%에 이른다. 수도권은 교육·문화시설·양질의 일자리·교통 등의 인프라가 잘 갖춰져 있는 반면 지방은 열악해 비수도권 인구가 수도권으로 파고든다. 지방은 초고령화와 저출산의 문제가 겹치고 지역 경제도 침체돼 저성장의 늪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다.

비수도권 인구가 수도권으로 파고들고 있다. 지방은 인구 이탈로 지역 근간이 흔들릴 수밖에 없다. 특히 지방의 경우 초고령화와 저출산의 문제가 겹쳐 미래가 더욱 암담하다.(사진은 기사 내용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음)/이선화 기자
비수도권 인구가 수도권으로 파고들고 있다. 지방은 인구 이탈로 지역 근간이 흔들릴 수밖에 없다. 특히 지방의 경우 초고령화와 저출산의 문제가 겹쳐 미래가 더욱 암담하다.(사진은 기사 내용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음)/이선화 기자

설상가상 지방이 붕괴할 수도 있다는 전망이 나왔다. 한국고용정보원이 지난해 8월 발표한 저출산 고령화에 따른 인구감소로 나타날 수 있는 지방소멸 위험도를 분석한 보고서에 따르면, 전국 228개 시군구 중 소멸위험지역은 2013년 75개(32.9%)에서 2018년 89개(39%)로 증가했다. 전국 3463개 읍면동 가운데 소멸 위험에 처한 지역 수도 2013년 1229개(35.5%)에서 2018년 1503개(43.4%)로 5년 사이에 274개(7.9%포인트)가 늘었다. 한국고용정보원은 "가임여성인구 수가 고령자 수의 절반이 안 되는 지역은 저출산 고령화로 인한 인구감소 탓에 공동체가 붕괴돼 사라질 수 있다는 뜻"이라고 했다.

지역균형발전이 없다면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격차는 더 벌어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지난 8일 발표된 국회미래연구원의 <미래 시나리오 및 정책변수 발굴>연구의 13대 분야 중 '정주여건' 분야 연구 결과에 따르면, 2050년에도 국내 인구의 절반은 수도권에 집중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2030년 이후 수도권, 대도시와 지방, 중소도시간의 인구와 일자리 격차는 더 심해지면서 수도권-지방의 정주여건 양극화는 더욱 심해질 전망이다.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은 교육·문화시설, 교통, 양질의 일자리 등의 인프라가 지방보다 더 잘 갖춰졌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동률 기자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은 교육·문화시설, 교통, 양질의 일자리 등의 인프라가 지방보다 더 잘 갖춰졌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동률 기자

◆ 文정부 '지역균형발전' 추진 속 '차별' 잡음

정부는 수도권 편중 현상을 해소하고 지방의 생존권을 보장하기 위한 자치분권을 추진하고 있다. 중앙과 지방이 동반자적 관계에서 자치권을 실질 확대하고, 지역 주도 성장을 촉진해 국가발전을 선도하겠다는 취지로 지난해 9월 '자치분권 종합계획'을 발표한 바 있다. 국가균형발전과 지역 혁신성장을 위해 지자체의 자율성을 최대한 보장하겠다는 방침을 밝히기도 했다.

또, 기획재정부는 지난 1월 29일에는 대형 SOC(사회간접자본) 중심의 R&D 투자, 지역 전략산업 육성, 도로·철도 인프라 확충 등에 24조1000억 원을 투입하겠다는 '국가균형발전 프로젝트' 예비타당성(예타) 조사 면제 사업도 발표했다.

기재부는 "상대적으로 인구수가 적고 인프라가 취약한 비수도권은 예비타당성 조사 통과가 어려워 새로운 대규모 프로젝트 추진이 오히려 늦어지고 사람이 떠나는 악순환이 지속되고 있다"면서 "지역경제활력을 제고하고 지역의 지속가능한 성장을 뒷받침하는 한편 지역을 더 더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기 위함"이라고 추진 배경을 설명했다.

이 과정에서 수도권 역차별 논란이 생겨났다. 선정 과정에서 고배를 마신 지역에서 정부가 수도권을 역차별했다고 반발한 것이다. 수도권광역급행철도(GTX) B노선 사업과 신분당선 연장사업을 추진했던 인천과 수원이 대표적이다. 특히 경기도와 수원시는 정부의 예타 발표 이후 성명을 통해 "경기도가 수도권이라는 이유로 역차별받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고 공식 항의했다. 예타 면제 대상 사업에 빠진 지역 주민들도 공정성과 형평성을 문제 삼으며 정부를 압박했다.

지난 1월 발표된 예비타당성 면제 사업 선정 여부에 따라 수도권과 지역 간 희비가 갈렸다. 전북 전주시 전북도청 공연장 건물에 예비타당성 면제를 환영하는 현수막이 걸려 있다. /뉴시스
지난 1월 발표된 예비타당성 면제 사업 선정 여부에 따라 수도권과 지역 간 희비가 갈렸다. 전북 전주시 전북도청 공연장 건물에 예비타당성 면제를 환영하는 현수막이 걸려 있다. /뉴시스

정부 발표 뒤 한 달이 훌쩍 지났지만 수도권 역차별 논란은 계속된다. 정유섭 자유한국당 의원(인천 부평구갑)은 14일 <더팩트>와 통화에서 "예타 면제 등 모든 면에서 수도권이 역차별을 받아 시정을 주장하는 것"이라면서 "수도권에 대기업이 투자하고 새로운 제조업체가 들어올 수 있도록 한시적으로라도 수도권 규제를 풀어야 한다"고 말했다.

면제 대상 사업이 포함된 지자체와 주민들은 낙후된 지역 발전의 획기적인 계기가 될 것이라는 기대감을 나타내며 환영했다. 대규모 예타 면제로 지역 균형발전의 토대를 마련했다는 긍정적인 평가다.

박지원 민주평화당 의원(전남 목포)은 통화에서 "목포에 결정된 약 5조5000억 원 정도의 SOC사업으로 지역 숙원사업이 해결돼 (지역민들이) 문 대통령을 상당히 높이 평가하고 있다"고 말했다. 수도권 역차별 비판과 관련해선 "호남은 근본적으로 도로와 교량, 철도, 항만 인프라가 잘 안 돼 있다. 수도권은 다 돼 있지 않느냐"고 되물었다. 광주시에 사는 A(32) 씨는 "지방은 모든 면에서 수도권에 한참 못 미친다"며 "집값 상승이나 개인 편의를 위해 수도권 개발을 원하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공공기관 취업에 대해서도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갈등이 빚어지고 있다. 취업난이 심각하다 보니 취업을 해야 하는 젊은 층에서 형평성과 공정성의 문제를 제기하고 있는 것이다. /청와대 국민청원 갈무리
공공기관 '취업'에 대해서도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갈등이 빚어지고 있다. 취업난이 심각하다 보니 취업을 해야 하는 젊은 층에서 형평성과 공정성의 문제를 제기하고 있는 것이다. /청와대 국민청원 갈무리

◆ '지역인재 채용목표제'가 불러온 역차별 논란

과거 지역 갈등은 영·호남이 대표적이었지만, 국토 불균형이 심화하면서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대결 양상이 연출된다. 지역 개발 외에도 공공기관 '취업'에서도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갈등이 빚어지고 있다.

정부는 지난해부터 지역인재 채용을 실질적으로 촉진하기 위해 권고규정을 강행규정으로 강화하고 '공공기관 지역인재 채용목표제'를 시행하고 있다. 합격자 중 지역인재가 목표비율에 미달하면 선발 예정 인원을 초과해 추가 합격하는 방식이다. 5년간 단계적으로 2020년까지 채용목표 30%를 달성할 방침이다. 일단 지역인재 채용제는 연착륙한 모양새다. 국토교통부가 4일 발표한 지역인재 채용률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이전 공공기관의 신규채용 인원 6076명 중 1423명을 지역인재로 채용했다. 지역인재 채용률은 23.4%를 기록해 2018년 목표를 초과달성했다.

그런데 취업난이 심각하다 보니 수도권 젊은 층에서 불공정 문제를 제기한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공공기관 지역인재 채용과 관련한 글들이 꽤 있다. 졸업한 고등학교나 대학 소재지가 해당 지역이면 지역 인재에 해당하는데, 이는 수도권 대학 출신에게는 불공평하다는 취지다. 우대 혜택이 지방 소재 학교 출신자에게만 돌아간다는 비판이다.

지난 6일 올라온 청원글 게시자는 "출신 대학이 지방에 있다는 이유로 공공기관 채용에 우선시 된다는 것은 수도권 대학생들에게는 역차별"이라며 제도 폐지를 요청했다. 지난해 12월26일 올라온 청원글 게시자는 "오히려 지역 차별이며 그런 정책으로 지역에 정착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을지 의문"이라면서 "지역인재 의무 선발도 공공기관의 채용에 정부가 압력을 가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지역 소재 학교 출신자는 수도권과 반대 입장이다. 대전 출신인 직장인 B(30) 씨는 "수도권 소재 출신자가 제기하는 역차별 문제는 어느 정도 수긍이 되고 형평성 논란을 없애기 위한 정부 차원의 대책도 필요하다"면서도 "지방에도 서울 소재 대학 못지 않은 경쟁력을 가진 지방거점 대학 등이 있고, 다른 측면에선 수도권 명문대 엘리트 주의를 타파하는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수도권과 지방지역 간 격차를 해소하기 위해 수도권의 공공기관 추가 이전 사업이 서서히 점화되는 모양새다. 사진은 2014년 12월 전남 나주시에 본사를 이전한 한국전력공사 전경./뉴시스
수도권과 지방지역 간 격차를 해소하기 위해 수도권의 공공기관 추가 이전 사업이 서서히 점화되는 모양새다. 사진은 2014년 12월 전남 나주시에 본사를 이전한 한국전력공사 전경./뉴시스

◆ 공공기관 이전 문제도 불씨…수도권 반발 불보듯

서서히 수면 위로 떠오르는 수도권 공공기관 이전도 수도권-지역 갈등의 불씨가 될 수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최근 지역을 찾아 공공기관 추가 이전 카드와 예산 지원을 언급하고 있다. 다만, 구체적인 방안이나 로드맵은 아직 마련되지 않아 시기상조론도 제기된다. 게다가 내년 총선을 앞둔 만큼 수도권 민심을 자극할 것을 우려, 공공기관 이전 문제가 흐지부지될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지역 일자리 창출과 국토균형발전을 꾀하는 정부가 속도를 낼 가능성도 있다.

앞서 노무현 정부 때 국가균형발전특별법을 제정하고 2005년 혁신도시로 선정된 전국 10곳에 공공기관 153개를 옮긴 바 있는데, 공공기관을 떠나보낸 지역에선 인구 감소와 경기 악화 등 직격탄을 맞았다. 반대로 유치 지역에선 현대화 사업 등을 추진하면서 지역 경제를 살리는 계기가 됐다. 다만, 부동산 투기 과열 문제와 인프라 확충의 한계를 드러내면서 지역 활성화에 의문부호가 붙기도 했다.

경실련 지방자치위원회 위원인 허훈 대진대 행정학과 교수는 "지난 시기에 공공기관 이전의 효과가 그리 크지 않거나 아직 정착 되지 못한 상태에서 새로 공공기관을 이전하는 것은 부자연스럽다"고 지적했다.

세종시와 혁신도시가 아직 제대로 정착되지 못한 점도 먼저 생각해봐야 한다. 허 교수는 "국가 전체적으로 봤을 때 비교우위에 따라 어느 지역이든 다른 지역보다 더 잘할 수 있는 것을 (장려)하는 것이 좋다"며 "이것이 지방자치이고 지방분권인데 실제 진전이 부진한 점이 수도권과 지방의 갈등을 부추기는 요인 중 하나"라고 말했다.

국토균형발전은 문재인 정부가 해결해야 할 과제 중 하나다. 중앙과 지방이 고루 잘살고 만족할 만한 대책을 마련하기란 쉽지 않다. 국토 불균형을 해소하되, 그 과정에서 터져 나오는 수도권 역차별 논란을 어떻게 해소하느냐가 관건이다.

전문가들은 수도권 편중 현상을 면밀히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고 조언한다. 허 교수는 "수도권도 지역별로 균등하지 못하고 오히려 비인간적인 도시화로 생활환경 등이 나빠진 측면도 있다"며 "경기도 북부지역은 수도권이라도 상대적으로 낙후된 것처럼 수도권 내부도 복잡한 양상이 있다"고 말했다. 정부가 국토균형발전을 추진할 때 수도권이라는 이유로 무조건 배제해서는 안 된다는 취지로 읽힌다.

이상호 한국고용정보원 연구위원은 "위기 상황인 제조업은 지방에 집중되고 신첨단산업은 수도권과 대도시에 집중되면서 지역의 내생적 발전 가능성이 점점 더 침해받는다"며 "결국 지역이 쇠퇴하면 수도권도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다. 공존과 상생의 문제로 바라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shincombi@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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