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볼모로 했던 한국유치원총연합회의 '개학 연기' 투쟁이 하루 만에 막을 내렸다. 한유총이 개학 연기를 강행하겠다고 예고한 날인 4일 오전 서울 노원구의 한 유치원에서 아이들이 수업을 하고 있는 모습. /노원=이덕인 기자 |
정부, '형사고발·한유총 설립허가 취소' 초강경 대응 예고…한유총 "조건 없이 철회"
[더팩트ㅣ허주열 기자] 한국유치원총연합회(이하 한유총)의 아이를 볼모로 한 '개학 연기' 투쟁이 일일(一日)천하로 마무리됐다. 이를 불법으로 규정한 정부의 강경한 방침에 사실상 한유총이 굴복한 것이다. 교육부에 따르면 4일 한유총 소속 전국 사립유치원 중 239곳이 개학을 연기했다. 다행히 우려했던 보육대란은 일어나지 않았다. 정부가 긴급돌봄 체계를 가동해 개학을 연기한 유치원 원아들을 주변 국공립 유치원 등에 분산 수용했고, 개학을 연기한 유치원의 92%가량이 자체 돌봄을 제공했기 때문이다.
전날(3일) '폐원'까지 거론하며 강경한 투쟁을 예고했던 한유총은 이날 오전까지만 해도 입장문을 통해 "입학을 연기하는 것은 원장에게 주어진 정당한 운영권에 속하고, 시설사용료를 정부가 지불해야 한다"고 기존 주장을 되풀이했다. 이에 정부는 개원 연기 취소를 촉구하는 한편, 이를 어길 시 즉각적인 형사고발 조치에 나서겠다고 경고했다. 나아가 서울시 교육청은 '한유총 설립허가 취소' 카드까지 꺼내들었다.
자유한국당을 제외한 정치권도 정부 방침에 힘을 실었다. 홍익표 더불어민주당 수석대변인은 국회 브리핑에서 "한유총의 반교육적이고 명백한 불법 행위에 강한 유감을 표한다"며 "어떠한 경우라도 아이들을 돈벌이 수단으로 치부하는 행위는 절대로 용납돼서는 안 된다. 정부는 해당 유치원에 대해 법과 원칙에 따른 단호한 조치로 대응해야 한다"고 말했다.
홍 수석대변인은 이어 "사립유치원의 공공성 확보와 투명성 강화는 시대적 과제이며, 국민의 준엄한 요구"라며 "한국당도 더 이상 한유총을 두둔하지 말고, 개학 연기 중단 촉구 및 '유치원 3법'(유아교육법·사립학교법·학교급식법 개정안) 처리에 초당적으로 협력해주기 바란다"고 촉구했다.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4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이덕선 한국유치원총연합회 이사장에 대한 비리 수사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남윤호 기자 |
이번 사태의 발단인 유치원 3법 대표발의자 박용진 민주당 의원은 이덕선 한유총 이사장을 지목해 압박했다. 박 의원은 이날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한유총 집단 휴원 사태는 그동안 법을 엄정하게 집행하지 못한 관련 당국에도 책임이 있다"며 "이번 사태를 주도하고 있는 이 이사장은 국회와 교육당국으로부터 횡령, 세금탈루, 국감위증 등의 혐의를 지적받았고, 일부는 지난해 7월 검찰에 고발됐는데 지금까지 제대로 된 수사를 진행되지 않았다"고 철저한 수사와 엄정한 법 집행을 요구했다.
바른미래당은 정부와 한유총 모두 문제가 있다는 양비론을 주장하면서도 한유총의 개학 연기는 바람직하지 않다고, 개원 연기를 즉각 철회할 것을 주장했다. 또한 유치원 3법을 조속히 통과시킬 것을 예고했다.
김삼화 바른미래당 수석대변인은 4일 논평을 통해 "사태가 이렇게 된 데에는 한유총과 정부 모두에게 책임이 있다"며 "한유총은 개학 연기 선언을 취소하고, 유아교육에 즉시 복귀해야 한다. 정부도 강경일변도로 대화를 거부하는 것은 취할 자세가 아니다"고 강조했다.
국회 교육위원회 간사 임재훈 바른미래당 의원은 <더팩트>와 통화에서 "더 이상 아이를 볼모로 하는 투쟁은 있어선 안 된다"며 "3월 임시국회 개의에 여야가 합의한 만큼 조만간 국회가 열릴 텐데, 논란의 발단인 유치원 3법을 최우선 과제로 조속히 통과키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개원 연기 투쟁을 조건 없이 철회한다." 김철 한국유치원총연합회 정책홍보국장이 4일 오후 서울 용산구 한국유치원총연합회에서 이덕선 이사장을 대신해 '개원 연기' 철회 의사를 밝힌 입장문을 대독하고 있다. /남용희 기자 |
한유총의 우군에 가까운 행보를 보였던 한국당은 한유총과 제대로 대화를 하지 않는 정부의 태도 변화를 촉구했지만, 거센 여론과 정부의 강경한 방침을 바꾸지 못했다. 한유총은 이날 오후 이 이사장 명의의 입장문을 통해 "그동안 한유총이 전개했던 개학 연기를 조건 없이 철회하고, 5일부터 모든 유치원을 정상적으로 운영하겠다"며 "이번 개학 연기 사태로 국민께 심려를 끼쳐드려 진심으로 사과드린다. 사립유치원에 유아를 맡겨주신 학부모께도 고개 숙여 사과드린다"고 밝혔다.
한유총의 개원 연기 투쟁이 하루 만에 막을 내리며, 최장 330일이 걸리는 패스트트랙으로 넘어갔던 유치원 3법 통과 목소리는 더욱 힘을 얻게 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한편 교육부가 지난달 27일 리얼미터에 의뢰해 전국 만 19세 이상 남녀 1049명을 대상으로 여론조사를 실시한 결과(표본오차 95% 신뢰수준 ±3.0%) 유치원 공공성 강화를 위한 유치원 3법에 대한 찬성 의견은 81%로 나타났다. 또한 현 정부가 추진하는 국공립유치원 확대에 대해선 국민 86.4%가 찬성했다. 교육부는 2021년까지 국공립유치원 취원율을 40%까지 확대하기 위해 2600여 개 학급을 신·증설할 방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