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가 25일 찾은 베트남 하노이 북한 식당 '평양관' 1층 '커피점'에서 점원이 카운터에 서서 손님을 맞이하고 있다. /하노이(베트남)=이원석 기자 |
"옥류관 평양냉면 맛과 다릅니다"…북미회담 질문엔 미소만
[더팩트ㅣ하노이(베트남)=이원석 기자] 최전방 비무장지대(DMZ)에서 군 복무를 했으나 북한 사람은 망원경으로밖에 보지 못했습니다. 25일 오후 제2차 북미정상회담 취재차 베트남에 와 처음으로 북한 사람을 눈앞에서 보고 직접 대화도 해 보니 기분이 참 묘합니다. 본 것은 북한 실무진이었고, 대화한 것은 북한 식당 종업원들이었습니다.
이날 오후 8시를 넘어가자 허기가 밀려왔습니다. 하노이 시내의 북한 식당 '평양관'을 찾았습니다. 하노이엔 '고려식당'이라는 북한 식당도 있었지만, 왠지 이곳이 끌렸습니다. 평양의 '옥류관'과 이름이 비슷해서였을까요.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두 남북 정상이 평양 옥류관에서 '평양냉면'을 즐기던 장면을 영상으로 바라보며 '저건 꼭 먹어보리라'고 마음먹었던 때가 떠올랐습니다.
드디어 도착했습니다. 영업이 끝난 것일까요? 처음엔 정말 영업이 끝난 줄 알았습니다. 내부가 다 가려져 있어 어두웠기 때문입니다. 조금 물러서서 보니 불 켜진 출입문이 보였고 빨간 배경에 조금은 투박하며 북한스러운 네온사인의 '평양관' 간판이 보였습니다. 설마, 설마… 설렘과 긴장감이 밀려오며 갑자기 떨려왔습니다. 남북 화해무드가 조성되고 있다곤 하지만 지난 70여년 남북 분단 역사가 하루 아침에 사라지는 건 아니라는 걸 실감하게 됩니다.
베트남 하노이의 북한 식당 '평양관' 전경. /이원석 기자 |
용기를 내 문을 열고 들어갔지만, 금세 당황했습니다. 사진 속 평양관 내부의 모습은 밝았는데? 눈앞의 장소는 어두컴컴했습니다. 그러나 이내 그곳이 식당이 아닌 카페(주점)인 것을 깨달았습니다. 평양관은 1층 '커피점', 2층 '조선료리', 3층 '불고기', 4층 '연회장'으로 운영되고 있었습니다.
빨간색 옷을 입고 왼쪽 가슴엔 명찰, 반대편엔 인공기 배지를 단 30대가량의 여성 종업원이 카운터에 있었습니다. 살짝 경계하는 눈빛 같았습니다. 이미 한국 취재진이 다녀갔기 때문이라고 짐작했습니다. 조심스레 "식사를 할 수 있냐"고 물으니 "예약이 꽉 차서 이곳(커피점)에서만 식사를 할 수 있습니다"라고 북한 특유의 억양이 들려왔습니다. 아쉬웠지만, 어쩔 수 없었습니다. 알겠다고 답하니 커피점 내 빈자리로 안내해줬습니다.
점원은 메뉴를 갖다 주면서 "메뉴 찍으면 안 됩니다"라고 했습니다. '엄격하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음식을 고르며 부끄럽지만 태어나 처음으로 북한 사람과 대화를 나눴다는 생각에 순간 감격스러웠습니다. 지난해 9월 이미 김 위원장과 문 대통령의 대화 장면을 보면서 느꼈지만, 의사소통에 전혀 문제가 없다는 것도 놀랐습니다.
메뉴판엔 다양한 요리가 사진과 함께 적혀있었습니다. 북한식 표현으로 적혀 있어 조금 생소하기도 했지만 우리도 자주 먹는 한식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우선 고대했던 평양냉면과 아울러 평소 먹던 우리나라 음식과 맛 비교를 해보기 위한 김치찌개를 시켰습니다. 종업원은 주문이 끝나자 "대동강 맥주를 드셔보시겠습니까?"라고 취채진에게 물었습니다.
음식을 기다리는 동안 긴장을 가라앉히고 찬찬히 주위를 둘러봤습니다. 우리나라의 오래된 주점 분위기와 비슷했습니다. 다만 한쪽 TV에서 북한 군가가 틀어져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멀리 있어 자막으로 나오는 가사를 제대로 볼 수 없었지만, 북한 군인들 사진이 계속해서 등장했습니다.
하노이 북한 식당 '평양관'의 평양냉면과 김치찌개. /이원석 기자 |
오이와 더덕무침, 동치미 등이 밑반찬으로 나왔습니다. 우리나라에서 먹던 맛과 똑같았습니다. 이어 평양냉면과 김치찌개도 나왔습니다. 냉면은 함흥냉면과 크게 다르지 않았고, 김치찌개는 한국식보단 묽어 보였습니다. 점원은 꺼진 필자의 카메라를 보더니 "나온 음식 사진은 찍어도 괜찮습니다"라고 안내하기도 했습니다.
설레는 마음으로 "(평양냉면) 맛이 옥류관과 똑같나요?"라고 물었더니 종업원은 "아닙니다. 다릅니다. 조금 틀립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쿨(?)한 대답에 놀라우면서 약간은 실망스럽기도 했습니다.
이번엔 평양에서 가수 지코가 신나게 식초를 뿌려 먹던 장면이 떠올라 "식초를 뿌려 먹으면 되나요?"라고 물었습니다. 점원으로부터 "안 넣으셨습니까? 넣으셔야 합니다"라는 약간은 타박 섞인 말투의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그러더니 직접 식초와 겨자를 넣어줬습니다. 이것이 진정한 '츤데레(쌀쌀맞아 보이나 실제로는 따뜻하고 다정한 사람을 이르는 신조어)'일까 싶었습니다.
모습은 함흥냉면에 육수를 부은 것과 비슷했습니다. 젓가락에 면을 걸쳐 감격스러운 첫 맛을 봤습니다. 시큼한 맛이 먼저 올라왔습니다. 익숙하지 않아 처음엔 조금 적응이 안 됐지만, 먹다 보니 괜찮았습니다. 식초의 시큼함과 겨자의 매콤함이 뒤섞여 함흥냉면 맛도 나는 듯 안 나는 듯 나름 새로운 맛이었습니다. '나중에 옥류관 냉면 맛과 비교해보리라' 다짐하며 한입 한입 맛을 음미했습니다.
김치찌개도 멀리 베트남에서 경험하는 식도락을 거들었습니다. 김치찌개는 한국식보다 더 짜고, 매웠습니다. 묽었지만 매콤해서인지 시원하다는 느낌도 들었습니다. 찌개 속엔 삼겹살 부위의 돼지고기가 들어있었습니다.
식사를 하다 보니 종업원이 현지 한국 교민과 나누는 대화가 들리기도 했습니다. 현지 교민은 단골인 듯 편하게 점원에게 말을 건네는 듯했고, 점원도 시원시원한 말투로 답하는 모습이었습니다. 한 현지 교민이 북미정상회담에 대해 계속해서 언급하자 "시키기나 하시라"며 장난스러운 말투로 대답하는 모습도 인상적이었습니다.
종업원이 직접 건넨 평양관 안내 명함. /이원석 기자 |
취재기자가 있는 동안 평양관엔 손님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여기도 북미정상회담의 특수를 누리는 듯했습니다. 베트남·한국·일본 등 다양한 국적의 손님들이 계속 들어왔습니다. 계산하며 점원에게 "원래 이렇게 손님이 많나요? 위층에서 먹지 못해 아쉽습니다"라고 말하니 웃으며 "원래 많습니다. 다음엔 예약하고 오십쇼"라며 전화번호와 주소 등이 적힌 명함을 건네줬습니다.
식당을 나서며 북미회담이 열리는 27일과 28일에도 영업을 하느냐고 물었더니 그렇다고 했습니다. "김 위원장이 오진 않습니까"라고 물었더니 입가에 미소를 짓더니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이외에도 비슷한 질문엔 같은 반응이었습니다. 생각해보니 이들에겐 굉장히 민감할 수밖에 없는 부분입니다. 괜한 걸 물었나 싶었습니다.
이제 내일(27일)이면 북미정상이 역사적인 두 번째 만남을 갖습니다. 우리나라가 참여하는 회담은 아니지만, 한반도 상황에 매우 중요한 한 장면이 될 수도 있습니다. 명확한 결과가 나와야 하겠죠. 그러나 단순하게 이런 생각도 해봤습니다. '조만간 평양 옥류관 본점에서 냉면을 먹어볼 수 있을까?' '북한 식당 종업원들도 취재진의 모든 질문에 대답할 수 있는 때가 올 수 있을까'라고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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