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의 적극적인 '김경수 구하기'에 야당과 법원이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사진은 지난달 30일 드루킹과 댓글 조작을 공모한 혐의로 징역 2년의 실형을 선고 받은 김경수 경남지사. /남윤호 기자 |
사법부 향한 뺄셈이 아니라 내부 문제 되돌아볼 때
[더팩트ㅣ허주열 기자] 자기편을 늘리는 '덧셈 정치'와 줄이는 '뺄셈 정치'. 꼭 한 쪽만을 고집할 필요가 있을까. 장기적 방향은 지지층에 비지지층을 더하는 덧셈으로 가야겠지만, 그 과정에서 때로는 멀리보고 내부 고름을 짜내는 뺄셈도 필요하다.
이는 '정치'에 국한된 정치 공학적 접근이다. 우리 헌법에 입법권은 국회에, 행정권은 정부에, 사법권은 법원에 속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른바 삼권분립 조항이다. 이렇게 국가권력을 나눈 이유는 국민을 위한 국가가 되기 위해선 권력의 집중과 남용을 방지할 필요성이 있기 때문이다.
민주주의 국가의 3대 권력기관은 헌법에 따라 상호 견제가 가능하지만, 본질적 권한을 침해해선 안 된다. 그런데 최근 더불어민주당이 김경수 경남지사의 1심 판결에 대응하는 모습을 보면, 이런 기본을 외면한 뺄셈의 대상으로 사법부를 지목한 듯하다. 죄의 유무에 대한 판단은 사법부의 독립적 권한인데, 이를 침해하는 듯한 행보를 보이고 있어서다.
김 지사는 지난달 30일 1심 재판에서 댓글 조작 혐의(컴퓨터 등 장애 업무방해죄)로 징역 2년,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고 법정 구속됐다. 판결 직후 민주당은 '최악의 판결', '짜맞추기 기소·판결', '사법농단 세력의 보복' 등 과격한 비판을 쏟아냈다. 이어 지난 19일에는 국회에서 '김경수 지사 판결문 분석 기자간담회'까지 열었다.
지난 19일 국회에서 더불어민주당 사법농단세력 및 적폐청산 대책특별위원회 주최로 열린 김경수 경남지사 판결문 분석 기자간담회에서 차정인(오른쪽 두 번째) 부산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김경수 경남지사에 대한 1심 판결이 잘못됐다"고 발언하고 있다. /뉴시스 |
기자간담회의 요지는 1심 재판부가 유죄로 인정한 객관적 물증이 빈약하고, 이를 보완하는 김동원(드루킹) 등 관련자 진술에 신빙성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또한, 공동정범 혐의가 인정되기 위해선 '지시·승인·허락' 행위가 있어야 하는데, 그런 관계가 성립하지 않는다며 판결이 잘못됐다고 강조했다.
같은 날 이해찬 민주당 대표는 김 지사가 보석을 신청할 경우 사법부가 받아들여야 한다고 공개적으로 압박을 가했다. 이 대표는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현역 지사이고, 임기가 아주 많이 남았다. 재판을 하더라도 불구속으로 진행하는 게 당연하다"며 "그래야 도민에게 피해를 안 미치고, 증거인멸이나 도주 우려가 없어 불구속 재판을 원칙으로 해야 한다"고 말했다.
당 차원의 '김경수 구하기'가 진행되고 있는 셈이다. 당장 야당에선 "대한민국의 근간인 법치주의와 삼권분립을 부정하는 행위", "대통령 측근 한 명을 살리기 위한 삼권분립이라는 민주주의 대원칙에 대한 정면도전", "사법부를 협박하는 선택" 등의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대법원도 "판결 내용이나 결과에 대한 국민의 비판은 당연히 보장돼야 한다"면서도 "판결 결과에 대한 불복은 헌법과 법률이 정한 상소 절차를 통해 이뤄져야 한다"고 민주당의 행태를 비판했다. 또, "도를 넘는 과도한 표현을 하거나 재판을 한 법관에 대한 공격으로 나아가는 것은 헌법상 보장된 법관 독립, 법치주의 원리에 비춰 적절하지 않다"고 했다.
이런 상황에선 2심 재판부가 판단을 바꿔 무죄 판결을 내리더라도 공정성에 의문이 제기될 수밖에 없다. 만약 1심과 같은 판결을 내리면 민주당은 또 다시 재판부를 비판하며, 3심 재판부가 판결을 번복해야 한다고 주장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항소심에서 어떤 판결이 나오든 새로운 논란이 예고된 것이다.
지난 19일 국회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당 대표 기자간담회에서 이해찬 대표는 "김경수 경남지사는 불구속 재판을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뉴시스 |
그렇다면 일반인에게 형사재판 1심 선고는 어떤 의미일까. 대법원의 발표한 '2018 사법연감'에 따르면 2017년 형사공판 사건의 1심 접수 건수는 26만 2612건, 항소심 접수건수는 8만 3604건, 상고심 접수건수는 2만 5308건이다. 항소심까지 가는 경우는 약 32%, 상고심까지 가는 경우는 약 10%에 불과하다. 70%가량이 1심 판결을 '마지막' 판결로 받아들인 셈이다.
정치적 성향을 떠나 대다수 국민에게 '김경수 구하기'에 올인하는 민주당의 행태는 권력을 가진자의 '특별 대접' 요구로 비춰질 가능성이 높은 대목이다.
특히 민주당은 판결문 분석 간담회가 열린 날 이명박 정부 당시 기무사 댓글 공작을 주도한 배득식 전 기무사령관의 1심 징역 3년 판결이 나오자 이재정 대변인 논평을 통해 "군이 집권세력의 정권유지와 재창출을 위해 헌법이 정한 정치적 중립 준수 의무마저 위반하고, 조직적으로 여론을 조작한 행위에 책임을 물은 것"이라고 호평했다.
정치적 반대편의 1심 징역 판결은 당연한 것이고, 자기편의 1심 징역 판결은 부당하다는 태도에 납득한 국민이 얼마나 될까. 판결문에 대한 분석은 피의자의 변호인단에서 할 일이고, 재판 불복은 법정 안에서 이뤄져야 한다. 권력을 쥔 집권여당이 소속 유력 인사의 판결에 대해 사법부 밖에서 '불복', '판사 탄핵' 등의 발언을 공개적으로 하는 것은 부적절해 보인다.
현재 사법농단에 대한 검찰 수사가 진행 중이고, 정치권 안팎에서 사법 개혁 요구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김 지사 구하기에 나선 민주당의 사법 개혁 목소리는 진정성을 의심받을 수밖에 없고, 힘을 받기도 어렵다. 민주당의 뺄셈 정치는 사법부가 아니라 내부의 문제를 도려내는 쪽으로 방향을 트는 게 본인에게도, 국민을 위해서도 옳은 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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