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진환의 '靑.春'일기] '환경부 리스트' 논란, '적폐 청산'의 족쇄
입력: 2019.02.25 05:00 / 수정: 2019.02.25 05:00
이른바 환경부 블랙리스트 의혹으로 검찰이 수사하고 있는 가운데 청와대 개입 여부가 초미의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청와대 제공
이른바 '환경부 블랙리스트' 의혹으로 검찰이 수사하고 있는 가운데 청와대 개입 여부가 초미의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청와대 제공

미리 밝혀둡니다. 이 글은 낙서 내지 끄적임에 가깝습니다. '일기는 집에 가서 쓰라'고 반문한다면 할 말 없습니다. 그런데 왜 쓰냐고요? '청.와.대(靑瓦臺)'. 세 글자에 답이 있습니다. '대통령이 생활하는 저곳, 어떤 곳일까'란 단순한 궁금증에서 출발합니다. 누구나 한 번쯤 생각해보지 않았을까요? '靑.春일기'는 청와대와 '가깝고도 먼' 춘추관에서(春秋館)에서 바라본 청춘기자의 '평범한 시선'입니다. <편집자 주>

공공기관 '낙하산 인사' 관행 고리 못 끊어

[더팩트ㅣ청와대=신진환 기자] "노영민 실장 인사는 '친문(친문재인)을 더 강화했다' 이런 언론의 평가에 대해서는 약간 조금 안타깝다. 청와대는 다 대통령의 비서들이기 때문에 친문 아닌 사람이 없는데, 더 친문으로 바뀌었다 그러면 아마 물러난 임종석 실장이 아주 크게 섭섭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달 10일 신년기자회견에서 노영민 대통령 비서실장 등 인사를 두고 친문색이 더 강화된 것이 아니냐는 취지의 기자의 질문에 이 같이 답했다. 이 말은 곧 청와대 직원들은 모두 친문이라는 얘기로 들렸다.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성향과 노선이 같아야 배가 산으로 가지 않기 때문이다. 국정 운영을 유기적이고 원활히 하기 위해서는 손발이 잘 맞아야 하지 않나. 문 대통령이 '원 팀(One team)'을 강조하는 것은 이 때문일 것이다.

그동안 정권이 바뀌면 전 정권에서 임명된 임원들을 교체하는 것은 '관행'으로 이해됐다. 대통령의 국정 철학을 이해하는 인사로 물갈이함으로써 대통령을 뒷받침하는 것을 기대하기 때문이다. 또, 정부와 반대되는 인사들로 인한 불화를 미리 차단하는 성격도 있다. 그런데 이 관행 속에는 '낙하산 인사' 등 소위 보은 인사가 이뤄졌던 것도 사실이다. 대표적인 예로 이명박 정권의 '고소영'(고려대·소망교회·영남), 박근혜 정권의 '서수남'(서울대·교수·영남)을 들 수 있다. 관행이라는 이름으로 공공연히 벌어진 적폐(?)이기도 하다.

이번 정부도 환경부 산하기관 임원들의 사퇴를 압박하고자 표적 감사를 벌였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환경부가 전 정권 사람을 찍어내려 했다는 것이다. 김태우 전 청와대 특감반원이 민간인 사찰 등의 의혹을 폭로하면서 파생된 이른바 '환경부 블랙리스트' 의혹으로 청와대가 난처한 상황에 부닥쳤다. 자유한국당 등 야당의 공세는 더욱 거세지고 있고, 검찰의 수사도 본격화되고 있다.

지난해 말 환경부가 작성한 산하기관 임원 사퇴 동향 문건이 공개되면서 정치권에서 이른바 환경부 블랙리스트 의혹이 확산하고 있다. 사진은 환경부 블랙리스트 의혹의 핵심 당사자인 김은경 전 환경부 장관. /이새롬 기자
지난해 말 환경부가 작성한 '산하기관 임원 사퇴 동향' 문건이 공개되면서 정치권에서 이른바 '환경부 블랙리스트' 의혹이 확산하고 있다. 사진은 '환경부 블랙리스트' 의혹의 핵심 당사자인 김은경 전 환경부 장관. /이새롬 기자

환경부 리스트 의혹은 세계적 빅이벤트로 꼽히는 제2차 북미정상회담과 관련한 소식에도 묻히지 않을 정도다. 이 대목에서 환경부 리스트 의혹이 상당한 국민적 관심사라는 것이 간접적으로 느껴진다. 국민들은 박근혜 정부의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가 불법이라고 밝혀지면서 '리스트'라는 자체에 강한 거부감을 느끼고 있어서가 아닐까. 이에 비춰보면 청와대로서는 매우 엄중하고 민감하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을 듯하다.

"블랙리스트란 말이 너무 쉽게 쓰여지고 있다. 이명박·박근혜정부 블랙리스트 관리 규모는 2만1362명이었지만, 환경부 산하기관 임원 사퇴 동향 문건 상의 임기만료 전 퇴직자는 5명에 불과하다." 지난 20일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논란에 대해 이같이 논평했다. 또, 청와대는 인사수석실이 인사 과정에 개입했다는 의혹에 대해서도 임명권자가 대통령이기에 인사수석실이 지휘하는 것은 정상적인 업무 절차라고 했다.

부인하는 청와대의 반응에도 주변에선 과거 정권의 행태와 무엇이 다르냐는 비판이 들린다. 한 선배는 환경부 산하기관의 임원 동향을 분석한 것만으로도 당사자는 사퇴 압박을 느끼지 않았겠느냐고 했다. 정부와 성향이 반대되거나 방향성이 다른 문화예술계의 지원을 배제한 이명박·박근혜 정부 블랙리스트와 결은 달라도 논란의 소지는 충분이 있다는 얘기다. 어느 정도 수긍이 간다.

하지만 검찰이 환경부 리스트 의혹의 실체적 진실을 밝힐 때까지 상황을 좀 더 두고 봐야 할 것 같다. 현재 검찰은 청와대 개입 여부 등 '윗선'을 확인하는 등 수사에 속도를 내고 있는데, 수사 결과에 따라 현 정부가 직격탄을 맞을 수도 있다. 문재인 정부 도덕성의 중대한 타격은 물론, 기반 자체가 흔들릴 가능성도 있다. 어쨌든 일단 국민이 환경부 리스트를 부정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결국 '찍어내기'나 '표적 감사'라고 포장된 관행 탓임을 부인할 수는 없어 보인다.

관행 속에는 당연하다는 듯 행해지는 안일함의 독이 숨어 있고, 투명하고 합법적인 절차와 기준도 미약하다. 직권남용 논란이 불거지는 것이 이 때문이지 않나. 블랙리스트냐 아니냐는 것은 검찰 수사 결과를 지켜보면 될 일이다. 다만 '캠코더 인사' 지적을 받는 이번 정부 역시 그릇된 관행을 답습한 부분에 대해서 이전 정부들과 무엇이 다르냐고 묻고 싶다.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분륜)이라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이기도 하다. 과연 적폐를 청산하겠다는 문 대통령의 공언이 국민 가슴에 와닿을지도 의문이다.

shincombi@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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