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철영의 정사신] 픽션 같은 논픽션 정치권의 '블랙코미디'
입력: 2019.02.15 05:00 / 수정: 2019.02.15 05:00

자유한국당은 이른바 5·18 망언 논란의 김진태·김순례·이종명 의원에 대한 징계를 이종명 제명, 김진태·김순례 징계 보류 결정을 내려 또 다른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다. /더팩트DB
자유한국당은 이른바 '5·18 망언' 논란의 김진태·김순례·이종명 의원에 대한 징계를 이종명 '제명', 김진태·김순례 '징계 보류' 결정을 내려 또 다른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다. /더팩트DB

[더팩트ㅣ이철영 기자] '이 영화는 실화를 바탕으로 하였습니다.' 어떤 영화를 볼 때 종종 보게 되는 안내 문구이다.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는 것은 과거의 어떤 사실을 바탕으로 했다는 것이다. 실화를 바탕으로 했지만, 픽션(Fiction, 지어낸 이야기)을 가미한 것이 영화로 재탄생하면서 관객은 그때 그 사실을 기억하고 감정을 이입하기도 한다. 픽션의 반대는 논픽션(Nonfiction, 사실을 바탕)이다.

이런 픽션 영화는 액션, 드라마, 스릴러, 다큐멘터리 등의 장르로 재탄생한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SF영화는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이유는 SF라는 장르가 미래 사회를 그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픽션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이 SF 영화가 현실이 되는 경우도 있다. 1982년 개봉한 리들리 스콧 감독의 영화 '블레이드 러너'를 보았던 때가 생각난다. 2019년을 배경으로 했기에 너무나 먼 미래였고, 2000년대라는 기시감조차 없었다. 이런 사고의 틀에 있던 필자에게 영화의 화상통화, 복제인간 등의 장면과 소재는 무척이나 신선하면서 충격적으로 다가왔던 기억이 난다.

미래, 즉 픽션 영화 '블레이드 러너'에서 나오는 장면 중 화상통화는 이미 상용화돼 무척 유용하게 쓰이고 있다. 픽션이라는 허구적 또는 상상이 현실이 된 것이다.

픽션과 논픽션이라는 영화적 혹은 예술적 관점의 접근을 여의도 국회로 가져가 보자. 정치권, 여당과 야당이라는 집단은 논픽션이다. 허구가 존재하지 않는 우리 삶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집단이면서 가장 비판과 감시를 받아야 하는 공적 조직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가끔 이 정치권이라는 조직체의 행태에서 픽션이었으면 하는 일들이 비일비재하게 벌어지고 있다.

5·18 민중항쟁구속자회와 5·18 민주화운동서울기념사업회 회원들이 5·18 망언 논란의 한국당 김진태·김순례·이종명 의원의 제명을 촉구하며 전시한 피해자들의 사진. /남윤호 기자
5·18 민중항쟁구속자회와 5·18 민주화운동서울기념사업회 회원들이 '5·18 망언' 논란의 한국당 김진태·김순례·이종명 의원의 제명을 촉구하며 전시한 피해자들의 사진. /남윤호 기자

영화나 창작의 고통을 겪는 이들에게 정치권은 부러움과 두려움의 대상일지도 모르겠다. 픽션의 상상력을 현실에서 뛰어넘기 때문이다. 실례로 정치권이라는 이 조직체는 여야를 막론하고 다양한 분야에서 충격과 실망과 즐거움과 스릴러 영화 같은 반전을 주곤 한다.

최근 5·18 광주민주화항쟁을 두고 북한군의 침투, 폭동 등의 발언이 사회적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국회의원 자격을 박탈해야 한다는 이야기까지 나왔다. 자유한국당도 문제가 된 김진태·김순례·이종명 의원에 대한 징계를 결정하며 진화에 나섰다. 사회적 파장을 고려할 때 중징계가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됐다.

그러나 앞서 이야기했던 정치권은 스릴러 영화에서처럼 이종명 의원 '제명', 김진태·김순례 의원 '징계 보류'라는 극적인 반전의 묘미(?)를 국민에게 주었다. 물론 이 반전은 많은 사람이 예상했던 바이다. 따라서 이번 한국당 의원들의 '5·18 망언 징계' 결과는 영화 장르로 보자면 국민에게 '블랙코미디' 정도가 아닐까. '블랙코미디'란 아이러니한 상황이나 사건을 통해 웃음을 자아내는 코미디의 하위 장르로 밝고 쾌활한 웃음보다는 씁쓸한 웃음이 주를 이룬다.

영화 '식스센스'나 '유주얼 서스펙트'와 같이 관객을 충격의 도가니로 몰고 갈 정도의 반전 시나리오를 기대했다면 우리 정치권의 집단 카르텔의 몰이해에서나 가능했을 것으로 본다.

'민의의 전당'이라고 자부하는 여의도 국회의 논픽션을 보는 국민의 관점에서는 차라리 픽션이었으면 하고 쓴 미소를 짓기라도 했을 것이다. 현실은 냉정하고 그 현실을 마주한 국민은 더 씁쓸할 수밖에 없다. 정치권의 이 픽션 같은 정치는 언제쯤 논픽션인 '민의'를 대변할 수 있을까. 기대감에 부풀었다 돈과 시간이 아깝다며 극장을 빠져나온 것 같은 기분이 좀처럼 가시지 않는 건 비단 필자뿐일까.

cuba20@tf.co.kr

발로 뛰는 <더팩트>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카카오톡: '더팩트제보' 검색
▶이메일: jebo@tf.co.kr
▶뉴스 홈페이지: http://talk.tf.co.kr/bbs/report/write
- 네이버 메인 더팩트 구독하고 [특종보자▶]
- 그곳이 알고싶냐? [영상보기▶]
AD
인기기사
실시간 TOP10
정치
경제
사회
연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