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포 투기 논란'으로 더불어민주당에서 탈당한 손혜원 의원이 23일 목포 근대역사문화공간에서 기자간담회를 마친 뒤 떠나고 있다. /목포=남용희 기자 |
지역 주민들은 손혜원 '절대적' 지지…그러나
[더팩트ㅣ목포=이원석 기자] 지난 22일 서울에서 차로 꼬박 4시간 30분을 달려 전남 목포항 인근 '근대역사문화공간'에 도착했다. 손혜원(무소속) 의원의 투기 논란이 불거진 바로 그곳이다. 왕복 1차선 도로 좌우로 낡은 가게들이 늘어선 작은 동네였다. 어딘가 꾸며보려 한 흔적도 보였지만, 유동 인구는 거의 없는, 전형적인 시골 읍내 분위기였다.
이날은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 등 원내지도부가 이곳을 방문한 한 날이었고, 취재를 위해 목포를 찾은 것이었다.
많이 보도가 됐지만 한국당 의원들이 그곳에 머무른 시간은 약 20분도 채 안됐다. 손 의원 이슈를 저격하기 위해 방문한 한국당을 환영(?)하려는 주민·상인들 다수가 거리로 나왔고, '이런 곳이 다 있냐'는 표정으로 동네를 둘러보는 국회의원들을 향해 어떤 주민은 "강남만 살리지 말고 여기도 좀 살려줘라. 해 지고 와봐라. 아무도 없다"고 소리쳤다.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와 '손혜원 랜드 게이트 태스크포스(TF)' 위원장인 한선교 의원 등 한국당 의원들이 22일 오후 전남 목포 근대역사문화공간 내 게스트하우스 '창성장'을 찾아 둘러보고 있다. /남용희 기자 |
또, 주민들은 취재진에게 먼저 말을 걸면서까지 손 의원 편을 들기도 했다. "투기는 무슨 투기여. 자네라면 여길 사겠나?" 아주 짧은 시간이었지만, 손 의원 논란에 대한 동네 분위기를 대번에 파악할 수 있었다.
한국당 의원들이 떠나고 필자도 떠나야 했지만 그러질 못했다. 손 의원이 바로 다음 날 같은 곳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겠다고 알렸기 때문이었다. 당일치기 취재가 1박 2일로 바뀌었다. 한탄하면 뭐하겠는가. 이참에 이곳 분위기도 더 살피고, 주민들 얘기도 더 들어보기로 했다.
오후 7시가 지나니 대부분의 상가는 문을 닫았고 동네는 암흑에 휩싸였다. 홀로 불 켜진 손 의원 소유의 게스트하우스 '창성장' 간판. /남용희 기자 |
해가 저무니 대부분의 상점들이 문을 닫았다. 저녁 7시쯤이었고, 인적은 거의 없었다. 손 의원 조카 손소영 씨가 운영하는 갤러리 카페도 문을 닫은 뒤였다. 한 주민이 나 원내대표를 향해 '해 지면 아무도 없다'고 한 말이 떠올랐다.
손 의원이 매입, 게스트하우스로 리모델링해 영업 중인 '창성장'에서 자보고 싶었다. 방이 꽉 찼다고 했다. 평일이었고 지금은 비수기다. 이번 일 때문에 장사가 더 잘 된다고 했던 게 사실인 듯 싶었다. 어쩌면 취재진 몇 팀이 잤는지도 모른다. 뭐라도 해보려고 했지만, 너무 이른 시간 암흑에 덮힌 그곳에선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었다. 아쉬운 목포의 하루는 그렇게 끝이났다
게스트하우스 '창성장' 앞 모습. 지나는 주민들. /남용희 기자 |
다음 날 오전, 주민들과 얘기를 나눴다. 길에서 만난 한 어르신은 이번 일에 대해 묻자 격분하며 "이걸 투기라고 하는 놈들은 정말 나쁜 놈들이여! 무슨 목적인 거여 대체. 다 쓰러져가는 동네를 손 의원이 살리려는 거여. 영웅이라고 영웅!"이라고 했다. 이 어르신은 목포가 지역구인 박지원 민주평화당 의원의 이름을 꺼내며 "나쁜 X이야 아주. 오지도 않음서 손 의원을 욕할 자격도 없는 거여"라고 말하기도 했다.
미용실에 들어갔다. 지역 주민인 한 어르신이 컷트를 받고 있었다. 미용사와 어르신은 손 의원 이름이 나오자 "저거들이 와서 안 살아봐서 그래. 투기는 절대 아니지. 남길 것도 없는데 무슨 투기여"라며 "여기가 원래는 제일 비싼 곳이었는데 지금은 빈집이 쎘어. 6시만 되면 다 문 닫고, 투자도 안 되고, 할 일이 없어 미치겄어"라고 한 목소리로 말했다.
서장권 만호동 주민자치위원장과도 얘기를 나눴다. 서 위원장은 "우리 주민들은 이 사안이 정치 쟁점화되는 것이 제일 싫습니다"라며 "이 동네가 예전엔 목포에서 제일 가던 동네였다. 낙후된 거리를 최근 들어 예전처럼 되돌려보려고 노력하고 있는데 이 사태가 터져서 굉장히 당혹스러워요. 이 사태가 빨리 해결됐으면 좋겠습니다"라고 강조했다.
손 의원 투기 여부에 대해선 "글쎄요. 그분 마음까지 들어가보진 못해서 모르겠지만, 직접 만나서 대화를 나눴을 땐 정말 (투기가) 아니었어요. 제가 대화를 나눴던 당사자니까 압니다"라고 했다.
손혜원 의원 조카 손소영 씨가 운영하는 갤러리 카페 앞에 응원 메모들이 붙어있다. /남용희 기자 |
손 의원 조카가 운영하는 갤러리 카페가 오후 12시쯤 문을 열었다. 전날 왔다가 서울로 돌아가지 못한 동료 기자들과 만난 김에 그곳에 가서 커피를 마셔보기로 했다. 그림과 목재 가구, 은은한 조명으로 꾸며진 카페는 아늑했다. 앉을 수 있는 자리는 몇 없었다. 카페를 둘러본 한 동료 기자는 "서울에서도 이런 곳은 찾기 힘들겠다"고 감탄하기도 했다.
조카 손 씨도 있었다. 분주해 보였다. 다만 표정엔 약간의 피곤함도 보였다. 일행은 손 씨에게 따로 말을 걸지는 않았다. 다른 손님이 알바생에게 손 의원에 대해 물은 듯 싶었다. 손 씨는 그 손님을 향해 "대학생 알바인데 울겠어요. 며칠 째 너무 시달려서"라고 씁쓸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러나 손 씨는 친절했다. 말을 건네는 손님들에게 일일이 대꾸하며 살갑게 대했다. 한 손님과 대화하며 "손 의원이 제 고모에요. 저 오픈한 지 일년이나 됐는데 목포 분들도 여기 있는지 몰라서 장사 안 됐었는데 요새 잘 돼요"라고 말하기도 했다. 떠나는 손님에게 "조용해지면 또 오세요"라고도 했다.
손혜원 의원이23일 기자간담회 직전 조카 손소영 씨가 운영하는 카페를 들렀다. 손 의원과 조카 손 씨가 함께 있는 모습. /이원석 기자 |
좀 지났을까.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손 의원이 카페로 들어왔다. 깜짝 놀랐다. 기자간담회까지 한 시간 정도 남았을 때였다. 손 의원은 가져온 쇼핑백에서 컵을 꺼내면서 "애(조카)가 컵이 모자라다고 해서 컵을 가져왔어요"라고 했다. 카페 내엔 손 의원 지지자들도 있었다. 손 의원은 인사를 청하는 지지자들과도 일일이 짧게라도 대화를 나눴다. 여유로워 보였다.
오후 2시부터 기자간담회가 진행됐다. 기자간담회 장소는 손 의원이 추후 나전칠기 박물관을 건립하기 위해 크로스포인트문화재단 명의로 매입한 곳으로 창성장 바로 맞은 편에 위치한 현재는 텅 비어있는 목조 건물이었다. 사실 그런 열악한(?) 장소에 들어가 본 것은 처음이었다.
취재진이 우르르 들어서니 흙먼지가 날렸고,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 같았다. 언론 보도에서 손 의원이 역사문화공간 내 수십 채를 구매했다고 했는데, 해당 장소가 약 11채에 해당한다고 했다. 취재진 30~40명이 들어가니 가득 찬 크기였다. 이곳을 기자간담회로 정한 손 의원의 의도를 알 수 있었다. 손 의원은 취재진에 "직접 와보니 어떠냐"고 의기양양하게 묻기도 했다.
손혜원 의원과 취재진이 기자간담회를 갖고 있다. 해당 장소는 손 의원이 추후 나전칠기 박물관을 세우려고 하는 부지로, 이번 투기 논란에 역시 포함된 곳이다. /남용희 기자 |
60분 기자간담회 일정은 취재진과 손 의원의 치열한 공방으로 90분이나 이어졌다.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손 의원은 투기 여부에 대해 완강히 부인했다. '선의', '이익 충돌' 등에 대한 취재진 질문에 어쨌든 자신의 입장과 논리를 강하게 밝혔다. 그는 나중에 자신이 목포에 와서 반드시 살 것이며 '기부'에 대한 계획도 밝히기도 했다.
간담회 끝무렵 겨우 질문할 기회를 얻었다. 투기와 관련된 질문과 답은 거의 나온 듯해 이번 의혹 이후 추가로 불거진 국립중앙박물(국박) 채용(나전칠기 연구 복원 전문가) 압력 , 선친 고(故) 손용우 선생 독립유공자 선정 압력 의혹에 대해 물었다.
손 의원은 먼저 선친 관련 질문엔 "아버지 얘기를 갖고 기사로 만든 사람들에 대해선 말하고 싶지 않습니다. 보훈처를 통해서 들으십시오"라고 했다. 이어 그는 국박 인사 압력 의혹에 대해선 "한국에서 나전칠기에 대해서 고대부터 현재까지 가장 잘 아는 사람이 누구겠습니까? 저예요"라며 우리나라에서 나전칠기 수리를 잘못하고 있기 때문에 자신이 잘 아는 전문가를 제안한 것이라는 취지로 답했다.
손 의원의 답변에 공감하고 동의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그 답을 통해 이번 논란에서 손 의원이 보이고 있는 태도의 가장 큰 문제가 무엇인지 깨달았다. 특히 선친 문제에 대해 필자라도 손 의원과 같은 반응을 보였을 것이다. 손 의원은 의혹을 제기한 사람들을 '아버지 얘기를 갖고 기사로 만든 사람들'이라고 표현하며 경멸한다는 태도를 보였다.
지난 23일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는 손혜원 의원. /남용희 기자 |
그런데도 이 논란에 대해 분명 국민은 해명을 듣고 싶어한다. 손 의원은 국민을 대표하는 국회의원이다. 국회의원은 조금 더 객관적으로 상황을 봐야 한다. 혹 감정이 상할지라도.
손 의원이 90분 내내 이야기했던 건 자기는 목포를 살리기 위한 좋은 의도였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필자가 느끼기에 이날 참석한 취재진은 여러 번 이에 대해 물었지만, 손 의원은 질문에 '악의'가 담겼다고 생각하며 쳐내는 것 같았다.
날카롭기만 했던 손 의원의 태도가 살짝 달라진 듯 보이기도 했다. 손 의원은 "혹시나 제가 이야기하면서 화가 나 반발하는 과정에서 사납게 얘기했다면 사과합니다"라며 다소 분노를 누그러뜨린 느낌이었다. 그 뒤로 바로 "그대신 여러분도 저한테 사과하셔야 됩니다"라고 하기도 했지만. 그는 이익충돌에 대해서도 "투기에 대해선 목숨 걸고 싸우겠습니다. 그러나 제가 모르는 곳에서 이익충돌이 벌어졌을 수도 있단 건 찾아보고 조심하겠습니다"라고 했다.
마지막으로 손 의원은 "이런 소모전을 제발 그만했으면 좋겠습니다"라며 "다음으로 또 잦아들지 않으면 서울에서 (취재진을) 모시고 매일매일 (간담회를) 하겠습니다. 어느 날 관심이 끊어져 아무도 안 오는 날이 오겠죠"라고도 했다. 피하지 않고 의혹에 대해 끝까지 답변을 하겠다는 태도는 옳다.
손혜원 의원을 응원하기 위해 많은 지역 주민들이 나왔다. 이들은 손 의원을 향해 "힘내라"고 소리쳤다. /남용희 기자 |
바깥엔 지역 주민들이 거의 모두 나온 듯했다. 창성장 앞 좁은 도로가 인파로 가득 찼다. 주민들은 "손 의원 힘내라"고 외쳤다. 손 의원이 움직이자 인파도 뒤따랐다. 물론 이 같은 반응은 이 지역 주민들에겐 당연하다. 낙후된 동네가 손 의원으로 인해 어느 정도는 살아나고 있었으니 이들에겐 한 어르신의 말처럼 '영웅'이다.
취재를 모두 마치고 그 동네를 빠져나온 직후부터 1박 2일 간 동네에서 느낀 점은 여론과는 극명한 차이를 보였다는 점이다. 깜깜한 어둠 속 '창성장' 간판 불빛을 거리를 밝히듯, 손 의원은 이 동네 주민들에겐 등불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까지 했다. 그런데도 여전히 아쉬운 건 손 의원이 애초 이번 논란을 자신이 한 말처럼 대했다면 이런 소모전은 없지 않았을까라는 것이다.
논란의 시작은 손 의원이다. 그의 태도가 처음부터 "투기에 대해선 목숨 걸고 싸우겠습니다. 그러나 제가 모르는 곳에서 이익충돌이 벌어졌을 수도 있단 건 찾아보고 조심하겠습니다"라고 했다면, 지금과 같았을까. 어쩌면 달랐을지 모른다.
얼마 전 <더팩트>는 논란 후 손 의원의 지역구인 마포를 찾아 그곳 주민들의 목소리를 직접 듣기도 했다. 대부분은 손 의원에 대해 실망하고 섭섭해하는 눈치였다. 손 의원은 과연 자신의 지지자, 목포 주민들이 아닌 국민의 목소리를 들으려 하고 있을까? 1박 2일 목포에서의 하룻밤은 아이러니하게도 그곳 주민들의 절대적인 손 의원 지지 목소리와 그 밖의 목소리를 극명하게 대비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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