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의 KT&G 사장 교체 개입 의혹과 적자 국채 발행 압력 등을 폭로한 신재민 전 기획재정부 사무관은 지난 2일 긴급 기자회견 후 다음 날인 3일 자살을 암시하는 유서 등을 남기고 사라졌지만, 4시간 만에 서울의 한 모텔에서 발견되면서 해프닝으로 끝났다. 지난 2일 기자회견에서 발언하는 신 전 사무관. /이덕인 기자 |
2019년 기해년(己亥年) 시작부터 정치권 분위기가 심상치 않습니다. 청와대를 겨냥한 폭로로 인한 여야의 공방이 뜨겁습니다. 지난해 마지막 날이었던 31일엔 김태우 전 청와대 특별감찰반원 폭로 건으로 인해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과 조국 민정수석이 국회 운영위원회에 출석했습니다. 현역 민정수석이 국회를 찾은 건 이례적인 일이어서 더 주목됐습니다. 이후 논란의 불꽃은 기획재정부에 근무했던 신재민 전 사무관의 '적자 국채 발행 청와대 외압' 폭로로도 번졌습니다. 지난 2일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추가적인 폭로를 예고했던 신 전 사무관은 다음날 자살 소동을 벌이며 정치권을 충격에 빠뜨리기도 했습니다.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이 구속된 지 384일 만에 석방됐습니다. <더팩트> 정치플러스팀과 사진영상기획부는 여의도 정가, 청와대를 취재한 기자들의 '방담'을 통해 한 주간 이슈를 둘러싼 뒷이야기와 정치권 속마음을 다루는 [TF주간 정담(政談)]코너를 진행합니다. 주간 정담(政談)은 현장에서 발품을 파는 취재 기자들이 전하는 생생한 취재 후기입니다. 지금부터 시작합니다. <편집자 주>
국회 출석해 '학자' 조국 케어한 '정치인' 임종석?
[더팩트ㅣ정리=이원석 기자] -지난해의 끝과 올해의 시작이 함께 있던 한 주였습니다. 지난해 마지막 날이었던 31일엔 국회가 그 어느 때보다 시끄러웠습니다.
-김태우 전 청와대 특별감찰반원 폭로 관련 건에 대해 야당이 출석을 요구하면서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과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이 국회에 나왔습니다. 청와대 민정수석이 국회 소환에 응한 건 12년 만이었기 때문에 정치권이 들썩들썩했습니다.
-해가 바뀜과 함께 김 전 특감반원 건에 이어 신재민 전 기획재정부 사무관의 폭로도 정치권을 뜨겁게 달구고 있습니다. 신 전 사무관은 지난 2일 긴급 기자회견까지 열고 청와대가 압력을 넣은 것이 사실이라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그러나 더 충격적이었던 건 바로 다음 날 신 전 사무관이 유서를 남기고 잠적해 경찰이 수사에 나선 일이었는데요. 다행히 불미스러운 일은 발생하지 않았지만, 그로 인해 신 전 사무관 폭로와 관련된 정치권 공방도 더 격화되고 있습니다.
-이 와중에 '국정농단 방조 혐의'를 받은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이 석방됐습니다. 현재 2심 재판을 받고 있는 우 전 수석의 구속 기한이 만료가 됐기 때문인데요, '방조' 혐의지만, 국정농단 사태의 핵심 인물로 꼽히는 우 전 수석입니다. 먼저 이번 주 가장 시끄러웠던 신 전 사무관에 대해 얘기를 나눠보겠습니다.
신재민 전 사무관은 2일 긴급 기자회견에서 긴장하고 불안한 기색이 역력했다. 결국, 다음 날 신 전 사무관은 유서를 남기고 잠적해 또 한 번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이덕인 기자 |
◆긴급 기자회견 하루 만에 유서 남기고 잠적한 신재민…정치권 '충격'
-지난 2일 신 전 사무관이 긴급 기자회견을 했죠? 당시 신 전 사무관의 모습은 어땠나요.
-힘들어 보였다고 하기보다는 많이 긴장한 상태였다고, 하는 게 맞을 것 같습니다. 사실 긴장을 하는 게 당연하기도 한데요, 신 전 사무관은 일반인이다 보니 카메라 수십 대가 자신을 찍고 있는 상황에 긴장할 만도 합니다. 그러나 신 전 사무관은 꼭 그 현장이 긴장돼 떨었다고만 볼 수도 없는 것 같습니다. 이번 소동을 통해 보면 신 전 사무관은 이번 일로 인해 상당한 압박, 부담을 느끼고 있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물론 아직 폭로 내용에 대한 사실 관계는 밝혀진 게 없습니다. 청와대, 여권과 신 전 사무관 상호 간의 공방만 오갈 뿐입니다. 다만, 신 전 사무관이 정말 죽을 결심까지 했다면 그의 심리 상태가 상당히 불안하다는 걸 추측해볼 수 있습니다. 실제로도 상당히 불안해 보였고요.
-그렇군요. 그런데 신 전 사무관이 기자회견 다음 날 실제로 극단적 선택을 암시하는 문자와 유서를 남긴 채 잠적해 모두가 긴장했죠?
-네, 다행히 실종된 지 4시간 만에 관악구 신림동의 한 모텔에서 발견됐습니다. 생명엔 지장이 없는 상태였지만, 곧바로 서울보라매병원으로 이송됐습니다.
-신 전 사무관 실종 이후 발견될 때까지 취재진들이 굉장히 혼란스러웠다고 하던데요,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네, 그렇습니다. 처음 보도가 나온 이후 취재진이 관악경찰서로 모여들었습니다. 경찰은 인력을 집중해 신 전 사무관을 수색하고 있던 중이었고요. 근데 취재진 사이에서 신 전 사무관에 대한 여러 잘못된 소식, 가짜뉴스 등이 돌았습니다.
유서를 남기고 잠적했던 신재민 전 기획재정부 사무관이 3일 오후 서울 관악구 신림동 한 모텔에서 발견돼 구급차로 이송됐다. 신 전 사무관을 태운 구급차가 모텔을 빠져나가는 모습. /임세준 기자 |
-저도 신 전 사무관과 관련한 많은 지라시를 받아보긴 했습니다. 어떤 내용이었나요?
-우선 '동명이인(同名異人)설'이 돌았습니다. 실종된 것은 신 전 사무관이 아니라 같은 이름을 가진 다른 사람이라는 소식이 전해진 것인데요, 사실 취재진 사이에선 이 소식에 가슴을 쓸어내리는 이들이 많았습니다. 물론 동명이인이라도 그런 일이 있어선 안 되겠지만요. 그러나 상황은 다시 반전됐습니다. 경찰 쪽의 착오였고, 실종자는 신 전 사무관이 맞았습니다.
-그런데 뒤이어 심지어 신 전 사무관으로 추정되는 사체가 발견됐다는 소문까지 돌았습니다. 경찰 쪽에서 현재 대학동 개천 인근에서 '쑥고개'라는 지명으로 넘어가는 곳을 수색 중이라는 정보를 준 직후였는데, 잠시 후 쑥고개 근처에서 시신이 발견됐고, 신 전 사무관이 맞는지 확인 중이라는 소식이 메신저 등을 통해 각 취재진에게 전해졌습니다. 너무나도 충격적인 소식이었기 때문에 취재진도 이번엔 일단 사실 여부 확인에 나섰는데요, 다행히 10분도 안 돼서 봉천동 한 모텔에서 신 전 사무관이 발견됐고, 생명에 지장이 없다는 소식이 경찰들로부터 전해졌습니다.
-잘못된 소식보다도 더 큰 문제는 많은 언론의 팩트체크 없는 무분별한 보도였습니다. 처음 동명이인이라는 잘못된 소식이 전해진 직후 여러 언론이 앞다퉈 속보로 해당 내용을 다뤘고요, 이외에도 확인되지 않은 관련 정보들이 메신저 등을 통해 돌 때마다 그걸 확인하지 않고 그대로 보도하는 언론들이 많았습니다.
-저희도 분명 주의해야 할 부분인 것 같습니다. 가짜뉴스, 확인되지 않은 정보들이 너무나도 쉽게 확산하는 것 같습니다. 신 전 사무관 폭로 건이 앞으로 어떻게 흘러갈지 좀 더 지켜봐야 할 것 같습니다.
지난해 마지막 날이었던 31일 국회 운영위에 출석해 야당 의원들의 질의를 받고 있는 청와대 임종석 비서실장과 조국 민정수석. /이새롬 기자 |
◆국회 운영위 참석한 임종석·조국, '정치인'과 '학자'의 차이
-지난해 마지막 날 자유한국당의 강력한 요구로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과 조국 민정수석이 국회 운영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했죠. 15시간가량 여야의 공방을 벌이며 결국, 해를 넘겼는데 현장 분위기는 어땠나요?
-'변죽만 울렸다', '결정적 한 방 없었다'. 오죽했으면 유력 보수매체에서도 이번 운영위를 이렇게 평가했습니다. 실제 네 차례 정회하며 장시간 회의가 진행됐는데, 고성·호통만 난무하고 별 소득은 없었습니다. 한국당의 공격은 대부분 이미 언론을 통해 나왔던 김태우 전 특감반원의 주장을 되풀이하는 선에서 그쳤고, 새로운 공격은 근거가 빈약해 역풍을 맞기도 했습니다. 회의를 지켜보던 취재진 사이에서도 "답답하다"는 말과 함께 한숨이 자주 나왔습니다.
-중간에 회의장을 떠난 의원도 있었다고요?
-윤소하 정의당 의원이 먼저 자리를 떴습니다. 윤 의원은 온종일 비슷한 말만 되풀이되고, 민주당과 한국당 의원들이 고성까지 주고받으며 다투자 답답한 표정과 함께 한숨을 자주 내쉬었습니다. 그러다 오후 7시께 이철희 민주당 의원과 질의 순서까지 바꾸며 짧게 마지막 발언을 한 뒤 회의장을 나갔습니다. 그의 마지막 발언은 "지금도 75m 굴뚝 상공에 노동자 두 분이 있다. 목포로 지금 가야 한다"고 시작해 "이번을 계기로 문재인 정부가 다시 한번 혁신을 다듬는 계기가 되길, 우리 모두 송구영신 하십시다"로 마무리됐습니다(웃음).
지난달 31일 장시간 이어진 질의에 지친 기색이 보이는 임종석 비서실장, 조국 민정수석. /이새롬 기자 |
-임 실장과 조 수석의 차이를 보여주는 일도 있었다고요?
-임 실장은 국회의원 출신에 서울시 정무부시장까지 지낸 운동권 출신 '정치인'입니다. 반면 조 수석은 서울대 법과대학 교수로 재직하다, 문재인 정부가 출범하며 청와대에 입성한 전형적 '법학자'입니다. 이 차이는 운영위에 임하는 표정, 태도 등에서 여실히 드러났습니다. 당시 한국당 의원들은 언성을 높이며 질문을 쏟아내고, 임 실장과 조 수석이 답변을 하려면 말을 못 하게 막거나 호통을 치기도 했는데요. 이런 자리가 불편했는지 조 수석은 제대로 말도 못 하고 추궁 받을 때 얼굴이 붉어지기도 했습니다.
-또, 조 수석은 정회 때 바로 자리를 박차고 나갔습니다. 하지만 임 실장은 달랐습니다. 이런 분위기에 익숙한 듯 타이밍을 잘 잡아서 본인이 할 말도 적절히 하고, 조 수석에게 질의가 집중되면 "의원님, 제가 답해도 되겠습니까"라며 그를 보호하기도 했습니다. 특히 점심 식사를 위한 정회 때는 한국당 소속 운영위 위원들에게 다가가 일일이 악수하며 밝은 표정으로 인사와 짧은 대화를 나누기도 해 노련한 정치인의 풍모를 보였습니다.
-두 사람 모두에게 불편한 자리였을 텐데, 정치인과 비정치인 출신이라는 점이 이런 차이를 만들어낸 낸 것 같네요. 정쟁과 고성이 일상인 우리 정치의 현실을 보여주는 것 같아 씁쓸하기도 합니다.
지난 3일 오전 0시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이 구속 384일 만에 석방됐다. 우 전 수석이 구치소를 나오자 한 지지자가 대형 안개꽃을 전하는 모습. / 임영무 기자 |
◆384일 만에 석방된 우병우, 대형 '안개꽃' 받은 사연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이 지난 3일 오전 0시에 구속기간 만료로 석방됐습니다. 석방 현장에서 우 전 수석이 선물을 하나 받았다고 하던데, 무엇입니까?
-네, 우 전 수석은 1심에서 총 4년의 징역을 선고받은 상황이지만, 구속기간 만료로 이날 석방됐습니다. 최종 결과는 3심 결과까지 지켜봐야 할 것 같습니다. 일단 우 전 수석은 불구속 상태로 재판을 받게 됐습니다. 우 전 수석의 석방 소식에 서울구치소 앞에는 일찌감치 박근혜 전 대통령을 지지하는 극보수 지지자들. 일명 '태극기 부대'가 몰려들었습니다. 이들은 손에 '애국열사 우병우 전 민정수석의 석방을 환영합니다'라는 문구가 적힌 피켓을 들고 "우병우 힘내라", "조국, 임종석을 감방에 보내야 한다" 계속해서 외쳤습니다. 또 한 여성은 우 전 수석을 위해 대형 안개꽃을 준비해 전하기도 했습니다.
-안개꽃의 꽃말은 '슬픔', '사랑의 성공', '약속', '간절한 마음', '깨끗한 마음' 등입니다. 아마도 우 전 수석의 수감 생활, 또 앞으로의 재판 과정 등을 애도하고 또 응원하기 위한 의도였던 것 같습니다. 재밌는 것은 문재인 대통령도 지지자들에게 안개꽃 선물을 받은 적이 있다는 것입니다. 문 대통령은 앞서 지난 2013년 11월 민주당 의원이던 시절 '2007년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폐기 의혹'과 관련 참고인 신분으로 검찰 조사를 받았습니다. 그때 지지자들은 출석하는 문 의원에게 안개꽃 다발을 건넨 바 있습니다.
우병우 전 민정수석은 이날 취재진의 질문엔 아무런 답도 하지 않은 채 지지자가 준 꽃다발을 들고 차에 올라 급히 떠났다. 3일 우 전 수석이 꽃다발을 들고 차로 이동하던 당시. /임영무 기자 |
-그렇군요. 상황은 다르지만 자신이 지지하는 자에 대한 사람들의 마음은 다 같나 봅니다. 우 전 수석이 꽃다발을 받았나요?
-네, 받았습니다. 우 전 수석은 나오면서 '심경이 어떻냐' 등 취재진 질문엔 답하지 않은 채 지나쳤습니다. 그러나 안개꽃 다발이 불쑥 들어오니 깜짝 놀라면서 받는 듯한 모습이었습니다. 제가 볼 땐 조금 마지못해 받는 것 같기도 했습니다(웃음).
-극보수 지지자들의 열렬한 지지가 어쩌면 우 전 수석에게도 조금은 당황스러웠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어쨌든 우 전 수석 재판은 앞으로 어떻게 진행될지도 한번 주목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새해입니다. 올해는 정치권에서 안 좋은 소식보단 좋은 소식들만 들리면 좋겠습니다. 경제도 어렵고, 살아가기는 퍽퍽하기만 합니다. 부디 정말 '사람이 먼저'되고 국민들이 행복한 기해년 됐으면 좋겠습니다. 독자 여러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방담 참석 기자 = 이철영 팀장, 허주열 기자, 신진환 기자, 이원석 기자, 박재우 기자, 임현경 기자, 문혜현 기자(이상 정치플러스팀), 임영무 기자, 이새롬 기자, 배정한 기자, 이덕인 기자, 임세준 기자(이상 사진영상기획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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