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인터뷰] '총선 준비' 노승일 "최순실 부역 수치, 국민께 봉사 결심"
입력: 2019.01.01 05:00 / 수정: 2019.01.01 05:00
K스포츠재단 내부고발자로서 국정농단 폭로에 앞장선 노승일 씨는 지난달 27일 <더팩트>와 단독 인터뷰에서 최순실 부역이 낯부끄러워 국민께 봉사할 수밖에 없다면서 2020년 총선에 출마할 뜻을 밝혔다./광주=이선화 기자
K스포츠재단 내부고발자로서 국정농단 폭로에 앞장선 노승일 씨는 지난달 27일 <더팩트>와 단독 인터뷰에서 "최순실 부역이 낯부끄러워 국민께 봉사할 수밖에 없다"면서 2020년 총선에 출마할 뜻을 밝혔다./광주=이선화 기자

"한국 정치 '카르텔' 바꾸기 위해 무소속으로라도 2020년 출마"

[더팩트ㅣ광주광역시=임현경·문혜현 기자] "이랬거나 저랬거나 제가 최순실에게 부역한 건 맞잖아요. 그 부분은 굉장히 낯부끄럽게 생각합니다. 앞으로는 국민께 봉사할 수밖에 없습니다." 한파 탓에 벌겋게 얼어버린 그의 얼굴이 "국민들께 큰 빚을 졌다"는 말과 함께 더욱더 붉게 물들었다.

지난달 27일 광주광역시에서 <더팩트>와 만난 노승일(42) 전 K스포츠재단 부장은 너무도 쉽게 '최순실 부역자'라는 일각의 낙인을 인정했다. 그러면서 국민에게 진 빚을 갚기 위해 국민만을 바라보며 2020년에는 국회의원 총선을 통해 정치권에 입문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그는 지난 2016년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즉 '국정농단'이 불거졌던 당시 K스포츠재단 내부 문건을 유출하고 '최순실 태블릿 PC'의 존재를 증언하는 등 청문회와 수사 과정 등에 적극적으로 협조해 주목받았던 인물이다. <더팩트>는 이날 오후부터 늦은 밤까지 '최순실 부역자'에서 '최순실 저격수'로 돌아선 노 씨를 단독 인터뷰했다. 국정농단 폭로 당시의 심정과 새 삶은 어떤지, 앞으로의 계획은 무엇인지, 왜 정치를 하려 하는지 등을 그의 입을 통해 들어봤다.

현재 그가 터를 잡은 곳은 광주광역시다. 그는 지난 7월 돌연 고향인 서울을 떠나 광주광역시로 터전을 옮겼다. 아내의 외가가 광주에 있기 때문이다. "아내가 류머티즘성 관절염을 앓고 있는데 손 마디마디에 변형이 온 상황이에요. 아이는 25개월이라 한창 뛰어놀 때인데 돌보기가 힘들고, 어딘가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상황이라, 아내가 가장 편하게 생각하는 이모님들 곁으로 온 겁니다."

직업을 잃고 대출도 받기 어려운 그가 전 재산 5000만 원으로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았다. 결국, 노 씨는 잠시 가족과 떨어져 홀로 광주에 왔다. '먹고 살길'을 위해 고깃집을 차렸고, 작은 원룸을 얻었다. 그는 낮에는 아내와 아이가 함께 살 집을 짓고, 밤에는 식당을 운영하며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허허벌판에서 차가운 겨울바람을 맞으며 건축 자재를 옮긴 그의 얼굴은 내내 벌겋게 얼어있었다. 노 씨는 몸이 채 녹기도 전에 가게로 이동해 고기를 굽고 불판을 날랐다.

노 씨가 처한 상황은 막막하게만 보였다. 겨우 기초작업이 끝난 공사 현장에 노동 인력이라고는 노 씨와 처남 둘뿐이었고, 자금 사정이 여의치 않아 공사에 필요한 최소한의 자재를 구매하는 것도 어려운 상황이었다. 그가 앞서 도전했던 두 개의 프로젝트, '대한청소년체육회'와 '국민재산되찾기운동본부' 또한 위태롭기는 마찬가지였다. 각각에서 이사장과 운영위원을 맡고 있는 그는 하나같이 "어렵다"고만 답했다.

그는 "대한청소년체육회는 국정농단 청문회 당시 새누리당(현 자유한국당) 이완영 의원이 저를 명예훼손으로 고소했을 때 국민들이 모아준 소송비용 1억 3700만 원으로 설립한 곳"이라며 "제가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배드민턴을 전공으로 했던 만큼, 체육에 관심과 소질이 있지만, 돈이 없어 운동하지 못하는 아이들을 돕자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현재 이 단체는 노 씨가 따로 노동해서 자금을 마련하지 않는 한 운영이 어려운 상황이라고 했다. 국민재산되찾기운동본부 또한 "국민재산을 찾는 게 그렇게 쉽지만은 않다. 빼돌린 사람들이 얼마나 머리가 좋았겠느냐"며 "힘을 가진 것도 아니고 수사권도 없기 때문에 국민들의 제보에 기댈 수밖에 없는데 많은 어려움이 있다"고 말했다.

노 씨는 낮에는 집을 짓고 밤에는 본인이 운영하는 가게에서 손님들을 맞는다. 노 씨가 지난달 27일 오후 돈신과 의리 가게에서 고기를 굽고 있는 모습. 벽 한편에는 노승일 삼행시가 붙어있다. /광주=이선화 기자
노 씨는 낮에는 집을 짓고 밤에는 본인이 운영하는 가게에서 손님들을 맞는다. 노 씨가 지난달 27일 오후 '돈신과 의리' 가게에서 고기를 굽고 있는 모습. 벽 한편에는 '노승일' 삼행시가 붙어있다. /광주=이선화 기자

노 씨에게 '스스로 국정농단의 수혜자 또는 피해자 중 어디에 속한다고 생각하는지'를 물었다. 그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당당한 목소리로 답했다. "둘 다 아닙니다. 길을 가다 바닥에 떨어진 지갑을 주우면 가까운 파출소에 가져다주는 게 맞는 것처럼, 국민 한 사람의 의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걸 가지고 대단한 사람이 되어야겠다든가, 다른 생각은 한 번도 가져본 적이 없어요."

어려운 생계 구제를 위한 내부고발자 보호 관련 제도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럴 자격이 없다는 것이다. 노 씨는 "어쨌든 저는 최순실에게 부역한 사람이고, 국민의 세금을 받아 보호를 받는 건 아닌 것 같았다. 바라지 않았다"며 "국민권익위원회에 관련 보호 제도가 있다는 걸 알고는 있었지만, 신청조차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노 씨는 "최순실 옆에 있으면서 눈 밖에만 나지 않았다면 많은 부를 쌓았을 것"이라면서도 "고민이나 후회는 없었다"고 했다.

"K스포츠재단에서 일할 때 제 연봉이 6300만 원이었는데 보너스까지 받으면 7000만 원 정도 됐어요. 지금의 삶보다 훨씬 안정적이었죠. 그래도 제 개인적인 이득을 취하는 것보다는 국민 대다수가 이익을 취하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 이토록 눈앞이 캄캄한 상황에서도 노 씨는 긍정을 잃지 않았다.

노 씨의 다음 도전은 2020년에 있을 21대 총선에 출마하는 것이다. <더팩트> 취재진과 인터뷰 중 웃는 노 씨. /광주=이선화 기자
노 씨의 다음 도전은 '2020년에 있을 21대 총선에 출마하는 것'이다. <더팩트> 취재진과 인터뷰 중 웃는 노 씨. /광주=이선화 기자

'무한도전'을 거듭하는 그의 다음 도전은 '2020년 총선 출마'다. "총선에 당선된다면 봉사로써 국민들께 진 빚을 평생 갚아나가겠다"는 것이다.

취재진이 "국정농단을 계기로 마음이 동한 것이냐"고 묻자 노 씨는 "1997년 한국체육대학교 총학생회장 선거에 출마, 당선됐을 때부터 꿈꿔왔던 일"이라고 선을 그었다. 그는 "처음 서울중앙지검에 출석하기 전날, '이제 정치의 꿈을 접어야 하나', '최순실 부역자로 낙인이 찍히면 어쩌나', '돌이나 안 던지면 다행이다' 등 많은 생각을 했다"며 "그때 모든 정치의 꿈을 내려놨는데, 국정농단이 마무리되는 과정에서 국민들이 저를 바라봐주시는 시선이 제가 우려했던 것과는 정반대라는 것을 깨달았다"고 했다.

"꿈은 한번 도전해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노 씨는 당선을 목표로 출마하는 것이 아니라고 했다. 그는 "지금 어느 정당에서 연락이 오는 것은 아니지만, 도전인데 뭐 꼭 정당이 필요한가"라며 "무소속이라도 도전할 것"이라 강조했다. 취재진의 머릿속에는 당장 공사에 필요한 자재를 사지 못해서 완공일이 무기한 연기된 폐가가 스쳐 지나갔다. 노 씨에게 '선거 자금은 어떻게 충당할 것이냐'고 묻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자금 문제는 그렇게 심각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특유의 웃음을 지어 보였다.

"한체대 총학 선거 당시 집에서 가져온 200만 원이 전부였습니다. 학교에 각종 종목에서 메달을 획득한 학생들이 많잖아요. 그래서 메달 획득을 축하하고 버려지는 현수막도 굉장히 많았어요. 그걸 검은색 페인트로 다 칠한 다음에 다시 흰색 페인트로 글씨를 썼어요. 재활용을 통해 현수막 비용을 제로(0)화시킨 겁니다. 총장님이 '우리 학교가 무슨 상갓집이냐'고 하셨을 정도였어요(웃음)."

노 씨는 공사를 하면서도 이 자재는 선거에서 이렇게 사용해볼까라는 상상을 하곤 한다고 말했다. 노 씨가 광주 광산동에 위치한 달빛동맹 보금자리 프로젝트 공사장에서 자재를 옮기고 있는 모습. /광주=이선화 기자
노 씨는 "공사를 하면서도 '이 자재는 선거에서 이렇게 사용해볼까'라는 상상을 하곤 한다"고 말했다. 노 씨가 광주 광산동에 위치한 '달빛동맹 보금자리 프로젝트' 공사장에서 자재를 옮기고 있는 모습. /광주=이선화 기자

노 씨는 그때와 지금이 다르지 않다고 믿었다. 그는 "공사를 하면서도 어떤 자재가 나오면 '이건 선거에서 이렇게 이용하면 어떨까? 저렇게 사용하면 어떨까? 이런 상상을 많이 한다. 남들은 트럭 타고 다닐 때 나는 농촌에 사니까 경운기를 타고 다니면 어떨까도 생각한다"라며 총선 출마에 대한 강한 의지를 내비쳤다.

그는 "재활용할 수 있는 건 재활용하고, 몸소 뛸 수 있는 건 몸소 뛰고, 그렇게 당선까지 된다면 정말 아름다운 결말일 것"이라며 "유세차량 대여 비용이 거의 1억 원 가까이 되는데, 막대한 선거 비용을 어떻게 효과적으로 탈피할 수 있을지도 도전 과제"라고 덧붙였다.

이어 "유세차량 대신 현수막과 간단한 음향장비를 가지고 '문화 공연'을 펼치거나, 휴대용 빔프로젝터를 사용해 PPT 연설을 하며 제가 왜 당선이 돼야 하는지, 또 당선되지 않더라도 우리 지역은 이런 현안이 필요하다는 걸 보여준다면 성공을 거둔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제 목표는 최저 비용으로, 지금까지의 선거운동과는 다른, 돈이 없는 사람도 누구나 꿈을 도전할 수 있게 하는 하나의 모델이 될 수 있게끔 만들고 싶다"고 강조했다.

노 씨는 2020년 총선 출마를 통해 정치라는 오랜 꿈을 펼치고자 한다. 노 씨의 가게 유리창에는 대한민국이 국민이며 국민이 대한민국이다라는 글씨가 적혀있다. /광주=이선화 기자
노 씨는 2020년 총선 출마를 통해 정치라는 오랜 꿈을 펼치고자 한다. 노 씨의 가게 유리창에는 '대한민국이 국민이며 국민이 대한민국이다'라는 글씨가 적혀있다. /광주=이선화 기자

총선에 출마하겠다는 마음을 굳혔다는 것이 느껴졌다. 하지만 정치판이 어떤 곳인가. 그러나 그는 "망설여서 후회하기보다는 도전해보고 결과를 받아들이는 것이 더 낫다고 믿는다"고 역설했다.

노 씨에게 그의 꿈, 정치란 무엇일까. 그는 "무조건 첫째, 둘째, 셋째도 국민만 바라보는 것이 정치"라고 했다. 노 씨는 "정치란 국민이 선출해주는 사람이기 때문에 국민을 대변하고 대표해서 봉사하는 것"이라며 "국민 대다수 의견과 소수의견을 정확히 알고 접목하는 것이지, 어떤 지역이나 본인의 이익, 진영의 이권 다툼에 의해 하는 것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그는 "지금 한국 정치는 카르텔 안에 딱 들어와 있어, 그들이 이야기하는 기득권층만 진입할 수 있다"며 "정치는 대한민국 국민이면 누구나 참여·출마할 수 있지만, 그들(정치인)은 '그들만이 하는 것이 정치'라는 인식을 만든다. 그런 것들이 바뀌어야 한다"고 정치권을 비판했다. "대한민국의 주인은 국민이라는 걸 다들 알잖아요. 하지만 정치를 하면 저기 높은 사람이 먼저고 제일 낮은 사람이 국민이라고 생각해요. 저는 그게 가장 불만입니다."

"광주 지역에서 도움을 많이 받았기 때문에, 다시 광주 시민들에게 보답을 해야죠. 더 크게 나아가서는 국민들이 절 살려준 거나 마찬가지잖아요. 국민들이 촛불을 들지 않았다면 박근혜 전 대통령은 탄핵당하지 않았을 것이고, 국정농단 폭로는 어느 한 사람의 메아리에 그쳤을 겁니다. 빚을 진 제가 국민들에게 보답하는 길은 실질적으로 국민께 무엇을 해줄 수 있는, 들어줄 수 있는 위치에 서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인터뷰를 하는 동안에도 지나가는 곳마다 동네 주민들이 그에게 반가운 인사와 함께 응원의 말들을 건넸다. 여러 시행착오와 실패 사이에 선 그가 좌절하지 않는 이유를 알 것도 같았다. 모두가 어리석다고 생각했던, '국정농단 폭로'라는 도전에서 성공(?)을 거둔 그의 다음 도전 결과를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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