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순실 씨의 국정농단 사태의 진실을 폭로한 노승일 전 K스포츠재단 부장은 2년이 지난 현재 광주광역시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했다. 낮에는 자신이 꿈꾸던 집을 짓고, 밤이면 고기를 구우며 미래를 설계 중이다. 지난 27일 <더팩트>와 만난 노 씨가 고기를 굽는 모습. /광주광역시=이선화 기자

세상의 이목을 집중시키던 사람이 마치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세간의 관심에서 잊히는 일들이 많습니다. 한때 뉴스를 뜨겁게 달구던 그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을까. <더팩트>는 논쟁의 중심에 섰던 인물이나 이슈메이커의 '이슈 그 후' 상황을 '지금 그는?'이란 코너를 통해 다각도로 조명합니다. <편집자 주>

광주서 새 삶 시작한 '고깃집 사장님', "최순실 비리 폭로, 어떤 고민도 없었다"

[더팩트｜광주광역시=임현경·문혜현 기자] 세월의 조화인가. 국회 청문회장에서 국정농단과 최순실 씨의 비리를 고발하던 날카로운 모습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2년 전 차디찬 광화문 광장을 뜨겁게 달궜던 촛불혁명의 정신이 조금씩 퇴색되고 있다는 말이 나오고 있는 2018년 세밑이다.

'최순실 저격수'로 총대를 멘 노승일(43) 씨는 어떻게 살고 있을까. 궁금증을 안고 찾아 나선 길에서 그는 세월의 흐름과 함께 몰라보게 변한 모습으로 광주광역시에서 새 삶을 살고 있었다. 희끗희끗한 머리에 넉넉한 옷차림, 한 겨울에 집을 짓는 공사를 하느라 붉게 달아오른 얼굴로 사람 좋은 미소로 <더팩트> 취재진을 맞이하며 '단독 인터뷰'에 나섰다.

노승일 씨는 기업들의 모금 창구로 이용한 최순실 씨의 K스포츠재단 실무 부장으로 국정농단 사실이 불거졌을 당시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핵심 내부고발자로 깊숙이 감춰진 사실을 밝히는 데 크게 기여했다. 개인적 불이익을 감수하고 수차례 재판과 청문회, 언론에 나서 권력형 비리를 폭로하는 데 앞장 서 많은 오해와 위협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꿋꿋이 자신의 소신을 밝혀 많은 이의 주목을 받았다. 2015년 8월 코어스포츠를 통해 정유라(최순실 씨의 딸) 씨 지원 내용을 담은 문서, 최순실 씨와 나눈 카카오톡 메시지와 녹음 내용 등을 모아 국회와 검찰에 넘기기도 했다.

국정농단 사태 이후 K스포츠재단 이사장의 압박과 최 씨로부터 생명의 위협을 느끼던 그는 지난 7월 광주광역시로 떠났다. 아내의 외가 사람들이 살고 있던 그곳은 일련의 사태로 불안했던 그에게 따뜻함과 함께 친근하게 다가왔다고 한다.

지난 27일 <더팩트>는 노 씨가 보금자리 마련을 위해 일하고 있다는 광주광역시 광산구 임곡동 공사 현장을 찾았다. 인적이 드문 작은 마을 안에 위치한 꽤 넓어 보이는 주택 부지는 기초공사를 끝낸 상태였다.

매서운 겨울 바람이 부는 날 동료와 함께 무거운 목재를 옮기고 있던 그는 완전히 딴사람처럼 보였다. 목장갑을 끼고 작업복을 입은 채 한창 자재를 옮기는 모습은 '순박한 시골 사람'에 가까웠다. 노 씨는 공사 진행 상황에 관해 묻자 "자재 값이 모자라 더는 집을 지을 수 없게 됐다" 며 "대출을 알아볼 것"이라고 어려운 사정을 설명했다.

노 씨는 폐가를 손수 수리하고 있다. 이른바 '달빛동맹 달빛하우스'는 누구나 자유롭게 들를 수 있는 공간이라고 한다./광주=이선화 기자

넉넉하지 않은 경제 사정을 설명하면서도 구김살이 없다. 광주 취재를 나설 때까지만 해도 어려운 취재가 되지 않을까 예상했던 취재진의 걱정은 기우에 불과했다. 국정농단 사태 당시의 진지하고 매서운 인상, 중년의 단정한 셔츠와 코트 차림, 정장을 입고 나와 도시적인 이미지를 풍겼던 모습을 보며 까다로운 편은 아닐까, 다소 공격적인 질문에 민감하게 반응하진 않을까 하는 우려는 금세 바람 속으로 사라졌다. 첫인상과 달리 호탕하고 긍정적인 성격으로 특유의 친화력을 뿜어내며 자신의 이야기를 가감없이 풀어 놓는 노승일 씨. '월세', '대출' 등 생계의 어려움을 말할 때에도 그늘 한 번 드리우는 적이 없었다.

그는 취재진에게 처음 광주에 내려온 때를 회상하며 이야기를 이어갔다. 지난 7월 수중에 있던 5000만 원을 들고 내려온 그는 쉽게 살 곳을 찾지 못했다. 노 씨는 "전세도 못 얻고, 월세는 다달이 내는 금액이 부담이고, 빌라를 구하자니 층간소음이 걸렸다. 성장하는 아이에게 뛰지 말라고 하는 것은 부모로서 가학적인 행위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폐가를 알아봤다"고 했다.

결국, 노 씨가 산 집은 11년 동안 사람이 살지 않았던 집으로 이곳저곳 수리가 필요한 상태였다. 다른 집을 구매하기엔 가계대출이 어려운 상황이었던 그는 주변 사람들의 조언과 권유로 폐가를 수리해 살기로 마음먹었다.

노 씨는 대구의 '달구벌'과 광주의 '빛고을'을 합쳐 '달빛동맹'이라는 집을 짓고 있다./광주=이선화 기자

그는 대구에 있는 권상보 '시간과 공간' 이사장으로부터 철거한 다른 건물의 기와와 목재를 얻었고, 지역 자원봉사자들의 도움으로 목재를 광주까지 옮겨와 공사를 재개했다. 그렇게 대구의 '달구벌', 광주의 '빛고을'이 합쳐져 '달빛동맹'이 탄생했다.

노 씨는 "이 보금자리 달빛하우스는 나뿐만이 아니라 국민들을 위한 보금자리로 활용할 예정"이라며 "사람들이 오면 식사나 차를 함께하고, 가족들과 주무실 수 있게 하고 싶다"고 소망을 밝혔다.

외롭지 않느냐고 물었다. 류마티스 관절염으로 몸이 아픈 아내와 25개월 밖에 안 된 아이가 멀리 떨어진 서울에서 지내고 있기 때문이었다. "괜찮다"는 답이 돌아왔다. 아내는 2주에 한 번, 혹은 '궁금할 때' 내려온다고 한다. 광주시 광산구에 문을 연 지 4개월 째 된 고깃집 '돈신과 의리'는 365일 연중무휴를 목표로 운영되고 있어 그는 매일 분주할 수밖에 없다. 낮엔 공사, 밤엔 가게 운영을 병행해 힘들지 않느냐 질문에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한다는 마음뿐이다. 뭐라도 열심히 해야 겠다는 생각으로 일한다"면서 "그래서 오히려 적적하지 않은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연신 "괜찮다"를 반복하며 "워낙 성격이 낙천적이지 않느냐"라고 자신의 성격을 인정하기도 했다. 그는 "시간 되면 할 일을 한다. 바빠서 그런지 어떤 생각을 할 여유가 없다"며 호탕하게 웃어넘겼다.

노승일 씨(오른쪽)는 <더팩트> 취재진과 단독 인터뷰에서 K스포츠 재단 부장 당시 상당한 연봉을 받았을 때보다 현재에 더 만족하는 삶을 살며 미래를 위해 앞으로 나아가는 중이라며 밝게 웃고 있다./광주=이선화 기자

해가 저문 광주광역시 광산구 하남동의 '돈신과 의리'에서 다시 만난 노 씨는 영락없는 '사장님'이 되어 있었다. 평소 '꼭 한번 해보고 싶었던' 고깃집을 운영하는 그는 단골손님을 맞아 이야기를 나누고 필요한 것을 챙겨다 주고 있었다.

도타울 돈(敦), 믿을 신(信). '두터운 믿음과 의리'라는 의미의 돈신과 의리는 재료 선택부터 메뉴 선정, 식기까지 모두 노 씨가 고르고 정했다. 가게를 열게 된 이유에 대해 그는 "지인들이 '앞으로 먹고살 게 중요하지 않겠느냐, 광주에 고깃집을 차려볼 생각이 없나'라고 제안했었고, 자신도 고깃집을 해보면 좋겠다고 여겨 시작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천장이 높고 널찍한 가게 내부는 송년회를 맞아 단체 회식을 진행하는 손님들로 북적였다. 대부분 중장년층이었던 손님들은 노 씨와 친근하게 인사를 나누고, 새로운 사람을 소개하는 등 가게에는 활기가 넘쳤다. 가게 한쪽 벽면에는 '노 : 노력하고 신의가 있는, 승 : 승승장구보다, 일 : 일로써 승리하겠다'라는 내용의 팬이 보내준 삼행시가 게시돼 있었다.

노승일 씨의 음식점 '돈신과 의리' 내부에는 노승일 이름으로 된 삼행시와 함께 '대한민국이 국민이며 국민이 대한민국이다'는 글이 유리에 적혀 있다./광주=이선화 기자

그 옆에는 손님들이 포스트잇을 붙일 수 있게 했다. '노승일 당신에게 큰 빚을 지었습니다. 너무 죄송합니다. 감사합니다'라는 응원의 메시지가 붙어 있었다. 가게 전면 유리 벽엔 '대한민국이 국민이고, 국민이 대한민국이다'라는 노 씨의 사인이 적혀 있어 '노승일다운' 분위기를 만들었다.

광주 광산구 하남동의 식당들은 밤 10시가 되면 다 문을 닫는다. 노 씨는 "가게 주인이 먼저 10시면 손님을 내보낸다. 그래서 저는 손님이 끊길 때까지 장사하기로 했다"며 웃었다. 유독 밝고 유쾌한 성격 탓인지 그는 취재진과 식사하는 내내 손님들의 부름으로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다.

지난 2016년 12월 22일 노승일 K스포츠재단 부장이 열린 박근혜 정부의 최순실 등 민간인에 의한 국정농단 의혹사건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 5차 청문회에서 우병우 전 민정수석에 앞에 두고 증언하던 모습. /더팩트DB

노 씨의 인생을 바꾼 국정농단 사태가 밝혀지지 않았다면, K스포츠재단에서 계속 일을 했다면 지금 그의 삶은 어땠을까. 만약 내부고발자가 되지 않았다면 지금과 같은 몸 고생할 일은 없지 않았을까. 그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했다. 그는 내부고발에 대한 국민적 지지와 관련해서도 "이걸 가지고 대단한 사람이 되어야겠다든가, 다른 생각은 한 번도 가져본 적이 없다"고 했다.

그는 "어쨌든 저는 최순실에게 부역한 사람이고, 국민의 세금을 받아 보호를 받는 건 아닌 것 같았다. 바라지 않았다"고 말했다.

노 씨는 "K스포츠 재단 부장 연봉이 6300만 원 이었다. 명절 상여금까지 하면 7000만 원 정도다. 그때가 지금의 삶보다 더욱 안정적이었지만, (폭로에 대한) 아무런 고민도 하지 않았다"며 "제 개인적인 이득을 취하는 것보다는 국민 대다수가 이익을 취하는 게 낫지 않나. 국정농단은 유언비어가 아니라 실체였다. 진실을 밝히는 것이어서 거기에만 집중했다"고 담담히 말했다.

노 씨가 손님이 떠난 자리를 정리하고 있는 모습./광주=이선화 기자

서울 영등포구 태생의 젊은 증권가 회사원이었던 노 씨는 국정농단 사태의 중심에서 최 씨의 비리를 고발했다. 안정적인 삶을 뒤로하고 광주로 내려온 그의 거칠어진 모습은 당시와 많이 달라졌지만, 달빛 하우스, 돈신과 의리와 잘 어우러졌다.

노 씨는 최 씨의 사업을 돕는 일을 하다, 그의 비리를 세상에 알리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최 씨가 만든 코어스포츠의 부장으로 일하면서 코어스포츠의 계약 실무를 맡았다. 계약이 성사되자마자 해고된 그는 최 씨의 권력형 비리를 고발할 자료를 모았다. 이후 다시 K스포츠재단에 들어가 자료를 모으던 노 씨는 2016년 10월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터지자 검찰에 그동안 모았던 자료를 모두 넘기면서 파란만장한 인생의 행로를 자초했다. 광주로 삶의 터전을 옮긴 뒤 제2의 인생을 꿈꾸고 있는 노승일 전 부장, 그는 아직도 차가운 겨울을 보내고 있지만 미래에 대한 희망은 차고 넘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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