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F초점] 이별에도 '안전' 우려하는 사회…"엄중한 처벌 필요"
입력: 2018.12.17 05:00 / 수정: 2018.12.17 05:00
친밀한 관계에 의한 살인, 살인미수 사건이 잇따라 발생하고 있다. 여성폭력방지기본법등 법적 보호 근거가 마련되고 있지만 충분하지 못하다는 지적이 나온다./뉴시스
친밀한 관계에 의한 살인, 살인미수 사건이 잇따라 발생하고 있다. '여성폭력방지기본법'등 법적 보호 근거가 마련되고 있지만 충분하지 못하다는 지적이 나온다./뉴시스

이수정 교수 "친밀한 파트너 폭력, 형사 사건으로 다뤄져야"

[더팩트|문혜현 기자] 안전이별. 국립국어원 우리말샘에는 이 단어를 '물리적·정신적 폭력을 당하지 않고 사귀던 사람과 헤어지는 일'로 설명하고 있다. 최근 헤어진 연인 등 친밀한 관계에 의한 폭력과 살인 사건이 급등하며 생겨난 신조어인 셈이다.

사단법인 한국여성의전화가 언론보도를 분석해 지난 4월 발표한 '2017 분노의 게이지' 보고서에는 친밀한 관계에 있는 여성을 살해하거나 살해 위협을 가한 가해자들이 밝힌 범행 동기를 ▲좋아해서 ▲잘 만나주지 않아서 ▲헤어지자고 해서 ▲청혼을 거부해서 ▲동거를 거절해서 ▲다른 여자관계를 추궁해서 ▲데이트 비용을 돌려받기 위해 등 21가지로 설명했다.

최근 잇달아 발생한 '부산 일가족 살인 사건', '등촌동 주차장 살인 사건' 등은 모두 친밀한 관계에 있는(배우자 혹은 연인) 남성이 여성 또는 여성의 가족을 살해한 충격적인 사건으로 세간을 떠들썩하게 했다. '이별을 말했다'는 이유로 가해자들은 피해 여성을 계획적으로 살해했다. 지난 10일엔 한 50대 남성이 헤어진 옛 연인을 '과거에 바람을 피웠다'고 의심해 차로 들이받아 살해하려 했다.

분노의 게이지 보고서가 밝힌 지난해 언론에 보도된 친밀한 관계의 남성에 의한 폭력 피해자 중 남성에 의해 살해된 여성은 최소 85명, 살인미수 등으로 '살아남은' 여성은 103명이다. 또한, '부산 일가족 살인사건'과 같이 피해 여성의 자녀나 부모, 친구 등 주변인이 중상을 입거나 생명을 잃은 경우도 55명에 달했다.

이를 한해 기준으로 환산하면 1.9일 간격으로 1명의 여성이 남편이나 애인 등 친밀한 관계에 있는 남성에 의해 살해되거나 살해될 위험에 처해 있는 것으로 주변인까지 포함할 경우 1.5일에 1명이 같은 위험에 처하고 있는 상황이다.

피해자를 관계에 따라 분류한 결과를 보면 살인과 살인미수 모두 데이트 관계인 경우가 배우자 관계인 경우보다 많았다. 피해자 연령은 총 188명 중 40대가 46명(24% )으로 가장 많았고 50대, 20대가 각각 38명(20%), 33명(18%)으로 뒤를 이었다.

가해자가 진술하는 범행 동기에 따른 피해자 현황을 보면 피해 여성이 '이혼이나 결별을 요구하거나 가해자의 재결합 및 만남 요구를 거부해서'가 66명으로 가장 많았다. 이어 '화가 나서 우발적으로' 범행을 저질렀다는 경우가 43명, '다른 남성과의 관계에 대한 의심 등 이를 문제 삼아서'가 24명, '자신을 무시해서'가 16명으로 나타났다.

보고서에 따르면 보도에 범행 동기에 대한 언급이 없었던 경우의 대부부은 가해자가 피해자 살해 후 자살해 범행 동기를 파악하지 못하는 경우였다. 여성이 살해된 사건에선 '화가 나서 우발적으로' 범행을 저질렀다는 경우가 대부분을 차지했다.

문제는 이러한 범죄가 갈수록 늘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 9년 간 친밀한 관계에 있는 남성에 의해 최소 824명의 여성이 살해됐고, 602명의 여성이 살해될 위험에 처했다. 2009년 77건이던 피해자 수는 지난해 188건으로 두 배 이상 증가했다.

보고서는 "젠더에 기반한 폭력은 여성을 규제하고 소비·소유하고, 지배할 권리를 남성이 가지고 있다고 믿고, 이를 위반했을 때 폭력으로 제압하며, 공포 조성을 통해 기존의 불평등한 젠더 질서를 유지하려는 의도를 가진 정치적이고 의식적인 행동"이라고 분석했다.

이어 다수 언론에서 사건 경위로 보도되는 '바람피워서', '가정불화로'라는 등의 표현 자체에 '피해자 비난 요소'가 숨어있다며 "피해 여성 개인에게서 폭력의 원인을 찾아왔던 역사를 끝내야 한다. 가해자들이 말하는 여성에 대한 폭력의 이유들에 대해 '그것은 변명조차 될 수 없다'고 분명하게 말하고 책임을 묻는 사회를 원한다"고 강조했다.

정춘숙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친밀한 관계에 의한 폭력은 기본적인 통계 조차 없다며 체계적인 시스템 구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페이스북
정춘숙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친밀한 관계에 의한 폭력은 기본적인 통계 조차 없다"며 체계적인 시스템 구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페이스북

올해 국정감사에서 같은 내용을 지적한 정춘숙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비슷한 의견을 보였다. 정 의원은 <더팩트>와의 통화에서 "가해자들이 밝히는 범행 동기는 대부분 '이유'로서 성립하지 못하고, '헤어지자'고 했다는 이유로 위해를 가한다는 건 상대방을 동등하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정 의원은 이어 "가해자들의 내면적인 범행 동기는 파워 앤 컨트롤"이라며 "본인 맘대로 하고 싶고, 통제되지 않다 보니 때리고, 죽이려 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또한 그는 "국가는 여성폭력의 실체를 모른다"며 "여성의 전화가 낸 통계 이외에 친밀한 관계에 있는 여성을 살해한 범죄 피해자에 대한 기본적인 통계조차 생산하지 않고 있다. 경찰청에서도 관련 분야에는 손을 놓고 있는 상황이라고 볼 수 있다"고 꼬집었다.

다행히 지난 7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여성폭력방지기본법안'은 여성폭력 피해자가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의 책임 아래 정당한 보호를 받을 법적 근거를 마련했다. 정 의원이 대표발의한 이 법안은 여성폭력을 가정폭력, 성폭력, 성매매, 성희롱, 지속적 괴롭힘 행위, 친밀한 관계에 의한 폭력, 정보통신망을 이용한 폭력 등으로 규정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이뿐만 아니라 수사나 재판 과정에서 겪는 사후 피해, 집단 따돌림, 사용자로부터 당하는 불이익을 2차 피해로 정의하고 있어 사후 피해를 줄일 수 있게 됐다.

하지만 아직 갈길은 멀다.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더팩트>와의 통화에서 "폭력적인 전력이 있는 사람들과 집착, 이별에 대한 불안감으로 상대를 의심하고 추궁하는 관계에서 발생하는 살인을 막을 보다 더 엄중한 처벌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이러한 "친밀한 파트너 폭력(Intimate Partner Violence)이 그 어떤 강도 사건보다 덜하지 않다고 본다"며 "형사 사건 차원에서 다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가정폭력처벌법에 여전히 반의사불벌죄가 있는 나라에서 친밀한 파트너 폭력이 줄어들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보기도 했다. 반의사불벌죄는 피해자가 가해자의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는 의사를 표시하면 처벌할 수 없는 범죄로 우리나라 가정폭력처벌법은 이에 해당한다.

이 교수는 "반의사불벌죄는 힘 센 가해자에 의해 합의를 종용해서 고소를 취하하게 만드는 경로"라며 "피해자에게 고소를 취하해 달라고 협박하고 위협해 피해자가 몰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moone@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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