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F초점] '국가폭력' 암울한 과거에 갇힌 피해자들의 외침
입력: 2018.12.12 05:00 / 수정: 2018.12.12 05:00

아직도 수십년 전 당했던 국가폭력 후유증에서 헤어나오지 못한 피해자들이 11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진상규명과 명예회복 등을 위해 아픈 기억을 끄집어냈다. 사진은 이날 오후 2시 의원회관 제2간담회실에서 형제복지원 노숙농성 400일 긴급토론회가 열리고 있는 모습. /국회=허주열 기자
아직도 수십년 전 당했던 국가폭력 후유증에서 헤어나오지 못한 피해자들이 11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진상규명과 명예회복 등을 위해 아픈 기억을 끄집어냈다. 사진은 이날 오후 2시 의원회관 제2간담회실에서 '형제복지원 노숙농성 400일' 긴급토론회가 열리고 있는 모습. /국회=허주열 기자

국회서 멈춘 피해구제법…치유되지 않는 '고통의 역사'

[더팩트ㅣ국회=허주열 기자] '한국전쟁', '서산개척단', '선감학원', '형제복지원' 등 국가가 국민을 상대로 자행한 폭력 사건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수십년 전 있었던 이 사건의 피해자와 유족들은 아직도 과거의 시간대에 갇혀 고통 받고 있다.

이유도 모르고 끌려가 오랜 기간 강제노동, 폭력, 굶주림에 시달린 이들이 11일 국회 의원회관에 모였다. 진상규명, 명예회복, 배상과 같은 피해구제가 전무한 상황에서 이제라도 구제가 이뤄질 수 있도록 아픈 기억까지 다시 끄집어내며 관련 법 통과를 호소했다.

이날 오후 2시 의원회관 제2간담회실에는 강창일, 소병훈, 홍익표(더불어민주당), 추혜선(정의당) 의원과 국가폭력 피해자와 유족 80여명이 모인 가운데 '형제복지원 노숙농성 400일' 긴급토론회가 열렸다. 형제복지원 피해 생존자인 한종선, 최승우 씨의 목숨을 건 국회 앞 농성이 1년을 넘어가자 더 늦기 전에 해법을 마련해야 한다며 일부 의원과 피해자들이 모인 것이다.

◆국회서 뭉친 국가폭력 피해자들

강창일 의원(민주당 역사와정의특별위원회 위원장)은 이 자리에서 "드러나지 않은 진실이 세월의 흐름에 묻혀 신음하고 있다. 진상규명을 요구하며 국회 앞에서 노숙농성을 시작한 지 400일이 된 형제복지원 피해자들은 이러한 진실의 단면을 보여준다"며 "(피해자에 대한) 진상규명이 먼저이고 이후 명예복 국가의 배·보상도 이뤄져야 한다. 이달 중 임시국회가 열리면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기본법'(이하 진화위법) 개정안을 통과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형제복지원 사건 진상규명 운동'은 지난 2013년 19대 국회, 2016년 20대 국회 때 진선미 의원 등이 발의한 '형제복지원사건진상규명을위한특별법'(가칭) 발의를 계기로 한국사회의 당면한 과제가 됐다.

하지만 지금까지 가시적 성과는 전무하다. 19대 국회 때는 진화위법 등 13개 법안이 발의됐지만 제대로 논의조차 못하고 폐기됐고 20대 국회에서도 관련법 7개 법안이 국회에 제출됐지만 국회 상임위 법안심사소위 조차 통과하지 못했다.

지난해 국회와 정부가 형제복지원, 선감학원, 성지원, 서산개척단 사건 등 수용소 사건이 많아 개별 사건에 대한 특별법이 아닌 진화위법 개정 통해 진실규명을 하자고 합의했지만 성과 없는 지지부진한 논의만 이어지고 있다.

이와 관련 홍익표 의원(행정안전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장)은 "지난 정기국회에서 행안위 법안심사소위에서 논의할 예정이었지만 야당의 보이콧 등으로 물리적으로 다룰 시간이 없었다"며 "아직 야당으로부터 확답을 받지는 못했지만 이달 17~19일 법안소위를 열고 과거사법을 중점적으로 논의하자고 제안했고 재정에 필요한 부분에 대해선 정부와 의견을 조율하고 있다. 연내 최종 합의와 국회 논의가 진척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두 의원은 국회에서 관련 법 통과를 위해 노력하겠으니 노숙농성은 이제 그만해 달라고 한목소리로 요청했으나 피해자들과 시민단체의 반응은 냉담했다.

토론회 사회를 진행한 안경호 4.9통일평화재단 사무국장은 "20대 국회 전반기에 수차례 법안소위에서 논의가 있었지만 진척된 게 없다"며 "국가폭력 피해자의 고통을 멈추기 위해선 천막을 걷는 게 우선이 아니라 가능한 빨리 관련법을 통과시켜 제2의 과거사진상조사위원회를 운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에 추혜선 의원은 "죄송한 마음이 앞선다. 연세도 많은 분들을 너무 고생시키는 것 같아 아리다"며 "모든 역사적 피해자들이 굴곡의 역사에 대한 트라우마를 이기고 따뜻한 봄날 같은 일상을 보내며 위로 받았으면 좋겠다. 관련법이 통과되는 기쁨을 다 같이 나눴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후 토론회는 한종선 형제복지원 피해생존자, 김광호 한국전쟁유족회 비상대책위원장, 정영철 서산개척단진상규명대책위원회 위원장, 김영배 선감학원 피해생존자 모임 회장 등의 수용소에서의 끔찍했던 생활에 대한 증언이 이어졌다. 이들은 발언 말미 한목소리로 진실화해위원회 재가동을 위한 진화위법 개정을 촉구했다.

국가폭력 피해자들이 11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토론회에서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기본법 개정안 통과를 촉구하는 결의문을 낭독하고 있다. /허주열 기자
국가폭력 피해자들이 11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토론회에서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기본법 개정안 통과를 촉구하는 결의문을 낭독하고 있다. /허주열 기자

◆얼어붙은 정국, 연내 통과 미지수

하지만 이들의 요구에 올해 안에 국회가 답할지는 미지수다. 거대 양당인 민주당과 자유한국당이 야 3당을 제외한 공조로 예산안을 통과시킨 후 정국은 얼어붙은 상태다.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와 이정미 정의당 대표는 선거제도 개혁을 요구하며 6일째 단식을 이어가고 있고 한국당은 이날 원내대표 경선으로 지도부가 교체됐다.

안 사무국장은 "오늘 이 자리에서 국가폭력 피해자분들이 모여서 의견을 전하고 활동을 공유했지만 진화위법 개정까지는 여전히 힘든 과정이 남아 있다"며 "소위, 행안위, 법사위, 국회 본회의 통과라는 험난한 과정이 남았는데 앞으로도 피해자들이 힘을 모아 법안 통과를 위해 함께 싸워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토론회 끝까지 남아있던 추 의원실 관계자는 "추 의원이 계속 행안위 소속 의원들을 만나 설득하고 있지만 현실적으로 연내 통과가 가능할지는 모르겠다"며 "지난해 겨울 노숙농성하는 분들이 굉장히 고생했는데 올 겨울에는 농성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가실 수 있도록 법안 통과를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한편 역사정의실천연대 과거사특위, 형제복지원사건진상규명을위한 대채귀원회 등은 다음달 다시 한 번 국가폭력 피해자 증언대회와 토론회를 열고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전하는 자리를 가질 예정이다.

sense83@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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