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 취재진은 3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남산 방문설의 실체를 확인하기 위해 직접 남산으로 향했다. 남산 팔각정에서 쉬고 있는 시민들 모습. /남산=임현경 기자 |
김정은 北 국무위원장 '남산 방문설'을 따라가보니
[더팩트ㅣ남산=박재우·임현경 기자]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서울 답방 가능성이 3일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뜨겁게 달궜다. 김 위원장의 서울 답방 장소까지 특정됐다. 서울을 한눈에 볼 수 있는 '남산'이다.
"정말 앞이 안 보이네." 물안개가 짙게 깔린 이날 취재진은 '김정은 위원장의 남산 방문설'을 파악하기 위해 남산을 찾았다.
'김 위원장 서울 답방'의 시작은 지난달 30일(현지시간) 문재인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아르헨티나 G20 정상회의 한미 정상회담에서 김 위원장의 답방을 "한반도 평화정착을 위한 추가적인 모멘텀이 될 것"이라고 평가하면서다.
이후 곳곳에서 김 위원장이 곧 서울 땅을 밟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왔다. 문 대통령도 뉴질랜드로 향하는 공군 1호기에서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김 위원장이 연내 답방할지는 아직 알 수 없다. 김 위원장의 결단에 달린 문제다"고 했다. 일각에서는 이미 N서울타워(남산타워) 고층 식당과 워커힐 호텔이 김 위원장을 위해 오는 13일~14일 예약을 비워뒀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취재진은 3일 확인차 N서울타워 측에 연락을 해봤지만 '통화량이 많아 연결이 어렵다'는 자동응답메시지가 들릴 뿐이었다. 이날따라 유독 타워 예약 문의가 쇄도하는 걸까. 간격을 두고 재차 전화를 걸어봤지만, 마찬가지였다. 의도적으로 전화를 피하고 있거나 어떤 문제가 발생했을지도 모른다는 의문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결국, 취재진은 부랴부랴 짐을 챙겨 남산으로 향했다.
남산에서 케이블카를 빼놓을 순 없었다. 두 정상이 케이블카를 타고 서울 전경을 내려다보는 모습이 눈앞에 그려졌다. 그러나 막상 케이블카 탑승장에 도착하니 자욱한 안개 탓에 한치 앞도 보이지 않았다. 다행히도 케이블카는 정상적으로 운행했다. 탑승객들을 위한 대기 공간 한쪽에는 '우리는 한겨레'라는 제목의 그림이 눈에 띈다. 무궁화가 피어오른 한반도는 군사분계선 없이 하나된 모습이었다.
남산 케이블카 탑승 대기실에는 '우리는 한겨레'라는 제목의 그림이 걸려있다. /박재우 기자 |
케이블카에 오르자 비구름 사이 오색으로 물든 단풍 숲이 보였다. 고층 빌딩과 도로, 주택들도 눈에 들어왔다. 마침내 도착한 N서울타워 전망대 입구는 날씨 때문인지 한산했다. 가장 먼저 안내데스크를 찾아 '왜 전화를 받지 않았는지' 물었다. 관계자는 "저희가 밤샘 작업을 좀 해서 그것 때문에 전화가 제대로 안 될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어떤 공사가 진행된 것이냐'고 질문하니 "안전점검을 살짝 했는데 정전된 부분이 있었다"는 답이 돌아왔다. 고층 식당 역시 통신장애로 인해 예약을 위해서는 인터넷을 이용하거나 직접 방문해야 한다는 것이다.
전망대 내부에 들어가 다시금 '불통'의 원인을 추적했다. 한 직원은 "지금 전화선에 문제가 생겨 매장 전화가 전부 연결되지 않는다"며 "식당 예약을 원하신다면 직원 개인 번호로 연락을 드리겠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달 24일 KT 아현지사에서 발생한 화재가 불러온 정전이냐'는 취재진에 물음에, "전혀 상관 없는 일"이라고 선을 그었다.
N서울타워 전망대로 올라가기 위해서는 의외로 삼엄한(?) 경비를 통과해야 했다. 전망대 입구에서 보안요원이 금속탐지기를 들고 있는 모습. /임현경 기자 |
그때 건물 내에서 화재경보음이 울렸다. '오작동'을 알리는 안내 방송이 나왔지만, 경보음은 약 15분 동안 끊이지 않았다. 안전요원에게 오작동 이유를 물었지만, 그는 "YTN에서 관리하는 것이기 때문에 저희는 모른다"고 했다. 그는 "최근 들어 오작동이 종종 발생했다"고 부연했다. 단순히 안개 때문에 이러한 통신 장애와 경보기 오작동이 발생한 것이라면 타워 시설장비에 대한 대대적인 점검과 개선이 필요한 듯 보였다.
취채진은 직원을 통해 고층 식당 예약 담당자의 개인 번호를 안내받았다. 예약 담당자는 취재진과의 통화에서 "(12월) 14일은 단체예약건으로 예약이 다 만료됐다"고 했다. 취재진이 '어떤 단체가 예약했는지 알 수 있느냐'고 하자 잠시 침묵이 이어지더니 아까와 다른 목소리가 전화를 넘겨 받았다. 그는 "이런 건 저희쪽에 물어보셔도 개인정보보호법상 알려드릴 수 있는 범위가 아니"라며 "어떤 것도 말씀드릴 수가 없다"고 강조했다.
뚜렷한 윤곽을 잡지 못하고 돌아가는 취재진의 눈에 들어온 것은 전망대 유리창에 적힌 '평양', 두 글자였다. 전망대를 내려와 보이는 파란색 표지판도 남산이 평양과 196km 거리에 있음을 알리고 있었다. 북한과 이곳의 거리는 그리 멀지 않았다.
남산과 평양은 불과 196km 떨어져 있었다. '평양' 거리가 적힌 남산 전망대 앞 이정표. /임현경 기자 |
시민들은 김 위원장의 답방을 어떻게 느끼고 있을까. 잠시 정자에서 휴식을 취하던 60대 남성 무리는 "좋은 것들을 많이 보여줘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그들은 "서울 야경도 보고, 경복궁 정비해 놓은 것도 보고 그러면 좋을 것이다", "김여정이 여기 와서 KTX를 타고 탄복했다고 한다. 그런 걸 더 보고 시대가 바뀌었으면 좋겠다", "우리가 국민학교(초등학교) 때 김일성 화형식 하던 세대인데도, 이젠 북한에 한번 가볼 수 있는 시대가 왔으면 좋겠다" 등 김 위원장의 서울 방문 소식에 고무적인 반응을 보였다.
그러나 부정적인 시선도 존재했다. 한 20대 여성은 "애초에 통일을 반대하는 편이라 김 위원장이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경상도에 거주한다는 40대 남성은 "사실 반대한다. 너무 퍼준다고 생각한다. 평화가 올지도 모르는데. 그래서 저희 또래는 (대북 정책을) 별로 안 좋아한다"고 했다. 한 N서울타워 직원 역시 "근무가 빡셀(힘들) 것 같다. (김 위원장이) 무슨 생각으로 왜 오는 건지"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김 위원장의 서울 방문을 향한 시민들의 시선은 찬성과 반대 반반으로 나뉘었다. 남산 계단을 내려가고 있는 시민들 모습. /임현경 기자 |
북한을 세 번이나 방문한 자타공인 '북한 전문가' 박지원 민주평화당 의원은 이날 <더팩트>와 통화에서 "N서울타워와 워커힐 호텔 17층을 비워놓았던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김 위원장의 서울 방문에 앞서 북미 고위급회담이 성사돼야 한다는 분석을 내놨다.
박 의원은 "김 위원장의 답방은 빠르면 빠를수록 좋겠지만, 북미고위급 회담이 아직 안갯속에 있다"며 "북미 간에 상당한 대화가 진전된 이후에 답방과 2차 북미정상회담이 이뤄질 것"이라 부연했다. 그의 말처럼, 아직 김 위원장의 서울 답방은 한 치 앞을 보기 어려웠던 이날 날씨와 같이 자욱한 안개 속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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