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의원 지역구에선] 이은재 '겐세이', '강남병' 당구장에서 말하니<상>
입력: 2018.12.03 05:00 / 수정: 2018.12.03 08:51

<더팩트>는 지난달 27일 이은재 자유한국당 의원의 지역구 서울 강남병을 찾았다. 취재진은 특히 지역구 내 한 당구장에 찾아가 이 의원이 상임위에서 사용했던 겐세이라는 용어에 대해 사장님에게 물어봤다. /대치=임현경 기자
<더팩트>는 지난달 27일 이은재 자유한국당 의원의 지역구 서울 강남병을 찾았다. 취재진은 특히 지역구 내 한 당구장에 찾아가 이 의원이 상임위에서 사용했던 '겐세이'라는 용어에 대해 사장님에게 물어봤다. /대치=임현경 기자

여러분의 손으로 직접 뽑은 그 국회의원은 잘하고 있습니까. 2016년 4월 총선을 치른 지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은데 벌써 2020년 21대 총선을 준비할 때가 됐습니다. 하지만 국회는 시간이 가도 여전히 당파싸움에 제 기능을 하지 못 하고 있습니다. 이런 꼴을 보려고 국회의원을 뽑지는 않았는데 말이지요. 우리를 대신해서 정치를 해달라고 했는데 혹시 민심은 외면한 채 자신의 정치만 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으신지요. <더팩트>는 화제와 이슈의 국회의원 지역구를 찾아 '풀뿌리 민심'을 듣는 '그 의원 지역구에선'을 연재합니다. 모든 시민을 만날 수 없겠지만, 다양한 연령대의 남녀 유권자를 만나 '우리 의원님'에 대한 솔직한 마음을 들어보겠습니다. <편집자 주>

당구장 사장님도 "'겐세이'요? 일본어인데 왜 써요" 정색

[더팩트ㅣ대치·도곡·삼성동=이원석·임현경 기자] 이번 목적지는 강남이었다. 앞서 지역구 민심을 알아보겠다며 경기도 광명을 다녀왔던 <더팩트> 취재진은 지난달 27일 서울 강남구병(대치동·도곡동·삼성동)으로 걸음을 옮겼다.

강남병은 2016년 20대 총선 당시 갑과 을로 나뉘었던 강남구 인구가 상한선을 초과함에 따라 신설된 선거구다. 새롭게 태어난 강남병이 선택한 '첫' 국회의원이 바로 이은재 자유한국당(당선 당시 새누리당) 의원이다. 이 의원은 현재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예산조정소위 등에서 활약하고 있다.

"사퇴하세요!" "중간에서 '겐세이(방해)' 놓는 거 아닙니까." "'야지(야유·조롱)'놓고 이런 의원을 퇴출시켜주시기 바랍니다." "국민 혈세로 막 이렇게 '뿜빠이(분배)'해서 이래도 되는 겁니까?”

국회에서 일 열심히 하기로 유명한 이 의원이지만, 유독 잦은 일본어 사용으로 구설에 오르고 있다. 올해 3·1절 직전 "왜 '겐세이'를 놓냐"라는 말을 민주평화당 소속 유성엽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장에게 해 논란의 중심에 선 이 의원은 지난달 7일에도 여야 공방 과정에서 "'야지'를 놓는다"고 해 포털사이트 검색어에 올랐다.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예산안조정소위 위원인 이 의원은 지난달 26일 농촌진흥청의 스마트팜 빅데이터 개발사업을 심의하는 과정에서 또 일본어를 사용했다. "농림식품부와 내용이 거의 비슷합니다. 국민 혈세로 막 이렇게 뿜빠이(여럿이 나누는 것)해서 이래도 되는 겁니까?" 발언 취지는 농림축산식품부의 ICT(정보통신기술) 사업과 농촌진흥청의 사업이 중복된다는 것이었지만, 난데없이 등장한 일어식 표현에 참석자들이 웃음을 보이자 이 의원은 "웃지 말아요!"라고 다그치기도 했다.

이은재 의원은 당에서도 대표적인 공격수로 꼽힌다. 사진은 지난달 18일 서울교통공사의 직원 친인척 정규직 전환과 관련해 규탄 시위를 하기 위해 시청을 찾은 이 의원이 항의하는 모습. /이새롬 기자
이은재 의원은 당에서도 대표적인 '공격수'로 꼽힌다. 사진은 지난달 18일 서울교통공사의 직원 친인척 정규직 전환과 관련해 규탄 시위를 하기 위해 시청을 찾은 이 의원이 항의하는 모습. /이새롬 기자

'겐세이'~'야지'~'뿜빠이'로 이어지는 변종 일본어 사용으로 논란을 일으키고 있는 이 의원에 대한 지역주민들의 반응은 어떨까. 이같은 궁금증을 풀기 위해 취재진이 찾은 이날 강남병 근처는 공교롭게도 미세먼지로 눈이 간지러웠고, 금방이라도 재채기가 날 것처럼 코가 시큰거렸다. 중국발 스모그에 황사까지 덮친 최악의 대기 상황이었다. 아무래도 '그 의원 지역구에선' 기획 취재는 언제나 미세먼지와 함께할 모양이다. 취재진이 '스모그가 심한 날은 휴일로 지정할 수 없을까', '이러다가 병에 걸린다면 산업재해로 인정받을 수 있는 걸까', 따위의 대화를 나누다 보니 어느덧 선릉역(대치동)에 도착했다.

흔히 '강남'하면 고소득층이 거주할 거라는 인식이 있어서일까, 인적이 드문 회색 도시에서 유난히 큼직큼직한 건물들과 그 사이 주차된 고가의 외제차들이 눈에 띄었다. 이 의원 지역 사무실이 위치한 대치동의 아파트 시세를 살펴보면, 1평당 매매가는 5471만 원, 전세가는 2413만 원에 달한다. 서울 전체 평균값(매매 810만 원, 전세 430만 원)에 비하면 거의 6배 정도 되는 상당히 높은 금액이다.

거리는 '여기가 서울 도심이 맞나' 싶을 정도로 한산했다. 빈 건물 곳곳에는 '임대'가 대문짝만하게 쓰인 현수막이 걸려있었다. 먼저 지역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근처 부동산의 문을 두드렸다. 부동산 중개사는 "최근 주변 상가나 사무실 건물의 월세 시세가 계속 내려가고 있다. 임차인 입장에서는 좋겠지만 건물주 입장에서는 많이 안 좋은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직장인들이 많이 찾는다는 근처 당구장을 찾았다. 이 의원이 사용했던 '겐세이'라는 말은 주로 당구장에서 쓰인 용어다. 다만 최근엔 당구장에서도 사용하지 않는 말이라는 '증언'(?)들이 많이 나와 확인해보기로 했다.

한창 회사원들이 일하고 있을 시간이었기에 한산했다. 당구장 사장님은 '당구치러 왔냐'는 눈빛으로 취재진을 반겼다. 대뜸 '그 단어'를 입에 올리려니 망설여졌다. 하지만 어쩌겠나, 에라 모르겠다. 민망한 웃음을 지어보이며 조심스럽게 이 의원의 '겐세이'를 말하며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질문을 하는데, 사장님은 말을 채 마치기도 전에 "'상대방이 집중하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행동'을 말하는데, 요새는 잘 안 쓴다"고 답했다.

대치, 도곡, 삼성동 등 강남 일대는 상당히 한산했다. /임현경 기자
대치, 도곡, 삼성동 등 강남 일대는 상당히 한산했다. /임현경 기자

그는 "옛날 분들만 쓰긴 쓰는데, 그런 (겐세이 같은) 말은 안 써야 한다"며 "당구 용어가 원래 일본어가 많지만, 지금은 다 우리말로 바뀌고 있다. 우리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경우에는 영어를 쓴다"고 설명했다. 이어 "방송 해설자들도 일본어를 잘 안 쓰지 않느냐"며 "쓰는 분들이 있으면 고쳐주려고 노력한다. 이 의원의 말에 실망할 정돈 아니지만, 내가 레슨을 하거나 손님으로 왔다면 고쳐서 가르쳐줄 것"이라 강조했다. 당구장에서도 퇴출되는 말을 국민의 대표인 이 의원은 왜 공개된 장소, 취재진이 집중된 장소에서 사용하는 것일까?

본격적으로 주민들 목소리를 들어보기로 했다. 가장 먼저 대치○동 경로당 문을 두드렸다. "취재를 나왔는데 잠시 실례해도 되겠냐"는 취재진의 말에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어서 들어와 앉으라"는 말이 들려왔다. 이 의원의 이름을 꺼내자 한 어르신은 "이 의원이 며칠 전에 왔다 갔다"고 말했다.

다만, 어르신은 '이 의원에 대한 주민들 평가가 어떠냐'고 묻자 "모른다"며 고개를 저었다. 어르신은 "여기 할머니들 뿐인데 정치 평론하는 사람이 어디있겠냐. 정치인들이 노령 연금 많이 준다고 하면 눈이 번쩍 뜨일지 몰라도 느끼는 거 없다"며 "이 의원이 와서 노령연금을 60만 원으로 올려준다고 하는데 그건 200년 후의 얘기"라고 덧붙였다.

몇 번을 추가로 물었지만 어르신은 역시 "우린 모른다. 좋은 대답 못 해서 미안하다"고 했다. 하는 수 없이 "감사하다. 건강하시라"는 말을 남기며 경로당을 빠져 나와야 했다. 등 뒤로 문이 닫히는데 "문재인 정부가 어떻고, 이은재가 어떻고, 어떻게 말하냐. 정치부 기자들한테 말 함부로 하면 안 된다"고 말하는 대화 소리가 들렸다.

취재진은 삼성·도곡·대치동 일대를 돌며 이은재 의원에 대한 평가를 부탁했으나 명확한 답을 얻기가 쉽지 않았다. 사진은 도곡동 일대 모습./이원석 기자
취재진은 삼성·도곡·대치동 일대를 돌며 이은재 의원에 대한 평가를 부탁했으나 명확한 답을 얻기가 쉽지 않았다. 사진은 도곡동 일대 모습./이원석 기자

원래 지역구 의원에 대한 주민들의 견해를 물을 때 가장 많이 듣는 게 "모른다"는 답이다. 그런데 이날은 유독 더 많았다. 취재진은 대치동, 도곡동, 삼성동 일대를 돌며 지나가는 주민들에게 이 의원에 대한 평가를 부탁했지만, 명확한 답을 듣기가 쉽지 않았다.

"됐습니다", "그런 거 몰라요", "요즘 기자라는 사람이 워낙 많아서", "어디서 나오셨다고요?", "바빠요" 주민들은 '우리 지역구 의원 이야기'에 유난히 말을 아꼈다.

"실례합니다"는 말에 걸음을 멈췄다가 기자라고 소개하자 바로 "바쁘다"며 지나치는 주민도 있었고 처음엔 얘기를 듣다가도 이 의원 이름이 나오니 "죄송하다"며 고개를 돌리는 주민도 있었다.

☞<하>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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