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F현장] '이재명 논란'에 직원들도 속앓이…"어떤 기분 들겠나?"
입력: 2018.11.26 05:00 / 수정: 2018.11.26 05:00
경기도 직원들은 이재명 경기지사를 둘러싼 논란을 입에 올리기조차 꺼렸다. 지난 22일 경기도청 전경. /경기도청=임현경 기자
경기도 직원들은 이재명 경기지사를 둘러싼 논란을 입에 올리기조차 꺼렸다. 지난 22일 경기도청 전경. /경기도청=임현경 기자

거친 이재명 지사와 불안한 직원들과 그걸 지켜보는 취재진

[더팩트ㅣ경기도청=임현경 기자]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전화기 너머로 들려온 목소리는 최저기온이 영하로 뚝 떨어진 날씨보다 더 싸늘했다. 시작이 반이라는데, 오늘 취재도 쉽지는 않아 보였다. 차가운 바람을 맞으며 경기도청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지난 22일 바른미래당이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혜경궁 김씨' 관련 허위사실을 공표했다"며 그를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고발했다. 이미 직권남용 및 공직선거법·정보통신법 위반 혐의를 받는 이 지사에게 또 하나의 혐의가 추가된 것이다.

삼성이 뉴스에 나오면 삼성에 다니고 있는 친구들에게 안부를 묻듯, 경기도 직원들은 이 지사를 둘러싼 일련의 상황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궁금해졌다. 바른미래당의 추가 고발 소식에 바로 경기도청이 있는 경기도 수원으로 향했다.

경기도 직원들은 입을 모아 일이 너무 바쁘다고 말했다. 경기도 직원들이 도청 구관으로 이동하고 있는 모습. /임현경 기자
경기도 직원들은 입을 모아 "일이 너무 바쁘다"고 말했다. 경기도 직원들이 도청 구관으로 이동하고 있는 모습. /임현경 기자

도청 안으로 진입하기 전 분위기를 파악하기 위해 비서실 민원 담당자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 지사를 향한 도민들의 민원은 주로 어떤 내용이냐"고 묻자 "말씀드릴 수 없다"는 답이 돌아왔다. 민원인의 신상이 포함되지 않은 대략적인 내용조차도 알려줄 수 없다고 했다.

"비판도 있겠지만, 이 지사를 응원하는 내용도 있을 것 같다"고 하자 관계자는 "그런 민원이 들어오긴 한다"고 말했다. 재빨리 "하루에 몇 건 정도 들어오냐" 물으며 말꼬리를 이었다. 그러나 "세어보지 않아서 잘 모르겠다"는 칼답(빠른 답)이 맥을 뚝 잘라냈다. 너무 많아서 셀 수 없다는 건지, 워낙 드문 일이라 세지 않은 것인지는 끝내 대답해주지 않았다.

경기도청 직원들은 극도로 말을 아끼는 모습을 보였다. 조심스럽게 말을 걸자 "저희가 뭘 알겠느냐", "말할 게 없다", "할 일이 많다"며 서둘러 자리를 피했다. 근무 중 단비 같은 그들의 휴식 시간을 불편한 이야기로 망쳐버린 것 같아 미안한 마음이 들 정도였다.

"그런 걸 신경 쓸 틈이 어딨겠어요." 한 직원은 일이 너무 바빠 이 지사의 개인적인 일에 관심을 둘 겨를이 없다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과마다 다르겠지만, 일이 너무 많아요. '오늘 아침에 무슨 뉴스가 떴더라' 정도만 잠깐 주고받고 마는 거죠." 그는 다급히 몇 모금 들이마시던 담배꽁초를 눌러 끈 뒤 건물 안으로 사라졌다.

노조 관계자는 공무원은 정치적 중립을 지킬 의무가 있기 때문에 함부로 견해를 밝힐 수 없다고 말했다. 경기도청 전경. /임현경 기자
노조 관계자는 "공무원은 정치적 중립을 지킬 의무가 있기 때문에 함부로 견해를 밝힐 수 없다"고 말했다. 경기도청 전경. /임현경 기자

이 지사는 지난 19일 경기도청에서 '혜경궁 김씨' 트위터 계정주가 아내 김혜경 씨라는 경찰 수사 결과를 정면으로 반박했으며, 이후 꾸준히 자신의 SNS에 누리꾼이 제시한 증거를 게시하고 더 많은 자료를 요청하는 등 적극적인 대응을 펼쳐왔다. 반면 경기도 직원들은 침묵을 지켰다. 이 지사를 적극적으로 옹호하지도, 비난하지도 않았다.

경기도청 공무원노동조합 관계자는 "공무원들은 정치적 중립을 지킬 의무가 있기 때문에 함부로 견해를 밝힐 수 없다"고 했다. 그는 "경찰도 아니고 측근도 아닌 직원들은 뉴스를 통해 볼 수 있는 것 말고는 모른다"며 난색을 표했다.

"동요하고 있다. 그 정도만 말씀드릴 수 있을 것 같다." 이 지사를 추적하겠다는 게 아니라, 직원들의 심경을 듣고 싶은 거라고 몇 번을 강조한 끝에 얻어낸 대답이었다. 그는 "다니고 있는 회사가 뉴스에 나오면 직원들은 어떤 기분이 들겠나. 그 정도일 뿐, 여기도 여느 직장과 다르지 않다"며 이 이상은 '노동 삼권도 보장받지 못하는' 공무원으로서 언급이 어렵다고 했다.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멍하니 서 있는 기자가 안쓰러웠는지, 지켜보던 다른 직원이 툭 던지듯 "자유게시판에 한번 가보라"고 말해줬다. 거기선 다른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 거라고. 서둘러 노트북을 펼쳐들었다. 익명으로 글을 쓸 수 있는 게시판에 들어가 보니, 최신 게시물 중 이 지사를 지칭하는 듯한 글 몇 개가 눈에 들어왔다.

한 직원은 기자에게 자유게시판을 보라고 조언했다. 미미한 숫자였지만 일이 바쁘다는 고충을 보다 솔직하게 확인할 수 있었다. /인터넷 커뮤니티 갈무리
한 직원은 기자에게 "자유게시판을 보라"고 조언했다. 미미한 숫자였지만 '일이 바쁘다'는 고충을 보다 솔직하게 확인할 수 있었다. /인터넷 커뮤니티 갈무리

'지사는 사회적으로 이슈가 될 때마다 도정 운영에 집중하겠다고 하는데, 이러다 사람 잡겠다. 요즘 휴직하는 직원들이 얼마나 많은지 알고 있을까? 직원들 군기 잡고 일이 채여 헐떡이게 만들고…도정에 집중해서 성과 내겠다는데 정말 겁난다.', '이렇게 도정을 혼탁하게 하시는 분이 누구입니까. 제발 그 의혹을 도에 떠넘기지 마세요.'

조회수와 댓글 수 모두 얼마 되지 않았지만, 현장에서 만난 직원들과 공통적으로 '일이 바쁘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업무 강도가 높아짐에 따라 휴직하는 직원이 늘고, 남은 인원이 더 많은 업무를 소화하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는 것이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이 지사를 둘러싼 논란은 모래사장에 모래 한 톨 더해진 것뿐이었다.

최미경 전국공무원노동조합 경기도청지부 사무부장은 "새 지사님이 오신 뒤 공약 사업을 위한 과가 많이 늘어났는데 직원 수는 적으니 너무나 바쁘고 힘든 상황"이라며 "기존 업무는 그대로 있고 공약 처리 업무가 또 따로 있다. 당장 눈앞에 닥친 문제로 바빠서 구설이나 정치인의 개인사는 나중 문제"라고 토로했다.

"어느 날 한 도민이 지사님의 SNS를 보고 사무실로 전화를 주셨다. '공무원들이 얼마나 힘들게 일할지 안 봐도 훤하다'고 말이다." 최 사무부장은 당시를 떠올리며 작게 미소지었다. 도민들의 지지가 묵묵히 일하는 경기도 직원들에게 힘이 됐다는 것이다.

최 사무부장은 "지사님 비서실에 직접 전화드리라고 했더니 '수뇌부가 들어봤자 소용없고, 너무 답답해서 여기에 전화해봤다'고 하시더라"며 "늘 응원하고 있는 도민들이 있다는 걸 알아달라는, 갑작스러운 사랑 고백을 받기도 했다"고 회상했다.

imaro@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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