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태 한국당 의원은 지난달 10일 국회 정무위 국감장에 벵갈고양이를 데려와 논란을 빚었고, 이후 김 의원은 고양이를 의원실에서 키우고 있다고 했지만, 사실과 달랐다. 벵갈고양이가 당시 국정감사장에서 겁먹은 듯 잔뜩 웅크려 있는 모습. /뉴시스 |
김진태, 국감장에 벵갈고양이 데려와 논란…묘연한 고양이의 근황
[더팩트ㅣ국회=임현경 인턴기자] 국정감사장에 나타났던 이색 증인, '벵갈고양이'를 기억하시나요? 김진태 자유한국당 의원은 지난달 10일 정부 세종청사에서 열린 국회 정무위원회 국정감사 자리에 벵갈고양이를 데려와 눈길을 끌었습니다.
김 의원은 당시 "지난 9월 대전동물원을 탈출했다가 사살당한 퓨마 '뽀롱이'가 불쌍하지 않느냐"며, 퓨마를 데려올 수는 없어 그와 비슷한 벵갈고양이를 데려왔다고 했죠. 정부의 과잉 대응을 비판하려 했던 의도와 달리, 비난의 화살은 김 의원에게로 쏟아졌습니다. 영역 동물인 고양이를 낯선 장소에 옮긴 것은 물론, 자칫 눈에 해로울 수 있는 카메라 플래시 세례에 그대로 노출시켰다는 것이죠. 동물 학대를 지적하기 위해 또다른 동물 학대를 저지른 셈이었습니다.
김 의원은 다음 날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벵갈고양이의 근황을 공개하며 논란을 불식시키고자 했습니다. 그는 "제가 어제 국감장에 데리고 갔던 벵갈고양이"라며 "이 아이는 밥도 잘 먹고 잘 지내고 있으니 걱정하지말라"고 말했죠. 그러나 동물권 단체들이 강하게 의혹을 제기한 부분, 즉 '벵갈고양이를 어디서 무슨 명목으로 데려온 것인지', '완전히 입양을 한 것인지 잠시 빌려온 것인지'는 밝히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김 의원의 벵갈고양이 사건은 찜찜함을 남긴 채 모두의 기억 속에서 흐릿해졌습니다.
김 의원은 벵갈고양이 논란이 있은 다음 날인 지난달 11일 페이스북을 통해 고양이의 근황을 공개했을 당시. /김진태 페이스북 갈무리 |
그런 고양이가 다시 떠오른 건 지난 4일 김 의원의 하루를 밀착 취재한 보도 내용을 접한 순간이었습니다. 해당 기사는 "김 의원의 사무실에 들어서자 책상 뒤에 있던 벵갈 고양이가 뛰쳐나와 다른 방으로 건너갔다"는 묘사와 함께 고양이의 근황을 전했습니다. 김 의원은 다음과 같이 말했더군요. "동물을 좋아하는 제가 어떻게 '동물 학대'라는 말까지 듣게 됐는지 모르겠다. 고양이를 사실 돌려보내려고 했는데, 직원이 너무 예쁘다고 해 우리 사무실에서 키우고 있다."
'돌려보내려고 했는데', '직원이 너무 예쁘다고', '우리 사무실에서 키우고 있다' 등의 표현이 마음에 걸렸습니다. 애초에 돌려보낼 곳이 있었는데 직원의 희망에 따라 입양하게 된 것인지, 사무실에서 키운다면 정확히 누가 반려인으로서 돌본다는 것인지…. 그 어떤 것도 분명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김 의원실에 전화를 걸어 직접 묻기로 했습니다.
전화기 너머의 목소리는 "지역(춘천) 사무실 직원이 키우는데, 다른 직원들도 좋아하니까 가끔 사무실에 데려오는 걸로 알고 있다"면서도 "사실 지역 일이라 잘 모른다"고 답했습니다. '처음엔 서울에 있는 분들이 국감장에 데려온 것 아니냐, 어떻게 지역 사무실로 옮겨졌나' 등을 질문했지만 계속 "그쪽(지역 사무실)에 물어보라"는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벵갈고양이는 현재 김 의원의 지역(춘천) 사무실 직원에게 입양된 상태다. 벵갈고양이가 지난달 10일 열린 국정감사에서 철장 째로 속기사석 앞에 놓여있다. /뉴시스 |
이번엔 김 의원의 지역 사무실에 연락을 취해봤습니다. 몇 번의 연결음 끝에 전화를 받는 관계자의 조심스러운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고양이가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궁금하다'고 묻자, "이미 잘 지낸다는 보도가 나갔다"는 '모범 답안'이 나왔습니다. '서울 사무실에서 데려온 고양이가 어떻게 춘천에 있는 직원에게 오게 됐는지 궁금하다'고 재차 물었지만, 그의 대답은 "국감은 저희(지역) 사무실에서 주도한 회의가 아니라서 정확한 경위를 말씀드리기 어렵다"라는 것이었습니다.
'고양이의 반짝이는 두눈을 바라보다가 마음이 움직였다…'하는 감동적인 이야기를 바랐던 것은 아닙니다. 만약 자원해서 고양이를 키우게 된 것이라면, 그 계기와 자세한 입양 과정을 설명했다면 충분했을 것입니다. 만약 한 직원이 논란이 된 고양이를 억지로 떠맡게 된 것이라면 그 또한 문제가 될 일이니까요. 간절한 마음을 담아 마지막으로 물었습니다. "원래는 어디로 돌려주려고 했다든가, 직원이 어떤 계기를 통해 맡아 키우겠다고 했다든가 하는 과정이 있지 않았나요?"
목소리의 주인공은 잠시 생각하는 듯 하더니, "벵갈고양이 이름은 '국화'"라며 "제가 키우고 있고 잘 지내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그는 "그때 의원님 인터뷰가 있어서 사무실에 잠깐 있었던 것이지 '우리 사무실에서 키운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 더 이상을 말씀드리기 어렵다"며 말을 아꼈습니다. 고양이의 근황을 향한 취재는 이렇게 허무하게 마무리된 것이죠. '국화'가 세종정부청사에서 두려움에 벌벌 떨던 기억을 모두 잊고 반려인의 사랑을 듬뿍받으며 지낼 수 있기를 바랄 수 밖에요.
또 다른 김 의원, 김병욱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달 29일 국감장에 살아있는 동물 반입을 금지하는 '벵갈고양이법'을 발의했다. 사진은 김병욱 의원 모습. /김병욱 의원실 제공 |
참, 김 의원 덕에 좋은 일도 생겼습니다. 살아있는 동물을 국정감사는 물론 국회 주요회의에 반입할 수 없게 하는 법안이 발의된 것이죠. 김진태 의원과 같은 정무위 소속 김병욱 민주당 의원은 지난달 29일 이같은 내용을 담은 국회법 개정안, 일명 '벵갈고양이법'을 대표발의했습니다.
김병욱 의원은 "정치적 이벤트를 위해 살아있는 동물을 금속제 우리에 가둬 카메라 플래시에 노출되게 하는 것은 동물 학대와 같다고 생각한다"며 "아무쪼록 법안이 통과돼 국회가 동물에 대한 생명권을 보장하는 기관으로 발돋움 하는 계기를 만들었으면 한다"고 밝혔습니다. 법안이 통과된다면 국감장에서 고통받는 제2, 제3의 벵갈고양이가 생겨나진 않을 겁니다. 아무쪼록 '국화'가 잘 지내고 있기를, 또 앞으로도 건강하기를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