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F기획-사립유치원 파문 왜? <상>] 오랜 문제 방치, '늑장 대응'이 화를 키웠다
입력: 2018.10.31 05:00 / 수정: 2018.10.31 09:58
비리 유치원 논란에는 일찍이 문제를 알고서도 소극적으로 대처한 교육당국의 책임을 배제할 수 없다. 박용진 민주당 의원, 유은혜 교육부장관, 김태년 정책위의장, 박춘란 교육부차관, 조승래 교육위간사(왼쪽부터)가 지난 25일 당정협의에 앞서 대화를 나누고 있다. /국회=이새롬 기자
비리 유치원 논란에는 일찍이 문제를 알고서도 소극적으로 대처한 교육당국의 책임을 배제할 수 없다. 박용진 민주당 의원, 유은혜 교육부장관, 김태년 정책위의장, 박춘란 교육부차관, 조승래 교육위간사(왼쪽부터)가 지난 25일 당정협의에 앞서 대화를 나누고 있다. /국회=이새롬 기자

사립유치원 원장이 교비로 명품백도 모자라 성인용품까지 구입한 사실이 세간에 알려졌다. 이처럼 부당하게 교비를 유용한 사립유치원 명단이 공개되며 파문이 일고 있다. 유치원에 아이를 보낸 부모들은 일부 원장들의 일탈에 큰 충격을 받았고, 한국유치원총연합회는 명단 공개에 항의하며 휴원, 폐원 등의 카드를 다시 꺼내 드는 모양새다. 파문이 확산하자 정부, 교육청, 국회가 부랴부랴 대책 마련에 나섰다. 이번 사립유치원 비리 문제는 그동안 손 놓고 있었던 관계기관이 화를 자초한 성격이 크다는 지적이다. 이에 <더팩트>는 사립유치원 비리 문제와 관련한 정부, 한유총, 국회 등을 통해 문제의 발단과 대안을 총 3회에 걸쳐 살펴본다. <편집자 주>

비리 유치원 논란, 아이 볼모 잡은 어른의 민낯 (feat. 교육당국)

[더팩트ㅣ임현경 인턴기자] "정부는 절대 좌시하지 않을 것이다." 유은혜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지난 25일 '국회 공공성 강화 당정협의'에서 사립유치원의 집단 행동에 대해 이같이 강경한 발언으로 경고했다. 이날 유 장관은 "아이들을 볼모로 궁지에 내모는 행위는 무관용 조치하겠다고 이미 말씀드렸다"며 '무관용 원칙'을 수차례 강조했다.

하지만 유 장관의 서슬 퍼런 발언은 일반 시민들에게조차 관례적 '엄포'로 들리는 듯한 분위기다. 왜일까? 사립유치원의 비리 문제는 비단 최근만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유 장관의 경고는 사전에 문제를 인지하고도 제대로 대처를 하지 않다가 일이 벌어지니까 부랴부랴 처방에 나서는 '사후약방문' 성격을 띠고 있다.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 11일 비리 유치원 명단을 공개하기 이전에도, 사립유치원 관련 제도 개선과 행정명령 개선 요청은 꾸준히 제기돼 왔다. 이미 수십 년간 문제 제기가 있었음에도 정부는 '좌시'해 왔다는 의미다. 당국은 문제를 몰랐던 것이 아니라 알면서도 바로잡지 못했다. 이번 사립유치원 비리 파문과 관련해 '오랜 시간 육아 교육을 민간 영역에 맡겨놓은 채 뒷짐을 지고 있던 탓'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사립유치원 운영 및 회계 투명성에 대한 요구는 박용진 의원의 감사 결과 공개 이전부터 존재했다. 경기도 화성시 동탄지역 사립유치원 학부모들이 지난 21일 사립유치원 비리를 규탄하는 집회를 하고 있다. /이새롬 기자
사립유치원 운영 및 회계 투명성에 대한 요구는 박용진 의원의 감사 결과 공개 이전부터 존재했다. 경기도 화성시 동탄지역 사립유치원 학부모들이 지난 21일 사립유치원 비리를 규탄하는 집회를 하고 있다. /이새롬 기자

◆정부 원인1- 일찍 문제점 인지한 당국, 언제나 “논의 중”

교육부는 지난 18일 "이달 25일부터 사립유치원 감사 결과를 실명으로 공개하고 전수감사를 진행하겠다"고 발표했다. 비리 유치원 명단이 일부 공개된 이후 끓어오른 여론의 분노를 잠재우기 위한 수습책이었다. 이에 따라 전국 17개 시·도교육청은 2013년부터 현재까지의 감사 결과를 실명으로 공개했다.

앞서 시민단체 ‘정치하는 엄마들’은 지난 1년간 정부와 교육청을 상대로 정보공개 청구, 행정 소송을 벌이며 '비리를 저지른 유치원을 파악하고 그곳에 아이를 보내지 않을 권리' 보장을 요구해왔다. 시·도교육청은 지난 7월 이에 대한 유권해석 요청을 통해 '감사 결과를 실명으로 공개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는 답을 얻은 상태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종·울산·전남을 제외한 교육청은 유치원 감사 결과에 대한 '비공개' 방침을 고수했다.

한 교육청 관계자는 이에 대해 "유치원뿐 아니라 사립학교 자체의 문제, 학부모의 '알 권리' 부분을 인지했기에 이전부터 내부적인 논의가 있었다"면서도 "아무런 기준도 없이 정보를 공개할 순 없었기에 개정을 준비 중이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또, "감사 결과 처분사항은 어디든 있게 마련이라서, 단순히 '모두 다 비리다'고 말하기는 어렵다"며 "실명 공개로 인해 내부 고발자 추측, 처분 대상자 특정 등이 발생할 가능성을 고려했던 것"이라 설명했다.

대다수의 교육청이 그간 '납득할 만한 이유'로 감사 결과 실명 공개를 미뤄왔다면, 제도 개선에 앞선 교육부의 공개 방침은 개인정보 노출·지나친 비리 일반화 등 부작용의 위험을 지니고 있다. 반대로 명단 공개에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경우, 교육청은 그간 '아무 이유 없이' 시간만 끈 셈이 된다. 어느 쪽이든 교육 당국이 문제를 인지하고 있으면서도 해결에는 소극적이었다는 사실을 방증한다.

◆정부 원인2- 개인 사업자에게 맡긴 유아 교육…민간 의존도 탈피 답보 상태

정부가 그간 육아 교육문제 해결에 미온적이었던 이유는 애초 유아교육 확대 단계에서 민간 영역에 기댄 탓이 컸다는 지적이 다. '가정 보육의 영역'이었던 유아교육에 정부가 적극적으로 개입한 때는 지난 1981년으로, 당시 전두환 대통령은 국정연설에서 유아교육강화 방침을 발표하고 '유아교육진흥종합계획'을 세웠다. 당시 정부는 취원율을 38%까지 높이겠다는 목표 아래, 교사자격증이 없는 사람도 한시적으로 유치원을 운영할 수 있도록 했다. 전국 사설 학원가 무인가 유치원에 인가증을 내줬고, 회계 운영에도 개입하지 않는 등 각종 규제를 완화했다.

공공 체계를 구축하는 대신 개인 투자에 의존한 것이다. 이에 따라 1980년 861개였던 사립유치원은 1988년 3402개로 대폭 증가했다. 사립유치원 측이 '국가를 위해 애쓴 개인 사업자에게 이제와서 엄격한 잣대를 들이미느냐'고 주장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육아교육진흥종합계획 도입 이후 37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민간 영역에 의존하는 육아 교육의 현주소는 이번 사태를 통해 드러났듯이 변함이 없다. 학교수를 기준으로 할 때, 전국 유치원(올해 기준) 9021곳 중 사립 유치원(4220곳)의 비율은 절반에 약간 못 미친다.

문제는 설립별 학생 비율, 즉 '취원율'이다. 전국 유치원생(올해 기준) 67만 5998명 중 50만 3628명, 74.5%가 사립유치원에 다니고 있다. 국공립 취원율은 25% 정도이며, 지역에 따라서는 20%를 밑도는 곳도 있다. 이는 사립유치원이 유아교육에서 얼마나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지 보여준다.

사립유치원은 운영 방식 특성상 교육 질의 편차가 크며 이로 인한 '쏠림 현상'은 늘 문제시됐다. '모두가 고르게 양질의 교육을 받을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서는 국공립 취원율을 높여야 한다. 당국은 이를 위해 매년 새로운 계획을 세우고 정책을 도입했지만, 최근 10년간 국공립유치원 취원율은 21%에서 25%로, 겨우 4% 상승했을 뿐이다.

정부는 부랴부랴 대책을 내놓았다. 더불어민주당과 교육부는 "문재인 정부의 국정과제인 국공립유치원 (취원율) 40% 조기 달성에 박차를 가하겠다"고 밝혔다. 앞서 목표시한을 2022년으로 설정한 국공립 유치원 증설 계획을 2021년으로 한해 앞당긴 것이다.

당정은 내년 신설 예정 500개 학급 외에 추가로 500개 학급을 더 확보할 예정이며, 법·제도 정비를 통해 부모협동형·매입형·장기임대형 등 다양한 형태의 국공립 유치원을 마련할 계획이다. 계획대로 2021년까지 학급 2600개(약 22만 5000명 수용) 이상을 새로 개설한다면, 현재 25%를 밑도는 국공립 취원율을 40%까지 올릴 수 있다.

한국유치원총연합회를 비롯한 사립유치원 측이 제도 탓을 하는 이유를 돌아볼 필요가 있다. 이덕선 한국유치원총연합회 비상대책위원장이 29일 국회 교육위원회 종합국정감사에 증인으로 참석한 모습. /이덕인 기자
한국유치원총연합회를 비롯한 사립유치원 측이 '제도 탓'을 하는 이유를 돌아볼 필요가 있다. 이덕선 한국유치원총연합회 비상대책위원장이 29일 국회 교육위원회 종합국정감사에 증인으로 참석한 모습. /이덕인 기자

◆정부 원인3-해외에선 '국가적 책임' 인식과도기 맞은 한국 사회

해외의 경우 일찍이 유아 교육을 국가가 책임지는 영역으로 인식하고 이를 위한 제도적 기틀을 다졌다. 영국·프랑스 등 OECD 주요 국가는 만 3~5세 아동을 대상으로 무상 교육체제를 이미 구축했거나 추진 중이다.

영국은 만 5세 아동을 대상으로 100% 의무교육혜택을 제공한다. 프랑스는 유치원 약 85%가 교육비가 무료인 공립유치원이며, 나머지 사립유치원도 국가의 재정 지원을 받는다. 사실상 100% 공교육화가 이뤄졌다 볼 수 있다.

일본은 개인이 설립한 유치원을 대상으로 학교법인화를 유도하며 공적 정체성을 강화했다. 국가의 재정적 지원을 받기 위해서는 설립자가 학교 법인으로 전환하도록 한 것이다. 그 결과 사립유치원이 대다수였던 1970~80년대와 달리, 지금은 법인이 90%를 차지한다.

우리나라는 지난 2012년 법률안 개정과 함께 유아교육의 공공 서비스화가 추진됐다. '누리과정 정책'이 시행된 것이다. 당시 개정된 유아교육법 제24조에는 '초등학교 취학 직전 3년의 유아교육은 무상(無償)으로 실시'하고 '무상으로 실시하는 유아교육에 드는 비용은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가 부담'한다는 규정이 있다.

비리 유치원 파문이 확산하면서 경기도 화성시 동탄지역 사립유치원 학부모들은 비리 근절과 유아교육의 공교육화를 촉구하고 나섰다. 지난 21일 경기 화성시 동탄신도시 센트럴파크에서 사립유치원 비리를 규탄하는 집회 모습. /이새롬 기자
비리 유치원 파문이 확산하면서 경기도 화성시 동탄지역 사립유치원 학부모들은 비리 근절과 유아교육의 공교육화를 촉구하고 나섰다. 지난 21일 경기 화성시 동탄신도시 센트럴파크에서 사립유치원 비리를 규탄하는 집회 모습. /이새롬 기자

국가 재정이 대거 투입되면서 사립 유치원은 '개인이 운영하는 생계형 사업' 이상의 공공성과 투명성을 가져야만 했다. 이에 교육당국은 '사학기관재무회계규칙'을 도입했다.

사립유치원 측은 해당 규칙이 사유재산을 통해 이득을 취하는 소유자의 권리를 침해한다고 주장했다. 1981년부터 31년간 합법적이었던 행위로, 사립 유치원의 반발은 극심했다. 갑작스레 변화한 규칙을 파악하지 못하고 평소대로 운영할 경우 비리 유치원이 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인 것이다. 결국, 사립유치원의 회계 비리는 계속됐고, 정부는 2017년 사학기관재무회계규칙을 개정했다.

그러나 국가관리 회계시스템 '에듀파인'은 현재까지 유치원 별도의 시스템(2020년 차세대 에듀파인에서 구현 예정)도 마련되지 않아 초·중등학교 시스템을 적용해야 하는 상황이다. 이에 정부는 지난 25일 올해부터 실무 연수, 장비 구축 등 준비기간을 거쳐 내년에는 일정 규모 이상 유치원에 대해 국·공립학교에 적용되는 에듀파인을 우선 적용하고 2020년에는 모든 유치원이 에듀파인을 사용하도록 한다는 대책을 내놓았다. 또, 누리과정 지원금은 보조금으로 전환해 교육 외 목적으로 사용하는 경우에 대해 처벌을 강화한다.

유은혜 장관은 30일 정부서울종합청사에서 열린  교육부 한유총 사립유치원 범정부대책회의에서 집단행동 시 감사와 세무조사 등을 관련 부처와 협의할 예정이라고 거듭 경고했다. /정부서울청사=이동률 기자
유은혜 장관은 30일 정부서울종합청사에서 열린 교육부 한유총 사립유치원 범정부대책회의에서 "집단행동 시 감사와 세무조사 등을 관련 부처와 협의할 예정"이라고 거듭 경고했다. /정부서울청사=이동률 기자

유 장관은 30일 범정부대책회의에서도 사립유치원을 향한 강경한 모습을 이어갔다. 유 장관은 "사립유치원이 단체 집단행동을 할 경우 공정거래위원회 차원의 조사에 대해 협의할 예정이며 국세청과는 교육청 감사와 비리신고 조사결과에 대한 세무조사에 대해 협의할 예정"이라고 경고했다.

정부가 강경책을 꺼냈지만, 사립유치원들이 이를 따를지는 미지수다. 강력한 처벌에도 아이를 유치원에 보내야 하는 부모의 현실을 이용한 집단 휴원을 강행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결국엔 이런 사립유치원 혼란은 정부가 민간에 맡겼던 과오에서 비롯한 것은 분명하다는 지적을 피할 수는 없다.

하지만 교육부 관계자는 "교육당국이 여태 손을 놓고 있었던 게 아니다"며 "조금씩 방안을 마련해왔지만, 눈에 보이지 않은 측면이 있지 않았나 싶다"고 설명했다. 기대치를 달성하지는 못했으나 서서히 변화해왔다는 것이다.

이 관계자는 비리 유치원 명단 공개를 계기로 공공성 방안을 급조했다는 우려에 대해서도 "국공립 확대 중장기 계획 마련을 고심하던 차에 박 의원이 명단을 공개했다"며 "이미 여러 요건을 고민하고 검토했기에 사건 이후 빠르게 방안을 만들어낼 수 있었던 것"이라고 못 박았다.

또, "유치원 관계자들이 '정부가 사립유치원에 의존해놓고는 이제 와서 이런 식으로 나서냐'고 주장하는 상황이 이해되기도 한다"면서도 "유치원은 학교"라고 선을 그었다. 그는 "누리과정 지원금을 받으면서 '개인사업체니까' 내 이익을 위해 쓰는 건, 지금 국민들이 받아들이기에는 맞지 않는다"며 "시대가 변화한다면 그걸 받아들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경희 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회 간사는 이러한 사회적 혼란을 두고 "과거 사회 서비스를 양적으로만 확대하려다 보니 민간에 의존한 측면이 있다"며 "지금은 다시 공공의 영역으로 가져오는 과정"이라고 봤다.

그러면서 "앞서 당정이 발표한 방안에는 분명 아쉬운 점이 있다. 다만, 민간 부분에만 맡겨왔던 문제를 해결하는 시작이 될 것이라 기대한다. 이를 계기로 사회서비스 전반의 공공성을 확보하고, 유치원 외 보육 영역 국공립 시설 역시 확충될 수 있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imaro@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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