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진환의 '靑.春'일기] 文대통령과 가을산행, '나도 꼭대기에 서고 싶다'
입력: 2018.10.29 08:15 / 수정: 2018.10.29 08:15

문재인 대통령은 28일 청와대 출입기자들과 취임 후 두 번째로 북악산 산행을 했다. 문 대통령이 북악산 등산객과 즐겁게 인사를 하는 모습. /청와대 제공
문재인 대통령은 28일 청와대 출입기자들과 취임 후 두 번째로 북악산 산행을 했다. 문 대통령이 북악산 등산객과 즐겁게 인사를 하는 모습. /청와대 제공

미리 밝혀둡니다. 이 글은 낙서 내지 끄적임에 가깝습니다. '일기는 집에 가서 쓰라'고 반문한다면 할 말 없습니다. 그런데 왜 쓰냐고요? '청.와.대(靑瓦臺)'. 세 글자에 답이 있습니다. '대통령이 생활하는 저곳, 어떤 곳일까'란 단순한 궁금증에서 출발합니다. 누구나 한 번쯤 생각해보지 않았을까요? '靑.春일기'는 청와대와 '가깝고도 먼' 춘추관에서(春秋館)에서 바라본 청춘기자의 '평범한 시선'입니다. <편집자 주>

청와대 출입기자단 북악산 등반 취재기

[더팩트ㅣ청와대=신진환 기자] 문재인 대통령과 청와대 출입기자들의 산행 일정이 있던 28일 오전 8시 서울에 비가 내렸다. '여차하면 산행 일정이 취소될 수도 있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청와대는 일정을 진행할지에 대해 다시 공지할 것이라고 문자메시지로 고지했다. '산은 보라고 있는 것'이라는 지인의 우스갯소리가 뇌리를 스치는 것도 잠시, 청와대 출입기자로서 모처럼 갖는 행사 진행 여부에 촉각이 곤두섰다.

"산행과 오찬 일정대로 진행합니다." 청와대의 뒤 이은 공지를 보고 다시 마음을 다졌다. 평소 산행을 즐겨 하지는 않지만 대통령과 함께 산에 오르는 기분은 어떨지 설레기도 했다. 흥분된 마음을 추스리고 청와대 춘추관에 도착해 비표를 받고 버스에 오른 뒤 삼청각에서 내렸다. 다행히 비는 그쳤고 날씨가 갰다. 북악산 초입에서 100m쯤 오른 뒤 150여 명의 내외신 기자들이 문 대통령을 기다렸다. 기자들은 옹기종기 모여 이야기꽃을 피웠다. 이때 귓등을 때린 말이 있다. 한 기자는 "아~ 오늘 취소되는 줄 알았는데"라며 아쉬워했다. 주위의 기자들 대부분이 함께 웃었다. 일종의 '동병상련'인가.

오전 11시. 등산화를 신고 환한 웃음을 띤 문 대통령이 모습을 드러냈다. 기자단은 언제 투정을 부렸느냐 듯 함성과 박수로 맞이했다. 문 대통령과 참모진, 기자단은 기념촬영을 한 뒤 본격적인 산행을 시작했다. 워낙 인원이 많았던 터라 문 대통령과 나란히 산에 오르기는 어려웠다. 그만큼 취재 경쟁도 치열했다. 북악산 성곽길을 따라서 줄곧 걸었다. 이마에는 송골송골 땀이 맺혔고 호흡은 가빠졌다. 기자들의 말수도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문 대통령은 북악산 정상 기자간담회에서 기자님들이 비가 오더라도 가야 된다고 적극적으로 주장하신다고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따라나섰네요라고 농담을 던졌다. /청와대 제공
문 대통령은 북악산 정상 기자간담회에서 "기자님들이 비가 오더라도 가야 된다고 적극적으로 주장하신다고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따라나섰네요"라고 농담을 던졌다. /청와대 제공

산행 중 몇차례 길게 늘어선 행렬이 멈출 때가 있었다. 선두에 있는 문 대통령이 시민들과 인사를 나눴기 때문이다. 문 대통령과 조우한 시민들은 뜻밖의 행운을 만났다는 듯 싱글벙글 웃으면서 하산했다. 한 남성 등산객은 "오늘 날을 정말 잘 잡았다"며 기쁜 마음을 숨기지 못했다. 문 대통령은 시민들과 일일이 악수를 하고 '셀카' 요청에 흔쾌히 응했다. 문 대통령의 이러한 모습에 경호원들도 주변을 경계할 뿐 시민들의 접근을 크게 제지하지 않았다. 격의 없이 시민들과 함께 하는 문 대통령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정오 무렵 산 정상에 도착했다. 서울시내 곳곳과 울긋불긋 물든 단풍들이 한눈에 들어왔다. 뿌연 대기가 아쉬웠지만, 서울의 속살을 들여다보는 느낌이 들었다. 선선한 바람이 땀을 식혀줬다. 가을을 만끽할 수 있었다. 문 대통령은 힘든 기색이 없어 보였다. 잠시 국정을 한발 뒤로하고 산에 올라서일까. 만면에 웃음이 가득했다. 이내 마이크를 잡고 산상 기자간담회를 갖은 문 대통령은 좌중을 '빵' 터트리는 말을 남겼다.

"북악산으로 온 것은 제 뜻은 아닙니다. 우리 기자님들이 다 북악산으로 가고 싶다고 한다 해서 선택한 것이고, 오늘도 사실 날씨가 좀 좋지 않아서 '아이고 취소되는가 보다. 잘됐다' 그랬는데, 기자님들이 비가 오더라도 가야 된다고 적극적으로 주장하신다고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따라나섰네요. 오늘 정치적인 이야기는 가급적 안 했으면 좋겠다 싶고요, 저도 기사 될 만한 내용은 별로 말하지 않을 결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문 대통령은 위트를 발휘해 분위기를 더욱 화기애애하게 만들었다. 예상컨데, 히말라야 트래킹에 나설 만큼 등산을 좋아하는 문 대통령이 등산 일정이 취소되길 바라지는 않았을 것이다. 휴일인 일요일 산행을 나선 기자들에 대한 미안함을 숨기기 위해 반어법을 쓴 게 아니냐는 생각이 들었다. 이 역시 인상 깊은 장면으로 기억에 남는다.

평소 등산 마니아로 알려진 문 대통령은 북악산 등반에서도 지친 기색 없이 발걸음을 옮겼고, 뒤따르던 청와대 기자단은 가쁜 숨을 내쉬었다. 문 대통령과 청와대 출입기자단이 북악산을 오르는 모습. / 청와대 제공
평소 등산 마니아로 알려진 문 대통령은 북악산 등반에서도 지친 기색 없이 발걸음을 옮겼고, 뒤따르던 청와대 기자단은 가쁜 숨을 내쉬었다. 문 대통령과 청와대 출입기자단이 북악산을 오르는 모습. / 청와대 제공

"북악산은, 사실은 저는 아시다시피 등산을 좋아하는데, 등산도 등산이지만 장소에 대한 호기심이 아주 많습니다. 설악산, 지리산 그러면 그 꼭대기에 가보고 싶은 거예요. 히말라야 안나푸르나, 에베레스트 이러면 꼭대기에 가보고 싶죠. 꼭대기에 갈 수는 없지만 그래도 일반인이 갈 수 있는 최고 높은 데까지는 가보고 싶은, 꼭 산이 아니더라도 예를 들면 동학농민혁명 기념지에 우금치라든지, 황토현이라든지, 이런 것을 역사에서 배우면 그런 장소에 가보고 싶어요. 북악산도 당연히 청와대 뒷산이니까 보면 위에 올라가 보고 싶은 것이죠."

산을 오르기란 결코 쉽지 않다. 산을 오를수록 힘이 빠지면서 포기하고 싶을 때가 있다. 자신과 싸움에서 이겨 결국에 산 정상에 오르면 그 성취감은 이루 말할 수 없다. 문 대통령은 산 정상에 오르고 싶어 한다고 밝혔는데, 근성이 엿보였다. 문 대통령은 한반도 평화를 위해 민족사적 발걸음을 한 걸음 한 걸음 내딛고 있다. 험로가 예상되지만, 묵묵히 걷다 보면 언젠가 '정상'에 오를 수 있지 않을까.

문 대통령은 이날 출입기자 150여 명과 청와대 경내를 출발해 숙정문과 백악곡성, 청운대를 거쳐 창의문 안내소까지 약 3.3km를 걸었다. 내려오는 길 다리가 후들후들 떨렸다. 근육통이 걱정되지만, 그래도 이 말은 하고 싶다.

'호기심 많은 대통령님, 저도 어디서든 꼭대기에 서고 싶습니다.ㅋ'

shincombi@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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