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진환의 '靑.春일기'] '위장전입' 용인, 서민은 좌절합니다
입력: 2018.10.08 05:00 / 수정: 2018.10.08 05:00
문재인 대통령은 야권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유은혜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을 임명했다. 이를 두고 스스로 세운 기준을 어겼다는 비판이 일었다. 지난 2일 청와대에서 유은혜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에게 임명장을 수여하는 문 대통령. /청와대 제공
문재인 대통령은 야권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유은혜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을 임명했다. 이를 두고 스스로 세운 기준을 어겼다는 비판이 일었다. 지난 2일 청와대에서 유은혜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에게 임명장을 수여하는 문 대통령. /청와대 제공

미리 밝혀둡니다. 이 글은 취재수첩에 담긴 메모에 가깝습니다. 객관적 내용보다 취재 중에 직관적으로 드는 개인적 생각에 가깝습니다. 그런데 왜 쓰냐고요? '청.와.대(靑瓦臺)'. 세 글자에 답이 있습니다. '대통령이 생활하는 저곳, 어떤 곳일까'란 일반 독자의 시각과 궁금증에서 출발합니다. 누구나 한 번쯤 생각해보지 않았을까요? '靑.春일기'는 청와대와 '가깝고도 먼' 춘추관(春秋館)에서 바라본 청춘 기자의 '평범한 시선'입니다. <편집자 주>

文 대통령 '인사 원칙' 무너졌다는 지적 쏟아져

[더팩트ㅣ청와대=신진환 기자] 지난 1일 연차를 내고 부동산 중개업자와 부지런히 새로운 보금자리를 구하려 다녔다. 왕복 4시간 가까이 되는 통근 시간을 버티다 못해 서울에 살 집을 마련하기 위해서 발품을 팔았다. 그런데 서울 영등포구에 있는 실평수 9평짜리 원룸 전셋값이 '억' 소리가 나고, 관리비를 포함한 월세는 감당하기 부담스러울 정도였다. 총 7곳의 방을 둘러봤는데, 모두 그랬다. 높은 현실의 벽에서 '멘탈'이 부서지기 일쑤였다. "더는 방이 없다"는 중개업자를 감사 인사와 함께 돌려보냈다.

이날 다른 부동산 중개업소를 찾았다. 미취학 아동으로 보이는 여자아이 2명과 아이의 어머니로 추측되는 중년 여성이 먼저 와 있었다. 이곳 중개업자는 매물을 소개했다. "A 아파트는 ○○에 ○억○만 원인데요, 방 넓고 깔끔하고, 아이들 학교 가깝고…." 중년 여성이 반응을 보였다. "그 학교, 좋은가요?" 거주지 우선순위가 아이들의 '학교'에 맞춰진 듯했다. 여자아이들은 소파에 비스듬히 기대고 스마트폰으로 무언가를 함께 보고 있었다. '얘들이 자식 잘 가르치겠다는 엄마의 마음을 알려나?'는 생각이 들었다.

이 어머니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최근 인사청문회에 선 고위 공직자 후보자들의 위장전입 논란이 머리를 스쳤다. 사실 예전부터 고위 공직자들의 인사청문회를 볼 때면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다. 맹자의 어머니가 자식의 교육을 위해 세 번씩 이사했다는 뜻의 맹모삼천지교(孟母三遷之敎)가 바로 그것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대개 인사청문 대상인 고위 공직자 후보는 위장 전입으로 곤욕을 치르는데, 투기 목적 또는 자녀의 교육을 위해 위장 전입을 했다는 의혹을 받기 때문이다.

유은혜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도 후보자 시절 장녀의 초등학교 진학을 위해 위장 전입했다는 의혹을 받았다. 앞서 유 장관은 인사청문회에서 수차례 장녀의 초등학교 진학을 위해 위장 전입했다는 의혹에 대해서 "송구하다"며 사과했다. 지난 2일 국회 대정부질문에서는 "제 딸아이가 입학했던 덕수초등학교는 명문 초등학교가 아니었다"며 "당시에 중구 시내에 있었던 이 학교는 초등학교 입학생들이 부족했던 그런 실정이었다"고 설명했다.

유은혜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을 향해 자유한국당은 사퇴와 결정장애 등과 같은 비난과 조롱을 여전히 쏟아내고 있다. 지난 4일 국회린 교육·사회·문화 분야 대정부질문에서 미소를 짓고 있는 유 장관. /문병희 기자
유은혜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을 향해 자유한국당은 '사퇴'와 '결정장애' 등과 같은 비난과 조롱을 여전히 쏟아내고 있다. 지난 4일 국회린 교육·사회·문화 분야 대정부질문에서 미소를 짓고 있는 유 장관. /문병희 기자

일단, 유 장관은 자신의 위장 전입 의혹과 관련해 명문 초등학교에 딸을 진학시키기 위해서가 아니라고 했다. 그런데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자녀를 둔 어머니로서 좋은 교육을 받게 하기 위해 노력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자식이 좋은 환경에서 교육을 받을 수 있다면 이를 마다할 부모가 있을까 싶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약 2300년 전에도 맹자의 어머니가 자식의 교육을 위해 세 번이나 이사를 다녔던 것도 단순한 치맛바람으로 치부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명문 학교냐, 아니냐는 것보다는 유 장관이 위장 전입을 인정했다는 게 핵심 본질이다. 실제 거주하지 않으면서 주민등록상 주소만 바꾸는 것을 말하는 위장 전입은 엄연히 불법이다. 현행 주민등록법에는 위장 전입이 드러났을 경우 3년 이하 징역 또는 3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규정돼 있다. 청와대 청원 게시판에는 유 장관과 관련한 글이 400건에 육박할 정도로 여론이 부정적이었다. 물론 유 장관은 위장 전입만으로 야권의 반대에 부딪힌 것은 아니다. 아들 병역 면제 의혹과 배우자 회사 직원 비서 채용 외에 정치자금 사용 명세를 허위 신고했다는 의혹도 받았다. 교육계에서는 현장 경험이 없다며 우려를 나타내기도 했다.

그런데도 문 대통령은 지난 2일 유 장관의 임명을 강행했다. 이에 앞서 청와대 관계자는 "인사 강행이 아닌, 결격사유가 없다는 판단에 따라 하는 것"이라고 배경을 설명했다. 문재인 정부는 출범하면서 5대 비리 관련자(위장 전입, 병역 기피, 세금 탈루, 부동산·주식 투기, 논문 표절)를 고위 공직에서 배제하겠다고 밝혔는데, 현실은 다르다. 문 대통령은 그만큼 위와 같은 부정행위를 엄중히 생각하고 있다는 것임에도 말이다.

문 대통령은 취임 이후 강경화 외교부 장관과 송영무 전 국방부 장관,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 이효성 방송통신위원장, 홍종학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등을 청문보고서 채택 없이 임명했는데, 홍 장관을 제외한 나머지 4명은 위장 전입 의혹을 받았다. 국민과의 약속과 실천이 다른 셈이다.

위장 전입 등 고위 공직자들의 각종 부정행위를 차악으로 받아들일 지경이라는 국민의 목소리가 나온다. '털어서 먼지 안 나오는 사람'은 없다는 우스갯소리가 있지만, 고위 공직자는 기본적으로 청렴성과 도덕성을 갖춰야 한다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이를 충족시키지 못할 때는 반대 여론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이제는 고위 공직자의 위장 전입 등이 대수롭지 않은, 결격 사유가 아닌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다.

shincombi@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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