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F인턴수첩] 국회 대정부질문 "멀리선 비극, 가까이선 더 비극"(영상)
입력: 2018.10.07 00:00 / 수정: 2018.10.07 00:00
4일 국회 대정부질문 현장은 찰리 채플린이 남긴 삶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지만, 멀리서 보면 희극이다라는 말을 떠오르게 했다. 김성태(왼쪽) 한국당 원내대표와 홍영표 민주당 원내대표가 서로 삿대질을 하며 다투는 모습. /사진=뉴시스
4일 국회 대정부질문 현장은 찰리 채플린이 남긴 "삶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지만, 멀리서 보면 희극이다"라는 말을 떠오르게 했다. 김성태(왼쪽) 한국당 원내대표와 홍영표 민주당 원내대표가 서로 삿대질을 하며 다투는 모습. /사진=뉴시스

국회 대정부질문 현장에서 찰리 채플린을 떠올리다

[더팩트ㅣ국회=임현경 인턴기자] 모든 장면이 방송을 통해 생중계되고 있었지만, 의원들은 부끄러움을 잊은 듯 보였다. "삶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지만, 멀리서 보면 희극이다." 영국 유명 배우 찰리 채플린은 이같이 말했다. 만약 그가 살아서 이날 국회 본회의에 참석했다면 조금 다른 명언을 남겼을지도 모른다. "국회는 멀리서 봐도 비극이지만, 가까이서 보면 더 비극"이라고 말이다.

지난 4일 오전 국회에서는 제364 국회 제9차 본회의가 열렸다. 이날은 논란 속에 임명된 유은혜 신임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의 인사 발언과 교육·사회·문화 분야 대정부질문이 예정된 터라 모두의 촉각이 곤두섰다. 앞서 2일 '청와대 업무추진비 공개' 논란의 주인공인 심재철 자유한국당 의원을 두고 격렬한 대립이 벌어졌기 때문에 더욱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야당, 정확히는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단상에 오르는 족족 유 장관을 호명했다. 교육 정책에 대한 논의는 전무했다. 그저 '당신은 장관을 할 자격이 없으니 물러나라'는 말의 반복이었다. 물론 인사에 대한 검증과 지적은 중요하다. 하지만 도덕성을 운운하며 사퇴를 외치는 이들 역시 위장전입, 음주운전 등과 같은 위법 전력이 있었다. 유 장관을 향해 "그간 위장전입이라 욕했던 의원들을 일일이 찾아가 사과하라" 외쳤던 의원도 있었다. 그의 목소리에서 요점에서 한참 벗어난 '억울함'이 묻어나왔다.

'교육부 장관으로서 그리는 교육의 미래'를 묻는 의원 또한 "저는 전문가가 아니라 잘 모르지만"이라는 전제를 달며 현 교육의 실정을 제대로 알지 못한 채 질책만을 위한 질문을 던졌다. 유 장관이 차기 총선 출마 여부를 직접 입 밖에 내도록 하는 유도 신문도 잦았다. 어떻게든 여지를 두려 하는 유 장관의 방패와 확답을 받으려는 야당의 창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쉼 없이 부딪혔다.

박성중 한국당 의원은 이낙연 국무총리에게 미스터 션샤인의 을사오적과 같은 무술오적이라 말했다. 이 총리가 박 의원의 질의에 답하는 모습. /임현경 인턴기자
박성중 한국당 의원은 이낙연 국무총리에게 "'미스터 션샤인'의 을사오적과 같은 '무술오적'"이라 말했다. 이 총리가 박 의원의 질의에 답하는 모습. /임현경 인턴기자

박성중 한국당 의원의 발언은 가히 놀라웠다. 그는 이낙연 국무총리를 부른 뒤 "국정운영 전반에 걸쳐 대통령 주변에 '주사파'의 영향력이 막강해 청와대가 이들에 의해 좌우되는 것이 아니냐, 청와대 참모들·비서관 중에 주사파가 몇 명이나 되는지 아느냐"고 물었다.

이에 이 총리는 "그런 분류에 대해서 제가 잘 알지 못하고, 객관적일 수 있을까 의문을 가지고 있다"고 답했다. 박 의원은 "모 언론사에 의하면 64명 중 23명이다. 이들 중 공식적으로 전향을 선언하지 않겠느냐" 말했고, 이 총리는 "의도를 짐작하긴 합니다만 뜻은 잘 모르겠고, 공직을 맡을 수 없는 사람은 한 명도 없다"고 했다.

철 지난 이념 논쟁이었다. 박 의원은 "청와대의 '전원회의'가 운동권에서 사용하는 용어가 아니냐, 북한은 전원회의, 중국은 전체회의라고 한다"고 따져 물었다. 이 총리가 "법적으로 과학기술회의자문회, 공정거래 위원회, 최저임금 위원회도 전원회의를 갖고 있다"고 답했지만, 박 의원은 "핑계 대지 말라"며 화제를 전환했다.

박 의원은 이 총리가 세금으로 여러 인사와 만찬을 한다는 점, 연설문을 쓰기 위해 외부인을 고용한 점 등도 지적했다. 그의 질문 덕에 이 총리는 "정부에 비판적인 인사와도 소통하고 있다", "실질적으로 연설문을 소화하는 인원이 2명뿐이라 업무 부담을 줄이기 위한 선택이었다"는 정황을 밝힐 수 있었다. 또한, 국민에겐 이 총리의 상황을 이해할 것인가, 세금 사용에 더욱 엄격한 잣대를 들이댈 것인가를 비판적으로 생각할 기회였다. 이러한 뜻깊은 시간은 바로 이어진 자극적인 발언에 흐려지고 말았다.

이날 여러 초등학생들이 현장 학습을 위해 국회를 찾았다. 아이들은 의원들의 과격한 모습에 적잖은 충격을 받은 듯 했다. 아이들이 놀란 표정으로 박 의원의 질의를 듣는 모습. /임현경 인턴기자
이날 여러 초등학생들이 현장 학습을 위해 국회를 찾았다. 아이들은 의원들의 과격한 모습에 적잖은 충격을 받은 듯 했다. 아이들이 놀란 표정으로 박 의원의 질의를 듣는 모습. /임현경 인턴기자

박 의원은 "대통령 지지율이 높다는 이유만으로, 야당과 대화를 단절하고, 예산을 국민의 돈이 아닌 쌈짓돈으로 사용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총리, 이쯤 되면 세금 도둑 아니냐"고 말하며 분위기를 과열시켰다. 이어 "최근 인기리에 종영된 '미스터 션샤인'이라는 드라마를 혹시 보셨느냐, 거기에 나라를 팔아먹는 을사오적이 등장한다. 올해는 2018년 무술년이다"라며 "현재 국민의 혈세를 무조건 쓰고 보자는, 그래서 나라를 거덜 낼 수 있는 '미스터 문샤인' 정부의 '무술오적'이 청와대와 이 자리에도 앉아있을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의 '폭탄 발언'에 의석이 술렁거렸다. 박 의원은 개의치 않고 "유은혜! 의원 나오세요"라며 유 장관을 불러냈다. 박 의원은 유 장관을 '의원'으로 칭했을 뿐 아니라 이름을 부른 뒤 하대하듯 한 차례 숨을 쉬었다. 이를 듣던 여당 의원들의 반발이 거세지자, 박 의원은 "아직 개인적으로 (장관으로) 인정하지 않았다"며 재차 의원 호칭을 강조했다.

박 의원은 "부끄럽지 않냐"고 물었고 유 장관은 "부족함이 있는 것은 깊게 경청하고 성찰하겠지만, 법적·도덕적 양심을 걸고 부끄럽게 살지 않았다"고 답했다. 이에 한국당 의원들은 큰소리로 유 장관을 비웃었다. "당당하시네요? 당당하시다고요" 박 의원은 유 장관의 태도를 지적하며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정당한 '비판'보다는 '인격 모독'에 가까운 태도였다.

"지금 현재 종교가 뭡니까?", "성공회는 가톨릭(천주교)인가요?", "지금 세례명이 '아네스'죠 ?", "언제부터 천주교 교인이었습니까?", "위장전입 할 때도 성공회 교인이 아니었나요?" 등의 질문이 이어졌다. 유 장관은 "천주교다", " 성공회와 천주교는 다르다", "그렇다", "고등학교 때부터였다", "종교와 상관없이 딸 친구의 집에 전입한 것" 등을 차례로 답했다.

"신앙을 판 행위라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박 의원의 꼬리에 꼬리를 문 질문은 이같은 '결정타'를 위해 빙 돌아온 길이었다. 천주교 신자가 성공회 신부의 집에 자녀를 전입시킨 것을 과격하게 표현한 것이다. 마침내 유 장관은 시종일관 유지했던 미소를 거두며 "과도한 말씀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또다시 의석이 크게 술렁였다.

모든 의원이 자극적인 발언만을 일삼았던 것은 아니다. 손혜원 민주당 의원은 전통문화 보존 및 계승을 위한 예산 증액과 지역 관광 자원 개발을 강조하며 관계 부처의 협조를 요구했다. 이용호 무소속 의원은 현재 뜨거운 사회 현안 중 하나인 최저임금 차등화를 구체적으로 물었고, 전현희 민주당 의원은 환경부 장관과 문답을 주고 받으며 4대강 사업 이후의 대책과 온실가스 감축 등 환경 보호 정책의 추진 현황을 드러냈다.

그러나 이들의 질문과 정부 관계자의 답변은 김성태·홍영표 양당 원내대표의 '함께 춤을 추는 듯한' 몸싸움에 가려 주목받지 못했다. 국회의원 의석에서도, 문답이 오가는 단상 위에서도, 관계자·취재진에 더해 현장학습차 방문한 초등학생들이 앉은 객석에서도, '허'하니 바람 빠지는 소리와 함께 웃음이 새어 나왔다. 헛웃음이었다. 믿을 수 없는, 아니 믿고 싶지 않은 광경이었다. 기동민 민주당 의원이 그토록 찾던 '품위'는 그곳에 없었다.

멀리서 바라본 국회는 우스꽝스러운 모습이지만, 조금만 가까이 들여다본다면 작금의 세태가 얼마나 슬픈 일인지 알 수 있다. 그들은 민주주의를 실현하기 위해, 국민의 소중한 한 표로써 그 자리에 선 국민의 대리인이며 어마어마한 혈세를 임금으로 받는다. 그런 국회의원들이 초등학생이 경악할 정도의 유치한 말싸움, 저속한 비방, 심지어는 몸싸움까지 벌이면서도 정책에는 무관심한 모습을 보이는 것이야말로 사회의 가장 큰 비극이 아닐까.


imaro@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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