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F확대경] '추석, 청춘시대' 면목이 없지 할 말이 없겠어요?
입력: 2018.09.26 00:06 / 수정: 2018.09.26 00:06

"우리만 죄송해야해?" 추석 맞이 청년들의 담대한 방담

[더팩트ㅣ임현경 인턴기자] '우울한 추석', '명절은 남일', '부모님 뵙기 죄송'…연일 사상 최악의 고용 상황에서 청년들은 초라한 존재로 묘사된다. 실제로 취업을 준비하는 청년들은 노량진에서 추석특강을 수강하고 주말에도 스터디카페에 모여 입사 시험에 대비하는 등 명절, 연휴와 별개로 평소와 같은 일정을 이어간다.

<더팩트>는 청년들이 직접 체감하는 '통계 밖' 이야기를 듣기 위해 단체채팅방을 개설, '사상 최악'을 가리키는 통계 지표·일자리 정책·최저임금 등에 대한 대화를 나누며 날 것 그대로인 그들의 말을 들어보았다.

방담 참여자는 ▲젊은사장님(이하 사장) : 31살, 남성, 마케팅 관련 스타트업 대표, ▲프리랜서의고독(이하 프리) : 30살, 남성, 영상 콘텐츠 편집자로 프리랜서 활동, ▲중소기업탈출이꿈(이하 중소) : 26살, 여성, 중소기업 입사 6개월, ▲대기업신입사원(이하 신입) : 25살, 남성, 대기업 입사 4개월, ▲막학기4학년(이하 막사) : 24살, 남성, 취업 준비를 막 시작한 졸업예정자, ▲내일은취업뽀개기(이하 취뽀) : 24살, 여성, 대학 졸업 후 취업준비 생활 2년 등이다.

하반기 공개채용 시험 준비 등으로 분주한 청년들에게 추석은 여느 하루와 다르지 않다. 사진은 한 청년이 서울 노량진에 위치한 고시원에서 공무원 시험 준비를 위해 공부하는 모습. 방담 참여자와 관계 없는 사진. /이덕인 기자
하반기 공개채용 시험 준비 등으로 분주한 청년들에게 추석은 여느 하루와 다르지 않다. 사진은 한 청년이 서울 노량진에 위치한 고시원에서 공무원 시험 준비를 위해 공부하는 모습. 방담 참여자와 관계 없는 사진. /이덕인 기자

청년들에게 추석을 맞은 심경을 물었더니 용돈을 드리지 못하는 '불효자의 눈물'부터 '잔소리 공포증'까지 온갖 고충이 돌아왔다. "잠깐, 근데 왜 우리가 이렇게 죄인처럼 지내야 하지?" 누군가 던진 질문에 쉴 새 없이 말풍선이 터져 나오던 채팅창이 순간 얼어붙었다. 이윽고 이전보다 더 뜨거운 발언들이 줄을 이었다. "취업 못한 건 정말 죄송한데, 왜 우리만 죄송해야하죠?"

#고용 최악? 언제는 안 그랬나

-기자 요즘 뉴스 봤어? 고용 상황이 사상 최악이라고 여기저기서 다들 난리야.

-막사 글쎄 솔직히 체감하긴 어려워. 취업은 작년에도 어렵지 않았어? 취업 준비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그런가. 나보단 여러 해 준비한 사람들이 더 많이 느낄 것 같아.

-취뽀 아무리 취업률 최저라고 난리를 쳐도 고용인의 태도는 바뀌지 않을 거잖아? 취업준비생들만 계속 애가 타는 거지. 몇 년째 어렵다 어렵다 말뿐이야.

-신입 솔직히 계층별 온도차도 있을 것 같아. 상경계열 전공으로 공부 좀 했다 하는 똑똑이들은 금융권, 제조업, 공기업 등 어디든 취업을 하긴 하거든. 하지만 우리가 흔히 얘기하는 '대기업'에 가기엔 많이 어려운 건 분명해. 그래도 공대는 문과보단 대기업 입사가 상대적으로 쉬운 것 같더라. 괜히 '문송합니다(문과+죄송합니다)'라는 말이 나온 게 아냐.

-프리 그래서 난 애초에 기업 입사를 포기하고 프리랜서가 됐지. 특별한 스펙이 없는 내가 계속 대기업 입사에 매달렸다면 지금까지 돈도 못 벌고 학원비만 날렸을 거야. 누구나 가고 싶어 하는 '안정적인 직장'은 그 수가 너무 적고, 점점 줄어가는 추세야. 몇 년 전에 모 기업이 20대 직원들 대거 권고 사직시켜서 기사도 나고 그랬잖아.

-중소 프리랜서야 말로 정말 운이 좋아야 하는 거 아니야? 실력도 있어야 하지만, 인맥도 받쳐줘야 하고. 대기업을 준비하는 학생들을 무조건 어리석다고 말할 순 없어. 중소기업 처우가 좋지 않은 게 사실이고, 불안정한 경제 상황에서 안정을 지향하는 건 당연한 거잖아. 우린 어른들에게 그렇게 배웠다고.

-프리 맞아. 하지만 이젠 어른들이 말하는 '좋은 직업' 외에 새로운 직업을 찾아야 하는 게 아닌가 싶어. 예전엔 '딴따라'라 욕했던 연예인이 억대 수입을 벌고, 유튜브 크리에이터, 모바일 콘텐츠 제작사 등 어른들에겐 변변치 않은 직업이 웬만한 대기업 연봉보다 높은 수익을 거둬들이지. 정부가 대기업에 일자리 창출하라고 조를 게 아니라, 이러한 시장 개척을 위해 힘써주길 바라.

-사장 나는 사업체를 운영하는 입장이다 보니 지금 고용 상황이 전보다 어렵다는 것에 동의해. 인건비 지출이 늘다보니 고용을 꺼리게 되거든. 최저임금이 오르기 전엔 주니어(신입) 2명 정도는 채용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기존 직원들의 상승한 인건비를 감당하기에도 벅차.

#일자리 정책, 조별과제와 비슷…정부만 잘한다고 될 일 아냐

-기자 그럼 자연스럽게 정책 얘기로 넘어가보자. 정부의 일자리 정책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말이야.

-취뽀 앞선 몇 정부와 비교했을 때, 청년들의 속사정에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고 생각해. 특히 문재인 대통령은 성비 불균형 등 여성 고용 문제에도 관심을 기울이는 것처럼 보이거든. 그런데 일자리 정책이 능사는 아니라고 생각해. 기업, 경제 구조, 세계 금융 위기 등 사회구조적 문제가 뿌리 깊은데 정부만 나선다고 당장 사정이 나아질 거란 기대는 하지 않아.

-막사 일자리야 어떤 정부든 잡기 어렵지. 근데 지난 1년간 54조, 올해 23조 2000억이라는 어마어마한 예산이 편성된 데 비해서는 결과가 미미한 게 사실이야. 장기적인 관점에서는 좋을 수도 있어. 최저임금 상승이나 노동시간 조정도 멀리 보면 일자리의 '질'을 결정하는 좋은 제도라 생각해. 하지만 좀 갑작스럽다는 느낌은 있더라. 오늘 모 대기업 취업부스에 가서 상담을 받았는데, 인사담당자가 주 52시간 근무를 두고 욕에 욕을 하더라고(웃음).

-취뽀 팀플(조별과제) 같은 거지. 조장이 아무리 애써도 조원들이 따라주지 않으면 소용이 없잖아. 취지가 좋다 한들, 기업이나 실무진들이 일을 하지 않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겠지. 고용노동부와 한국고용정보원이 운영하는 일자리정책TF에서 일하는 선배의 말을 들어보니, 관계자들이 뚜렷한 대책 없이 탁상공론으로 보내는 시간이 많대. 직접 현장을 탐방하고 실천 가능한 정책을 내놨으면 좋겠어.

-사장 맞아.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임금 차액 지원을 예로 들면, 행정 처리를 위해 또 다른 비용이 들고, 신입 임금 상승률에 맞춰 올려줘야 하는 중간급 직원들의 인건비는 지원 대상이 아니거든. 지원 사업은 사업자가 겪는 어려움과 완전히 동떨어져 있는 대안이야.

-신입 난 지금 순환근무 때문에 지방에서 일하고 있어. 여기서 지내다보면 청년뿐 아니라 중장년층을 위한 일자리 정책의 필요성을 절감해. 중장년층의 재취업 문제는 우리나라의 고질적인 자영업 문제랑 연관돼 있잖아. 나이는 젊고 부양해야 할 식구가 있는데 직업을 잃었을 때, 아무런 준비 없이 자영업에 뛰어들곤 하니까. 그들이 빠르게 변화하는 환경에서 전문성을 갖출 수 있도록 하는 정부 차원의 지원이 필요해.

-프리 솔직히 우리 아버지도 식당을 하시거든. 나이 든 분들에게 당장 새로운 기술을 배우라고 해도 쉽지 않지. 배운다 해도 직업으로 삼기 어렵고. 아무리 농업이 쇠락한 시대라 하더라도 농사짓는 노인들에게 코딩을 가르치면서 취직시켜줄 순 없잖아.

-중소 백종원의 '골목식당' 같은 프로그램을 보면, 너무 안일한 마음으로 장사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지 않아? 그런 식으로 가게를 운영하면서 '최저임금이 올라 자영업이 죽어간다'고 말하는 건 너무 이기적인 것 같아. 중소기업도 마찬가지야. 노동에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고 싶지도 않고, 기술 개발이나 시장 조사에 노력을 기울일 의지도 없는데 장사만 잘되기를 바란다? 그들이 좋아하는 '신자유주의 시장 논리'에 전혀 맞지 않잖아.

-사장 그렇다 해도 정부가 손 놓고 있을 수는 없잖아. 또, 요즘 취업 대신 바로 자영업에 뛰어드는 젊은 사람들도 많아. 자치구가 '골목식당' 프로그램에 엄청난 지원금을 대면서 백종원의 컨설팅을 받게 하고, 상권 부흥을 위해 노력했듯이 정부도 국민을 위한 노력을 해줘야지.

#야당의 날선 비판, 권력 감시 좋지만 국회 역할 다해주길

-기자 야당은 이번 정부의 일자리를 비롯한 경제 정책에 대해 '실패'라며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어. 이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해?

-프리 이러면 안 되는 거 알지만, 당장 나 먹고살기 바쁜데 머리 아프게 신경 쓰고 싶지 않아. 원래 국회에서는 늘 치고 박고 싸우잖아. '그러려니' 하게 돼.

-취뽀 진짜 국민들을 위한 목소리일까? 우리는 안중에도 없는, 정쟁을 위한 진흙탕 싸움처럼 보여. 거의 10년 만에 이뤄진 정권교체 이후 견제가 극심해진 것 같아.

-신입 맞아. 정치적 프레임을 잘 짠 것 같아. 통계적 하락이 발생한 건 사실이지만, 그것 이상으로 문제를 과대 포장해 정권을 공격하는 듯 해. 그렇게 비판하는 국회에선 실질적으로 어떤 정치를 하고 있지? 정작 고용 악화를 해소시킬만한 법안이 최근에 나온 게 있긴 한가.

-사장 현실은 통계보다 더 참혹해. 정당 차원에서 홍대, 마포, 압구정 등 흔히 말하는 '핫플레이스'에 직접 가보고 통계가 말해주지 않는 부분까지 확인해야 한다고 생각해. 또, 그에 맞춰 강한 대응이 필요하고. 통계청은 믿을 수 없어.

-막사 최근 언론에서 통계의 허점을 비틀어 독자의 눈을 흐리는 기사들을 많이 내고 있는데, 전공자가 좀만 들여다보면 헛웃음이 날 정도로 터무니없는 소리거든. 하지만 수치에 밝지 않거나 얼핏 읽고 넘어가는 사람들이라면 '아 진짜 큰일 났구나' 생각할 수 있어. 정부가 완전무결한 것도 아니니 비판할 점은 비판해야지. 하지만 지금처럼 제대로 된 팩트(사실)가 아니라 왜곡과 중상모략을 일삼는다면, 반정부적 입장 자체에 대한 반감이 더 높아질 거야.

-중소 통계를 절대적인 지표로 삼기엔 '장난칠 수 있는' 요소가 너무 많아. 그래도 정치권에서 예민하게 반응하고 정부와 여당을 견제하는 자세는 필요하지. 지금 제1 야당의 행보를 지지하지는 않지만.... 어쨌든 국민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국회에서 하는 얘기라면, 정부도 정당한 비판에 대해서는 겸허하게 받아들여야 할 거야.

imaro@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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