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F현장-정치인이 머물고 간 자리①] 정몽준이 묵고 간 영등포 쪽방촌
입력: 2018.09.24 12:00 / 수정: 2018.09.24 14:11
<더팩트>가 영등포역 부근 고가차도 아래 조성된 쪽방촌에서 거주민들로부터 그 곳을 찾았던 정치인들에 대해 듣고 방문 이후 달라진 점이 있는지 물었다. 사진은 영등포 쪽방촌의 모습. /박재우 기자
<더팩트>가 영등포역 부근 고가차도 아래 조성된 쪽방촌에서 거주민들로부터 그 곳을 찾았던 정치인들에 대해 듣고 방문 이후 달라진 점이 있는지 물었다. 사진은 영등포 쪽방촌의 모습. /박재우 기자

정치인이 다녀간 자리는 때로 명소가 되기도 하지만, 잊고 싶은 장소가 되기도 한다. 정치인들은 선거를 위해 때로는 민생을 직접 살피기 위해 특별한 장소를 찾는다. 이들이 머문 장소는 당시 큰 화제가 되곤 한다. 사람이 떠난 자리에는 공백이 생기기 마련이다. <더팩트>는 문재인 대통령, 박원순 서울시장, 정몽준 전 의원 등이 다녀간 그곳은 현재 어떤 모습인지 확인해 보았다. <편집자 주>

보여주기식 행보로 장기적 대책 없어... 상대적 박탈감도

[더팩트ㅣ영등포=박재우 기자] "영등포 쪽방촌에서 1박어렵게 지내시는 분들이 많다는 것을 다시 절감."

2014년 지방선거에서 서울시장에 출마한 정몽준 전 후보의 트윗이었다. 그는 선거를 앞두고 1박2일 일정으로 영등포 쪽방촌에서 머물렀다. 그 뿐 아니라 수많은 정치인들이 쪽방촌을 찾았다.

이번 6.13 지방선거 중에도 어김없이 서울시장 후보들이 다녀갔다. 정치인이 머물다 간 자리에 무엇을 남기고 갔을까. <더팩트>는 지난 12일 영등포역 부근 고가차도 아래 조성된 쪽방촌에서 거주민들로부터 그곳을 찾았던 정치인들에 대해 듣고 방문 이후 달라진 점이 있는지 물었다.

쪽방촌 거주민들은 예상대로 "변한 게 없다", "잠깐 그때뿐이다", "보여주기"라고 지금까지 다녀간 정치인들에게 거친 말을 쏟아냈고, 심지어 상대적 박탈감마저 느낀다며 선거철 보여주기식 행보에 진저리가 난 모양이었다.

정치인들은 선거가 다가오면 언론의 관심을 끌기 위해 이렇게 '이색 선거운동'을 진행한다. 2014년 지방선거 당시 '정몽준' 전 새누리당 서울시장 후보는 많은 일을 벌였다. 그는 일일 환경미화원이 됐고, 작업복을 입고 지하철 철로를 닦기도 하는 등 '극한 알바'를 몸소 체험했다.

우연히 거주민들에게 물어 정 전 후보가 있었던 방을 찾을 수 있었다. 정몽준 전 후보의 트윗(위)과 그가 묵었던 방의 현재 모습(아래)./ 박재우 기자
우연히 거주민들에게 물어 정 전 후보가 있었던 방을 찾을 수 있었다. 정몽준 전 후보의 트윗(위)과 그가 묵었던 방의 현재 모습(아래)./ 박재우 기자

그의 쪽방촌 1박2일 의도는 아무도 모르게 머물며 체험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몰래'라는 말이 무색하게 자신의 트위터에 방 사진과 함께 "영등포 쪽방에서 1박...박원순 시장은 3년전 8만호를 짓겠다고 공약했지만 실제로 9000호 밖에 못했다고 한다"라며 "제가 시장이되면 10만호를 목표로 열심히 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더팩트>는 우연히 거주민들에게 물어 정 전 후보가 있었던 방을 찾을 수 있었다. 영등포 쪽방촌 중심에 있는 한 건물에 1평 남짓 한 방들이 7가구 정도 있었다. 방 안에 구비된 것은 침대와 침구류, 옷걸이와 선풍기 한 대가 전부였다. 비록 4년전이었지만 변한 건 별로 없었다.

건물 관리인으로부터 당시 상황을 들을 수 있었다. 그는 "그때 어떤 사람이 방을 달라 그래서 방을 줬다. 남들 받는 것처럼 하루 방세 2만 원 똑같이 받았다"라며 "저기 끝에 위치한 방이다"라며 방을 보여줬다.

이어 "다음 날 아침 나올 때서야 정몽준인지 알았다"며 "그 누구와도 얘기 안하고 잠만 자고 조용히 갔다"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사람들이 들락날락하긴 했다"라며 "그래서 문을 닫고 있었는데, 누군지 몰랐고, 나갈 때 누군지 알았다"고 말했다.

쪽방촌 사람들에게 묻다"여기 정치인들 많이 찾아오나요?"

선거때만 되면 언론을 대동한채 보여주기식 행보로 쪽방촌 거주민들에게 기대만 심어줬다는 비판이 대부분이었다. 이곳을 방문한 정치인들 모두 장기적인 대책은 없이 표심 달래기에만 급급한 것처럼 보였다.

"박근혜 왔었다", "박원순도 왔었다", "김문수도 왔었다" 쪽방촌 거주민들에게 물어보니, 다양한 정치인들이 이곳을 잠시 머물다 갔다. 대선 후보, 서울시장 후보, 구청장 후보들까지 다녀갔지만 예상했던 대로 그 뒤 그들의 삶은 달라지지 않았다.

어느 나라 사회든지 저소득층이 존재하기 마련이라는 지적도 있지만, 정치인들이 오갈 때면 때론 상대적 박탈감도 생긴다고 한 거주민은 말했다. 보여주기식 행보로 현실적으로 제대로 된 장기적 대책 없이 단편적인 물품 제공뿐이었다.

낮에 쪽방촌 밖에는 삼삼오오 사람들이 모여있었다. 이들은 함께 모여 수다를 떨기도 하고, 이곳저곳 배회하기도 했다. 대부분은 서로 일면식이 있는 사이였다.

이곳 거주자는 대략 500여 명이다. 이중 대부분의 거주자들은 60세 이상으로 보였고, 기초생활수급 대상자라고 했다. 1~2평 사이의 방으로 욕실이나 부엌 등 시설이 마련되어있지 않았다. 월세는 방의 크기에 따라 보증금 없이 20만 원부터 30만 원까지 다양했다.

50대 후반으로 보이는 다른 남성은 한참 기자와 얘기를 나누다 조심스럽게 방을 공개했다. 사진은 쪽방촌의 1평남짓한 방의 모습. /박재우 기자
50대 후반으로 보이는 다른 남성은 한참 기자와 얘기를 나누다 조심스럽게 방을 공개했다. 사진은 쪽방촌의 1평남짓한 방의 모습. /박재우 기자

쪽방촌 입구에서 만난 한 60대의 남성은 "달라지는 건 없었다"며 "시장, 국회의원 왔다 갔다는 소리만 들었지 후다닥 왔다 가버리니까 대부분 사람들은 왔는지도 모른다"라고 말했다. 또한, "여긴 대통령이 와도 달라질 건 없다"라고 부정적으로 내다봤다.

50대 후반으로 보이는 다른 남성은 한참 기자와 얘기를 나누다 자신의 방을 공개했다. 처음에는 방이 지저분하다면서 겸연쩍어 했지만, 얼굴만 안 나오면 된다며 공개했다. 그는 "선거철만 되면 (정치인들이) 온다"라며 "달라진 건 전혀없고, 도와주는 것도 없다"며 "TV에만 나오지 하나도 없다"라고 강조했다.

그는 1998년 IMF사태 당시 직장을 잃고 이곳으로 왔다. 당시 자동차 도장공이었지만, 해고돼 결국 이곳에서 20년 동안 살고 있다. 그러면서 자신과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이 많다고 했다. 그가 보여준 방은 좁지만 깔끔했다. 다른 곳에 비해 자신의 건물에는 화장실도 있다며 자랑하듯 보여줬다. 냉장고도 건물에 거주하는 사람들끼리 나눠쓴다.

'여름과 겨울에는 조금 힘들지 않냐'고 묻자 "왜 당연한 걸 묻냐"고 답했다. 그의 생활에 대해 묻자 "쌀은 한 달에 한 번 20kg를 제공받는데 부족하다"라며 "수급 나오는 걸로 겨우 버티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추석에 가족들을 만날 계획을 물어보니 "이런 꼴 하고 어딜 가겠느냐"라며 "딸은 신림동에 살고 있지만, 피해를 줄까 봐 여기에서 살고 있다"라고 했다.

60대로 보이는 한 여성은 사회부 기자의 쪽방촌 취재인 줄 알고 처음에는 거부했다. "우리가 얼마나 못 사는지가 그렇게 궁금하냐"라고 비꼬듯 말하다가 기자가 취재 의도를 설명하자 할 말이 많은 듯 말을 시작했다. 정치인들뿐 아니라 언론 취재진들은 쪽방촌의 '폭염'과 '한파'를 보도한 뒤 그 이후로는 아무도 관심이 없다고 비판했다. 그는 "올 때는 반짝 반짝한다"며 "여기도 사람 사는 곳인데, 상태가 아주 안 좋은 집만 보고 사라진다"고 사태를 꼬집었다.

그러면서 개인적인 인연도 소개했다. 그는 "딸이 중학교 다녔을 때인데, 노무현 전 대통령이 취임하고 나서 영부인을 통해 우리에게 금일봉도 주고 책도 주고, 고가의 노트북을 가져다 줬다"고 회상했다. 그렇지만 이런 일들이 당사자에게는 좋은 일이지만 반대로 다른 이들에게 상대적 박탈감을 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정치인들이 후원해줘서 쌀을 주면 그 당시에는 혜택을 받는 사람들이 30명 정도 밖에 안 된다"며 "못 먹는사람이 생겨 박탈감을 느끼기도 하고, 못 받았다고 해코지하는 사람도 있다"라고 말했다.

선거때만 되면 언론을 대동한채 보여주기식 행보로 쪽방촌 거주민들에게 기대만 심어줬다는 비판이 대부분이었다. 사진은 젊은 예술인들의 벽화작업으로 꾸며진 쪽방촌의 모습./ 박재우 기자
선거때만 되면 언론을 대동한채 보여주기식 행보로 쪽방촌 거주민들에게 기대만 심어줬다는 비판이 대부분이었다. 사진은 젊은 예술인들의 벽화작업으로 꾸며진 쪽방촌의 모습./ 박재우 기자

정치인들은 왜? 당선 후 '소극적'이라는 지적도

정치권은 이런 방문이 거주민들에게 큰 도움이 되지 않을 거라고 인정했지만, 어쩔 수 없다는 입장이었다.

국회에 오래 머물렀던 한 정치권 관계자는 "오랫동안 진행해왔던 관례"라며 "후보들이 국회 기자회견장에서 발표하는 것보다 그림이 좋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하는 편"이라고 말했다. 또한 "했을 때와 안 했을 때의 국민들의 반응도 다르다"며 고시원에 가서 고시생들과 컵밥을 먹으면서 얘기 나누는 것을 대표적인 예로 뽑았다. 이런 행사들은 선거본부 기획팀에서 도맡아 기획한다고도 설명했다.

선거취재를 해봤던 동료 기자들도 "시장에서 만나고 물건 사고, 얘기 듣고 뻔한 거 아니겠느냐"며 "관행적으로 우리는 취재하고, 정치인들도 식상하다는 거 알면서 선거때만 되면 다 한다. 안 하면 불안하니까 하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당선된 정치인들이 쪽방촌 지원에 소극적이라는 지적도 제기됐다. 박원순 시장은 쪽방촌 295가구 리모델링을 목표하고 진행했지만, 애초 계획했던 만큼의 60%밖에 진행 되지 못했다. 시 차원의 지원에서도 운영하는 '쪽방상담소'가 개인·법인 상담소에서 마침내 올해 2월 시립(위탁)화 돼 조금 늦었다는 지적도 있다. 영등포구청은 직접적인 예산지원은 없고 연계사업만 진행 중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에는 서울시 차원이나 영등포구청 차원에서도 많은 노력을 통해 쪽방촌 생태계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목소리도 있었다.

김형옥 영등포쪽방상담소 소장은 <더팩트>와 통화에서 리모델링 공사에 대해 "과정에서 불법건축물, 윤락시설, 소유주 의지 이 세 가지 종류의 건물들을 제외하다 보니 60%밖에 안 된 이유가 있다"라고 설명했다. 아울러, "시 차원의 지원이 많이 이뤄지고 있다"며 "우리 상담소는 주거민들에게 물품 제공 뿐 아니라 일자리 지원사업, 의료 지원사업, 이사지원 사업 등도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쪽방촌에서 만난 거주민들은 실제로 쪽방상담소 또는 주위 종교시설로부터 거의 대부분의 도움을 받는다고 말해주기도 했다.

jaewoopark@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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