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 방북 1일차, 관행 파격 연이어
[더팩트ㅣ남북정상회담 프레스센터=임현경 인턴기자] 18일 남북정상회담을 위해 평양을 방문한 문재인 대통령의 하루는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2박 3일 일정 첫날부터 기존 관행을 깨며 놀라움을 자아냈다.
집권 2년 차를 맞은 문 대통령은 김 위원장과의 정상회담이 이번 평양까지 벌써 세 번째이다. 특히 이번 평양회담은 문 대통령도 처음이다. <더팩트>는 문 대통령과 김 위원장의 정상회담 첫날의 숨가빴던 일정을 되짚어봤다.
문 대통령은 이날 오전 8시 5분 김정숙 여사와 함께 관저에서 출발했다. 반려견 마루와 청와대 직원들의 배웅을 받으며 이동한 문 대통령은 10분 뒤 헬기로 성남 서울공항까지 이동, 전용기인 공군 1호기에 탑승했다.
문 대통령을 태운 비행기는 이륙한 지 약 55분 뒤인 오전 9시 48분 평양국제비행장인 순안공항에 착륙했다. 김 위원장과 리설주 여사는 10시 7분쯤 제2청사에서 나와 문 대통령 부부를 영접했다. 부부 동반으로는 약 5개월 만의 만남이었다. 문 대통령과 김 위원장은 만나자마자 뜨거운 포옹을 나누며 친밀함을 과시했다.
공항에서 다음 목적지인 백화원까지는 차로 25분 남짓한 거리였지만, 오전 10시 25분께 공항을 떠난 문 대통령과 김 위원장은 오전 11시 17분이 돼서야 백화원 영빈관에 도착했다. 각각 다른 차에 배우자와 함께 탑승했던 두 정상은 같은 차에서 내리며 지켜보던 이들을 놀라게 했다. 추후 두 정상이 평양 도심 련못관에서 평양 시민들과 인사를 나눈 뒤, 무개차(오픈카)에 나란히 올라타 25분간 '카 퍼레이드'를 펼친 사실이 밝혀졌다.
문 대통령과 김 위원장의 정상회담은 오후 3시 45분에 시작돼 오후 5시 25분에 종료됐다. 사진은 두 정상이 악수를 단독 회담에 앞서 악수를 나누는 모습. / 평양사진공동취재단 |
본격적인 정상회담은 개별 오찬과 휴식 이후 오후 3시 45분부터 진행됐다. 우리 측에서는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과 서훈 국가정보원 원장이, 북측에서는 김여정 노동장 중앙위 제1부부장과 김영철 노동당 중앙위 부위원장이 배석했다.
먼저 모두발언에 나선 김 위원장은 "조미(북미)상봉의 역사적 만남은 문 대통령의 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며 "이로 인해 주변지역 정세가 안정되고, 앞으로 조미 사이에도 계속 진전된 결과가 나올 수 있겠다고 생각했는데 문 대통령께서 기울인 노력에 다시 한 번 사의를 표한다"고 말했다. 그는 "문 대통령님을 세 차례 만났는데 제 감정을 말씀드리면 '우리가 정말 가까워졌구나' 하는 것"이라며 "또 큰 성과가 있었는데 문 대통령의 지칠 줄 모르는 노력 때문이다. 북남 관계, 조미 관계가 좋아졌다"며 문 대통령의 공로를 치하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방명록에 '평화와 변영으로 겨레의 마음은 하나!'라고 적었다. 사진은 문 대통령이 이날 김정은 국무위원장과의 정상회담에 앞서 방명록을 작성하는 모습. / 평양사진공동취재단 |
문 대통령도 모두발언에서 "우리가 지고 있고 져야 할 무게를 절감하고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 8000만 겨레에 한가위 선물로 풍성한 결과를 남기는 회담이 되길 바란다"며 "전 세계도 주시하고 있고 전 세계인에게도 평화와 번영의 결실을 보여줬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판문점의 봄이 평양의 가을이 됐다. 다섯 달 만에 세 번을 만났는데 돌이켜보면 평창 동계올림픽, 또 그 이전에 김 위원장의 신년사가 있었고 그 신년사에는 김 위원장의 대담한 결정이 있었다"며 김 위원장에게 화답했다.
두 정상은 120분 동안의 논의 끝에 회담장을 빠져나왔다. 당초 예정된 회담 시간은 90분이었다. 19일 오전 2차 정상회담에서 추가 논의가 이뤄질 예정이기에, 청와대는 이날 회담 내용을 공개하지 않았다.
오후 6시에는 평양 대동강변 평양대극장에서 환영 예술공연을 관람했다. 김 위원장 부부가 6시 15분께 극장 앞에 도착해 문 대통령 부부를 기다렸다. 김 위원장은 우리 공식수행단을 향해 "시간이 좀 늦어지고 있지만, 뭐 더 오래오래 보면 되는 거지요. 특별히 나쁘지 않을 겁니다"라고 말했다. 10분 뒤 문 대통령 부부가 도착했고, 현송월 삼지연관현악단 단장이 대통령 내외에게 꽃다발을 전달했다.
김 위원장은 평양대극장에 먼저 도착해 문 대통령을 기다렸다. 사진은 문 대통령 부부와 김 위원장 부부가 무대에 올라 출연진을 격려하는 모습. /평양사진공동취재단 |
공식 환영 만찬은 오후 8시 목란관에서 열렸다. 식탁에는 백설기 약밥, 강정합성 배속김치, 칠면조말이랭찜, 해산물 물회, 과일남새 생채, 상어날개 야자탕, 백화 대구찜, 자산소 심옥구이, 송이버섯구이, 흰쌀밥, 숭어국, 도라지 장아찌, 오이숙장과 수정과 유자고 강령녹차 등이 올랐다.
다른 이들이 먼저 식사를 즐기는 동안 두 정상은 1층 로비를 나란히 걸으며 양국이 준비한 선물을 구경했다. 우리측에서는 오동나무 보관함에 담긴 대동여지도를 준비했다. 이어진 길을 따라 자유롭게 왕래하며 교류 협력을 증진하고 번영과 평화를 이루자는 의미를 담은 것이었다. 북측은 지난 5월 26일 판문점 북측 통일각에서 진행한 2차 회담 당시 백두산 배경을 찍었던 사진을 유화로 옮겨놓은 그림과 문 대통령의 반려견과 같은 풍산개 사진을 선물했다.
환영 만찬은 오후 8시에 진행됐지만 문 대통령과 김 위원장은 8시 37분에 나란히 등장했다. 사진은 두 정상이 양국이 준비한 선물이 전시돼 있는 것을 보며 대화하는 모습. /평양사진공동취재단 |
남북 정상은 8시 37분 기립박수를 받으며 만찬장에 들어섰다. 김 위원장은 환영사를 통해 "나는 먼저 민족 앞에 약속한 판문점 선언 이행을 위해 노심초사하시며 평화의 새 시대, 민족번영 새 역사를 흔들림 없이 이어나가려는 굳은 마음을 안고 평양을 방문한 문 대통령 내외분을 열렬히 환영한다. 지난시기 온 겨레에 평화번영의 꿈과 기대를 한껏 부풀게 했던 역사적인 6·15와 10·4선언이 있었던 평양에서 더없이 감개무량하고, 한편으로는 어깨가 더 무거워짐을 느끼게 된다"고 밝혔다.
이어 "나는 문 대통령과의 이 뜻깊은 상봉이 북남관계 발전과 우리의 전진을 더욱 가속화시키고 온 겨레에게 다시 한 번 크나큰 신심과 기쁨을 안겨주는 역사적인 일로 되리라 확신한다"고 말한 김 위원장은 "문 대통령과 김 여사의 건강을 위하여, 그리고 이 자리에 참석한 남측의 귀빈들과 여러분 모두의 건강을 위하여 잔을 들 것을 제의한다"며 '국민과 여러분 모두를 위하여' 건배를 제안했다.
문 대통령은 이날 만찬 자리에서 김 위원장과의 관계를 "다정한 연인"에 빗대어 표현했다. 사진은 문 대통령이 김 위원장, 리설주 여사와 건배하는 모습. /평양사진공동취재단 |
문 대통령은 "귀빈 여러분, 나는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에 이어 여기 목란관을 찾은 세 번째 대한민국 대통령이다. 김 위원장과 나는 다정한 연인처럼 함께 손잡고 군사분계선을 넘어가고 넘어왔던 사이다"며 "우리의 도보다리 대화는 그 모습만으로도 전 세계인들에게 큰 감동을 줬다. 남북의 정상이 시간과 장소에 구애치 않고 언제든지 편하게 만날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남북 간의 새로운 시대가 도래했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고 말했다.
이어 "마침 우리 민족이 가장 좋아하는 명절인 한가위 추석이 다가오고 있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는 속담처럼 온 겨레의 삶을 더 평화롭고 풍요롭게 하는 만남이 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우리의 만남이 북과 남의 국민 모두에게 최고의 한가위 선물이 되길 기원한다"고 강조했다.
문 대통령이 "김 위원장 내외의 건강과 백두에서 한라까지 남과 북 8000만 겨레 모두의 하나 됨을 위하여"라고 말하자 귀빈들이 "위하여"를 다시 외치며 잔을 들어 올렸다. 이념과 국경을 잠시 잊고 한마음으로 무르익은 만찬은 이날 오후 10시 53분에 마무리됐다. 문 대통령의 방북 첫날 공식 일정 또한 종료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