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F인턴수첩] 위장전입, 참을 수 없는 '위법'의 가벼움
입력: 2018.09.12 00:05 / 수정: 2018.09.12 08:02

최근 김기영·이은애 헌법재판소 재판관 후보자, 정경두 국방부 장관 후보자, 이재갑 고용노동부 장관 후보자, 유은혜 교육부 장관 후보자 등 5명이 위장전입 논란에 휘말렸다. 사진은 8차례 위장전입 의혹을 받는 이은애 헌법재판소 재판관 후보자가 11일 인사청문회에서 의원들의 질문을 듣고 있는 모습./국회=문병희 기자
최근 김기영·이은애 헌법재판소 재판관 후보자, 정경두 국방부 장관 후보자, 이재갑 고용노동부 장관 후보자, 유은혜 교육부 장관 후보자 등 5명이 위장전입 논란에 휘말렸다. 사진은 8차례 위장전입 의혹을 받는 이은애 헌법재판소 재판관 후보자가 11일 인사청문회에서 의원들의 질문을 듣고 있는 모습./국회=문병희 기자

공직자 사이 '선택 아닌 필수' 전락한 위장전입

[더팩트ㅣ국회=임현경 인턴기자] "넌 주소 옮길만한 친척 없어?" 중학교 3학년이 끝나갈 무렵 학생들 사이에서는 '주소를 옮기는 일'이 유행처럼 번졌다. 고등학교 진학을 위한 것이었다. 거주지 근처 학교를 배정받던 때라 특목고를 제외하면 해당 학교 근처에 살아야만 입학할 수 있었다. 이것이 '위장전입'이란 이름의 위법 행위라는 것을 알게 된 건 한참 후의 일이다.

대학에 입학하자 기숙사가 유혹의 손길을 뻗었다. 기존 거주지가 기숙사 배정 기준 거리 내에 있는 경우엔 위장전입이 빈번하게 이뤄진다. 혼잡한 교통과 함께 학교 근처 방값이 워낙 비싼 탓도 있다. 필자도 마음이 굴뚝 같았지만, 주소를 옮기진 못했다. 그럴 친척이나 지인이 없었을뿐더러 "혹시 내가 공직에 나설 때 걸림돌이 된다"는 아버지의 말이 마음에 걸렸기 때문이다.

아버지의 야망(?)과 달리 위장전입은 고위공직자들에게 '선택 아닌 필수'처럼 보일 정도이다. 최근 김기영·이은애 헌법재판소 재판관 후보자, 정경두 국방부 장관 후보자, 이재갑 고용노동부 장관 후보자, 유은혜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후보자 등 5명에 달하는 인원이 위장전입 의혹에 휩싸인 상태이다.

물론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 2010년엔 이명박 전 대통령, 이만의 환경부 장관, 현인택 통일부 장관, 김준규 검찰총장, 이귀남 법무부 장관 등이 자녀의 학교 배정을 이유로 위장전입했다. 이 전 대통령은 세 자녀를 위해 다섯 차례나 주소를 옮겼지만, 별다른 처벌을 받지 않았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세 자녀의 초등학교·중학교 배정을 위해 다섯 차례 위장 전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전 대통령이 지난 6월 23일 첫 공판에 출석해 생각에 잠겨 있는 모습. /사진공동취재단
이명박 전 대통령은 세 자녀의 초등학교·중학교 배정을 위해 다섯 차례 위장 전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전 대통령이 지난 6월 23일 첫 공판에 출석해 생각에 잠겨 있는 모습. /사진공동취재단

"세상에 결점 하나 없이 완벽한 사람이 어디 있다고 그래."

인사청문회에서의 위장전입은 상대 진영 후보자를 낙마시키기 위한 도구에 불과한 듯 보였다. 실제로 낙마하는 사례도 많지 않지만. 천인공노할 위법 행위라며 손가락질 했던 의원도 정작 같은 당 소속 후보자의 위장전입에는 눈을 질끈 감았다. 한 여당 의원은 "생활형 위장전입은 달리 봐야한다"며 자녀 진학을 위한 위장전입은 투기·아파트 특혜 임대 등의 목적과 달리 판단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다시 필자의 학창시절로 돌아가 보면, 친구들 사이에서 "엄마아빠가 그러는데"로 시작해 '내신 성적을 따려면 비교적 학구열이 낮은 곳에 가야 한다', '그 동네는 학생들이 불량하니 피해야 한다', '그 학교가 입시율이 좋다더라' 등의 말이 돌았던 기억이 난다. 위장전입의 명목은 경쟁으로 얼룩진 교육의 단면을 보여주는 사례이기도 하다.

어른들, 더욱이 사회에 지대한 영향력을 미치는 고위공직자가 문제를 해결할 생각은커녕, 거주·소득·학벌·계층에 대한 차별을 공고히 하는 데 일조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주소를 옮기고 '좋은 학교'에 진학한 아이들은 법을 어기면 오히려 혜택을 보고 아무런 처벌도 받지 않는다는, '착하면 손해'라는 교훈을 얻었을 것이다. 그런 아이들이 자라 구성한 사회는 평등과 권리를 보장할 수 있을까.

유은혜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후보자는 5일 위장전입 논란이 일자 아이가 함께 유치원을 다녔던 친구들과 같은 초등학교에 다니도록 하기 위해서라고 해명했다. 유 후보자가 지난 2016년 교육문화체육관광회의 국정감사에 참석한 모습. /더팩트DB
유은혜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후보자는 5일 위장전입 논란이 일자 "아이가 함께 유치원을 다녔던 친구들과 같은 초등학교에 다니도록 하기 위해서"라고 해명했다. 유 후보자가 지난 2016년 교육문화체육관광회의 국정감사에 참석한 모습. /더팩트DB

"남에게 피해만 주지 않으면 문제없는 거 아냐?"

흔한 나머지 가볍게 여길 수도 있겠으나, 위장전입은 주민등록법 제 37조에 따라 3년 이하 징역 또는 1000만 원 이하 벌금 처벌을 받는 중범죄에 해당한다. 이토록 죄의 무게가 중한 이유는 타인에게 피해를 주기 때문이다. 위장전입은 투기·특정 아파트 임대·진학 등 어떤 목적이든 본래 혜택을 누려야 할 사람에게 불이익을 가한다.

당장 눈에 보이지 않지만, 피해자는 어디에든 있다. 제한된 입학 정원상 누군가는 집에서 멀리 떨어진 학교에 다녀야 하는 것처럼…. 설사 목적을 달성하지 못했다고 해도, 위법을 가벼이 여기는 사회 인식 조성에 기여한 셈이다. 음주운전도 마찬가지이다. 사고가 나지 않았다고 해도 '사고 발생 가능성'을 높인다. 선거철 공보물을 보면 알겠지만, 국회에 있는 의원 중 음주운전 전과를 가진 이들이 참 많다.

"다들 그냥 하는 일인데 공인이라서 운도 없이 들킨 거지."

아직도 이렇게 생각하고 계신 분이 있을까? 잘못에 책임을 묻는 이들에게 '불편'과 '예민'을 운운하지는 않겠죠? 날카로운 비판은 '불법행위를 지적하는 목소리'가 아니라 '위법 불감증'을 향해야 할 것이다.

특히, 사회적 책무를 지닌 고위공직자에게 '관행'은 변명이 되지 않는다. 아무리 위법이 만연하다 할지라도 고위공직자는 먼저 모범을 보이고 체계를 만들어가야 할 위치에 서 있기 때문이다. 일련의 인사청문회가 마무리되고 나면, 위장전입이 지탄받는 상황 또는 준법정신을 바라본 모두에게 위법이 조금 더 무거워질 수 있기를 바라본다.


imaro@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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