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F인턴수첩] '노회찬 보낸' 정의당, 다수당 갑질에 '을'의 설움만
입력: 2018.08.30 00:03 / 수정: 2018.08.30 09:49

교섭단체 지위를 상실한 정의당은 최근 이정미 당대표가 환노위 노동소위에서 배제되는 등 설움을 겪고 있다. 정의당 의원들이 지난 5월 28일 국회 본회의에 참석해 최저임금 삭감반대 피켓 운동을 벌이는 모습. /국회=이새롬 기자
교섭단체 지위를 상실한 정의당은 최근 이정미 당대표가 환노위 노동소위에서 배제되는 등 설움을 겪고 있다. 정의당 의원들이 지난 5월 28일 국회 본회의에 참석해 '최저임금 삭감반대' 피켓 운동을 벌이는 모습. /국회=이새롬 기자

이정미 정의당 대표, 환노위 노동소위 배제에 "해결 기다리겠다"

[더팩트ㅣ임현경 인턴기자] 세차게 내리는 빗소리를 들으면서 무슨 생각을 하시나요? 인턴기자가 가장 먼저 떠올리는 것은 월세방 천장에서 뚝뚝 떨어지던 빗물입니다.

바닥에 떨어지는 물이야 대야를 받치고 주변을 닦으면 될 일이지만, 축축하게 젖은 벽지는 비가 그친 뒤에도 속을 썩입니다. 곰팡이가 피어오르고 큼큼한 냄새가 나기 때문이죠. 해결책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벽에 생긴 균열을 메우고, 방수 페인트와 곰팡이 방지제를 바르고 말린 뒤, 새로 도배를 하면 됩니다. 하지만 집주인은 그럴 마음이 없죠. 번거롭고 비용이 많이 들기 때문입니다. 대부분 그저 벽지를 작게 잘라 덧대는 것으로 보기 싫은 문제를 가려버립니다. 다시 비가 샌다고 해도 생활 속 불편은 세입자의 몫이고, 집주인은 장마가 끝난 뒤 또 다른 벽지 조각을 건네주면 그만입니다.

최근 국회에도 비바람이 몰아쳤습니다. 환경노동위원회가 22일 이정미 정의당 대표를 고용노동소위원회에서 배제한 것이죠. 환노위 간사들이 노동 소위 정원을 10명에서 8명으로 줄이며 이 대표를 배제하는 동안, 고(故) 노회찬 의원의 죽음으로 교섭단체 지위를 상실한 정의당은 발언 기회조차 얻지 못했습니다.

정의당은 언제나 노동자의 곁에서 을의 목소리를 대변하려 노력해왔다. 사진은 이정미 정의당 대표가 29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중소상공인 보호 3대 갑질근절 법안, 국회는 응답하라 정책토론회에 참석해 발언하는 모습./뉴시스
정의당은 언제나 노동자의 곁에서 '을'의 목소리를 대변하려 노력해왔다. 사진은 이정미 정의당 대표가 29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중소상공인 보호 3대 갑질근절 법안, 국회는 응답하라' 정책토론회에 참석해 발언하는 모습./뉴시스

이 대표는 28일 <더팩트>와의 통화에서 "오늘도 위원장께 말씀을 드렸다. (김학용 위원장이) 간사들과 얘기해보겠다고 했다"고 밝혔습니다. 기자가 '그래도 상황이 달라지지 않으면 어떻게 할 것이냐' 묻자 "문제 해결을 요구했으니 일단 대처를 기다리고 있겠다"는 답이 돌아왔습니다.

노동소위에서 배제된 지 일주일 가까이 지났지만, 정의당은 여전히 기다려야 했습니다. 여야는 서로 양보를 미루고, 원내대표 간 대책 논의는 지지부진한 상황에서, 떠나버린 이의 빈자리가 유난히 크게 느껴졌습니다. 벽지에 번져가는 얼룩을 보며 비가 그치기만을, 집주인이 문제를 해결해주기를 기다리는 서러운 세입자의 모습이 겹쳐 보이기도 했습니다. '을'을 위해 목소리를 내던 정당도 '갑' 다수당 앞에서 을이 된 것입니다.

노동 법안을 심사하는 노동소위는 언제나 노동자 곁에 섰던 정의당의 '1차 전선' 같은 곳입니다. 이 대표는 지난 5월 해당 소위에서 활동하며 최저임금 산입법위 확대 법안 합의를 격렬히 반대하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이 대표가 상호 협의없이 배제됐다는 것은, 20대 후반기 국회에선 더는 노동자의 목소리를 들을 수 없게 됐다는 오해를 사기에 충분해 보입니다. 민주노총·한국노총을 비롯한 노동계는 이에 대해 성명 발표, 기자회견 등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정의당은 앞서 19대 국회 당시 환노위 자체에서 배제됐다가 농성을 통해 뜻을 관철시켰다. 사진은 정의당 의원단이 지난 2014년 6월 24일 심상정 의원의 환경노동위원회 배제 관련 농성을 앞두고 기자회견을 하는 모습. /뉴시스
정의당은 앞서 19대 국회 당시 환노위 자체에서 배제됐다가 농성을 통해 뜻을 관철시켰다. 사진은 정의당 의원단이 지난 2014년 6월 24일 심상정 의원의 환경노동위원회 배제 관련 농성을 앞두고 기자회견을 하는 모습. /뉴시스

"소위 '밀려서 가는' 상임위입니다. 남들 가기 싫어하는 상임위, 그래서 상임위 중 가장 적은 정수조차도 겨우 채우는 상임위인데, 환경과 노동의 가치를 위해 소신을 갖고 일하고자 하는 국회의원이 왜 배제돼야 합니까?"

심상정 정의당 의원의 말입니다. 그는 지난 19대 국회 당시 아예 환노위에서 배제됐다가 다시 복귀한 경험이 있습니다. 2014년 6월 환노위 위원 정수가 새누리당 8석, 새정치민주연합 7석으로 배정되면서 심 의원이 제외된 것입니다. 논란은 정의당 의원단이 국회 본청에서 무기한 농성에 돌입한 지 이틀째, 외교통상위에 배정된 비교섭단체 1석이 환노위로 옮겨가며 일단락됐습니다.

당시 심 의원은 "이번 일로 인해 다시 한번 드러난 국회 상임위 정수 조정의 문제점, 소수를 완전히 배제하는 독단적 방식의 교섭단체 운영제도를 근본적으로 개혁할 것을 양당에 촉구한다"고 강조했습니다. 그러나 4년이란 시간이 흘러도 변화는 없었습니다. 정의당의 소극적 태도와 더불어민주당·자유한국당 양당의 대응 속도를 고려한다면 오히려 더 나빠졌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국회는 눈앞에 닥친 현상을 해결하는 데에 그쳤을 뿐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겁니다. 여전히 군소 정당은 '해결을 촉구'하고 기다리는 것 외에는 도리가 없고, 거대 양당은 자신들과 직접 결부된 이익이 아니고선 좀처럼 움직일 기미를 보이지 않습니다. 지난 4년 사이 시민은 촛불 혁명을 통해 정권 교체를 이뤄냈지만, 을을 울게 하는 갑의 먹구름은 국회 안팎으로 아직 자욱합니다.

누군가는 '정의당 의원 한 명이 소위에서 빠진 것이 무슨 문제가 되느냐'고 물을 것입니다. 이에 관해서는 2014년 6월 김제남 당시 정의당 원내대변인의 말을 빌리고자 합니다. "단순히 상임위에서 의원 한 사람 수가 늘어나는 게 아니라 국민 생명과 안전, 땀 흘려 일하는 사람들의 몫으로 돌려드릴 것이 늘어나는 것이다." 정의당의 긴 기다림 끝엔, 제도 개선·의사결정 투명화 등 소수와 약자를 위한 무지개가 떠오르길 바라봅니다.

imaro@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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